[첨부 사진 : 십수년전 슬로박에서 찍은 사진, 모두 한쪽을 향해 있다.]
다음 중 뭐가 더 맞을까?
1. "해바라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양을 따라 움직인다."
2. "해바라기꽃은 항상 동쪽을 향해 있다"
어릴 때 우리는 해바라기가 늘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하곤 합니다.
"해바라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양을 따라 움직인다."
틀린 말은 아닙다. 다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이야기는 어린 해바라기에게만 해당합니다.
성장 초기의 해바라기는 꽃봉오리는 물론 위쪽의 어린잎까지도 해를 따라 움직입니다. 아침에는 동쪽을 향했다가 해가 기울면 서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리고, 밤이 되면 다시 동쪽으로 돌아와 다음 날 떠오를 태양을 기다립니다. 햇빛을 한 줄기라도 더 받아 자라기 위한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입니다.
이 흥미로운 움직임의 비밀은 바로 '옥신(Auxin)'이라는 식물 성장 호르몬에 있습니다. 옥신은 햇빛을 싫어해서 해가 비치는 반대쪽, 즉 그늘진 줄기 쪽에 집중됩니다. 이 옥신이 그늘진 곳의 세포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에, 그쪽 줄기가 더 빨리 자라게 되고 자연스럽게 줄기가 해 쪽으로 굽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줄기의 서쪽이, 저녁에는 동쪽이 더 빨리 자라며 고개를 돌리는 셈이죠.
그런데 꽃을 피울 만큼 다 자란 해바라기는 더 이상 해를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활짝 핀 꽃은 하루 종일 동쪽을 향한 채 그대로 서 있습니다. 즉 이미 꽃이 피었다면 위의 2번 내용이 1번보다 더 맞는 내용입니다. 위쪽의 어린 잎은 광합성을 위해 여전히 햇빛을 따라 조금씩 각도를 바꾸기도 하지만, 곷이 다 피면 꽃과 줄기만큼은 좀처럼 방향을 바꾸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길가나 들판에서 마주치는 해바라기는 대부분 이미 다 자란 모습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해바라기는 해를 쫓아다니는 꽃이라기보다, 한 방향을 묵묵히 바라보고 서 있는 꽃에 더 가깝습니다.
얼마 전 스페인의 라벤더 마을로 유명한 브리우에가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붉은 석양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는데, 문득 끝없이 이어지는 해바라기 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꽃봉오리도, 위쪽의 어린잎들도 모두 해를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역시 해바라기구나. 해를 따라 움직이는구나.'
그렇게 별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노랗게 활짝 핀 해바라기들은 모두 지는 해를 등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눈부신 빛은 서쪽에 쏟아지고 있는데도, 수만 송이의 꽃은 말없이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순간 눈을 의심했습니다.
해를 따라 움직이는 꽃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정작 다 자란 해바라기들은 가장 강렬한 빛을 등진 채 한 방향을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재빠르게 검색해서 다 핀 해바라기꽃은 동쪽을 봄다는 것을 알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바라기의 성장은 그저 키가 커지는 일이 아니구나.
끝없이 해를 따라 흔들리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스스로 한 방향을 정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구나.
우리의 삶도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우리는 늘 무언가를 찾아 헤맵니다. 더 좋은 직장, 더 나은 조건, 더 멋진 사람, 더 행복해 보이는 삶…. 세상이 더 밝다고 말하는 곳으로 마음이 자꾸 움직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어린 해바라기처럼, 자라기 위해 여러 방향을 바라봐야 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빛을 끝없이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바라볼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석양이 아무리 눈부셔도 흔들리지 않던 그 해바라기들처럼 말입니다.
그 방향은 가족일 수도 있고, 오래 품어 온 신념일 수도 있으며, 소명이나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밝은 곳이 어디인가가 아니라, 내가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는가입니다.
그래서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지금 나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아직도 눈앞의 빛을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내가 선택한 한 방향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걸까.
해바라기의 성숙은 해를 쫓던 어린 시절을 지나, 한 방향을 묵묵히 바라보는 꽃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성숙이란 모든 방향을 아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유혹 속에서도 끝내 자신이 선택한 방향을 지켜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브리우에가의 저녁 들판에서 저는 해바라기를 본 것이 아니라, 어쩌면 어른이 된 뒷모습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찍지는 못했지만 현장에서 본 것은 이런 느낌...
2. "해바라기꽃은 항상 동쪽을 향해 있다"
어릴 때 우리는 해바라기가 늘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하곤 합니다.
"해바라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양을 따라 움직인다."
틀린 말은 아닙다. 다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이야기는 어린 해바라기에게만 해당합니다.
성장 초기의 해바라기는 꽃봉오리는 물론 위쪽의 어린잎까지도 해를 따라 움직입니다. 아침에는 동쪽을 향했다가 해가 기울면 서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리고, 밤이 되면 다시 동쪽으로 돌아와 다음 날 떠오를 태양을 기다립니다. 햇빛을 한 줄기라도 더 받아 자라기 위한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입니다.
이 흥미로운 움직임의 비밀은 바로 '옥신(Auxin)'이라는 식물 성장 호르몬에 있습니다. 옥신은 햇빛을 싫어해서 해가 비치는 반대쪽, 즉 그늘진 줄기 쪽에 집중됩니다. 이 옥신이 그늘진 곳의 세포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에, 그쪽 줄기가 더 빨리 자라게 되고 자연스럽게 줄기가 해 쪽으로 굽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줄기의 서쪽이, 저녁에는 동쪽이 더 빨리 자라며 고개를 돌리는 셈이죠.
그런데 꽃을 피울 만큼 다 자란 해바라기는 더 이상 해를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활짝 핀 꽃은 하루 종일 동쪽을 향한 채 그대로 서 있습니다. 즉 이미 꽃이 피었다면 위의 2번 내용이 1번보다 더 맞는 내용입니다. 위쪽의 어린 잎은 광합성을 위해 여전히 햇빛을 따라 조금씩 각도를 바꾸기도 하지만, 곷이 다 피면 꽃과 줄기만큼은 좀처럼 방향을 바꾸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길가나 들판에서 마주치는 해바라기는 대부분 이미 다 자란 모습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해바라기는 해를 쫓아다니는 꽃이라기보다, 한 방향을 묵묵히 바라보고 서 있는 꽃에 더 가깝습니다.
얼마 전 스페인의 라벤더 마을로 유명한 브리우에가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붉은 석양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는데, 문득 끝없이 이어지는 해바라기 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꽃봉오리도, 위쪽의 어린잎들도 모두 해를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역시 해바라기구나. 해를 따라 움직이는구나.'
그렇게 별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노랗게 활짝 핀 해바라기들은 모두 지는 해를 등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눈부신 빛은 서쪽에 쏟아지고 있는데도, 수만 송이의 꽃은 말없이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순간 눈을 의심했습니다.
해를 따라 움직이는 꽃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정작 다 자란 해바라기들은 가장 강렬한 빛을 등진 채 한 방향을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재빠르게 검색해서 다 핀 해바라기꽃은 동쪽을 봄다는 것을 알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바라기의 성장은 그저 키가 커지는 일이 아니구나.
끝없이 해를 따라 흔들리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스스로 한 방향을 정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구나.
우리의 삶도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우리는 늘 무언가를 찾아 헤맵니다. 더 좋은 직장, 더 나은 조건, 더 멋진 사람, 더 행복해 보이는 삶…. 세상이 더 밝다고 말하는 곳으로 마음이 자꾸 움직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어린 해바라기처럼, 자라기 위해 여러 방향을 바라봐야 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빛을 끝없이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바라볼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석양이 아무리 눈부셔도 흔들리지 않던 그 해바라기들처럼 말입니다.
그 방향은 가족일 수도 있고, 오래 품어 온 신념일 수도 있으며, 소명이나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밝은 곳이 어디인가가 아니라, 내가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는가입니다.
그래서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지금 나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아직도 눈앞의 빛을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내가 선택한 한 방향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걸까.
해바라기의 성숙은 해를 쫓던 어린 시절을 지나, 한 방향을 묵묵히 바라보는 꽃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성숙이란 모든 방향을 아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유혹 속에서도 끝내 자신이 선택한 방향을 지켜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브리우에가의 저녁 들판에서 저는 해바라기를 본 것이 아니라, 어쩌면 어른이 된 뒷모습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찍지는 못했지만 현장에서 본 것은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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