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가 죽기 직전까지 오베르의 길가에서 집착하듯 그렸던 최후의 유작 <나무 뿌리>. 흙 밖으로 터져나와 기괴하고 흉측하게 뒤엉킨 그 뿌리의 정체는 바로 **아까시나무(Acacia)**였습니다.
최근 프랑스 시청과 땅 주인이 "이 기괴한 나무뿌리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를 두고 사유지 경계선 조정을 해가며 법정 소송을 벌였던 바로 그 나무입니다.
인간들이 서로 소유하겠다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이 기괴한 아까시나무가, 사실 성경 역사상 가장 거룩한 신의 임재 처소인 '언약궤(법궤)'를 만든 유일한 재료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성경 출애굽기에서 성막의 널판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언약궤)를 만들 때 쓰인 나무는 조각목(개역개정: 싯딤나무, 히브리어: Shittah)입니다. 이 나무의 정체가 바로 광야의 아카시아 나무입니다.
광야에서 자라는 아카시아는 우리가 아는 곧고 예쁜 나무가 아닙니다. 물 한 방울 없는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줄기는 거칠게 뒤틀리고 온통 날카로운 가시로 뒤덮인 볼품없고 기괴한 나무입니다. 목재로서의 가치도 없어 그 누구도 탐내지 않는, 버려진 땔감에 불과했죠.
하지만 이 거친 환경이 아까시나무에게 놀라운 물리적 성질을 부여합니다.
썩지 않는 내구성(Incorruptibility): 척박한 광야에서 천천히 자라다 보니 나이테가 극도로 조밀하고 단단해져 물에 가라앉을 정도로 밀도가 높습니다. 사막의 곤충이나 벌레조차 갉아먹지 못해 썩지 않는 방부 성질을 가집니다.
생존을 위한 무한 제어: 물을 찾기 위해 땅속 수십 미터 아래로 맹렬하게 기괴한 뿌리를 뻗칩니다. 고흐가 그렸던 흙 밖으로 튀어나온 기괴한 뿌리의 형태가 바로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쥐어짜 뻗어 나간 아까시나무의 생존 흔적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던 가시나무의 기괴한 단단함과 썩지 않는 성질을 눈여겨보신 창조주께서는, 당신의 십계명 돌판을 담을 가장 거룩한 법궤의 재료로 오직 이 '아까시나무'만을 지목하셨습니다.
고흐의 그림 속 흙 위로 터져 나온 뿌리처럼, 우리의 인생도 때로는 거칠고 기괴하게 꼬여 있을 때가 많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아까시나무처럼 상처라는 날카로운 가시를 돋운 채, "왜 내 삶은 이토록 척박하고 볼품없는가"라며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곤 하죠.
세상이 그어놓은 번듯한 성공의 경계선 밖으로 밀려나 "내 몫은 어디에 있는가"라며 억울해하고, 세상과 이웃을 향해 날 선 방어막을 친 채 소유권 분쟁의 칼날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저주하고 감추고 싶어 하는 그 거칠고 기괴한 '삶의 뿌리'와 '결핍'이, 사실은 당신을 썩지 않고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신의 숨겨진 제어 장치는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거친 아까시나무(조각목)를 베어 겉껍질을 완전히 벗겨내고 가시를 깎아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썩지 않는 단단한 나무 위에 순금*을 아낌없이 입히셨습니다.
볼품없는 아까시나무의 본체 위에 황금의 빛을 입히는 순간, 사막의 쓸모없는 땔감은 우주에서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처소인 '법궤'로 재탄생했습니다.
육체라는 흙의 성분 속에서 기괴하게 꼬이고 상처 입은 아까시나무 같은 우리 인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내 지분과 소유권을 증명하려 바르르 떠는 흔들리는 물음표의 삶을 내려놓으십시오. 세상의 경계선 앞에서 억울해하는 가시를 거두고, 나를 빚으신 설계자 하나님의 손길에 온전히 삶의 뿌리를 맡겨보십시오.
보잘것없는 내 가시나무 같은 인생 위에 신의 은혜와 말씀의 주파수(황금)가 입혀지는 순간, 당신의 삶은 이 혼돈의 세상을 구원할 가장 정교하고 거룩한 신인류의 방주, 하나님의 위대한 마침표로 완벽하게 빚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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