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식물 #사시나무
"최초의 소유권 스캔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바람에 흔들리는 자연을 보며 자신의 불안한 내면을 투영했습니다. 그가 누에넨 시절에 그린 <가을의 포플러(사시나무) 가로수 길>은 거친 바람에 잎새를 바르르 떨며 서 있는 사시나무들의 쓸쓸한 초상을 담고 있습니다. 고흐는 이 떨리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폭풍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소리 내어 우는 영혼의 노래를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사시나무 떨듯 바르르 떨리는 이 슬픈 나무가, 사실은 성경 역사상 가장 기상천외하고 정교한 '소유권 분쟁 가로채기 사건'의 주연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삼촌에게 속아 20년 동안 무임금 노동을 했던 한 남자가, 이 나무 한 가지를 꺾어 들고 인류 최초의 '유전공학적 복수극'을 시작합니다. 바로 야곱과 라반의 얼룩무늬 양 소유권 분쟁입니다.
"야곱의 사시나무 가치와 유전자 과학"
창세기 30장에서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 가축 분배 계약을 맺습니다. "앞으로 태어나는 가축 중 아롱진 것, 점 있는 것(얼룩이)만 내 소유로 하겠다"고 선포하죠. 그리고 야곱은 사시나무(Poplar),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낸 뒤, 가축들이 물을 먹는 개천에 세워둡니다. 가축들이 그 나뭇가지를 보며 물을 마시고 교배를 하여 신기하게도 전부 '얼룩이(야곱의 몫)'만 태어나게 만듭니다.
고대인들의 황당한 태교 미신 같아 보이는 이 장면을 현대 생물학 및 유전자 과학(Genetics)의 팩트로 뜯어보면 소름 돋는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양의 털빛 중 '흰색'은 우성 유전자이고, 야곱이 가져가기로 한 '얼룩무늬(점박이)'는 열성 유전자입니다. 유전 법칙상 열성 인자가 발현되려면 부모 양쪽 모두가 얼룩무늬 유전 정보를 품고 있어야 하며, 극도의 스트레스나 영양 불균형 상태에서는 이러한 열성 형질의 임신과 분만이 성공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여기서 야곱의 정교한 유전 제어가 시작됩니다. 사시나무(특히 버드나무과 사시나무속)의 껍질과 가지에는 '살리실산(Salicylic acid)'이라는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현대 해열진통제 '아스피린'의 천연 주성분입니다. 20년 동안 노동착취를 당하며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려 면역력이 약해지고 가임률이 떨어진 양들에게, 야곱은 사시나무 껍질을 물에 우려내어 먹인 것입니다.
즉, 미신을 쓴 것이 아니라 사시나무 속 천연 소염진통제를 통해 양들의 생식 능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더 나아가 현대 과학이 말하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 환경적 요인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현상)'적 통제를 가한 것입니다. 가축들의 스트레스를 완벽히 제어하여 세포 내 꽁꽁 닫혀 있던 열성 유전자(얼룩무늬)의 발현 확률을 극대화한 고도의 수의학적 설계였습니다. 고작 나무 한 가지의 성분을 이용해, 라반의 철저한 감시를 뚫고 자신의 정당한 '소유권'을 되찾아온 것입니다.
"당신의 몫을 빼앗겼다고 억울해하십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라반'을 만납니다. 뼈 빠지게 일한 대가를 가로채는 직장 상사, 동업자, 혹은 내가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세상의 불공평한 룰 때문에 내 몫을 빼앗겼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왜 내 지분은 이것뿐인가?", "왜 내 소유는 늘 바람 부는 사시나무처럼 초라하게 흔들리는가?"라며 억울함에 밤잠을 설치고 세상과 이웃을 향해 날 선 소유권 분쟁의 소송을 제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정말 당신의 삶을 스스로 소유할 자격이 있는 주인입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사시나무 속에서 마침표를 찍다"
야곱은 사시나무 가지를 흔들며 제 힘으로 소유권을 쟁취한 줄 알았지만, 훗날 고백합니다. 얼룩무늬 양들을 태어나게 하신 분은 자신의 얕은 지식이 아니라, 밤낮 일하며 눈물 흘리던 그의 고통을 하늘에서 지켜보시던 하나님의 정교한 개입이었습니다.
사시나무(Poplar)의 학명은 Populus tremula입니다. '끊임없이 떨리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사시나무 잎자루는 아주 납작해서 미풍에도 사정없이 흔들리며 소리를 냅니다. 제아무리 버티려 해도 바람이 불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운명, 그것이 바로 소유에 집착하며 불안해하는 우리의 영혼과 닮아 있습니다.
고흐가 캔버스 위에 사시나무의 요동치는 잎새들을 그리며 그 불안 속에서 예술적 구원을 갈구했듯, 우리 역시 세상의 소유를 흔들어 대며 영혼의 갈증을 채우려 하지만 흔들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내 손에 쥔 미미한 소유권 분쟁의 움켜짐을 내려놓고,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소리 내어 찬양하는 사시나무처럼 온전히 내 생명의 설계자에게 삶을 맡겨보십시오. 내 지분을 증명하려는 불안한 물음표(?)의 인생에서, 이미 내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그분의 완벽한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단단한 마침표(!)의 인생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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