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 : 언제나 어린아이 같은 호안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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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마드리드 여행이 내게 준 가장 값진 수확 중 하나는 단연 호안 미로(Joan Miró)와의 조우였다. 마드리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를 찾았을 때, 거대한 슬픔을 담은 피카소의 《게르니카》 곁에서 내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은 것은 바로 미로의 《파이프를 문 남자》였다. 극도로 단순화되어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정겹고 유아틱한 그 형상은, 복잡한 현대미술의 홍수 속에서 되려 가슴 깊이 와닿는 해방감을 선사했다. 첫눈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그야말로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었다.

[호안 미로, 파이프를 문 남자]

그 여운은 자연스레 그의 고향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의 미로 미술관으로 이어졌다. 미술관 내부를 가득 채운 수많은 명작도 훌륭했지만, 내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야외 정원에 우뚝 선 청동 조각상 《인물(Personnage)》이었다.

우람하게 표현된 신체적 특징을 보면 직관적으로 '남자'라는 직설적인 이름이 더 어울려 보였다. 실제로 사람들의 손때가 타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그 해학적인 부분을 보며 흥미로운 의문이 피어올랐다. 왜 미로는 이토록 명백한 남성의 상징을 그려놓고도 굳이 '남자'가 아닌,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인물' 혹은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성별의 경계를 넘어 우주적 존재나 외계의 생명체 같은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본 것일까? 서구 예술의 오랜 이분법적 정서 속에서 이토록 노골적이면서도 동시에 고도로 추상적인 명명을 택한 호안 미로의 정신세계는 과연 오묘하기 그지없다. 형태는 지극히 단순하나, 그 속에 담긴 사유의 깊이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거장의 위트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호안 미로, 인물]

미술관을 나서며 아쉬운 마음에 품에 안은 한 장의 엽서 역시 자꾸만 눈길을 붙잡는다.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서는 직접 마주하지 못했던 바로 그 그림, 그의 《자화상(Self-Portrait)》이다.

[호안 미로, 자화상 1937-1960]

이 작품의 하단에는 독특하게도 '1937-1960'이라는 긴 세월의 간극이 적혀 있다. 작가의 생몰연도가 아닌, 오롯이 하나의 캔버스 위에 흐른 시간의 궤적이다. 미로는 스페인 내전의 포화 속에서 절박하게 자신을 응시하며 정밀하게 묘사해 냈던 1937년의 세밀한 자화상 위에, 무려 2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1960년에 이르러서야 그 고집스럽고 복잡했던 과거를 덮어버리듯 아주 거칠고 단순한 검은 선을 덧그려 이 자화상을 완성했다.

과거의 정교한 자신을 부정하거나 혹은 비우고, 마침내 도달한 단순함의 미학. 청년 미로의 치열함 위에 노년 미로의 자유분방함이 겹쳐진 이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가 평생을 걸쳐 덜어내고자 했던 비움의 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파이프를 문 남자의 유쾌함에서 시작해 청동 조각의 오묘한 위트를 지나, 마침내 도달한 이 자화상의 묵직한 여백까지. 호안 미로가 던진 질문들은 이번 여정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내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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