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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을 만나다 :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단원 풍속도첩
고누놀이 - 당대 사람들은 이 그림에서 뭘 보고 웃고 또 울었나?
1. 지금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고누놀이라고 불러온 이 그림.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놀이가 정말 고누놀이일까요? 흥미롭게도 민속학계와 미술사학계 일각에서는 이 그림을 윷놀이로 보아야 한다는 강력한 반론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림 속 말판에 그어진 원과 십자 모양, 그리고 눈의 수와 배치가 전통적인 원형 윷판의 형태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단원이 어떤 화가인지를 떠올려 보아야 합니다. 그는 모든 대상과 상황에서 가장 특징적인 찰나의 순간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 렌즈를 가진, 이른바 스냅샷의 대가입니다. 만약 이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면, 윷가락이 날아오르는 순간이나 그 결과에 반응하는 역동적인 장면도 충분히 선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정말 윷놀이판이었다면, 제가 기억하는 어릴적의 풍경과는 너무나 달라서 묘한 이질감이 듭니다.
저의 기억에 남아 있는 윷놀이는 많은 것이 있지만 그 중에 최고라 할 수 있는 것은 정월 대보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어느 집에 모여 큰 멍석을 깔고 모여 팔뚝보다 굵은 커다란 윷을 힘껏 던지며 놀던 왁자지껄한 판이었습니다. 커다란 멍석 중앙에 줄을 쳐놓고, 윷가락이 최소한 멍석 절반 이상은 날아가야 '나가리'가 안나고 또 너무 세게 던져 멍석을 한개라도 벗어나면 어김없이 '나가리'가 되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힘 조절을 잘못해서 몇 번이나 연속으로 나가리가 나는 것이 비일비재했으며 그때마다 온 동네가 터져나가라 웃고 떠들던, 온통 소리와 활기로 가득한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제가 단원의 입장이 되어서 서민들의 실제 모습을 그려서 올리라는 명을 받았다면 단연코 이런 왁자지껄한 동네 잔치가 된 윷판을 그렸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윷이 하늘을 날고 있는 그것도 윷가락 하나는 이미 저 멀리 날아가 화면에는 윷가락이 세개만 있는 그런 모습을 그렸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참 후의 후대 사람들은 저 당시에는 윷가락 3개로 윷놀이를 하기도 했다 아니다 윷가락은 반드시 4개로 해야 한다 하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윷놀이를 윷가락이 3개라고 못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할 때는 더 재미를 위해서 윷가락 하나에는 X자, 또하나에는 XX자를 표시해서 백도나 두번백도까지 해서 총 7개의 수가 나오도록 해서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백도나 두번백도까지 하면 훨씬 다이내믹한 게임이 진행됩니다.
그러나 단원이 실제로 포착한 것은 전혀 다릅니다. 인물들은 좁은 흙바닥에 바짝 엎드려 숨소리조차 죽인 채 정적인 응시에 빠져 있습니다. 이토록 고요하고 팽팽한 수읽기의 순간은, 적어도 단원이 포착한 장면만 놓고 보면 윷가락을 던지는 놀이보다는 두뇌 싸움인 고누에 훨씬 가깝게 읽힙니다.
단원은 왜 이 사람들을 이토록 좁은 흙바닥에 바짝 붙여놓았을까요? 말판, 사람들의 뻗은 손, 일그러진 얼굴, 예리한 시선, 쥐어진 돌. 그림의 모든 물리적 에너지가 화면 중앙의 아주 작은 영역으로 맹렬하게 집중됩니다. 단원은 놀이가 시작되는 장면도, 승패가 갈리는 장면도 보여주지 않고 오직 다음 수를 두기 직전의 숨 막히는 침묵만을 잘라냈습니다. 이렇게 바라보면 이 답답할 정도의 구도는 인물들의 극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아주 정교한 클로즈업 기법이 됩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단원 특유의 치밀한 다시점 구도가 절묘하게 연출되고 있습니다.
흙바닥에 그려진 고누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의 완전한 정원(正圓)의 형태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화면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사선 시점(아이레벨이나 부감의 중간)에서 본 구도라면, 원근 투영 법칙상 바닥의 원은 당연히 가로로 길쭉하게 찌그러진 타원형으로 보여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단원은 마치 관람자가 고누판 바로 위(탑뷰)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렸습니다. 만약 실제 바닥에 그린 고누판 자체가 관람자 방향으로 길게 왜곡된 타원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사선 시선에서는 결코 이런 정원형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인물들의 몸짓과 표정은 눈높이에서 입체적으로 포착해 현장감을 살리면서도, 정작 승부의 중심인 고누판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평면 시점으로 펼쳐놓아 말판의 형태와 수를 또렷하게 인지시키는 단원 특유의 기하학적 연출이자 시선의 입체적 재구성입니다.
2. 널브러진 네 개의 돌멩이의 의미
그렇다면 지금 이 판세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그 힌트는 말판의 궤도 밖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4개의 조약돌에 있습니다. 나는 이 네 개의 돌을 이미 반상에서 잡혀나간 ‘죽은 말’, 즉 판 밖으로 쫓겨난 사석으로 읽고 싶습니다.
이 네 개의 돌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이 아니라, 이 판에서 이미 벌어진 싸움의 흔적입니다. 만약 양측이 비슷한 수의 말을 사용하는 놀이였다면, 이 네 개의 돌은 서로 몇 개씩 말을 잃은 과거의 전투 기록이 됩니다. 지금 화면에 남아 있는 돌들이 현재 진행형의 수싸움이라면, 바깥의 네 돌은 이미 지나간 승패의 흔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재미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판에서 지금 누가 유리한가? 관람자는 결코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승패를 결정지을 남은 말들이 모두 반상을 짚고 있는 아이의 작은 손과 그림자에 절묘하게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단원은 이미 죽은 돌들의 흔적만 보여준 채, 다가올 다음 수의 결과는 오롯이 감추어 버립니다. 이로써 그림 안에는 과거의 전투와 현재의 수싸움,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수가 동시에 담기는 놀라운 시간성이 형성됩니다.
3. 한 아이를 집중 공략한 집요한 진실
말판을 덮고 있는 동네 아이의 신체를 자세히 뜯어보면 묘한 이질감이 듭니다. 바닥을 짚은 왼쪽 손목은 안쪽으로 기괴하게 꺾여 있고, 돌을 쥔 오른쪽 새끼손가락은 유난히 굵게 부풀려져 있으며, 무릎과 바지춤은 뻣뻣하게 각이 져 허공에 붕 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신체만이 아닙니다. 옷차림 역시 다른 인물들과 어딘가 결이 다릅니다. 더운 날씨 탓에 옷을 헐겁게 입은 정도로 보기에는 매무새가 지나치게 흐트러져 있고, 바지의 형태와 몸에 걸친 방식도 다른 아이들의 단정한 차림과 묘하게 대비됩니다. 한두 군데의 붓질이 어색한 것이 아니라, 신체의 굴곡과 손가락, 그리고 옷의 형태까지 유독 이 한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것을 단원의 의도적인 과장이나 심리적 긴장의 왜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한 군데가 아닙니다. 손목, 손가락, 팔의 꺾임, 그리고 복장까지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한 사람에게 겹쳐 있습니다. 의도적 과장이라면 한사람에 한가지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이상합니다.
왜곡하고자 했던 명확한 이유를 쉽게 찾아내지 못하면서, 저는 한 가지 불편한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시 이것은 지어낸 묘사가 아니라, 단원이 실제로 목격한 인물의 특이한 신체적 특징과 남다른 옷차림을 그대로 옮겨온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을 특정 불편한 신체적 상태에 대한 기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림에 나타난 차이를 관찰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신중함을 유지한 채 그림을 바라보면, 오히려 더 이상한 사실 하나가 남습니다.
왜 단원은 이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게 그리지 않고 뭔가 조금 다르게 그렸을까?
만약 그것이 실제 인물의 모습이었다면, 당대의 엄혹한 시선 속에서 세상이 쉽게 담아내지 못했던 누군가의 진짜 모습을 단원은 동정이나 희화화 없이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놀이판의 한가운데에 고스란히 세워둔 셈이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집요한 ‘사실의 기록’을 그대로 박제해 놓았기에, 소름 돋는 심리 스릴러 같은 명장면이 탄생합니다. 아이의 이상하게 꺾인 왼쪽 손목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분산되고, 또 오른쪽의 쥐어진 손 모양 때문에, 정작 말판의 가장 핵심적인 중앙 부위가 완전히 가려져 있습니다. 아이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새까만 돌이 쥐어져 있다는 것만 보일 뿐입니다.
화가는 일부러 가리려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눈앞의 진실을 정직하게 담아냈을 뿐인데, 그 날것의 형태가 역설적으로 게임의 승패를 완벽하게 은폐해 버린 것입니다. 관람자는 아이가 그 돌을 어디에 두려는지 알 수 없고, 맞은편 사내도 모릅니다. 오직 저 아이만 알고 있습니다. 단원의 이 집요하고도 정직한 눈썰미는, 우리를 저 가려진 손 밑을 숨죽여 훔쳐보게 만드는 가장 서늘한 심리 스릴러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습니다.
4. 지게에 실린 짐의 정체
기존의 해석은 지게, 노동복, 남성들이라는 조합만 보고 쉽게 ‘나무꾼의 나뭇짐’이라 단정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림 속 어디에도 도끼나 톱 같은 벌목 도구는 보이지 않으며, 이것이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이라는 지형적 단서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꼭 나무꾼이어야 하는가? 그림 속 물성을 다시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림 속 지게에 실린 짐은 커다란 상자처럼 균일하고 반듯합니다. 만약 무거운 장작이나 나뭇가지라면 형들의 지게처럼 작대기도 없이 바닥에 완전히 납작하게 눕혀졌을 때 혼자 다시 짊어질 수 없습니다. 억새나 갈대, 그리고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는 들깨 묶음 역시 이토록 네모반듯한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줄기가 일직선으로 곧아 반듯하게 묶이기 좋고, 수분이 빠져 가벼워진 참깨 깻대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림만으로 이것이 반드시 참깨 깻대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나무꾼의 나뭇짐’이라는 해석 역시 그림 속 물성만으로는 증명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반드시 참깨 깻대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나뭇짐’이라고 이름 붙여 버린 그 순간, 그림 속에 남아 있던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마른 깻대라면 부피에 비해 무게가 어느 정도 가벼웠을 것이고, 그래서 어린 막내도 저만 한 부피의 짐을 지고 서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5. 계절의 재구성
짐이 참깨를 털고 난 마른 깻대라면, 이 공간을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무렵의 쉼터로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가슴을 훤히 풀어 헤친 모습은 한낮의 뙤약볕 잔열이 후끈하게 남아있는 기후를 보여줍니다. 밭일을 마치고 짐을 지고 돌아가는 동선을 감안하면, 해가 가장 뜨거운 정오를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의 나른한 시간대일 것입니다. 화면을 덮고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는 마을 어귀에서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울퉁불퉁 솟아오른 나무뿌리 주변의 거친 흙바닥에는 밟혀도 질기게 다시 일어나는 들풀 군락이 돋아나 있을 법합니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아니라 흙먼지 날리는 시골 마을 어귀의 리얼리티입니다.
여기에 계절의 교차를 알리는 나른한 오후의 공기, 그리고 매미의 찌르르하는 울음소리를 덧입혀 봅니다. 이 자연의 소리들은 쉼터 주변의 번잡함을 지워버리고, 오직 흙바닥 위 돌멩이를 쥔 사람들의 팽팽한 숨소리만 남겨두는 훌륭한 청각적 방어막이 되어 줍니다.
6. 이들은 누구인가?
화폭 속 6명의 인물은 무작위로 섞인 것이 아니라, 행동의 동선과 외양에 따라 아주 선명하게 두 그룹으로 나뉩니다. 먼저, 짐을 지고 온 세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바닥에 눕혀진 두 개의 지게와 막내의 등에 있는 지게까지, 이 지게에 실린 세 개의 짐들은 마치 한 틀에서 찍어낸 것처럼 규격과 형태가 놀라울 정도로 동일합니다. 이들은 같은 밭에서 깻대를 털고 묶는 공동 작업을 마친 뒤 함께 돌아오는 일행으로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의 골격을 유심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떡 벌어진 어깨, 굵직한 목덜미, 투박하고 억센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거친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사람들 특유의 억센 분위기를 강하게 풍깁니다. 이야기의 편의상 이들을 변강쇠 삼형제로, 그리고 큰형, 둘째, 막내라 부르겠습니다.
이들의 지게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뭉클한 상상력이 덧붙여집니다. 참깨를 털어 깻대를 지고 오는데, 깻대를 단단히 감싸 안아 고정할 만한 큰 보자기나 짚으로 엮은 덮개가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것을 챙겨서 먼저 가져갔거나 다른 손에 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부터 그림은 침묵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들이 형제라면 어떨까요? 아버지는 이미 연로했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이미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먼저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 여기서부터는 그림이 말해주는 사실이 아니라, 그림이 허락하는 하나의 상상입니다.) 어린 막내까지 지게질을 거드는 이 장면은 전혀 다른 표정을 갖게 됩니다. 묵묵히 밭의 무게를 짊어지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장성한 세 아들의 정서적 스토리가 덧입혀집니다.
첫째(큰형): 정면을 향해 앉아 앞가슴을 훤히 열어젖힌 인물이 바로 이 무리를 이끄는 듬직한 큰형입니다. 그는 바닥에 놓인 지게 중 가장 거대한 부피의 짐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가장 무거운 노동의 하중을 견뎌내는 장남의 듬직한 위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여유롭게 상체를 세운 채 흙바닥의 고누판을 쥐락펴락 주도하는 그의 태도에는 억센 노동 그룹을 통솔하는 맏형 특유의 노련함과 권위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둘째: 큰형의 맞은편에 앉은 인물은 혈기 왕성한 둘째입니다. 그는 고된 밭일로 달아오른 몸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아예 윗옷을 훌렁 벗어 던졌습니다. 터질 듯 불거진 등 근육과 굽은 어깨선을 가감 없이 드러낸 그는, 형보다는 아주 살짝 작은 짐을 졌지만 밭일의 가장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해내는 열혈 청년입니다. 비록 직접 게임을 하지는 않지만, 형 곁에 바짝 붙어 판세를 노려보는 뒷모습에서 당장이라도 훈수를 툭 던질 것 같은 거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옵니다.
셋째(막내): 뒤늦게 언덕을 올라오며 형들의 고누 오락판에 난감해하고 있는 소년이 바로 막내입니다. 얼굴에는 아직 앳된 유년의 티가 남아 있지만, 벌어진 골격과 투박한 선은 두 형의 우락부락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음을 보여줍니다. 막내는 세 개의 지게 중 가장 작은 짐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형들만큼 노련하지 않아 짧은 반바지 바람으로 억센 풀숲에 종아리가 다 쓸리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무거운 짐을 내릴 때 받쳐줄 생각도 없고 오락에 빠져 있는 형들에게 참 대략난감한 느낌을 갖고 있는 아직 미숙하지만 한편 대견스러운 셋째의 모습입니다.
반면, 이 변강쇠 삼형제와 마주 앉아 돌을 쥔 아이와 곁에 엎드린 소년들은 이들과 완벽하게 대비됩니다. 단정하게 머리를 땋고 옷을 여며 입었으며, 땀방울 하나 없는 뽀송뽀송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앞서 짚어본 것처럼, 판을 쥐고 있는 아이의 기이한 신체적 특징이 화가의 과장이 아니라 그날 단원이 목격한 ‘진짜 모습’이라면 이 장면은 순식간에 서늘하고도 뭉클한 반전을 맞이합니다. 신체의 불편함 때문에 스스로 걷기 힘들어 보이는 저 아이는 누군가에 업히거나 소달구지에 실려 이 느티나무 아래 그늘로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면 우측 하단에서 곰방대를 물고 무심하게 앉아 있는 어른—남들과 다른 말끔한 신발을 신은 저 아저씨는 어쩌면 이 아이의 아버지일지도 모릅니다.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아들이 안타까워 매일같이 업고 동네 어귀로 나와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아버지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벌이고 있는 놀이의 풍경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바닥에 희미하게 그어진 판은 원래 누군가 윷놀이를 하기 위해 그려놓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발을 쓰기 힘든 아들을 위해, 그 윷판의 칸을 빌려 손가락만으로 치열하게 돌을 옮기는 고누판을 새로 열어준 것입니다.
땀 냄새가 진동하는 거친 밭일 노동자 형제들과, 몸이 불편한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품은 아버지와 아들. 이 판은 단순한 놀이의 대항전을 넘어, 저마다의 삶의 무게와 눈물겨운 사연을 품은 이들이 흙바닥 위에서 기적처럼 마주한 가장 따뜻하고도 서늘한 평등의 공간이 됩니다.
7. 발끝에서 드러나는 삶의 차이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아직 지게를 짊어지고 있는 막내의 존재입니다. 두 형은 이미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막내는 아직 짐을 지고 있고 갈 길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놀이판을 곁눈질하다가 그만 발길이 옴짝달싹 못 하게 붙잡히고 맙니다.
이 장면은 놀이판에는 노동의 서열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판을 쥐락펴락하는 큰형이든, 지게를 메고 헐레벌떡 당도한 막내든, 하루 종일 그늘에서 뒹굴던 아이든 상관없습니다. 판이 벌어지는 순간, 모두가 똑같이 흙바닥에 바짝 엎드려 단 하나의 돌멩이만을 숨죽여 바라봅니다.
비록 흙바닥 앞에서는 평등하게 엎드려 있지만, 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발끝에 신겨진 신발에서 조용히 그 차이를 드러냅니다. 밭에서 돌아온 일행은 맨발이거나 낡은 짚신을 신고 있습니다. 짚신은 통풍이 잘되고 흙길에 미끄러지지 않지만, 며칠 험한 길을 걸으면 금방 바닥이 다 헤져버리는 소모품입니다. 그들에게 짚신은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닳으면 다시 만들어 신어야 하는 일상의 신발이었습니다.
반면에, 화면 우측에서 느긋하게 구경하는 어른의 발에는 밭일을 하는 사람들의 투박한 신발과는 다른, 매끄러운 형태의 신발이 눈에 들어옵니다. 적어도 단원은 신발의 재질과 형태를 달리하여 인물들의 처지를 미묘하게 구별하고 있는 듯합니다.
8. 곰방대 아저씨는 누구이며 뭘 하고 있나?
화면 우측 하단, 거대한 나무가 땅 위로 밀어 올린 굵은 나무뿌리 위에 편안하게 걸터앉은 어른. 비바람에 씻겨 드러난 이 단단한 나무뿌리는 내 어린 시절 동네 어귀마다 버티고 서 있던 당산나무의 그것과 닮아 있습니다.
정월대보름 관련 저의 어릴적 추억을 한번 꺼내봅니다. 제가 살던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 남자 어른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마을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어느 해는 저희 아버지가 그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제사 전날 목욕재계에 이발까지 정갈하게 하셨습니다. 밤 늦은 시각에 홀로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와 또한 위험한 산중턱의 산신당을 향해 어두운 길을 오르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왜 꼭 밤에 가시냐"고 물으면 "자시에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자시가 몇 시인지도 모른 채 늦은 밤에 캄캄한 산길을 나서는 아버지를 불안하게 지켜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도 정월 대보름에는 동네 입구의 느티나무와 산 중턱의 산신당에 떡이 올려져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정월 대보름에는 재빨리 그곳으로 가서 제사떡을 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마을 입구의 떡은 경쟁자가 많아 아주 일찍 가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기에 먹을 생각도 못했고 대신 산중턱의 산신당은 감히 가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에 친구 한두명을 대동해서 떡 수거하러 가곤 했습니다. 거긴 가기가 힘들기에 경쟁자가 거의 없어서 아무 시간에나 가도 떡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떡을 획득했다는 것을 무용담 삼아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린마음에 무서운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그 산신당이 조금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고 산신령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떡을 진설한지 채 12시간도 안 되어서 아직 충분히 못 드셨을 수도 있는데 너무 빨리 수거하러 온 것은 아닌지 하고요.
그리고 그 시절에는 집안의 크고 작은 제사마다 반드시 자정까지 기다렸다가 지내곤 했습니다. 졸린 눈을 참지 못해 꾸벅꾸벅 졸면서도 제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밤늦게 꾸역꾸역 밥과 떡을 받아먹고 나면, 다음 날 어김없이 배탈이 나던 아픈 추억까지 겹쳐집니다. 그래서 전 맛있는 떡과 과자, 곳감 같은 평상시 못먹는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기회이지만 제사 지내는 것이 싫었습니다. 왜 억지로 어린 저까지 굳이 데리고 큰집에 제사 지내러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늘을 드리운 이 울퉁불퉁한 나무뿌리는 곰방대 아저씨에게 그렇게 고단한 삶의 무게와 헌신을 품어 안아주던, 그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한 자리일 것입니다.
그의 입에는 짧은 담뱃대인 곰방대가 물려 있습니다. 쌈지에서 바싹 마른 잎담배를 꺼내 작은 통에 꾹꾹 눌러 담고 불을 붙인 뒤, 연기를 길게 들이마시고 허공으로 뻐끔거리는 이 일련의 호흡. 만약 이 아저씨가 앞서 말한 그 신체적 불편함을 가진 아이의 아버지라면, 이 곰방대 연기는 고된 일상의 휴식이라기보다는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속으로 삭여내는 깊은 한숨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어릴 적 아버지도 이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곤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곰방대라는 것은 담배 한 대 피우는 일조차 꽤 까다로운 도구였습니다. 통에 잎담배를 어떻게 눌러 담느냐에 따라 아예 빨리지 않기도 하고, 너무 성기게 담으면 담뱃잎 부스러기까지 입안으로 따라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곰방대가 사라지고 궐련 담배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은 제 기억 속에서도 아주 짧은 시간의 풍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청자, 거북선, 새마을 같은 담배 이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초기의 궐련은 필터조차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잎담배를 곰방대에 일일이 눌러 담을 필요도 없고 훨씬 간편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방식 자체가 바뀌어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이 그림 속 곰방대를 보고 있으면 담배보다 먼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매일같이 불편한 아들을 데리고 동네 어귀로 나와 세상 구경을 시켜주고, 아이가 바닥에 엎드려 손가락으로 고누판을 쥐락펴락하는 동안 아버지는 나무뿌리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그 등 뒤를 지켜줍니다.
그의 시선은 놀이판에도, 목숨을 건 듯 핏대를 세우며 사투를 벌이는 젊은이들에게도 머물지 않습니다. 오직 아이에게만 가 있습니다.
그 곁에서 무심하게 곰방대 연기를 뿜어내는 아저씨의 몽롱한 모습은 자칫 숨이 막힐 만큼 팽팽한 그림의 정서를 한순간 누그러뜨립니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면 그는 단순한 주변 인물이 아닙니다.
저 아버지는 이 그림 전체를 지탱하는, 가장 슬프고도 든든한 버팀목처럼 보입니다.
9. 지겟작대기는 어디로 갔나?
지금까지 수많은 디테일을 분석했지만, 이 그림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장 문학적이고 극적인 발견은 당연히 있어야 할 물건이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게를 받쳐 세우거나 다시 짊어질 때 요긴하게 쓰는 지겟작대기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지겟작대기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지게와 나란히 가지런히 놓여 있다면 다소 뻔했겠지만, 화면 한쪽 모서리에 그것도 지겟작대기임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위쪽의 Y자 모양만 살짝 보여주더라면 단원 특유의 해학이 훨씬 선명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상합니다. 단원이 이걸 몰라서 놓쳤을 리 없습니다. 저 멀리 언덕을 올라오는 막내의 손에는 분명 작대기가 쥐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작대기가 없는 것 자체가 어쩌면 가장 단원스러운 유머 코드가 아닐까요? 그 작대기는 화면 밖 어딘가에 굴러갔을 수도 있고, 이미 다른 곳에 던져졌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그림을 보던 당대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굳이 그려 넣을 필요조차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게를 보면 작대기가 무엇인지,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누구나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니 당시의 관람객들은 화면에 작대기가 없다는 사실을 굳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그 빈자리를 자기들의 경험으로 채웠을 것입니다. “허허, 저것들 놀이판을 보자마자 작대기고 뭐고 내팽개쳤구먼.” 그렇게 웃었을지도 모릅니다.
250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는 오히려 그 상상의 여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작게라도 작대기 끝 하나쯤 화면 구석에 삐죽 나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상상을 해봅니다.
하지만 막내의 손에 들린 작대기 하나가 오히려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형들은 이미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막내는 아직 지게를 짊어진 채입니다. 그리고 손에는 작대기를 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형들은 지게를 내려놓으면서 작대기를 어딘가에 세워두거나 챙겨 놓았을 텐데, 그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지게를 세우고, 작대기를 받치고, 천천히 땀을 닦으며 짐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밭일을 마치고 터덜터덜 쉼터에 당도한 순간, 놀이판을 발견하자마자 지게를 털썩 내려놓고 몸부터 판으로 곤두박질치듯 끌려갔던 것은 아닐까요. 그 와중에 손에 들고 있던 작대기는 휙 소리를 내며 길섶 어딘가로 굴러가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단원의 해학은 인물의 찡그린 얼굴이나 우스꽝스러운 동작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물건이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는 것. 바로 그 부재 자체가 웃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빈자리는 장면의 속도를 보여줍니다. 얼마나 급하게 짐을 내려놓았으면 작대기 하나 챙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요. 얼마나 놀이에 정신이 팔렸으면, 하루 종일 짊어지고 온 지게를 내팽개쳐 놓고 흙바닥으로 몸부터 끌려갔을까요. 작대기 하나 없는 빈 공간이 오히려 그들의 맹목적인 과몰입을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10. 단원 김홍도의 블랙 유머
결국 이 그림 앞에 선 당대 관람자들은 무엇을 알아차리고 껄껄 웃음을 터뜨렸을까요?
작대기를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모를 사내들의 급한 성미, 막내의 의복, 수읽기에 미쳐 있는 동네 아이의 신체와 복식에 픽 웃었을 것입니다. 특히 지게를 진 막내의 경우 다리를 칭칭 감는 일바지도 제대로 못 챙겨 입고, 엉성한 짧은 반바지 바람으로 풀숲을 헐레벌떡 따라온 철부지 막내를 보며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유쾌한 웃음 뒤에는 과연 웃음만 남았을까요? 그림을 보던 당대 사람들은 마냥 웃음만 짓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웃음의 밑바닥을 한 꺼풀 더 긁어내면, 묵직하고 서늘한 당대의 현실이 목을 메이게 합니다.
이들의 어깨와 허리는 얼마나 아플까요. 가까운 곳에 있는 밭이 아니라 먼 거리의 밭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왔을 이들에게, 느티나무 아래 고누판은 그저 놀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놀이는 육체의 통증을 잠시 잊게 하는 작은 마취제였을지도 모릅니다. 온몸의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그들은 고누 말판 위에서 돌을 옮기는 행위에 온 영혼을 투여함으로써 통증을 뇌에서 잠시 지워버립니다. 막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옷도 제대로 여미지 못한 채 위험한 지게질을 동떨어져 오게 한 두 형제들에 대한 원망도 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곰방대가 등장하면 그 효과는 더욱 다채로워집니다. 단순히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아닙니다. 쌈지에서 잎담배를 꺼내어 담배통에 꾹꾹 눌러 담고, 불을 붙여 연기를 뻐끔거리며 내뿜는 그 일련의 과정은 신체가 불편한 아들을 매일같이 업고 오갔을 그 숱한 나날들을 생각하게 하면서 그에게 하나의 휴식이자 일상의 리듬입니다. 고누판의 승패를 고민하며 담배 연기 속에서 한숨을 내뱉는 그 여유는, 팍팍한 삶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식입니다.
노동의 고통을 잊기 위해 놀이라는 마취제를 택하고, 곰방대 연기로 마음을 달래는 모습으로 읽는다면, 당시 서민들이 고단한 삶을 견뎌내며 스스로에게 잠깐의 여유를 허락하던 한 단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작대기의 부재와 반바지의 해학 그리고 색다른 신체적 특징과 헝클어진 복식으로 우리를 웃게 만들고, 그 웃음 끝에 고단한 육체의 통증과 삶의 무게,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용히 밀어 넣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단원의 풍속화를 오늘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두 뼘 남짓한 흙바닥 위에서 벌어진 작은 놀이 한 판. 그런데 그 안에는 하루의 노동도, 잠깐의 휴식도, 웃음도, 고단함도, 그리고 자기 삶을 잠시나마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던 한 사람의 마음도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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