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의 식탁 - 샐러드, 치아바타빵

성경동물 : 누에 - 가장 낮은 자가 베푸는 성찬

성경의 동물 

누에 - 가장 낮은 자가 베푸는 성찬

우리는 이 작은 벌레를 아낌없이 파헤쳐 먹고, 마시고, 입는다.

어릴 적 아주 깊은 시골에서 자란 덕분에, 내 또래는 물론 열 살쯤 많은 이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겪어보았을 특별한 기억을 품고 산다. 바로 누에를 직접 치고 실을 잣던 풍경이다. 뽕잎을 베어 나르는 고된 지게질은 온전히 내 몫이었지만, 실을 뽑는 일은 오랜 숙련과 손끝의 감각이 필요한 작업이었기에 어머니가 도맡으셨다. 어린 나는 어머니의 곁을 지키며 그 경이로운 손길을 숨죽여 지켜보곤 했다.

누에는 어릴 때 손이 덜 가지만, 마지막 령(齡)에 이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마지막 일주일 남짓, 녀석들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폭풍처럼 뽕잎을 먹어치운다. 그렇게 마지막 식사를 마치면 어느 순간 먹기를 뚝 멈추고 제 몸빛을 투명하게 바꾸어낸다. 고치를 지을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누에는 마지막 온 힘을 다해 뽕잎을 거두어 제 몸을 신령한 단백질로 가득 채운다. 서둘러 족잠(고치방)을 마련해 누에를 한 마리씩 정성껏 방에 넣어주는 일은 고단했지만, 녀석들이 지어 올릴 새하얀 방주를 위한 필수적인 노동이었다.

대개의 집들은 번데기가 된 고치를 그대로 모아 정부에 수매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 집의 누에치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면 어머니는 무쇠 가마솥에 물을 붓고 누에고치를 넣어 푹 삶아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뜨겁게 삶아진 고치를 대야에 건져놓고, 실마리를 한 올 한 올 정교하게 건져 올려 물레에 걸어 돌리셨다. 실이 모두 풀려나가기까지 몇 시간씩 이어지는 지루한 기다림이었지만, 나는 결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실이 다 풀리고 나면 마침내 대야 바닥에 모습을 드러내는 번데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마음이 급해 채 다 풀리지도 않은 뜨거운 고치에 손을 댔다가 어머니께 혼이 나면서도, 막 건져낸 뜨끈한 번데기를 입안에 털어 넣었을 때 터져 나오던 그 진하고 고소한 맛은 반평생이 지난 지금도 혀끝에 선명하다. 지금도 길을 걷다 노점에서 풍겨오는 번데기 냄새를 맡으면, 홀린 듯 한 컵을 사 들고 유년의 그 부엌으로 돌아가곤 한다.

[번데기]

세월이 흘러 삶과 성경의 깊이를 다시 헤아리게 된 지금, 유년 시절 가마솥 앞의 풍경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인류 역사상 가장 비장한 성찬의 제단으로 다가온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시편 2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립보서 2:6-7)

성경에서 벌레는 가장 낮고 비천한 자리, 밟히고 으깨지는 무력함의 상징이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메시아는 스스로를 벌레의 자리까지 낮추어 십자가의 제단 위로 오르셨다.

누에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우화(羽化)의 날개를 스스로 꺾고 끓는 가마솥의 열기 속으로 기꺼이 가라앉는다. 녀석의 고소한 속살인 번데기는 인간의 주린 배를 채우는 양식이 되고, 그 몸을 빌려 겨울을 난 뒤 피어난 동충하초는 지친 생명을 살리는 약재가 된다. 고도수의 소주 속에 담겨 막힌 혈맥을 뚫어주는 누에주는, 온몸의 진액을 토해내어 바친 핏방울과 다름없다.


[누에주]

[동충하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54-55)

그리고 뜨거운 솥 안에서 삶아져 건져 올려진 단 한 가닥의 선은, 인간의 부끄러운 살갗을 덮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하늘의 옷감, 비단(Meshi)으로 완성된다.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비단, Meshi)로 덧입히고" (에스겔 16: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 3:21)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요한계시록 19:8)

창세기에서 무화과 잎 대신 짐승의 피 흘림으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던 하나님은, 에스겔서에 이르러 피투성이가 된 채 버려진 인간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지극히 고귀한 비단옷을 덧입히신다. 자신의 온 존재를 녹여 타인의 부끄러움을 덮어주는 비단 한 올은, 십자가의 보혈로 완성된 신부의 세마포 옷과 닮아 있다.

우리가 번데기를 씹고, 붉게 우러난 누에주를 삼키며, 부드러운 비단을 몸에 걸칠 때—우리는 대지 위 가장 낮은 곳을 기어가던 한 마리 벌레가 온몸으로 베풀어준 거룩한 희생의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셈이다. 자신의 존재를 송두리째 해체하여 타인의 생명과 존엄을 완성하는 이 작은 미물의 일생은, 신이 자연 만물 속에 새겨둔 가장 처연하고도 완전한 십자가의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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