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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풍속도첩 : 담배썰기 - 이것이 담배썰기가 진짜 맞나?

단원을 만나다: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단원 풍속도첩 

담배썰기 - 이것이 담배썰기가 진짜 맞나?

1. 이곳은 어디인가?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그림을 〈담배썰기〉라고 부릅니다. 잎담배를 빽빽하게 뭉쳐 작두로 썰어내던 조선 후기의 일상 풍경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름을 선뜻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담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트집을 잡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먼저 어릴 적 담배와 관련된 추억 하나 살포시 꺼내봅니다. 어린 시절 큰집에서는 담배를 재배했고, 마당 한켠에는 담배 건조장도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피우는 담배가 궁금했던 저는 어느 날 동네 친구 한 명과 몰래 건조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건조 중이던 담배 한 장을 몰래 떼어내 직접 말아 성냥불로 불을 붙여 피웠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한 모금 빨았을 뿐인데 목이 타 들어가듯 콜록거리고 머리가 쪼개지듯 아팠습니다. 어린 마음에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날의 지독한 기억 때문인지 저는 지금까지도 담배를 아주 싫어하고, 심지어 담배 피우는 사람조차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그렇게 살갑게 지내지 못한 이유도 찾으면 많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이 담배 냄새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이 그림을 볼 때만큼은, 돋보기만 들고 앉아 있는 미술사학자보다 담배밭 옆에서 뒹굴며 자란 촌놈의 눈을 먼저 믿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2. 뽕잎에서 담배까지, 흔들렸던 시선 

사실 처음 이 그림에서 작두를 보는 순간, 제 머릿속에는 어릴 적 누에치기를 하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누에가 3령이나 4령쯤 되어 크게 자랄 때는 뽕나무 잎을 통째로 주지만, 갓 부화한 어린 누에 시절에는 작두로 저렇게 잎을 잘게 썰어서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곳을 뽕잎을 썰어내는 잠실의 풍경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앞쪽의 사람이 손질하고 있는 잎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의문이 커졌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그것은 뽕잎처럼 생기지 않았습니다. 뽕잎은 전형적으로 가장자리가 삐죽삐죽하게 갈라져 마치 세 개의 손가락이 펼쳐진 듯한 독특한 형태를 띠는데, 그림 속 나뭇잎은 전혀 그런 생김새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일반 나무의 잎이라면 가지와 잎을 연결하는 잎자루가 있어야 하는데 그림 속 재료에는 그 잎자루가 감쪽같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작두 역시 보통 가정에서 사용하는 작두와는 달라 보였습니다. 그림 속 인물들이 상의를 완전히 벗어젖힌 채 땀을 흘리는 모습은, 어린 누에를 돌보던 봄철의 풍경이라기에는 찌는 듯한 한여름의 폭염에 훨씬 가까웠습니다. 뽕잎썰기라는 첫 번째 가설은 그렇게 허물어졌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통설인 담배썰기로 옮겨갑니다.

3. 담배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한 잎사귀 

하지만 담배썰기라는 가설에 결정적으로 제동을 건 것은, 어린 시절 밭에서 직접 부딪히며 몸으로 익힌 담배의 실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담배밭은 그렇게 녹록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여름이면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대와 넓고 큼직한 잎사귀들이 사방으로 펼쳐집니다. 그 커다란 잎들 사이에는 담배나방의 애벌레인 이른바 ‘담배벌레’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굵고 통통하게 자라 붙어 있곤 했습니다. 온몸이 연두색을 넘어 진한 초록빛을 띠던, 참깨잎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게 생긴 그 거대한 애벌레를 보고 기겁해 달아나던 기억은 지금도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훌쩍 자란 담배 줄기 끝에는 분홍빛을 띤 아주 예쁘고 자그마하지만 화려한 꽃이 피어납니다. 그렇게 거대한 대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식물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씨앗은 매우 작습니다. 제가 담뱃잎을 그렇게 거대하게 기억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제 몸집이 작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씨앗은 모래알보다도 훨씬 작아서 제가 지금까지 본 어떤 씨앗보다도 까맣고 작았습니다. 성경에서는 가장 작은 씨앗의 대명사로 겨자씨를 꼽지만, 만약 성경의 저자가 담배씨의 그 극단적인 작음을 보았다면 다른 비유를 찾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담배의 실물을 뼛속까지 알고 있는 제 눈에, 그림 우측 하단에서 인물이 손질하고 있는 재료는 너무나 생뚱맞아 보였습니다. 담뱃잎은 잎 자체의 크기는 거대하지만 모양은 비교적 매끄럽고 길쭉하게 뻗어 있습니다. 수확해 말리면 오그라들고 짙은 갈색으로 변하더라도 그 커다란 면적과 특유의 형태를 어느 정도 간직해야 하는데, 맨 아래에서 윗통 벗고 작업하는 사람이 들고 있는 잎을 보면, 크기부터 제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너무 작고 잎맥과 가장자리의 굴곡이 다른 낯선 잎사귀처럼 여겨졌던 것입니다.

담배를 가공하는 과정에 대해 거창한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 담배라면 작두 아래에는 결국 담뱃잎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담뱃잎의 물리적 모습과 그림 속 재료는 너무나 달라서, 처음에는 감잎이나 계피 껍질 같은 전혀 다른 약재를 다루는 공방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품었습니다.

4. 치열한 의문 끝에 마주한 진실 

그렇게 한참을 감잎이니 계피니 하며 엉뚱한 가설들을 세우고 그림을 의심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세부 디테일을 낱낱이 파헤칠수록, 제 섣부른 의심은 민망할 정도로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잎의 묵직하고 고유한 색감은 물론이고, 인물이 손으로 잎의 줄기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잎몸에서 발라내는 그 손놀림은 실제 담배 가공 공정에서 억센 엽맥을 제거하는 수작업과 매우 닮아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담뱃잎 가공까지 직접 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한국담배인삼공사(KT&G의 전신)의 담배공장 각초팽화 공정 설계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담배가 제품으로 가공되는 공정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담배는 수확한 원재료 그대로 쓰이지 않습니다. 잎을 말리고, 억센 줄기(엽맥)를 제거하고, 여러 장을 겹쳐 덩어리로 압축한 뒤 일정한 규격으로 썰어내는 고도의 가공 단계를 거칩니다. 과거 재래식 담배 제조에는 없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담배의 부피와 물성을 조절하기 위해 수분과 열을 가해 잎을 부풀리는 이른바 팽화 공정 역시 이 흐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처럼 공정을 거치는 동안 수확 당시의 거대했던 잎 모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우리가 아는 각초의 형태로 완전히 변형됩니다. 

참고로 요즘의 담배는 여러 가지 향료 재료가 10가지 이상 들어가기도 합니다. 제가 직접 담배공장 설계를 하면서 각각의 액체 저장탱크와 공급 공정까지 도면에 그렸지만, 정작 그 탱크 안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정확한 레시피까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현재의 최고급 담배를 어릴 때 훔쳐 피웠다면 제가 담배를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 덜 피우시길 권해 드립니다.

돌이켜보면 그림 속 작두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겉모습만 보며 함부로 판단했던 제 무지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나중에 작두의 구조와 쓰임새를 차분히 살펴보니, 이것은 담배 같은 여러 장의 잎을 모아 반복적으로 잘라내는 작업에 꽤 적합한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두질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또 눈에 걸립니다. 왼손과 왼쪽 어깨가 약간 이상하게 보입니다. 아무래도 역동적인 동작을 표현하고 해학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신체를 조금 과장해서 그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삼각형과 원형의 조각들도 실제 작업의 부산물이라고 보기에는 어딘가 어색합니다. 그림의 해학을 이 인물에게 집중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인물 외에서는 아직 제 식견이 부족해서인지, 뚜렷한 해학적 요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엔지니어의 눈에는 작두의 또 다른 부분이 묘하게 걸립니다. 칼날은 분명히 보이는데, 그 칼날이 내려와 맞물릴 상대편, 즉 칼날의 힘을 받아주면서 재료를 지지할 받침 구조가 그림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작두는 칼날 하나만으로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칼날이 내려오면서 재료를 자르고, 동시에 그 힘을 받아줄 단단한 받침이 있어야 비로소 작두가 제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그림 속 작두는 마치 ‘수컷’만 덩그러니 있고 ‘암컷’은 어디론가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집에서 사용하던 주로 짚단을 썰 때 사용한 작두는 아래와 같은 형태였습니다. 작두 아래에는 Y자 모양의 통나무 받침이 있었고, 왼손으로는 자를 재료를 작두 아래쪽으로 최대한 깊숙이 밀어 넣고, 오른손으로 작두의 끝부분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상체의 무게를 어깨에 실어 작두를 힘껏 아래로 눌렀습니다. 짚단을 썰 때는 혼자 하기 힘들어 아버지와 함께 2인 1조로 아버지는 짚을 넣고 저는 손잡이 부분의 끈을 손에 잡고 올리면서 발로 눌러 작업했습니다. 작두가 커서 발작두용으로 나온 건데 필요에 따라 손으로도 작업을 했습니다.

[손작두] (사진출처:안동시립민속박물관)          발작두(사진출처:국립민속박물관)

제가 본 작두와 모양이 달라 처음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담배, 그것도 마른 담뱃잎을 써는 데 특화된 작두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마른 담뱃잎은 짚처럼 질기게 버티는 재료가 아니라, 잘못 다루면 쉽게 부서집니다. 그래서 여러 장을 포개어 놓고 조심해서 조금씩 밀어 넣으면서 잘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작두 아래에 별도의 받침대가 튀어나와 있는 구조보다는, 재료를 밀어 넣을 수 있도록 바닥이 평평한 구조가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어머니가 칼국수를 만들 때 반죽을 밀어 놓고 칼을 조금씩 움직이며 써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담배를 써는 방식은 그 반대입니다. 칼은 한 자리에 두고, 밀가루 반죽 대신 담뱃잎을 조금씩 밀어 넣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칼 아래쪽에 재료가 걸리지 않도록 평평한 작업면이 필요합니다.

담배 전용 작두를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엔지니어의 눈으로 작업 대상의 물성과 작업 방식을 함께 놓고 보면, 그림 속 작두는 오히려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알고 있던 작두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담배를 써는 도구라고 놓고 보니 그 형태가 설명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술사에서는 그저 "작두로 담배를 썬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공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재료를 어떻게 고정하고, 어떻게 힘을 가하고, 어떤 크기로 잘라내느냐까지 생각하면 이 작두는 단순한 농가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작업 공정을 이루는 핵심 장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림 속 잎의 모양만 보고 담배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공정과 도구의 실체를 마주하니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실제 작업 현장에서 원재료는 수확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말리고, 다듬고, 줄기를 제거하고, 필요한 부분만 남기는 과정에서 원래의 형태는 계속 변합니다.

결국 제가 처음 붙잡았던 것은 겉모습에 불과한 ‘잎의 모양’이었고, 마지막에 저를 설득한 것은 그 도구와 재료에 담긴 ‘작업의 방식’​이었습니다.

감잎이나 계피라는 제각각의 상상은 결국 섣부른 딴지에 불과했습니다. 온갖 의심과 억지를 거치며 한 바퀴 돌고 돌았지만, 결국 이 그림은 가장 정직하게 그 타이틀 그대로 ‘담배썰기’​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5. 엔지니어의 눈으로 다시 쓴 풍경 

공식적인 이름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정된 제목 뒤에 안주하지 않고, 박물관이 붙인 제목을 잠시 지우고 그림을 예리하게 다시 보는 일입니다.

제목을 의심하고, 엉뚱한 가설을 세워보고, 마침내 스스로의 오류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과정. 그 고집스러운 딴지 걸기의 끝에서, 김홍도의 붓끝이 포착한 조선 후기 작업장의 진짜 체온과 땀방울의 무게가 비로소 가장 선명하게 읽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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