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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을 만나다 :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단원 풍속도첩
그림감상 - 이 그림이 정말 그림감상일까?
그림감상이 아니다. 지물 납품 검수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이 장면을 잠시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점잖게 붙여놓은 ‘그림감상’이라는 제목에서 잠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장면을 그림 감상이라고만 볼 이유가 있을까요? 일각에서는 과거시험 답안지를 보는 장면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종이가 아예 그림이나 답안지가 아니라, 서원에 납품된 종이 그 자체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보는 것은 고상한 감상의 한때가 아닙니다. 서원에 들어온 종이를 놓고 벌어진, 꽤나 살벌한 납품 검수의 현장입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것을 그림감상이라고 단정했을까? 너무나 쉽게 단원의 작품을 보고 실제가 아닌 생략을 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왜곡했을 것이다라고 판단합니다. 저는 오히려 특별한 근거가 없다면 단원이 그린 것을 일단 그대로 믿어보는 것이 그림을 보는 올바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은 제 눈에는 18세기 조선 시대 서원에서 벌어진 지물 납품 검수 현장을 고스란히 포착한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풍속의 한 장면으로 보입니다. 고상하게 화폭이나 구경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서원에서 사용할 종이를 펼쳐놓고, 품질과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현장입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묘하게 팽팽한 긴장이 흐릅니다. 왜 그렇게 보았는지 하나씩 파보겠습니다.
1. 이곳은 어디인가?
저는 이곳을 안동 병산서원으로 설정해 봅니다.
낙동강변의 바람이 스치는 탁 트인 공간. 서원에 종이 한 두루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서원에서는 이 종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서원장은 종이를 보고 있고, 곰방대를 든 고참은 종이를 노려보고 있고, 그 앞의 납품 담당 서생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이게 단순한 그림감상이라면 왜 이렇게 긴장되어 있을까요?
2. 그림의 중심에는 네 사람이 있다
제가 이 그림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딱 네 명입니다.
서원장 (최고 권력자)
참모 (귀띔으로 불을 지피는 책사)
곰방대를 든 고참 서생 (현장 검수관)
납품 담당 서생 (비리의 실무자)
나머지는 일단 엑스트라로 놓아두겠습니다. 이 네 사람만 연결해도 그림 전체가 살아나며, 팽팽한 역학관계가 완성됩니다.
① 서원장 — “이게 우리가 주문한 종이라고?”
오른쪽 위에 있는 중심 인물인 서원의 수장입니다. 큼직한 정자관을 쓰고 있고 전체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품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굴을 한번 보십시오. 편안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닙니다. 종이를 보고 있는 것인지, 종이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문제를 발견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얼굴에서 묘한 불쾌감을 봅니다. ‘이게 우리가 주문한 종이가 맞나? 이걸 그대로 받아오라고 한 건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올라오는 순간처럼 보입니다. 단원은 그 감정을 과장돼 그려놓지 않았습니다. 아주 미묘합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습니다.
② 참모 — 불을 지피는 은밀한 책사
서원장의 바로 뒤에 바짝 붙어 앉아 짙고 각진 관모를 쓰고 부채를 든 인물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입을 가린 유생 정도로 보았지만, 이 판의 흐름을 쥐고 흔드는 진짜 책사는 바로 이 사람입니다. 단원도 그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단원은 마치 이 사람의 관모를 유심히 보라는 듯, 다른 부분보다 유난히 짙고 선명한 먹선으로 그 존재감을 강조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짙은 관모를 보고 있으면 묘한 생각이 듭니다. 이 정도로 선명하게 먹을 입힌 부분을 단순히 옷을 표현한 것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화가가 의도적으로 시선을 붙잡아 둔 장치로 볼 것인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 인물의 관모는 오히려 화면에서 하나의 작은 검은 표지판처럼 눈에 들어옵니다.
서원장의 귀에 대고 얼굴을 바짝 붙인 채 다음과 같은 살벌한 귀띔을 날리고 있습니다.
"서원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종이 상태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여기 얼룩도 있고, 이쪽도 표면이 고르지 않습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이걸 그대로 받아주었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겉은 또 저렇게 화려한 술이 달린 노끈으로 번드르르하게 싸 놓았습니다. 물건은 이 모양인데 포장만 요란합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좋은 물건이라고 속여 넘기려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값을 치러주시면 안 됩니다. 일단 다시 제대로 검수해 보시지요. 혹시 다른 종이도 이런 상태인지 한번 확인해 보셔야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참모의 은밀하고도 날카로운 밀담 덕분에 서원장의 속에서부터 배신감과 격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이 판의 도화선을 당기는 결정적인 브레인입니다.
"서원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종이 상태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여기 얼룩도 있고, 이쪽도 표면이 고르지 않습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이걸 그대로 받아주었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겉은 또 저렇게 화려한 술이 달린 노끈으로 번드르르하게 싸 놓았습니다. 물건은 이 모양인데 포장만 요란합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좋은 물건이라고 속여 넘기려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값을 치러주시면 안 됩니다. 일단 다시 제대로 검수해 보시지요. 혹시 다른 종이도 이런 상태인지 한번 확인해 보셔야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③ 곰방대를 든 고참 — 뼈아픈 트라우마를 품은 현장 검수자
참모의 뒤쪽에 위치하며, 곰방대를 거칠게 꼬나쥔 베테랑 실무자입니다. 서원장보다 훨씬 거칠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뿜어냅니다.
과거 시지(試紙)의 하품(下品) 지질 때문에 공들여 적은 답안이 무효가 되어 쓰라린 낙방의 고배를 마셨던 지독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습니다. 이번 납품 건에서 또다시 표면의 얼룩과 하자를 기가 막히게 포착하곤 매서운 눈빛으로 납품 담당 서생을 응시하며 현장의 누적된 불만을 뿜어냅니다.
형식상의 서열은 2위이나, 경전의 이치나 문장을 꿰뚫어 보는 학식과 기지가 다소 모자란 탓에 실질적인 정무의 실권은 쥐지 못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진짜 이유는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품 지질 때문이 아니라 학식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지금 누구보다 종이의 품질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쥔 곰방대 하나도 그냥 담배 피우는 소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낙방의 억울함과 오래 묵은 자격지심, 그리고 이번에는 반드시 종이의 하자를 잡아내겠다는 집착이 그 곰방대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그는 지금 종이를 검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검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런 인간을 한 장면 안에 세워놓는 것이 단원의 솜씨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우습고, 조금 짠합니다. 그런데 아주 사람답습니다.
④ 납품 담당 서생 — 비리의 실무자
이 사람을 서원의 납품 담당 서생으로 설정합니다. 지물포에서 종이를 받아 서원까지 가져온 실무자입니다.
그의 차림새와 손에 쥔 소품을 한번 보십시오. 발에는 짚신을 신고 있는 말단 서생 주제에 어째서 옷은 저렇게 때깔 좋은 새옷을 쫙 빼입고 있겠습니까? 바로 지물포 업자와 짜고 리베이트를 두둑하게 받아 챙긴 비자금으로 호화롭게 차려입은 증거입니다.
특히 그의 손에 들린 종이 두루마리를 묶은 노끈을 보십시오. 끝에 화려한 장식과 술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종이 표면에 얼룩이 세 군데나 박혀 있는 불량품임에도 불구하고, 서원에 고가로 납품하기 위해 겉모습만 요란한 노끈으로 번드르르하게 포장해 온 상인의 능구렁이 같은 눈속임입니다.
자기가 종이를 직접 만든 것도 아니고, 겉으로는 멋지게 차려입고 당당히 들어왔지만 막상 분위기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미칠 노릇입니다. ‘나는 그냥 받아오라고 해서 받아왔는데…….’ 그런데 종이에 치명적인 하자가 들통나고 서원 실세들의 눈빛이 매섭게 꽂히는 순간, 그가 챙겼던 뒷돈의 스캔들이 수면 위로 드러날 판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종이보다 사람을 봅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이 장면을 지물 납품 검수로 보는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종이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사람을 봅니다. 검수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의 눈입니다.
3. 옷을 보면 서열이 보인다
그림 속 인물들의 면면을 가장 중심의 서원장처럼 보이는 사람을 기준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추적해 보면, 조선 시대 서원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위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재미있어집니다. 사람을 하나씩 뜯어보면 옷의 색깔과 질감부터 이미 차이가 납니다. 오래 입어 빛이 빠진 옷, 젊음을 드러내는 산뜻한 색, 그리고 유난히 품격을 갖춘 색감이 한 화면 안에서 서로 부딪힙니다.
저는 이것을 단순한 색채 차이로 보지 않습니다. 누가 위에 있고 누가 아래에 있는지, 누가 명령하고 누가 몸으로 일을 하는지가 옷에서부터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옷이 곧 서열표입니다.
특히 지물포 업자와 짜고 뒷돈(리베이트)을 챙겨 평소와 다른 뻔뻔한 새옷을 차려입고 당당히 들어왔던 납품 담당 서생의 겉모습은, 이 살벌한 검수 현장에서 오히려 자신의 비리를 고스란히 폭로하는 가장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래쪽의 젊은 서생들은 실제로 종이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판단하고, 누군가는 검수하고, 누군가는 몸으로 종이를 들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조직도가 한 장의 그림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4.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QC 현장
여기서 엔지니어의 눈으로 한번 보겠습니다. 저는 그림을 볼 때 사람의 표정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물체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소중한 서화나 그림을 펼쳐 감상할 때, 손때나 땀이 묻어 작품이 훼손될까 봐 평평한 탁자에 올려두고 조심스럽게 끝부분만 살짝 다루는 것이 철저한 예법이자 상식입니다.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여러 사람이 공중에서 맨손으로 두루마리를 턱턱 움켜쥐고 표면을 짓누르는 행위는, 만약 이것이 진짜 그림 감상이라면 문화재를 다 부수고 있는 최악의 반달리즘이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화폭 속 서원장의 두 손을 보십시오. 평면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을 보면 방금 풀려 나온 두툼한 두루마리의 원통형 부피감과 팽팽한 장력을 고스란히 감싸 쥐듯 살짝 둥글게 꺾여 있습니다. 이 대형 두루마리의 상당한 무게와 길이를 혼자 감당하기 버거워, 주변 실무진들이 아래쪽에서 각자 자리를 나누어 단단히 떠받치며 검수를 보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왼손 손가락을 보면 엄지가 종이의 끝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종이 안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종이결과 밀도를 느끼기 위해 엄지손가락이 표면을 따라 안쪽으로 움직인 것입니다.
점잖게 글을 읽거나 그림을 감상하는 선비의 손짓이 아닙니다. 납품된 닥종이 뭉치의 두께와 밀도, 무게를 손끝으로 직접 가늠하며 매섭게 파악하는 실무 검수자의 손 모양, 그 자체입니다.
이 종이는 그냥 펼쳐놓은 종이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여러 방향에서 잡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종이가 크고 팽팽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엔지니어 식으로 표현하면 제품의 치수와 물성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품질검사(QC) 현장입니다. 이게 그림감상이라면 상당히 이상합니다.
5. 세 군데의 검은 얼룩
그리고 제가 계속 눈여겨보는 것이 있습니다. 종이에 보이는 검은 얼룩입니다. 이것을 그냥 그림의 번짐이나 표현상의 우연으로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일단 실제로 그려진 것으로 받아들여 보겠습니다.
종이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펼쳐보니 얼룩이 있습니다. 검수 담당자는 그것을 발견합니다. 곰방대를 든 고참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부채 든 참모는 서원장에게 예리한 귀띔을 던집니다. 서원장은 종이를 다시 봅니다.
그리고 그 앞의 납품 담당 서생은 사람들의 얼굴을 살핍니다.
자, 이제 이게 그림감상입니까? 저는 도저히 그렇게 못 보겠습니다.
6. 조선판 ‘일타 학원’의 납품 검수
여기서 시대적 배경을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서원은 단순히 글을 읽고 도덕을 닦는 조용한 교육기관만은 아니었습니다. 지역 사림의 명예와 영향력이 걸린 공간이었고,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들에게는 오늘날의 학원과 비슷한 역할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한번 과감하게 바꿔보겠습니다. 조선판 일타 학원입니다. 그런 곳에서 시험에 사용할 종이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검수해보니 상태가 영 시원찮습니다. 곰방대를 든 고참은 눈을 부라리고, 서원장은 얼굴이 굳어지고, 참모는 옆에서 결정적 밀담을 건네고, 정작 종이를 받아온 납품 담당 서생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사람들의 눈치만 살핍니다.
올해 우리 서원에서 몇 명이나 과거에 붙느냐가 걸려 있는데 시험에 쓸 종이가 이 모양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비상사태 아닙니까? 더구나 종이를 받아온 사람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아마 가장 무서운 질문은 이것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종이, 누가 받아왔는가?"
그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납품 담당 서생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을지도 모릅니다. 조선 시대 일타 학원의 살벌한 지물 납품 검수 현장. 이렇게 생각하면 그림이 아주 짜릿한 해학으로 다가옵니다.
7. 단원의 블랙코미디 코드
저는 이 지점에서 단원 특유의 날카로운 블랙코미디를 봅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욕심이 있고, 체면이 있고, 실수가 있고, 눈치가 있고, 책임을 떠넘기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단원은 그것을 봅니다. 그리고 대놓고 웃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웃고 있지 않은데 보는 사람이 피식 웃게 만듭니다.
서원장은 체면 때문에 화를 참는 것 같고, 곰방대 든 고참은 이미 마음속으로 판정을 내린 것 같고, 참모는 옆에서 결정적인 정보를 흘리고, 납품 담당 서생은 ‘제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십시오’ 하는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이 네 사람을 주축으로 엮어낸 인물들의 긴장감만으로도 한 편의 찰진 풍속화가 완성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인간의 허세와 욕심을 이렇게 한 장면 안에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통째로 잡아넣는 단원의 솜씨를 봅니다. 단원의 천재적인 풍자, 요즘 말로 하면 블랙코미디와 전통적인 해학의 이중 코드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8. 그래서 나는 오히려 ‘진정 단원스러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단원의 작품을 흉내 낸 모작이라는 평가도 있다고 합니다. 미술사학계 일각에서는 다른 대표작에 비해 필력이 다소 떨어지고 후대의 모사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단원풍속도첩》 특유의 해학성과 거리가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이야말로 풍자와 해학을 모두 지닌, 진정 단원스러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허세와 욕심을 한 장면 안에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통째로 집어넣는 것. 사람들의 관계만으로 웃음과 긴장감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 아무도 대놓고 웃고 있지 않은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단원의 솜씨 아닐까요?
물론 지금 제가 읽어낸 이야기도 어디까지나 하나의 해석입니다. 실제로 이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정말 종이 납품 현장이었는지, 그날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목을 잠시 내려놓고, 손을 보고, 종이를 보고,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십시오. 그러면 이상하게도 이 장면에서 지물 납품 검수 현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납품 담당 서생의 눈을 다시 보십시오. 종이를 보지 않고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은 종이의 품질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이거 다시 가져가서 반품해야 합니까?"
그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는 얼굴처럼 보입니다. 저는 바로 그 순간에 단원을 만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프레임을 깨고 찾아낸 진짜 진실.
조선판 일타 학원의 살벌한 자재 검수 현장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보십시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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