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 배추농사는 어려워2

단원 풍속도첩 : 논갈이 - 오른쪽 소는 왜 저토록 혓바닥이 빠지게 힘들어할까?

단원을 만나다 :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단원 풍속도첩

논갈이 - 오른쪽 소는 왜 저토록 혓바닥이 빠지게 힘들어할까?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설명만 확인해 보아도 이 그림의 제목은 명확하게 「논갈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기자가 이 그림을 보고는 비탈진 산을 낑낑대며 기어오르는 밭갈이 풍경쯤으로 해석해 장황한 기사를 써놓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평소 뉴스 기사에 댓글을 다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건 단원 김홍도 선생의 위대함과 치밀한 사생력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 같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평소 같으면 하지도 않았을 텐데 굳이 회원가입에 로그인까지 해가며, 조목조목 반박하는 긴 댓글을 남겼습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은 그저 겉만 보고 "산 같네", "밭 같네" 또는 "산인지 논인지 모르겠네" 하며 가볍게 지나칠 그림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원은 과연 이 화폭에 무엇을 드러내고자 했을까요? 천재 화가의 깊은 의도를 온전히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산업화 이전 농촌에서 소를 몰며 흙을 일궈본 저의 유년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그 숨은 퍼즐을 하나씩 맞춰보고자 합니다.

그림 속 계절은 24절기 중 만물이 점차 차오르는 소만(小滿)을 지나 본격적인 모내기철인 망종(芒種)으로 향하는 5월 말에서 6월 초 무렵입니다. 이 시기를 넘기면 뙤약볕이 너무 강해 웃통을 벗고 일하기 어렵고, 모내기 적기를 놓치게 됩니다. 단원은 이 긴박하고 뜨거운 계절 위에 삼부자(三父子)를 등장시키고, 두 마리의 겨리소와 결멍에, 팽팽한 고삐와 회초리, 그리고 서로 다른 두 자루의 쇠스랑을 정밀하게 배치했습니다. 조선의 논갈이를 완성하는 완벽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물론 논두렁 어딘가에는 무거운 쟁기를 지고 온 지게와 땀을 식혀줄 새참 광주리도 분명 놓여 있었겠지만, 단원은 그것들을 일부러 화면에 그리지 않고 과감히 생략했습니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오직 흙을 갈아엎는 순간의 치열한 노동과 인물들의 역학적 긴장감에 온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한 천재적인 완급 조절입니다.

비록 소 두 마리가 끄는 겨리소로 직접 논밭을 갈아보지는 못했더라도, 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린 시절 소를 부리며 논과 밭을 몸으로 겪어본 사람이기에 자신 있게 이 그림에 대해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단원이 직접 논을 갈아보지 않았다면 그의 관찰력은 가히 신의 경지이며, 그 치열한 노동의 메커니즘을 이토록 완벽하게 그려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기자 양반께서는 섭섭하시겠지만, 이번에는 제가 조금 집요하게 들어가 보겠습니다. 농기구의 구조와 소의 움직임, 흙을 뒤집는 물리적 방식, 그리고 삼부자가 펼치는 완벽한 분업의 현장을 낱낱이 뜯어보겠습니다.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 논갈이]

1. 밭이 아니라 물을 품은 천수답(天水畓)입니다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람들의 발과 바닥의 물기입니다. 화면 속 농부들의 발은 땅 위에 가볍게 올라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을 머금은 흙 속으로 발목까지 푹푹 파고들어가 있습니다. 이건 그냥 산비탈의 마른 밭을 걷는 모습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여기서 어떤 이들은 ‘왜 물이 이렇게 흥건한데 논을 갈고 있을까? 물을 빼고 갈아야 편하지 않나?’ 하고 의아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수지나 수로 같은 수리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던 조선의 많은 논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 의존하는 천수답(天水畓)이었습니다.

 천수답에서 물은 곧 한 해 농사의 목숨줄입니다. 하늘이 모처럼 채워준 귀한 물을 조금이라도 밖으로 흘려보냈다가는, 언제 다시 비가 올지 몰라 모내기 자체를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 농부들은 귀하게 받은 물을 함부로 흘려보낼 수 없었고, 물을 머금은 무논 상태에서 농사를 이어가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농부들의 발아래를 자세히 보면 유독 듬성듬성 짙은 먹으로 검게 칠해져 있습니다. 물이 흥건한 천수답 무논이기에 지금 막 쟁기와 발이 닿아 작업 중인 그 부분만 걸쭉한 흙탕물이 솟구치고 거친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이며, 아직 손대지 않은 주변부는 찰랑거리는 수면과 평평하게 대비를 이루는 실제 논바닥의 찰나를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낸 것입니다

2. 마른 흙이 아닌 무논을 뒤엎는 겨리의 힘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두 마리의 소입니다. ‘겨리’는 두 마리의 소를 나란히 묶어 쟁기를 끄는 방식입니다. 생각해 보면 간단합니다. 마른 흙을 얕게 긁는 정도라면 굳이 소 두 마리의 힘을 동원할 이유가 없습니다. 좁고 경사진 밭에서 소 두 마리를 묶었다가는 회전반경이 나오지 않아 사고가 나기 십상입니다.

흙이 무겁고 쟁기를 깊이 박아 넣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쟁기의 보습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상당한 저항이 생깁니다. 소는 앞으로 가려고 하고, 쟁기는 흙에 붙잡힙니다. 그 사이에서 농부는 쟁기의 깊이와 방향을 계속 조절해야 합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단순히 “소가 두 마리 있으니 힘이 세겠구나”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무거운 흙을 깊이 갈아엎기 위한 겨리의 힘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무논의 질척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단서가 있습니다. 바로 왼쪽 안소의 다리입니다. 

겨리로 소 두 마리를 부릴 때 왼쪽의 소를 안소, 오른쪽에 서는 소를 마라소라고 합니다.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화면 왼쪽의 소가 안소이고, 오른쪽의 소가 마라소입니다.


왼쪽 안소의 다리를 자세히 보면 거의 직각보다 더 깊게 관절을 접어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걷는 순간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 발이 질척한 논바닥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다음 발을 앞으로 내딛으려면 다리를 평소보다 훨씬 높이 들어 올려야 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들어 올린 앞다리의 상부에 드러난 단단한 근육입니다. 한쪽 다리를 힘껏 들어 진흙에서 빼내는 순간, 그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해 있습니다. 오랫동안 쟁기를 끌며 단련된 일소의 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단단한 흙 위를 걷는 소라면 이렇게까지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발이 깊이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을 머금은 무논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발이 진흙 속에 박히고, 그 발을 진흙의 저항에서 빼내어 다시 앞으로 내딛는 것 자체가 하나의 노동이 됩니다.

저는 바로 이 소의 다리에서 김홍도가 그린 땅의 상태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쟁기는 그냥 흙을 긁는 도구가 아닙니다

쟁기의 앞부분에는 보습이 있습니다. 흙을 파고 들어가는 날입니다. 그런데 보습 뒤쪽을 자세히 보면 흙을 옆으로 밀어 올리고 뒤집어 넘기는 볏의 구조가 보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쟁기는 단순히 땅을 파고 지나가는 도구가 아닙니다. 흙을 쪼개고, 들어 올리고, 옆으로 뒤집어버리는 도구입니다. 농부가 쟁기를 잡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소가 앞으로 끌고 가는 동안 농부는 뒤에서 쟁기의 깊이와 방향을 조절합니다. 흙은 갈라지고, 한쪽으로 들려 올라가며, 뒤집혀 눕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김홍도의 시점 때문에 재미있는 착시가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보고 “저 소들이 산비탈을 올라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산을 올라가는 장면이 아니라, 흙을 가르며 앞으로 진행하는 쟁기질의 동선입니다. 김홍도는 단순히 풍경을 옮겨놓은 것이 아닙니다.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논갈이 장면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명했을 텐데, 오히려 소들이 마치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가는 듯한 모습으로 장면을 비틀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소의 헐떡거리는 표정과 온몸의 움직임을 더욱 강조하고, 논갈이가 얼마나 힘겨운 작업인지를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시점을 과감하게 사선으로 잡았습니다. 하나의 화면에 서로 다른 시선과 공간을 동시에 담아낸 것입니다.

우리가 입체파 하면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후안 그리스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김홍도는 이들보다 무려 136년이나 앞서 태어난 화가입니다. 하나의 화면에 여러 시점을 담아낸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단원 김홍도 선생은 어쩌면 브라크와 피카소보다 100년도 훨씬 앞서간, 세계 최초의 입체파 화가가 아니었을까?물론 김홍도가 스스로 ‘입체파’를 알았을 리도 없고, 미술사적으로 그를 입체파 화가라고 분류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화면에 여러 시점을 담아내고, 대상의 움직임과 공간을 동시에 보여주려 했다는 점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해체하고, 후안 그리스가 그것을 다시 기하학적인 구조로 재구성했다면, 단원은 조선의 논바닥에서 소와 쟁기와 농부의 움직임을 여러 시선으로 포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단원 김홍도, 세계 최초의 입체파 화가.

4. 단원은 조선 겨리의 물리적 메커니즘을 그대로 사생했습니다

제가 이 그림을 재미있게 보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김홍도는 농부 세 명과 소 두 마리를 그냥 ‘농촌의 정겨운 모습’으로 그려놓은 것이 아닙니다. 농기구의 구조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소 두 마리의 목덜미를 가로지르는 긴 나무가 있습니다. 멍에, 즉 결멍에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뒤쪽으로 쟁기를 연결하는 긴 나무가 이어집니다. 두 소의 힘을 하나로 모아 쟁기로 전달하는 구조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에 소의 몸을 붙잡아주는 뱃대끈과 코를 통제하는 코뚜레까지 보입니다. 단원은 농부와 소를 그린 것이 아니라, 소와 사람이 쟁기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작동 방식 자체를 그려놓았습니다.

오른쪽으로 흙을 넘기도록 고정된 볏의 형태로 보아, 논 가장자리부터 안쪽으로 뱅글뱅글 돌며 갈아 들어가는 작업 방식까지 담겨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도 “그냥 산비탈에서 밭 가는 장면”이라고 해버리면 조금 억울합니다. 단원은 농부를 그린 것이 아니라, 농부가 농사를 짓는 방식 자체를 그렸기 때문입니다.

5. 소 엉덩이의 얼룩 

그림을 확대해서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소의 엉덩이에 거뭇거뭇한 자국이 보입니다. 저는 이런 부분이 오히려 김홍도의 그림을 믿게 합니다.


소는 김홍도의 눈에 들어오기 전에 외양간에 있었습니다. 깨끗하게 씻겨서 모델처럼 서 있던 소가 아닙니다. 외양간 바닥을 뒹굴고, 흙과 오물을 묻힌 채 농부를 따라 논으로 나온 평범한 소였을 것입니다. 이건 외양간의 쇠똥 딱지가 다닥다닥 아주 리얼하게 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단원은 그런 흔적을 지워버리지 않았습니다. 농부의 옷도 깨끗하지 않고, 소의 몸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농사는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흙을 만지고, 소를 부리고, 땀을 흘리고, 냄새나는 외양간을 오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저는 이런 작은 흔적에서 김홍도의 사생 능력을 봅니다. 그저 농사짓는 한 장면일 뿐인데, 이상하게 그날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소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소의 몸통이 다리에 비해 굵고 둥글면서도, 그 아래로는 팽팽하게 긴장한 근육과 야윈 듯 단단한 갈비뼈의 흔적이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오늘날처럼 영양가 높은 곡물사료를 충분히 먹고 기름지게 살을 찌운 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이 소는 논밭을 오가며 거친 풀과 짚을 먹고, 주인과 호흡을 맞추면서 매일같이 쟁기를 끌어야 했던 전형적인 조선 일소의 몸입니다. 일소에게 중요한 것은 살을 찌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버티는 힘, 진흙을 박차는 단단한 근육, 그리고 하루 종일 일을 해낼 수 있는 체력이었습니다.

동시에 단원의 영리한 붓터치가 돋보입니다. 단원은 소의 고단함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비명을 지르는 머리’와 ‘진흙을 딛는 앞다리’에 집중시키고, 몸통은 세부 묘사를 과감하게 덜어내어 둥글고 푸근한 터치로 처리했습니다. 만약 소의 몸통 근육과 갈비뼈 하나하나를 지나치게 빽빽하게 묘사했다면, 시선이 소의 등짝으로 쏠려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인 삼부자의 표정과 쟁기를 누르는 치열한 힘의 대결이 묻혀버렸을 것입니다. 덜어낼 것은 덜어내면서도 일소의 단단한 노동 흔적을 놓치지 않은 조선 회화의 진정한 묘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소의 몸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사람의 삶과 겹쳐 보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자신의 갈빗살과 몸을 내려다보십시오.

나는 거친 들판을 누비며 단단하게 살아가는 일소에 가까운가, 아니면 축사 안에서 편안히 길러진 육우에 가까운가.

6. 3지 쇠스랑과  4지 쇠스랑

화면에는 쟁기를 끄는 사람 외에 다른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둘 다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똑같지 않습니다. 하나는 발이 비교적 굵고 성긴 3지(세 발)이고, 다른 하나는 발이 더 촘촘한 4지(네 발)입니다. 이 차이가 저는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조선 전통 농기구에 4지 쇠스랑은 없었고 서양식 포크의 유입이다’라는 얕은 주장을 펴기도 하지만, 이는 고문헌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금세 풀리는 오해입니다.

  • 《농가집성(農家集成)》(1655년, 신속): 쇠스랑(철치파/철갈퀴)을 논의 굳은 흙덩이를 깨는 쇄토(碎土)와 고르는 용도로 기록하며, 땅을 깊이 파서 뒤집을 때는 날이 굵고 개수가 적은 것(2~3지)을 쓰고, 흙을 잘게 부수고 고를 때는 발이 촘촘한 것(4~5지)을 쓴다고 쓰임새를 구분하여 전합니다.

  • 《훈몽자회(訓蒙字會)》(1527년) 및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서유구): 농기구 편에서 토양의 단단함과 작업 목적에 따라 ‘이치파(二齒杷)’, ‘삼치파(三齒杷)’, ‘사치파(四齒杷)’ 등으로 세분하여 발의 수와 형태를 달리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쇠스랑이라고 다 같은 쇠스랑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단원은 문헌에 나오는 도구의 용도와 형태를 현장에서 정확히 관찰하고 날 개수와 각도 하나까지 살려내어 그려 넣었습니다.

7. 쟁기가 못 들어가는 모서리는 사람이 완성합니다

논을 쟁기로 갈아보면 재미있는 문제가 생깁니다. 소가 끄는 쟁기는 아주 효율적인 도구지만 만능은 아닙니다. 특히 논의 모서리가 그렇습니다. 두 마리 소가 멍에를 메고 쟁기를 끌고 가는데, 논의 네 귀퉁이까지 쟁기로 완벽하게 파고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 소도 돌아야 하고, 쟁기도 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이 들어가야 합니다. 쟁기가 지나가지 못한 곳의 흙을 사람이 직접 뒤집고 깨고 고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그림 속 쇠스랑 두 개가 더욱 재미있습니다.

  • 3지 쇠스랑의 타격: 한 사람은 굵고 성긴 발의 3지 쇠스랑으로, 소가 가지 못해 쟁기가 작업을 하지 못한 모서리 흙을 힘껏 찍어 지렛대처럼 넘기며 큰 흙덩이를 깨부숩니다. 그래서 그림에서 3지 쇠스랑의 타격 시 각도는 4지 쇠스랑보다 더 가파릅니다.

  • 4지 쇠스랑의 정지: 뒤에 있는 사람은 좀 더 촘촘한 4지 쇠스랑으로 완만하게 긁어당기며 잔 흙덩이를 부수고 잡초를 털어내며 논바닥을 고릅니다. 그래서 그림에서도 4지 쇠스랑은 긁는 용도이기에 타격 용도의 3지 쇠스랑보다 더 완만합니다.

소가 할 수 없는 일은 사람이 하고, 쟁기가 남긴 일은 쇠스랑이 마무리합니다. 소로 쟁기질을 하려면 그림처럼 최소한 세 사람이 있어야 일이 됩니다. 이게 농사입니다

8. 쟁기를 가슴으로 짓누르는 장남과 Max Q의 순간

여기서부터는 저의 상상입니다. 세 사람이 실제로 부자 관계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한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우선 쟁기를 쥐고 있는 큰아들(오른쪽 아래)의 손 위치와 자세를 주목해 보십시오. 단순히 팔 힘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아들은 왼손으로 쟁기를 움켜쥔 채 가슴골에 바짝 붙이고, 상체 전체를 앞으로 밀어 그 힘으로 쟁기날을 땅속 원하는 깊이까지 밀어 넣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연신 “이랴, 이랴!” 소리를 질렀을 것입니다.

직접 논을 갈아본 사람은 이 자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압니다. 물을 머금은 질척한 무논에서는 쟁기를 가볍게 잡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보습이 제멋대로 흔들리며 경로를 이탈하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깊이로 흙을 가르려면 상체의 무게를 실어 쟁기를 단단히 눌러야 합니다. 단원의 그림은 바로 그 힘이 가장 팽팽하게 걸린 찰나를 포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이 그림의 뼈대를 뜯어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역학적 모순이 발견됩니다. 바로 단원이 화폭에 숨겨둔 '해학이라는 이름의 슬픈 가면'입니다.

현장은 척박한 무논을 두 마리 소가 끌어야만 하는, 최고의 노동 강도가 요구되는 농사 중에서도 최고 난도의 뼈가 으스러지는 노동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쟁기를 잡은 농부는 표정을 알 수 없으나 쇠스랑질을 하는 늙은 농부와 더벅머리 총각 농부의 표정을 보면 비정상적일 만큼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노동의 순간에 피어난 이 기괴한 온도차를 우리는 그저 '농민들의 건강한 해학'이라고 포장해 왔습니다.

게다가 쟁기의 물리적 구조는 완전히 무너져 있습니다. 소들은 화면 왼쪽 대각선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데, 쟁기를 잡은 큰아들의 몸과 쟁기날은 엉뚱하게 측면을 향해 비틀려 있습니다. 흙을 파고 뒤집어야 할 쟁기의 보습과 볏은 바닥에 평면으로 납작하게 눌어붙어 있어, 실제로는 땅을 갈 수조차 없는 기형적인 각도입니다. 정상적이라면 각도도 각도이지만 볏은 보습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앞의 것을 볏이라고 봤을 때 볏이 이상하게 조립되어 있습니다. 아래 첨부한 그림을 참고해 보세요. 

[쟁기의 구조]

당대 최고의 사생력을 갖춘 단원이 쟁기의 물리적 이치나 힘의 방향을 몰라서 이렇게 그렸을 리 만무합니다. 이는 단순한 데생의 실패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의도적 붕괴입니다. 지배층의 서슬 퍼런 시선 아래 있던 도화서 화원이 민초들의 비참하고 핏빛 어린 현실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고발했다면, 이 그림은 불온하다는 이유로 당장 파기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단원은 지배층이 안심하고 웃어넘길 수 있도록 화면 전체에 '유쾌한 해학'이라는 위장막을 씌웠습니다. 하지만 구조의 모순을 짚어낼 줄 아는 이들에게, 이 말도 안 되는 가짜 쟁기와 농부들의 과장된 웃음은 오히려 농민들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부조리와 처절한 굴레를 뼈저리게 폭로하는 서늘한 역설이 됩니다. 단원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이에게는 가벼운 웃음을, 멈춰 서서 뼈대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이에게는 짙은 비애를 건네는 완벽한 이중 함정을 파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이중코드는 단원 풍속화첩의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보여지는 관통 코드입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러한 것을 기준으로 한번 파헤쳐 보겠습니다. 

앞에서는 소가 힘껏 앞으로 나아가고, 소의 다리가 논물을 휘저을 때마다 물이 첨벙첨벙 튑니다. 그 뒤를 따라간 쟁기날이 흙을 뒤집어놓으면 지나간 자리에는 물이 소용돌이치며 금세 흙탕물로 변합니다. 단원은 놀랍게도 이런 소리와 움직임까지 그림 속에 담아냈습니다.

소의 거친 숨소리, “이랴, 이랴!” 하는 농부의 외침, 소 발굽이 논물을 차는 첨벙거림, 그리고 쟁기날이 흙을 가르는 소리까지. 이런 소리가 귓전에 들리지 않는다면 과연 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한 것일까요? 그것은 어쩌면 소리만 죽여 놓은 영화를 보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삐줄은 어느 손으로 잡고 있을까요? 얼핏 보면 쟁기를 쥔 왼손 근처를 지나가니 왼손으로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왼손이 아닙니다. 쟁기를 가슴골에 대고 온몸으로 누르고 있는 상태이기에 왼손으로 고삐를 쥐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설사 잡았더라도 손의 위치상 선이 손의 위나 아래로 들어가야 맞습니다. 하지만 줄은 왼손 중간 뒤편 공간을 가로질러 팽팽하게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는 줄을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잡았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절묘한 디테일이 있습니다. 소에 연결된 줄을 보면 이상하게도 외줄 하나뿐입니다. 코뚜레가 둘이고 소가 두 마리이니 줄도 당연히 두 개여야 할 텐데, 단원의 생략이나 오류일까요? 아닙니다. 이토록 치밀한 그림에 그런 실수가 있을 리 없습니다.

실제로는 두 코뚜레에서 나온 줄이 하나로 모여 멍에 아래에서 합쳐지는 구조로 볼 수 있습니다. 소 두 마리를 몰 때 두 줄을 따로 쥐는 것은 오히려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농부는 가슴과 왼손으로 쟁기를 짓누르느라 남은 손이 오른손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방향 전환은 어떻게 할까요? 바로 오른손으로 줄을 살짝 당기면서 회초리(채찍)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줄은 ‘브레이크’이고, 회초리는 ‘액셀러레이터’입니다. 좌측으로 가려면 오른쪽 마라소의 엉덩이나 옆구리를 쳐서 좌측으로 밀어붙이고, 우측으로 가려면 왼쪽 안소를 쳐서 방향을 전환합니다. 특히 좁은 반경에서 방향을 틀 때는 줄을 당겨 속도와 방향을 제어하면서 동시에 회초리로 한쪽 소의 움직임을 재촉해야 합니다. 좁은 회전반경에서 스포츠카를 제어할 때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함께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참고로 소 한 마리로 쟁기질할 때는 줄을 좌우로 옮기면서 방향 전환도 하고 줄 자체를 회초리 삼아 가속까지 할 수 있지만, 겨리소에서는 줄을 좌우로 옮길 수 없기에 회초리가 별도로 있어야 합니다. 


그림에서 마라소가 유독 입을 크게 벌리고 힘들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좌측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농부가 줄은 당기면서 "우두두두!"하는 급박한 신호음과 함께 오른손에 든 채찍으로 마라소의 엉덩이를 강하게 후려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라소가 안소보다 조금 더 앞서 나가며 더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쟁기 보습을 최대한 누르면서 마라소를 회초리로 쳤기 때문에 소는 최대 출력을 뿜어내는 이른바 ‘Max Q(최대 동압)’의 정점 상태에 도달해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는 그 회초리로 소를 치고 난 직후의 가장 처절하고 힘겨운 찰나를 완벽하게 낚아채 그려낸 것입니다. 이 거센 힘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쟁기를 붙잡고 있는 이가 바로 장성한 ‘큰아들’입니다.

9. 머리 모양과 나잇살이 증명하는 삼부자의 농업 공정도

세 사람의 머리 모양과 몸의 생김새를 비교해 보면 세대 차이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3지 쇠스랑을 든 인물(왼쪽 위)은 상투를 틀지 않고 앞머리를 내린 채 뒤로 묶은 더벅머리(총각머리) 형태입니다. 아직 장가도 가지 않은 미성년 10대 소년, 즉 앳된 얼굴로 형과 아버지 곁에서 굵은 쇠스랑으로 흙을 깨며 농사를 배워나가는 ‘작은아들(막내)’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웃통을 시원하게 벗어던진 인물(오른쪽 위)을 자세히 보십시오. 청년의 팽팽하고 탄력 있는 복근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과 고된 노동, 그리고 나잇살이 고스란히 얹혀 불룩하게 아래로 처진 뱃살과 축 늘어진 배꼽 형태가 그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머리칼을 보면 다른 두 사람의 짙은 흑발과 달리, 정수리 주변의 숱이 듬성듬성하고 희끗희끗하게 센 백발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얼굴빛을 보면 6월의 따가운 뙤약볕 아래에서 열이 오른 탓도 있겠지만, 새참으로 걸친 시원한 막걸리 두어 사발의 술기운이 돌아 기분 좋게 붉어진 불그스레한 혈색이 도는 듯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웃통을 벗어던진 채 넉넉한 표정으로 4지 쇠스랑을 쥐고 있는 이가 바로 평생 땅을 일궈온 늙은 ‘아버지’입니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막걸리 한 사발에 웃음을 짓는 우리네 아버지의 넉넉한 해학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납니다.

이렇게 신체와 헤어스타일, 그리고 역학적인 노동 자세를 통해 세 사람의 나이와 역할을 맞추어 보면, 이 논갈이 현장은 모내기를 준비하는 삼부자의 완벽한 분업 체계로 살아 움직입니다.

  • 1단계 (심경 및 흙 뒤집기): 가장 힘도 많이 들고 숙련된 기술이 요구되는 쟁기질은 건장한 체격의 큰아들이 맡아, 가슴으로 쟁기를 짓누르고 한 손으로 통고삐와 채찍을 쥐며 Max Q 상태의 황소 두 마리를 능숙하게 몰아 힘차게 치고 나갑니다.

  • 2단계 (1차 쇄토 및 모서리 개간): 아직 상투도 틀지 못한 앳된 더벅머리의 작은아들은 허리를 숙인 채 굵은 3지 쇠스랑으로 쟁기가 닿지 못한 모서리 흙을 직접 찍어 넘기며 거친 흙을 깹니다. 기술은 서툴러도 젊은 힘으로 부딪치는 일입니다.

  • 3단계 (2차 정지 및 마무리): 희끗희끗한 머리숱과 처진 뱃살을 드러낸 채 상의를 벗어던진 아버지는 촘촘한 4지 쇠스랑으로 흙을 부수고 바닥을 고르게 다듬으며 아들들의 뒤를 묵묵히 마무리해 냅니다.

실제 부자 관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삼부자의 하루라고 생각하고 그림을 바라보면 장면이 갑자기 살아납니다. 저는 이 그림을 저와 아버지, 그리고 농사일을 가장 많이 도와주셨던 둘째 형님을 겹쳐 보며 바라보게 됩니다.

아침부터 소를 끌고 논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소에게 멍에를 메우고 쟁기를 연결합니다. 한 사람은 쟁기를 잡습니다. “이랴!” 소 두 마리가 움직입니다. 소의 표정도 재미있습니다. 화면에서 뒤쪽의 소를 보면 코를 벌름거리면서 입을 벌리고는 고개를 살짝 틀어 회초리를 들고 있는 주인의 눈치를 봅니다. 마치 이렇게 힘든데 채찍질은 그만하고 좀 쉬었다 하자고 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하루해가 짧은 농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채찍을 들고 "이랴 이랴" 하면서 재촉합니다. 쟁기의 보습이 흙 속으로 파고듭니다. 흙이 갈라지고 뒤집힙니다. 그 뒤를 두 사람이 따라갑니다. 쟁기가 지나간 자리를 확인하고, 덜 갈린 곳을 다시 파고, 흙덩이를 깨고, 마지막으로 논바닥을 고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그림은 더 이상 단순한 풍속화가 아닙니다. 하나의 완벽한 농업 공정도입니다.

10. 모내기를 앞둔 삼부자의 삶을 증명하는 걸작

어릴 때는 재미없는 시골에서 부모님 농사일 돕는 것이 너무 지겨웠습니다.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일 시키실 때마다 “왜 막내인 나만 시키냐”고 짜증만 냈던 것이 지나고 보니 후회됩니다. 비록 외겨리(외소)였을지언정 소에 쟁기를 메기고 직접 논도 갈아보고 밭도 갈았던 그 힘들었던 노동의 기억이 지나고 보니 이렇게 훌륭한 글쓰기 재료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비록 두 분 다 돌아가신 지 한참 되었지만, 철없이 불평만 늘어놓았던 그때가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집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결국 이 그림을 논갈이로 보는 이유는 제목 하나 때문만이 아닙니다.

  • 질퍽한 땅에서 두 마리 소가 끄는 겨리

  • 쟁기의 보습과 볏

  • 흙을 뒤집어가는 작업 방식

  • 사람들이 쟁기 뒤에서 수행하는 후속 작업

  • 그리고 서로 다른 농기구를 들고 움직이는 사람들의 위치까지

하나씩 따로 보면 사소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한꺼번에 연결하면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집니다. 소가 힘을 쓰고, 쟁기가 흙을 가르고, 사람이 그 뒤를 따라가며 땅을 완성하는 장면.

단원 김홍도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단순히 농부 세 명과 소 두 마리를 그린 것이 아닙니다. 붓터치 하나하나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단원의 숨결과 땀냄새까지 느껴집니다. 그 붓끝에는 모내기를 앞두고 조선의 삼부자가 어떻게 땅과 씨름하며 흙을 일구어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는 흙냄새가 납니다. 소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소의 땀 냄새와 농부의 땀 냄새가 납니다. 가족이 보입니다. 그리고 쟁기가 지나간 자리에서 뒤집힌 검은 흙이 보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좋은 풍속화는 단순히 사람을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그리는 그림이라고. 그리고 「논갈이」는 그 점에서 김홍도의 그림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작품입니다.

그림은 제목보다 먼저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제목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제목이 ‘논갈이’라고 말하고 있다면, 이제는 그림 속 농기구와 흙과 소에게 물어볼 차례입니다. 정말 논갈이를 하고 있는지.

저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단원 선생, 이건 모내기를 위한 논갈이의 한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 명작입니다.”

“참으로 멋진 작품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소에게 한마디 더 하고 싶습니다.


“소야, 오늘도 논갈이하느라 참 수고가 많았다.”


[제 글을 보고 친구가 만들어 보내준 그림]


[어린이용 단원풍속화첩 구상안]


Project 2037(www.theproject2037.com)










댓글

  1. 와우. 이 글이 소설 목차를 제외하고 단일 글로는 최초로 100회 이상 본 글이 되었네요.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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