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 배추농사는 어려워2

단원 풍속도첩 : 점심 - 이들은 방금 전 무얼 하고 있었을까?

단원을 만나다: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단원 풍속도첩

점심 - 이들은 방금 전 무얼 하고 있었을까?

1. 무엇을 하는 장면인가?

김홍도의 풍속화 《점심》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림 속 사람들은 둥글게 둘러앉아 한창 밥을 먹고 있지만, 배경이 생략되어 있어 이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던 중인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들이 정확히 점심을 먹는다고 할 수가 없으므로 더 넓은 의미의 새참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제 눈에는 이 장면이 너무나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어릴 적 큰집, 작은집, 그리고 우리 집 식구들까지 온 집안 남정네와 아낙들이 열 명 가까이 모여 북적이던 초여름의 모내기 풍경이 그대로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흙탕물이 묻어난 옷자락과 벗어던진 웃통, 밥사발을 움켜쥔 투박한 손들을 보면, 방금 전까지 무논에서 허리가 끊어져라 줄을 맞추고 벼 포기를 꽂아 넣던 그 시절 우리 집안 어른들과 함께 어릴 적 저의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저수지도 관개시설도 지금처럼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절, 논농사에서 물과 시기를 맞추는 일은 한 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일이었습니다. 집안사람들과 마을 이웃이 내 일 네 일 가릴 것 없이 품앗이로 똘똘 뭉쳐야만 해낼 수 있었던 집단 노동의 한복판. 이 그림은 그 고된 하루의 가장 뜨거운 고비를 넘기며 잠시 숟가락을 든 찰나를 포착한 것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용어 하나를 놓고 딴지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이 그림의 공식 제목은 〈점심〉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그림을 보자마자 그냥 새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글에서 새참이라고 설명한 것도 봤습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그냥 저의 생각대로 ‘새참’이라고 쓰다가, 국립중앙박물관의 공식 명칭이 〈점심〉인 것을 알고 제목에 맞춰 고쳤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점심'이라는 말이 조금 걸립니다. 

왜냐하면 그림을 보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모내기할때 만큼은 점심은 보통 저렇게 바깥에서 먹지를 않았습니다.저의 어릴 적 기억을 통해서 저 장면이 왜 점심이 아니고 새참으로 다가왔는지 그리고 특히 오후 새참이라고 생각하는지 썰을 풀어 보겠습니다. 

모내기를 할 때는 아침 일찍부터 분주합니다. 어머니는 종일 먹어야 할 것을 챙겨야 해서 바쁩니다. 이 때는 큰집, 작은집까지 다 모이기에 준비할 식사량도 많고 다섯끼나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아침 일찍 저는 큰집, 작은집으로 가서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으니 오시라고 기별을 넣습니다. 하지만 예의상 건네는 초대일 뿐 아침에 뭐 대단한 것을 차리는 것도 아니고 오가는 데 시간도 걸려, 대부분 아침밥은 각자의 집에서 해결하고 모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침 일찍부터 모판이 있는 논으로 가셔서 물이 적당한지 살피고, 여러 가지 농기구며 모를 찔 때 묶을 볏짚단 등을 미리 가져다 놓으십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모판 논으로 하나둘 모여들고, 본격적으로 모를 찌기 시작합니다. 손이 워낙 많이 가는 일이라 모찌기만으로도 거의 오전 시간을 다 보냅니다.

저는 일이 시작될 때쯤 먼저 술도가로 달려가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가득 받아 옵니다. 막걸리를 받아 오면서는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몰래 홀짝홀짝 훔쳐 마시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막걸리가 비었느냐고 어른들의 핀잔을 들을 때면, 급히 뛰어오다가 그만 좀 흘렸노라고 능청을 떨기도 했습니다. 막걸리는 바닥을 보일 때마다 부지런히 채워 넣어야 했습니다. 막걸리와 소박한 안주는 일하는 틈틈이 목을 축일 수 있게 논둑에 항상 준비되어 있었고, 농사일에 막걸리는 절대 빠질 수 없는 활력소이자 기본 음료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두세 시간쯤 지나면 논두렁에 걸터앉아 가볍게 오전 새참을 먹습니다.

그렇게 한두 시간쯤 더 손을 놀려 모찌기가 끝나면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고 집으로 모여 점심을 먹습니다. 모판이 있는 논은 대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굳이 점심을 땡볕 야외에서 먹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모내기철은 해가 긴 5월 말에서 6월 초중순이라, 집 마당의 그늘진 평상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나마 허리를 펴며 쉬어주어야 했습니다. 논갈이에 써레질까지 며칠째 이어진 강행군 탓에 이때 체력을 비축해 두지 않으면 오후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오후에는 허리를 수백 번, 수천 번 숙였다 펴야 하는 극한의 노동 강도를 요하는 본 모내기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점심을 여유 있게 먹고 나서는 소달구지에 찐 모를 가득 싣고 저 멀리 있는 논으로 갑니다. 모를 심는 사람은 심고 한 두사람은 소달구지에 찐 모를 나르는 것도 몇번을 해 주어야 끝납니다. 그리고는 다 같이 모를 심습니다. 저는 가져온 모를 논에다 던져 주거나 날라다 주는 일도 하고 못줄을 옮겨주는 일도 합니다. 모도 조금 심어 봤지만 심은 모도 자꾸 떠올라 효율도 나지 않고 허리가 너무 아파서 하다가 그만 둡니다. 그러면 또 새참 시간이 됩니다. 단원이 그린 저 점심 아니 새참이 바로 이 오후의 새참 시간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저 그림을 보는 순간 전 참 현실감 있게 그렸다고 보았으며 바로 그 오후의 새참시간을 떠 올렸습니다. 그리고 저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약간 무질서하게 앉아 있는데 실제로 저런 모습이 맞습니다. 만약 저 그림을 <무동>에서나 <씨름>에서와 같이 둥그렇게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그렸다면 저에게는 와 닫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저게 더 맞느냐 하면 야외에서 먹는 새참은 여건이 참 열악합니다. 모내기논은 보통 주변에 쉴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땡볕에서 먹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논둑이나 도로가 겨우 리어카나 소달구지 하나 지나갈 폭 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둥그렇게 앉아서 먹을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저런 무질서하게 앉아서 먹는 모습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설사 큰 신작로 옆에 있는 논이라 하더라도 그런 대로이면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을테니 길을 다 차지하고 10여명이나 되는 사람이 둥글게 앉아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의 제목을 이후로는 <점심>이 아니라 <새참>이라고 불러 보겠습니다. 

2. 계절 및 시간

화폭 속 계절은 본격적인 모내기가 한창인 초여름, 그것도 하지(夏至)를 며칠 앞둔 무렵으로 설정해 보겠습니다. 정상적인 모내기라면 중부 지방 기준 5월 중순부터 시작하지만 보리를 수확한 뒤 모내기를 하는 논이거나, 비가 늦게 내려 모내기가 예년보다 늦어진 해라면, 하지 무렵까지도 모내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리농사까지 겸했다면 보리 수확과 모내기가 겹쳐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는 때입니다.

모내기철의 일과는 매섭도록 빡빡합니다. 그 전날에는 논에 써레질을 다 해 놓아야 합니다. 그 전에는 또 거름을 내고 논을 갈아야 합니다. 소를 몰고 논을 갈고 써레질하는 일은 농사일 중에서도 그야말로 중노동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제가 어릴 적 보았던 모내기는 아침부터 곧장 모내기 논에 들어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첫새벽부터 못자리에 엎드려 잡초를 솎아내고, 손가락이 퉁퉁 붓도록 모를 쪄서 볏짚으로 묶어 나릅니다. 오전 내내 모찌기를 끝내고 모를 모내기 논에 넣어 두어야 비로소 모내기 일이 시작되곤 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 모내기를 하던 때는 정오 무렵부터 못줄을 띄우고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지열이 달아오르는 오후 즈음에는 뼈마디가 쑤시고 위장이 바짝 타들어 가는 극도의 허기가 찾아오곤 했습니다. 하루 중 가장 지치고 맥이 풀리는 그 순간, 논둑으로 가져온 이 새참 광주리는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구원이었을 것입니다.

3. 이들은 무엇을 먹고 있을까?

화폭 속 새참으로 먹는 밥상에는 화려한 반찬이 보이지 않습니다. 좌측 접시에 생선 한 마리가 보일 뿐, 다른 이들은 숟가락으로 밥을 뜨거나 젓가락질을 하고, 사발을 입에 댄 채 무언가를 들이켜고 있습니다. 이들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보리밥에 김치, 생선 몇 마리와 막걸리 정도가 주된 상차림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적 모내기철 들녘에서 먹던 밥상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고기 반찬 하나 없는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게 나름의 진수성찬이었습니다. 모내기철은 일 년 농사 중에서도 손꼽히게 힘든 때였고, 큰집과 작은집 식구들까지 모두 모여 함께 일을 했기 때문에 어머니도 그날만큼은 음식 준비에 꽤 신경을 쓰셨습니다.

그 시절 들녘에서 보았던 상차림을 떠올려 봅니다. 모내기 때의 새참만큼은 일 년 중 그 어느 때보다 푸짐했고, 땀 흘린 뒤 밥사발을 받아 든 어른들의 입에서는 "아, 달다"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담백한 보리밥에 시원한 김치 몇 조각, 거기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땀으로 빠져나간 기운을 채우기에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그날 상 위에 올라온 반찬들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화폭 속 밥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모내기철마다 어머니가 들녘으로 내오시던 정성 어린 음식들의 풍경이 줄줄이 기억 속에서 피어오릅니다.

그 시절 어머니는 모내기철이 되면 새참 광주리를 준비하려고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셨습니다. 거친 보릿가루에 생막걸리 술밑을 넉넉히 붓고 아랫목에 뽀얗게 띄워 올린 뒤, 삼베 보를 깐 가마솥에 푹 쪄내던 어머니표 보리술빵의 구수한 냄새는 지금도 코끝을 맴돕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술빵을 큼직하게 뜯어 물면 새콤달콤하면서도 폭신폭신한 식감이 허기를 든든하게 달래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강원도 쪽으로 차를 몰고 가다 보면 흔히 있는 술빵 파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끔씩 사서 먹습니다. 빵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그때의 추억을 먹고 싶어서겠지요.

텃밭 넝쿨에서 손바닥보다 큰 연한 호박잎을 툭툭 뜯어 거친 껍질을 벗겨내고 밥솥 뜸 들일 때 함께 쪄낸 보들보들한 찐 호박잎, 밭둑에서 뜯어낸 머윗대의 질긴 껍질을 일일이 벗겨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낸 쌉싸름하고 통통한 머윗대 나물도 빠질 수 없습니다. 짭조름한 강된장을 듬뿍 얹어 쪄낸 호박잎에 보리밥 한 숟가락을 크게 싸 넣으면 그 달큰하고 구수한 풍미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아직 하지(夏至)가 며칠 남아 알이 덜 찼을 텐데도 일꾼들 힘내라고 밭뙈기에서 미리 캐내 껍질째 포슬포슬하게 삶아 분이 하얗게 오른 햇감자, 땀을 흠뻑 흘린 장정들이 그 자리에서 후루룩 소리를 내며 한 그릇 비워내던 시원한 국수와, 우리 동네에서는 '메깡'이라 부르며 사발째 들이켰던 새콤하고 시원한 오이냉국까지 더해지면 들판의 밥상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이자 꿀맛 같은 쉼이었습니다. 흙 묻은 투박한 손으로 그릇을 비워내던 어른들의 땀방울과 어머니의 손맛이 어우러진 그 시절의 새참은, 제게 여전히 가장 따뜻하고 눈부신 생명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새참 뿐만 아니라 들녁에 핀 삘기도 뽑아서 껌처럼 씹어 먹으면 맛있었고, 논둑 정리하다 나오는 새하얗고 기다란 메뿌리도 참 달큰하니 맛이 좋았습니다. 이 또한 아련한 유년시절의 기억입니다. 

4. 각 인물별 설명

그림 속에는 이름표가 없습니다. 하지만 단원이 생생하게 살려낸 표정과 몸짓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속내를 상상해보게 됩니다.

1) 12시 방향 [막걸리 마시는 장정 - 턱을 젖힌 시원한 갈증]
상체를 벗고 오른손 하나로 사발을 입에 댄 채 고개를 뒤로 젖혀 시원하게 한숨에 들이켜고 있습니다.


2) 1시 방향 [돌석 - 두 손으로 사발을 받쳐 든 청년] 
웃통을 시원하게 벗어던지고 앉은 젊은 일꾼에게 저는 돌석이라는 이름을 붙여봅니다. 온종일 물 찬 논에서 땀을 쏟아낸 그는 두 손으로 큼직한 사발을 턱 밑에 소중히 받쳐 들고 들이켜고 있습니다. 타는 목을 축이는 청년의 원초적인 갈증과 해방감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3) 2시 방향 [판석 - 싹싹한 총각]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모습이 영락없는 총각처럼 보여, 저는 판석이라는 이름을 붙여봅니다.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몸을 바짝 낮추고 조심스레 무릎을 웅크린 채, 두 손으로 큼직한 질그릇 술병을 기울여 맞은편으로 막걸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 굽은 등과 조심스러운 손길에서는 어른을 대하는 젊은이 특유의 싹싹함과 깍듯함이 묻어납니다.



4) 3~4시 방향 [득수 - 굶주림을 이겨낸 마지막 한 숟가락]
웃통을 시원하게 벗어던지고 털털하게 주저앉은 장정은 득수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는 오른손 숟가락으로 밥을 가득 퍼 입안에 밀어 넣으며 왼손으로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밥사발을 잡고 있습니다. 볼이 미어터지도록 우적우적 씹어 삼키는 그의 표정에는 고된 노동을 이겨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정직한 포만감이 가득합니다.


5) 4시 방향 [개똥이 - 엄마 따라온 서너 살배기 늦둥이]
득수의 곁에 헐렁한 바지만 입고 앉은 꼬마는 개똥이가 제격입니다. 한 서너 살이나 되었을까요. 아직 어려 못줄을 잡을 나이는 안 되니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들판까지 종종걸음으로 따라왔을 것입니다. 제 상체만 한 사발을 두 손으로 끌어안고 그릇에 코를 박을 듯 얼굴을 들이민 모습이 고된 일터에 웃음을 주는 영락없는 늦둥이의 모습입니다.


6) 5시 방향 [순임 - 자기 밥보다 아이 젖부터 물리는 어머니]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새참 광주리를 이고 왔을 법한 여인은 순임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머리에 인 무거운 광주리를 발치에 내려놓고 땀을 훔치면서도, 정작 자기 밥은 한술 뜨지도 못한 채 저고리섶부터 풀어헤치고 있습니다. 들판의 고단한 노동 속에서도 제 배고픔보다 자식의 입부터 채우는 어머니의 따뜻하고 묵직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7) 5시 방향 [젖먹이 - 어머니 품에 안긴 작은 생명]
순임의 품에 안겨 평온하게 젖을 빨고 있는 갓난아이입니다. 어른들의 땀내와 흙먼지가 가득한 들녘의 소란 속에서도,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채 생명을 이어가는 가장 순수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보여줍니다.



8) 7~8시 방향 [마 서방 - 노련한 농사꾼]
맞은편에 앉아 젓가락질을 하는 노련한 농사꾼에게 마 서방이라는 이름을 붙여봅니다. 그는 판석이 따라준 막걸리를 밥사발에 넘치도록 받아 단숨에 들이켠 뒤, 긴 젓가락으로 납작한 반찬동에 담긴 김치 한 줄기를 건져 올리고 있습니다.그 묵직한 눈빛과 느긋한 동작에서는 젊은이와는 다른 어른의 관록이 느껴집니다.



9) 9~10시 방향 [부채 든 장정 - 노동 뒤의 나른한 여유]
상체를 벗고 한 손에 둥근 짚부채를 쥔 채 가슴팍을 살살 부치는 장정은 한숨을 돌리는 노동자의 평온한 휴식을 보여줍니다.


10) 9~10시 방향 [입맛 다시는 장정 - 아직도 배고픔]
윗옷은 입었으며 오른손으로는 밥을 다 먹은 것이 아쉬운듯 빈 숟가락을 빨고 있고 빈 밥그릇을 아쉬운 듯 기울여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른쪽 다리로 시선을 옮기면 또 한 번 단원의 익살이 보입니다. 발목과 발가락의 방향이 묘하게 뒤틀려 있어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리고 유독 그의 앞에는 생선 한 마리가 놓여 있습니다.



11) 7시 하단 [누렁이 - 들녘의 평화를 완성하는 시선]
흙바닥에 다소곳이 앞발을 모으고 턱을 괸 채 누워 있는 누렁이는 떨어질 밥풀 하나를 기다리며, 이 땀내 나는 식사 자리에 평화와 온기를 더해줍니다.


5. 마 서방과 판석의 물싸움

그런데 저는 이 평화로운 밥상이 마냥 덤덤하게만 보이지 않습니다. 유독 대각선 양 끝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 술을 따르는 젊은 판석과, 그 술을 밥사발로 받아 마시고 열무김치를 집어 올리는 노련한 마 서방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묘한 긴장감이 스칩니다.

이건 순전히 제 상상입니다. 하지만 제게도 벼논의 물대기 관련 물꼬를 둘러싼 뼈아픈 유년의 기억이 있기에, 저 둘 사이에 며칠 전 살벌한 물싸움이라도 한바탕 지나갔을 것만 같은 생생한 도랑가의 밤 풍경이 절로 그려집니다.

젊은 시절 홋카이도 탄광에서 몸을 혹사당해서인지 무릎이 좋지 않으신 아버지께서는 어린 저에게 농사일 관련 심부름을 자주 시키셨습니다. 하루는 멀리 있는 논에 물을 좀 대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삽으로 흙을 잘 다독여 우리 논으로 물꼬를 야무지게 터놓고 돌아서서 잠시 후 가보면, 감쪽같이 물길이 딴 데로 돌려져 있곤 했습니다. 

약이 바짝 오른 저는 아예 둔덕 위 산자락에 숨어 숨을 죽이고 물길을 지켜보았습니다. 잠시 후 한참 아래쪽의 논 주인이 슬그머니 올라와 태연하게 우리쪽 논의 물길은 아예 막고 아래쪽으로 전부 흘러가도록 돌려놓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사람도 화가 났는지 혼자서 주변에 들으라는 듯이 고래고래 욕을 해 댔습니다. 어른인 아랫논 주인이 아예 논둑에 버티고 서서 물을 지키고 있으니 어린 저로서는 억울하지만 빈손으로 몰래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이 곧 목숨이던 시절의 살벌한 풍경이었습니다.

그 기억을 덧씌워 화폭 속 두 사람의 며칠 전 밤을 상상해 봅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지던 며칠 전 밤이었습니다. 마 서방은 윗도리를 벗어젖힌 채 삽자루를 쥐고 도랑가에 서서 자신의 모내기판 논으로 들어가는 가느다란 물줄기를 뜬눈으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흙탕물 한 바가지가 벼 포기의 목숨을 쥐고 흔들던 숨 막히는 가뭄이었습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숨소리를 죽이며 다가온 판석이 슬그머니 흙더미를 허물어 물길을 제집 논으로 돌려놓으려 했습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뚝 끊기자마자 마 서방의 굵고 마른 손이 어둠을 찢고 날아가 판석의 멱살을 틀어쥐었습니다.

"네 이놈, 판석이! 피땀 흘려 지키는 물을 어디 도둑고양이처럼 도둑질하려 드느냐!" "어르신! 어르신 논만 논이고 우리 논은 볏모 다 타 죽어도 상관없단 말입니까! 물꼬를 이렇게 혼자 꽉 틀어막으시면 우리는 손가락 빨고 죽으란 소립니까!"

어둠 속에서 두 사내의 핏대 솟은 목소리가 부딪치고, 논두렁 흙바닥에 삽자루가 꽂히며 흙먼지가 풀썩 일었습니다. 멱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주먹이 허공을 가를 듯 팽팽하게 맞서던 순간, 도랑을 낀 이웃사촌의 정은 간데없고 오직 타들어 가는 논을 살려야 한다는 원초적인 살기만이 번뜩였습니다. 마을 장정들이 달려들어 겨우 뜯어말리지 않았더라면 피를 보고서야 끝났을 험악한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뭄이 지나 마침내 모를 심는 오늘, 두 사람은 한 밥자리에 마주 앉았습니다.

젊은 판석은 지난밤의 무례와 미안함을 담아 두 손으로 큼직한 질그릇 술병을 공손히 받쳐 들고, 어른인 마 서방은 아무 말 없이 자기 밥사발을 내밀어 콸콸 쏟아지는 막걸리를 찰랑거리도록 받습니다. 단숨에 사발을 비워낸 마 서방이 납작하고 동그란 반찬 그릇에서 김치 한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는 그 손짓 속에는, 지난밤 도랑가의 앙금을 물처럼 씻어내고 다시 이웃으로 살아내자는 민초들의 투박하고도 질긴 화해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밥그릇에 부어 마신 술 한 사발로 서러움과 원망을 삼켜 넘기는 그 투박한 생명력이 바로 이 화폭의 대각선 구도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6. 단원의 소소한 익살

단원은 이렇게 고된 노동 뒤의 밥자리에서도 사람들의 모습을 꼼꼼하게 관찰했습니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곳에서 단원 특유의 익살이 눈에 들어옵니다.

빈 그릇을 아쉬운 듯 기울여 보며 입맛을 다시는 장정의 다리를 보면 묘하게 눈길이 갑니다. 편하게 내던지듯 앉아 있는 그의 뒤로 뻗은 발목과 발가락의 방향이 어딘가 기묘하게 비틀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심각한 인체 비례의 오류라고 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밥 한 술이라도 더 빨리 입에 넣으려는 듯 털털하게 주저앉은 사내의 모습을 살리려다 보니 생긴 단원의 소소한 익살처럼 보입니다.

판석이 들고 있는 술병도 눈에 들어옵니다. 병의 크기가 주변 사람이나 밥사발에 비해 제법 큽니다. 실제 술병의 크기를 정밀하게 재현했다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함께 나누는 막걸리의 존재감을 보여주려는 듯 조금 과장해서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 그림에서는 굳이 더 이상한 것을 찾아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씨름》이나 《담배썰기》, 《기와이기》에서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익살스러운 장면을 억지로 만들어낼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점심(새참)》에서 제가 재미있게 느끼는 것은 단원이 사람들을 지나치게 꾸미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을 벌컥 들이켜는 청년, 밥을 정신없이 퍼먹는 장정, 제 몸집만 한 사발을 끌어안은 아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 술을 따르는 젊은이와 그것을 받아 마시는 어른, 부채질을 하며 쉬는 사람, 빈 그릇을 아쉬운 듯 기울여 보는 사람까지. 모두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인데,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각자의 모습이 조금씩 다릅니다.

단원의 해학은 어쩌면 바로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부러 웃기려고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다 보니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익살이 배어 나온 것입니다.

물 한 모금을 꿀꺽 삼키는 청년의 목젖부터 밥사발에 코를 박을 듯 밥을 먹는 아이, 젖을 물린 어머니의 품과 조금 비틀린 자세로 밥알을 씹는 사내까지.

단원의 화폭 속 사람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땀을 흘리고, 밥을 먹고, 쉬고, 서로 술을 나눕니다. 그리고 저는 그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어린 시절 들녘에서 함께 밥을 먹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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