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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잎장아찌
얼마 전 요양원에 계시는 장모님을 뵈러 상주를 다녀오는 길에, 바로 옆에 가까이 붙어 있는 고향인 문경을 일부러 거쳐서 다녀왔다. 뵌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장모님께서 원하시니 또 내려갔다.
요양원에 계시는 장모님을 뵈러 갈 때마다 올리비아는 이런저런 사정과 마음의 부담으로 망설이고 고민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등을 떠민다.
“앞으로 찾아뵐 날이 며칠이나 되겠어? 내가 보기엔 열 번도 채 남지 않았어. 그런 고민도 살아 계시니까 가능한 거야. 나중에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지 말고 한 번이라도 더 뵐 수 있을 때 다녀와. 그건 내가 무조건 최우선으로 둘 테니까.”
“에이, 설마 열 번도 안 남았겠어?”
올리비아는 쉽게 믿지 않는 눈치로 반문하지만, 나는 이미 세 번이나 그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뼈저리게 겪어보았다. 나의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장인어른마저 먼저 보내드린 지금, 양가 부모님 중 우리 곁에 계신 분은 이제 장모님 한 분뿐이다. 다시는 그 먹먹한 후회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고향에 갈 때마다 시장통에 들러 약돌돼지도 사고 과일도 산다. 돼지는 족살이라는 부위 즉 족발에 붙어 있는 살을 샀는데 서울이나 수도권에 살면서는 족살이라는 것을 파는지도 이제야 처음 알았다. 앞의 분이 동창회한다면서 30kg 정도나 사길래 궁금해서 물어보고 따라서 사게 되었다. 굳이 고향가서 이것저것 사는 것은 가격도 수도권의 마트보다 저렴하고 맛도 좋지만, 그보다는 고향의 것을 가져온다는 그 마음이 더 크다. 그리고 시장통에 있는 하나로마트에도 들렀다.
하나로마트는 어디에나 있고, 집 근처 성남 하나로마트는 없는 게 없을 만큼 큰 초대형 매장이지만, 고향 문경 하나로마트에만 있는 것도 있다.
매대를 지나치다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서울이나 수도권의 말끔한 대형마트 신선 코너에서는 결코 마주칠 수 없었던 바로 콩잎이었다. 깻잎의 짙은 향이나 상추의 연한 잎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닌 식재료다. 서울이나 중부 지방 사람들에게 콩잎을 먹는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소나 먹는 여물이 아니냐고 반문하기 일쑤지만, 경상도 사람들에게 콩잎은 뼛속 깊이 각인된 유년의 맛이자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거친 줄기에 특유의 쌉싸름하고 풋내 나는 그 푸른 잎을 보는 순간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님이 해주시던 반찬이 떠올라 잠시 멈칫했다. 어릴 적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면 밥상머리 한구석에 늘 놓여 있던 어머니의 콩잎장아찌. 콩밭에서 억세진 잎을 뜯어와 삭히고, 한 장 한 장 정성껏 켜켜이 양념을 재어두었던 어머니의 손길. 뜨끈한 밥에 그 짭조름하고 곰삭은 잎 한 장을 얹어 우물거리면 세상 부러울 것 없던 날들이 있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콩잎장아찌가 참 그립네.”
스치듯 무심하게 뱉은 그 한마디를 올리비아는 흘려듣지 않았다. 다행히 같은 고향이라 그것이 뜻하는 바를 잘 아는 듯했다. 하지만 장모님이 해주신 것은 먹어봤을지언정 올리비아가 직접 담가볼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손질하는 법도, 거친 잎을 부드럽게 다듬고 삭히는 요령도 익숙지 않았을 텐데, 망설임 없이 푸른 콩잎 묶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식탁에 낯선 반찬 하나가 올라왔다. 콩잎장아찌였다.
아직 온전히 깊은 맛이 배어들지 않아 푸릇한 생내가 살짝 맴돌았고, 색깔도 내가 기억하던 곰삭은 갈색빛과 달라 처음에는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젓가락으로 한 장 집어 밥 위에 올리는 순간 목이 메어왔다. 아직 덜 익어 풋풋한 그 맛 너머로, 흙먼지 묻은 손으로 잎을 다듬던 어머니의 거친 손길과 지금 내 곁에서 무던히 밥상을 차려내는 올리비아의 온기가 한데 겹쳐졌다.
나는 글 쓰는 재주는 조금 있을지 몰라도 말하는 재주는 영 젬병이다. 그래서 올리비아와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할 때마다 말로는 당해내지 못하지만, 늘 던지는 회심의 일격이 하나 있다.
“이렇게 나랑 투닥거리며 싸우는 것도 내가 살아 있으니까 가능한 거야. 언젠가는 이 장면도 무척 그리워할 날이 올걸?”
그러면 올리비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인다.
“대체 뭐라는 거야?”
하지만 그 핀잔 속에 담긴 진심을 안다.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잃고, 이제 장모님 한 분만을 남겨둔 채 시간의 유한함을 절감하는 나만큼이나, 올리비아 역시 흘러가는 이 생의 날들을 무겁게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툭 던진 그 낡고 투박한 그리움 하나를 놓치지 않고, 서툰 솜씨로 잎을 씻고 양념을 얹어 이런 밥상을 차려냈을 테다.
시간이 더 흘러 잎사귀가 노랗게 삭고 깊은 감칠맛이 돌 때쯤이면 이 고마움은 내 삶 속에 또 어떤 무늬로 새겨질까. 너무나 투박하지만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따뜻했던 한 접시의 밥상이 코끝 찡한 여운으로 오래도록 마음에 머문다.
추억을 소환해주는 당신만의 특별한 반찬 한가지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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