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 배추농사는 어려워2

독후감 : 남아 있는 나날, 왜? 왜? 왜?

남아 있는 나날, 왜? 왜? 왜?

왜 이걸 이제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에 대한 독후감을 이미 아홉 편이나 쓰고도, 가슴 깊이 남아 있으면서 끝내 글로 옮기지 못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유대인 이야기라 자칫 오해를 살까 망설였고, 무엇보다 이 장면이 차별의 문제보다 그 앞에서 침묵한 사람들의 문제를 묻고 있어서 제 얘기처럼 아프게 읽혔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장면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시리게 박혀 오는 순간은 거대한 시대의 격랑이나 달링턴 경의 몰락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저택에서 쫓겨난 두 처녀, 루스와 사라를 둘러싸고 뒤늦게 오간 대화 속에 그 본질이 숨어 있습니다.

주인 달링턴 경이 뒤늦게 과오를 뉘우치며 그들을 다시 찾아보라고 지시했을 때, 스티븐스는 홀가분한 얼굴로 켄턴 양에게 이 소식을 전합니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안도감과 주인의 결정이 옳았다는 자부심을 품고서였습니다. 그러나 켄턴 양의 반응은 기쁨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허탈감이었습니다.

"Do you realize, Mr Stevens, how much it would have meant to me if you had thought to share your feelings last year? You knew how upset I was when my girls were dismissed. Do you realize how much it would have helped me? Why, Mr Stevens, why, why, why do you always have to pretend?"

"I suffered so much over Ruth and Sarah leaving us. And I suffered all the more because I believed I was alone."

"스티븐스 씨, 작년에 당신의 속마음을 제게 조금이라도 털어놓아 주셨다면 제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지 아시나요? 제가 그 아이들을 내보내며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알고 계셨잖아요. 그것이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지 짐작이나 하시나요? 대체 왜, 스티븐스 씨, 왜, 왜, 왜 당신은 늘 아닌 척, 꾸며야만 하나요?"

"저는 루스와 사라가 떠난 일로 너무나 큰 고통을 겪었어요. 그리고 나 혼자만 그런 줄 알았기 때문에 훨씬 더 괴로웠다고요."

이 처절한 물음 앞에서 스티븐스는 빈 그릇이 담긴 쟁반을 집어 들며 방어막을 칩니다. 자신 역시 그 처분이 부당하다고 여겼으며, 그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한 일 아니었느냐고 무미건조하게 반문할 뿐입니다.

켄턴 양이 견디기 힘들어한 것은 주인의 부당한 명령을 당장 뒤집지 못한 무력함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단 한 번 마음을 건네지 않고 완벽한 집사의 가면 뒤로 숨어버린 스티븐스의 침묵, 그 침묵이 그녀를 견딜 수 없게 했습니다.

인간은 거대한 파도와 불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집니다.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무릎 꿇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과 비애를 함께 나누는 단 한 사람의 온기만 있어도 우리는 절망의 벼랑 끝에서 버텨낼 수 있습니다. 스티븐스는 직업적 품위라는 갑옷을 단단히 여민 채 단 한 뼘의 진심도 내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가장 가까이 있던 동료를 정서적 고립 속에 남겨두었습니다.

표현되지 않은 슬픔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은 연민은 힘이 없습니다. 주인의 뜻이 뒤늦게 바뀌었다고 해서, 마음속에서만 삭였던 양심의 가책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켄턴 양이 바랐던 것은 체제를 뒤흔드는 영웅적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도 당신처럼 괴롭습니다"라는 나지막한 공명 한마디였습니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켄턴 양의 절규는 쉬이 가시지 않고 귓가에 맴돕니다.

"Why, Mr Stevens, why, why, why do you always have to pretend?"

"대체 왜, 왜, 왜 당신은 늘 아닌 척, 꾸며야만 하나요?"

그 세 번의 "왜"는 스티븐스라는 한 인물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저의 가슴을 정면으로 겨눕니다. 켄턴 양이 지금의 저를 똑바로 응시하며 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은 그때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까?

당신은 왜 객관화와 체면, 변명이라는 방패 뒤로 숨어버렸습니까?

왜 아프다고, 이것은 옳지 않다고 단 한마디 건네지 못했습니까?

왜? 왜? 왜?

그 서글픈 외침을 곱씹으며, 저 역시 살아오며 저지른 수많은 과오 중에서도 특히 아내 올리비아의 마음을 온전히 돌보지 못했던 지난날의 침묵을 아프게 떠올립니다.

올리비아가 친가와 시댁의 일로 얽히고설켜 말 못 할 마음고생을 겪을 때, 저는 그 고통의 한복판에 함께 서 주지 못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척, 객관적인 척 가면을 쓴 채 방관자로 머물렀고, 그런 저를 보며 아내가 얼마나 깊은 외로움에 몸부림쳤는지 모릅니다. 상황을 단번에 해결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두 손을 꼭 쥐며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안다. 내 마음도 똑같이 아프다"라고 말했더라면 아내는 두고두고 고마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입을 닫았고, 그 침묵의 대가는 너무나 길고 시립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 시절의 기억이 불쑥 떠오를 때마다 아내의 입을 통해 돌아오는 원망과 서운함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것은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제가 평생 무겁게 등에 지고 가야 할 업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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