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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 겨울잠과 똥마개
자라와 남생이의 겨울나기를 정리하고 나니, 자연스레 포유류 최고의 동면 전문가인 곰의 겨울나기 역시 궁금해졌습니다. 물속 바닥에 파묻혀 겨울을 견디던 파충류들과 달리, 털북숭이 거구인 곰은 도대체 영하의 혹한 속에서 수개월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어떻게 버텨내는 걸까요?
찾아보니 곰의 겨울잠은 자라나 남생이 못지않게, 아니 포유류의 관점에서 보면 훨씬 더 정밀하고 치밀한 생체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침대에 누워 몇 달 동안 꼼짝하지 않으면 근육이 빠지고 뼈가 약해집니다. 더구나 음식과 물을 끊고 대소변까지 보지 않는다면 체내에 쌓인 노폐물의 독성을 견디지 못하고 얼마 못 가 쓰러질 것입니다.
그런데 곰은 다릅니다. 혹독한 겨울, 굴속에 틀어박혀 수개월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소변과 대변조차 거의 배출하지 않은 채 긴 침묵을 견뎌냅니다.
이 경이로운 폐쇄 회로의 배출구에는 아주 흥미로운 물리적 장치가 하나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로 곰의 ‘똥마개(Fecal Plug)’입니다.
겨울잠을 자는 곰의 장 끝부분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돌처럼 단단한 덩어리가 차곡차곡 만들어집니다. 흔히 곰이 겨울잠에 들기 전 소나무 잎이나 나무껍질, 이끼 같은 것을 일부러 잔뜩 집어먹어 항문을 틀어막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정확한 설명이 아닙니다.
똥마개의 주성분은 겨울잠 동안 장벽에서 탈락해 나온 상피세포와 장 분비물, 그리고 소화관에 남아 있던 잔여물들입니다. 여기에 곰이 털을 핥거나 굴의 바닥 깔개를 정리하며 무의식중에 삼킨 털과 마른 풀, 나무껍질 같은 소화되지 않는 물질이 섞이기도 합니다. 장운동이 극도로 느려진 상태에서 수분이 계속 흡수되면, 이 물질들이 점점 단단해져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 즉 똥마개가 만들어집니다.
곰은 아무것도 먹지 않지만 몸 안에서는 장에서 떨어져 나온 물질들이 차곡차곡 쌓여 단단한 마개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체외로 이어지는 마지막 통로를 닫아버립니다. 마치 외부와 연결된 해치를 걸어 잠그는 우주선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생화학적 기적은 그 마개 뒤편, 굳게 닫힌 체내에서 일어납니다. 배설을 멈추었음에도 곰은 요독증에 걸려 죽지 않습니다. 단백질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폐물인 요소를 밖으로 버리는 대신, 요소에 포함된 질소를 다시 회수해 새로운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이용합니다. 버려야 할 배설물의 성분에서 질소를 다시 낚아채 자신의 근육과 장기를 유지하는 원료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곰은 겨울잠 동안 몸 밖으로 내보내야 할 자원의 일부까지 다시 회수하는, 놀라운 ‘폐쇄형 물질 재활용 시스템’을 가동하는 셈입니다. 그 덕분에 곰은 반년 가까이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어도 근육 손실과 골밀도 저하를 놀라울 정도로 억제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는 가을철에 두텁게 비축해 둔 피하지방을 태워 공급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방이 연소될 때 발생하는 ‘대사수’가 체내에 공급되기 때문에, 곰은 밖에서 물을 마시지 않고도 필요한 수분의 상당 부분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 물을 구하는 대신, 몸 안의 지방을 연료 삼아 직접 물을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심장 박동은 평소 분당 40~50회에서 8~10회 안팎까지 극단적으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체온은 얼음장 밑의 변온동물처럼 곤두박질치지 않습니다. 평소보다 불과 4~5℃ 정도만 낮춘 체온을 유지하면서 긴 겨울을 견뎌냅니다. 실제로 암곰은 완전히 의식을 잃은 가사 상태로 자는 것이 아니라, 겨울잠 도중 깨어나 새끼를 낳고, 제 몸의 지방을 태워 만든 젖을 먹이며 새끼를 돌봅니다.
긴 겨울이 끝나고 얼음이 녹아내리면, 곰은 비로소 굴 밖으로 걸어 나옵니다. 수개월 동안 굳게 닫혀 있던 항문의 단단한 똥마개를 배출하며 봄의 대지를 딛습니다.
항문에는 천연의 밀폐 밸브인 똥마개를 만들어두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고립 속에서, 지방을 태워 에너지와 생명수를 동시에 얻고, 버려질 질소 노폐물마저 단백질 합성에 다시 이용하며 근육과 뼈를 지켜낸 채, 혹독한 계절을 오롯이 자신의 내면만으로 건너갑니다.
입과 목구멍의 혈관이 풍부한 조직으로 산소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뼈에 있는 무기질을 이용해 산성화를 견디며 진흙 속을 버텨낸 자라, 총배설강의 풍부한 혈관을 이용해 산소를 취하고 단단한 갑각을 방패 삼아 혹한을 넘긴 남생이, 그리고 스스로 출구를 걸어 잠근 채 몸속 노폐물의 질소까지 재활용하는 정밀한 화학 공장을 돌려 생명을 지켜낸 곰.
같은 겨울이라는 절대적인 한계 앞에서, 자라는 뼈와 구강 점막으로, 거북은 갑각과 총배설강으로, 곰은 단단한 똥마개와 폐쇄형 재활용 시스템으로 각자만의 유일무이한 궤적을 그리며 봄을 향해 나아갑니다.
자연과 진화가 만들어낸 이 기묘하고도 정밀한 생존의 엔지니어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혹독한 계절을 견뎌내는 생명이라는 존재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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