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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이시구로 작가와 연결이 되어《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 소설에서 5일째에 스티븐스가 썼다가 찢어버린 전문을 입수했습니다.
다섯째 날 오전, 오후 그리고 저녁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안에만 있었다. 방안에 있는 물을 마신 것 외에 심지어 식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배도 고프지 않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웨이머스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이 방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하다.
이 방 두 개짜리 스위트룸은 처음부터 다소 과한 선택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의 나는 그 결정을 보다 합리적인 이유들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런데 지금 이 넓고 텅빈 공간에 오늘 남겨진 것은 나 혼자뿐이다.
당시에는 물론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제까지 세차게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창밖으로는 웨이머스 해변의 거친 바닷바람 소리가 으스스하게 귓가를 때리고 있다.
오늘은 혹시라도 켄튼양이 나와 하루를 더 보내고 싶어 할 경우를 생각하여 하루를 비워 둔 날이었다.
오늘은 혹시라도 켄튼양이 나와 하루를 더 보내고 싶어 할 경우를 생각하여 하루를 비워 둔 날이었다.
해변을 맨발로 같이 걷고 싱싱한 해산물도 같이 먹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난 오늘 혼자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늘 그랬듯 단정한 자세로 펜을 집어 든다. 오늘 하루도 객관적이고 품위 있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런데 쓸 것이 없다.
헤어질 때라도 내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 걸 그랬다.
"나도 당신이 좋았소. 당신과 함께 살았으면 어땠을까 나도 늘 생각했었소. 30년 전 그때 그 손을 잡지 못한 것을,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았소"라고 말할 걸 그랬다.
도대체 내가 지키려던 그 놈의 '품위'와 '격식'이 뭐라고, 그토록 두려워서 그 흔한 진심 한마디를 내뱉지 못했을까. 만약 어제 내 안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내 진짜 마음을 털어놓았더라면, 그녀는 그 차가운 버스에 올라타 홀로 떠나지 않고 나와 단 하루만이라도 온전한 하루를 같이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나와 함께 따뜻한 저녁을 먹고, 지나간 세월을 탓하며 실컷 울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다. 이런 치졸하고 비루한 후회를 적는 것조차 집사로서의 체면이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처럼 완벽하고 의연한 모습이어야 한다.
하지만 안 된다. 더 이상은 이 짓을 못 하겠다.
나는 펜을 거칠게 내팽개쳤다. 그리고 억지로 이성을 붙잡으며 써 내려가던 그 위선적인 문장들을, 두 손으로 사정없이 쥐어뜯었다. 치지직거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종이 위로 나의 비겁함과 빈껍데기 같은 세월이 찢겨 나갔다.
나는 한동안 방 한쪽에 앉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닥 위에는 잘게 찢긴 종잇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일부는 축축해져 있었다.
하지만 난 오늘 혼자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늘 그랬듯 단정한 자세로 펜을 집어 든다. 오늘 하루도 객관적이고 품위 있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런데 쓸 것이 없다.
헤어질 때라도 내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 걸 그랬다.
"나도 당신이 좋았소. 당신과 함께 살았으면 어땠을까 나도 늘 생각했었소. 30년 전 그때 그 손을 잡지 못한 것을,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았소"라고 말할 걸 그랬다.
도대체 내가 지키려던 그 놈의 '품위'와 '격식'이 뭐라고, 그토록 두려워서 그 흔한 진심 한마디를 내뱉지 못했을까. 만약 어제 내 안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내 진짜 마음을 털어놓았더라면, 그녀는 그 차가운 버스에 올라타 홀로 떠나지 않고 나와 단 하루만이라도 온전한 하루를 같이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나와 함께 따뜻한 저녁을 먹고, 지나간 세월을 탓하며 실컷 울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다. 이런 치졸하고 비루한 후회를 적는 것조차 집사로서의 체면이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처럼 완벽하고 의연한 모습이어야 한다.
하지만 안 된다. 더 이상은 이 짓을 못 하겠다.
나는 펜을 거칠게 내팽개쳤다. 그리고 억지로 이성을 붙잡으며 써 내려가던 그 위선적인 문장들을, 두 손으로 사정없이 쥐어뜯었다. 치지직거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종이 위로 나의 비겁함과 빈껍데기 같은 세월이 찢겨 나갔다.
나는 한동안 방 한쪽에 앉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닥 위에는 잘게 찢긴 종잇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일부는 축축해져 있었다.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돌이켜보면, 내가 평생 두려워했던 것은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번도 내 의지로 실수를 저질러 보지 못했다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After much difficulty, I managed to get in touch with Kazuo Ishiguro and obtained the full text of what Stevens wrote and tore up on Day Five in 'The Remains of the Day'.
Day Five Morning, Afternoon and Evening
Today, I did nothing and remained inside my room. Aside from drinking the bottled water in the room, I did not even eat. Strangely enough, I do not feel hungry. I do not know why. This room overlooking Weymouth beach is stiflingly quiet. Perhaps reserving this two-room suite was somewhat excessive from the outset, yet upon reflection, I must admit my motives were not as purely logical as I had convinced myself they were.
Yet now, in this vast and hollow space, I am the only one who remains.
Of course, other possibilities had crossed my mind at the time. The heavy rain that poured until yesterday has stopped, but outside the window, the harsh sea breeze of Weymouth beats chillingly against my ears. Today was originally left open in the hope that Miss Kenton might wish to spend one more day with me. I had imagined walking barefoot together along the beach and sharing a meal of fresh seafood. But today, I am alone.
I sit at the desk and, as always, pick up my pen with a tidy posture. Today too must be recorded with objectivity and dignity. Yet there is nothing to write.
I should have confessed my true feelings even as we were parting.
"I cared for you deeply as well. I often wondered what it might have been like had we lived our lives together. I have spent a lifetime regretting that I failed to take your hand thirty years ago." I should have said those words.
What on earth was that wretched 'dignity' and 'decorum' I tried so desperately to protect, that made me so terrified to utter a single common word of sincerity? If only I had cast off my mask yesterday and spoken my true heart, could she not have avoided boarding that cold bus to leave entirely alone, and instead spent at least one complete day with me? Could we not have shared a warm dinner together, blaming the passing years and weeping to our heart's content?
No. Even writing down such petty and pathetic regrets does not befit the pride of a butler. I must remain flawless and composed, as I have always been.
No, I cannot. I can no longer keep up this pretense.
I flung the pen down roughly. Then, grabbing those hypocritical lines with both hands, I tore them apart mercilessly. With a sharp, ripping sound, my cowardice and the hollow shell of a lifetime were ripped away across the paper.
I sat in the corner of the room for a while. I am not quite sure how much time had passed. When I came to my senses, tiny, shredded pieces of paper were scattered across the floor, some of them dampened.
It was far too late. Looking back, perhaps what I had feared most throughout my life was not making mistakes. Rather, it may have been the fact that I had never once made a mistake of my own ac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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