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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물어본 사람은 없지만, 제가 브런치에 글을 처음 올린 것이 지난달 8월 20일이었는데 추석날인 오늘 정확히 37일만에 브런치 팔로워 100명 달성이라는 대업을 이룬 기념으로 이렇게 혼자 설레발을 쳐봅니다. 제 브런치 서재를 둘러보며 의아해하셨을 분들을 위한 자문자답이자 저의 작은 도서관 안내도입니다.
이미 제 글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든 글에서 실제 사진이나 명화를 먼저 두고 시작합니다. 철저히 현장 밀착형 글들입니다.
보통 브런치를 시작하면 하나의 주제로 매거진을 열고 글을 쌓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15개의 매거진을 열었고, 현재 기준 134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욕심만 앞서 방만 늘려놓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생 도면을 그리고 기계설비를 다뤄온 엔지니어에게, 글쓰기는 하나의 서랍에 모든 생각을 무작위로 쌓아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축적된 데이터와 생각을 분류하고, 15개의 방을 만든 뒤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각자의 방으로 글을 흘려보내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이 15개의 매거진은 모양만 낸 빈방이 아니라, 각각 단행본 한 권 이상의 분량을 목표로 기획된 개별 프로젝트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두 달 사이에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수년간 사진을 찍고, 그림을 보고, 성경을 읽고, 생각을 쌓아오면서 만들어진 저만의 데이터베이스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많은 분이 글을 쓸 때 무엇을 쓸까 고민하실 것 같은데, 저는 그보다는 무엇을 고를까를 고민합니다. 그것은 사진을 찍으면서 글로 남기고 싶었던 것을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다가, 이제 와서 실행하는 작업입니다.
이미 국내외 미술관에서 직접 촬영한 수천 장의 명화와 일상에서 모은 수만 장의 사진, 영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여러 개의 짧은 영상을 촬영하고 사진도 찍습니다.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짜지 않고, 사진 속 아주 작은 구석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숨어 있던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올라옵니다.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해 생각을 정리하고 제목을 정한 다음, 문장으로 옮겨 적습니다. 그림과 제목이 정해지면 글은 곧바로 써 내려갑니다. 명화 같은 경우에는 제가 아는 것이 많지 않기에 관련 자료를 검색해 이해한 내용 중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고릅니다.
사진이나 아이디어만 몇 줄 적어둔 임시보관함 글만 해도 수십 편입니다. 글감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머릿속 사유의 속도를 손목과 팔의 물리적 타이핑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손목이 아픈 것이 문제입니다.
15개의 매거진은 각기 다른 호흡으로 운영됩니다. 어떤 것은 요일을 정해 꾸준히 쓰고, 어떤 것은 일상에서 소재가 생길 때마다 꺼내 쓰고 있습니다.
월요일: 작가의 시선과 뿌리 (자전적 기록 & 풍속 탐구)
- Stanley의 유년시절
이미 보관 중인 일기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여러 편도 옮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러 일주일에 한두 편씩 천천히 작업합니다. 옛 일기장을 한 줄씩 옮겨 적으며 그 시절의 냄새와 고향에서의 추억들을 천천히 복기하는 시간을 오래 누리고 싶어서입니다. 약 100편 연재 예정입니다.
- 단원을 만나다: 엔지니어의 눈으로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김홍도의 풍속화를 들여다봅니다. 그림 한 구석의 지게 하중, 볏단을 잡은 손의 각도, 집을 짓는 먹줄 같은 구조와 기술적 디테일을 도면 보듯 집요하게 뜯어보는 작업이라 자료를 검토하며 호흡을 길게 가져갑니다.
- 소설 테오 반 고흐
빈센트의 곁을 지켰던 동생 테오의 시선으로 두 형제의 삶을 짚어보는 픽션입니다. 인물의 감정선과 배경을 찬찬히 다듬으며 쓰고 있습니다.
수요일: 말씀의 깊이와 생태적 배경 (신학·묵상)
- 성경 난제
성경을 읽으면서 마주치는 수수께끼 같은 내용이나 판본마다 다르게 기술된, 쉽게 풀리지 않는 구절들을 짚어봅니다. 형식은 달랐지만 몇 년간 기록해둔 자료를 재정리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 성경 동물
성경에 등장하는 100여 종의 동물을 당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간 생명, 그리고 먹거리의 관점에서 관찰합니다. 성경에 나온 모든 동물을 빠짐없이 다룰 계획입니다. 약 2년간 연재 여정입니다.
- 성경 식물
성경 속 식물 110여 종을 동일하게 생활과 생태의 시선으로 하나씩 짚어갑니다. 마지막 식물에 닿을 때까지 완주할 예정입니다. 약 2년간 연재 예정입니다.
금요일: 서사의 공간과 일상의 기록 (세계관·에세이)
- 소설 발렌시아의 인장
오랫동안 구상해 온 소설의 뼈대가 되는 기록이자 세계관을 담은 글입니다.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을 돌면서 총 9개의 시리즈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 발렌시아 라이프
스페인에서 머물며 먹고, 걷고, 사람들을 만나며 경험했던 현지 생활의 생생한 단면들을 정리합니다.
- 그림이야기
미술관에서 만난 명화 속 디테일과 감상을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수시: 일상적인 묵상
- 오늘도 자라를 만난다
탄천을 산책하며 만나는 생명들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꾸준히 기록합니다. 자라를 찾으러 나갔다가 왜가리를 찍고, 물고기 떼를 보다가 징검다리에 잠시 멈춰 서는 식입니다. 주로 점심 때 탄천의 생태 관찰일지입니다. 영어공부도 함께 하는 코너입니다.
- 오늘도 꽃과 만난다
그간 관찰하고 촬영해 둔 1,100여 종의 식물 중 120종을 추려 주말마다 기록합니다. 약 2년간 연재 예정입니다.
- 자연과 산책
발밑의 풀 한 포기나 계절의 변화를 보며 문득 스치는 생각들을 주말에 담아냅니다.
- 올리비아의 식탁
아내 올리비아가 차려낸 소박한 음식을 통해 일상의 감사를 정리합니다.
- 독후감
읽은 책에 대한 생각을 1~2주에 한 번씩 정리합니다.
- 성경 이야기
성경을 읽으며 정리하고 싶은 내용이나 묵상한 내용을 1~2주에 한 번씩 나눕니다.
쫓기듯 쓰지 않고, 지나온 삶의 궤적을 제 호흡대로 정리해 나가고 있습니다. 100명의 팔로워라는 기준점을 지나며 이 15개의 프로젝트를 묵묵히 완주하겠습니다. 어느 방이든 편하게 문을 열고 들러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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