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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ley의 유년 시절 : 1980년, 국민학교 6학년의 일기 - 현대조선소


1980년 6월 5일 목요일 날씨 맑음

'현대 조선소'

여러 곳을 구경하고 현대 조선소에 왔다. 조선소에는 생각보다 아주 큰 배가 있었다. 

배를 만드는 것도 있고 만들어 놓은 것도 있었다. 

배는 밑에 바람개비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이 조선소는 바닷가에 있어 배가 드나들기 쉽도록 해 놓은 것 같다. 

배가 나갈 때는 썰물일 때 앞에 막아 놓은 철문을 열어 물이 가득 차면 배가 나간다는 것이다. 

배가 나갈 때는 밑에 달린 나무로 된 큰 바람개비 같은 게 돌며 나는 것 같다. 

조선소의 구경은 차를 타고 지났기 때문에 아주 자세히는 모른다. 

앞으로는 더 큰 배를 만들 것이다. 

이 조선소는 앞으로도 더욱 크게 발전할 것이다.


***

일기가 쓰인 1980년 무렵의 현대조선소는 이미 세계적인 규모의 조선소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1972년 울산 미포만에서 조선소 건설을 시작해 1974년 제1·2도크를 완공했고, 당시부터 초대형 유조선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명칭 관련 확인해 보니 1972년 시작시에는 '현대울산조선소'였고, 1973년에는 '현대조선중공업'  그리고 1978년에 '현대중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했지만 1980년 당시에 통상적으로 부르던 이름은 '현대조선소'였다고 합니다.  

제가 그곳을 방문한 것은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소년의 눈에는 그저 "아주 큰 배"와 "나무로 된 큰 바람개비"가 보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세계적인 조선소가 거대한 산업기지로 성장해 가던 시기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특히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나무로 된"이라는 표현​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실제 선박의 프로펠러는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대형 선박의 프로펠러는 주로 청동 계열의 금속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열두 살의 제 눈에는 배 밑에 달린 거대한 프로펠러가 마치 나무로 만든 커다란 바람개비처럼 보였던 모양입니다.

왜 그런 표현을 썼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1970~198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대형 선박용 프로펠러를 제작하고 정밀 가공할 기술과 설비가 아직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프로펠러의 원형이 되는 주조품은 국내에서 만들더라도 최종 정밀 가공은 일본이나 유럽의 전문 업체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시 제가 본 것은 아직 최종 가공 전이거나, 표면이 거칠게 남아 있던 프로펠러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투박한 질감 때문이었는지, 초등학교 6학년 소년의 눈에는 나무로 만든 것처럼 보였던 것이겠지요.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를 향해 도전해 나가던 한국 조선산업의 한 단면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인 기술 자립을 향해 나아가던 그 시절의 서글프면서도 찬란한 풍경이, 어린 시절의 작은 오해와 겹쳐지며 새삼 깊은 회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큰 배를 만들 것이다. 이 조선소는 앞으로도 더욱 크게 발전할 것이다."

어린 소년의 이 예언은 놀랍게도 현실이 되었습니다. 현대조선소는 이후 세계적인 조선소로 성장했고, 오늘날 HD현대중공업이라는 이름 아래 상선은 물론 LNG·LPG 운반선, 각종 군함과 잠수함까지 건조하는 세계적인 종합 조선·중공업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이 글을 읽어보니, 괜스레 제 자신이 뿌듯해집니다. 어린 날 했던 예언이 현실이 된 모습을 직접 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문득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그때 주식이라는 것을 알고, 투자할 돈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몇 주쯤 사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입니다. 물론 알고 보니 당시에는 아직 상장도 되기 전이었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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