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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8월 8일 금요일 날씨 흐림
'소 띠기기(뜯기기)'
오후에는 아래까꾸미라는 산에 소 뜯기로 갔다.
가니까 순희네 할머니가 벌써 오셔서 소를 띠기고 있었다.
그래서 순희네 할머니와 같이 소를 띠겼다.
소를 띠기다가 깨꼼도 따 먹었다.
***
위 글을 사투리가 많고 고유명사도 있어서 해석이 많이 필요하겠네요.
어린 시절 산으로 소를 몰고 가 풀을 먹이며 보낸 하루를 기록한 일기입니다.
일단 용어 정리입니다.
소 띠기기 / 소를 띠겼다 /소를 뜯기기 : 소에게 풀을 뜯어 먹이다(방목하다)라는 뜻의 방언이자 일상적 표현입니다.
아래까꾸미: 우리 마을에서 아래까꾸미라고 부르던 야산
깨꼼: 제가 어릴 때 우리 동네에서 개암을 부르던 말입니다. 산에 자생하는 개암나무의 열매로, 고소한 맛이 나 시골에서 소를 먹이거나 산에 올랐을 때 간식거리로 흔히 따 먹던 열매입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는 동네 형들이랑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소에게 풀을 뜯어 먹이기 위해 산으로 다녔습니다. 주로 방학 때는 그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냥 소를 몰고 가면 재미가 없으니 소를 타고 가다가 도랑에 구르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여러 재미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소가 없어져서 찾느라 한참 헤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학년이 점점 올라가다 보니 하나둘씩 사라지고 6학년 때만 해도 동네 아이는 저만 남았고 동네 순희네 할머니랑 둘만 산에 소를 뜯기로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순희네 할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더 이상 산에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 소를 몰고 산에 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고, 실제로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6학년 때인가, 중학교 1학년 때쯤이었을 겁니다. 저를 끝으로 소를 몰고 산에 소 뜯기러 가는 일은 마을에서 영영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카다미아를 먹을 때마다 개암이 생각납니다. 물론 둘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식물학적으로도 전혀 다른 열매입니다. 그런데 생김새도 어딘가 비슷하고, 씹었을 때의 고소하고 기름진 느낌도 닮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카다미아를 먹으면서 어린 시절 산에서 따 먹던 깨꼼을 떠올립니다.
예전에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 한참 시끄러웠을 때도 그랬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땅콩은 땅콩이 아니라 마카다미아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그 정도로 맛있는 것인데... 아내에게도 가끔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때 깨꼼을 준비해 놨어야지. 그 맛있고 향기로운 개암을 준비하지 못했으면 큰일 난 거야.”
“왜?”
“비행기를 돌릴 만큼 맛있는 건데.”
물론 실제로는 개암과 마카다미아가 같은 견과류이긴 하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입 안에서는 1980년의 깨꼼과 오늘의 마카다미아가 같은 기억의 맛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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