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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ley의 유년 시절 : 홍역 (홍역 8일차)
1980년 9월 15일 화요일, 날씨 맑음 17
'홍역'
오늘은 어제보다 더해서 몸에까지 막 났다.
그래서, 학교에도 못갔다.
이불만 덮고 방안에만 누워 있었다.
저녁때가 되니까 학교에 갔던 누나가 약을 사왔다.
사과도 사왔는데 그땐 얼마나 입맛이 없었던지 사과도 먹기 싫었다.
그래서 억지로 하나를 먹었다.
그래도 못먹어서 그랬던지 배가 고팠다.
그래서 달걀 좀 삶아 달라고 해서 양계장에 가서 사와서 어머니가 삶아 주셨다.
***
전날부터 '홍역'이란 제목이 연달아 붙어 있습니다.
몸에까지 막 났다고 하는 게 아마도 검은 반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얼굴에 났던 게 몸에까지 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당연히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방 안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누나에게 앓아누운 동생을 위해 약이랑 내가 좋아하는 사과를 사 오라고 시켰던 모양입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사과는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먹기 싫었지만 억지로 먹기는 먹었네요.
배가 고프다고 한 걸로 봐서는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닭을 키울 때가 많았는데 달걀을 양계장에 가서 사 온 걸 보면 그 당시에는 닭을 키우지 않고 있었던 시기였나 봅니다.
그리고 그 당시 동네에 양계장을 하는 집이 있었는데 보통 달걀 사러 가는 심부름은 내 몫이었는데 이때는 어머니께서 직접 달걀을 사 오셨나 봅니다.
사과 하나랑 달걀 한두 개로 그 힘든 홍역을 넘겼으니 저나 가족들이나 참 무던하게 지냈던 세월입니다.
겨우 부탁을 한 게 뭐 몸보신 거리도 아닌 겨우 달걀이라니...
좀 몸보신되는 삼계탕이나 아님 가물치탕 끓여 달라고 할 것이지...
하긴 그때는 삼계탕은 알아도 가물치탕은 알지도 못할 때였을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탄천에서 가물치를 자주 보기는 하지만...
오늘도 탄천에서 가물치를 보고 왔습니다. ㅎㅎ
어머니도 그렇지...
달걀 좀 삶아 달라고 했더니 겨우 달걀만 삶아 주시다니...
하긴 뭐 그 당시에는 그 달걀도 겨우 먹었으니 다른 것 해 준다고 해서 먹지도 못했겠지만...
달걀 한두 개 겨우겨우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 글 쓰면서 눈물이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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