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 : 엄마의 품같은 그림 메리 카사트

 #그림이야기 #메리카사트 #MET

[메리 카사트, 바느질하는 젊은 어머니, MET]

메리 카사트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잔잔한 온기가 차오른다. 문득 얼마 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인상주의에서 이른 모더니즘으로: 빛의 수집가들》 전시회가 떠오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로버트 리먼 컬렉션이 한국을 찾아왔을 때, 나는 그곳에서 카사트가 사랑한 모델의 맑은 눈망울이 담긴 <정원에 서 있는 마르고>와 마주했었다. 화려한 기교나 과장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빛나던 아이의 모습. 카사트가 캔버스에 담아낸 것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인류가 가진 가장 보편적이고도 따뜻한 생명의 호흡이었다.

[메리 카사트,  Margot Standing in a Garden]

그녀의 붓끝이 이토록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시선의 각도에 있다. 미술사를 가득 채운 수많은 남성 화가들의 캔버스 속 여성은 대개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존재였다. 커튼 뒤나 문틈 사이로 은밀하게 훔쳐보는 듯한 관음적인 시선, 혹은 욕망의 박제처럼 그려진 여성이 아니라, 카사트는 여성을 온전한 삶의 주체로 바라보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가장 내밀하고 성스러운 공간, 즉 어머니와 아이가 나누는 일상의 틈새를 그녀는 따뜻하게 파고들었다. 아이를 목욕시키는 어머니의 투박하지만 다정한 손길,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무릎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는 아이의 엉뚱한 표정. 그 안에는 어떠한 가식도, 관객을 의식한 긴장감도 없다.

그녀가 포착한 것은 오직 여성만이, 그리고 엄마만이 이해할 수 있는 깊은 유대감과 사랑의 주파수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어쩌면 매일 반복되는 이 소박하고 따뜻한 일상의 공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 예고편처럼 마르고의 순수한 눈빛을 먼저 만났으니, 내년에 떠날 뉴욕 MET로의 여정은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 거대한 미술관의 복도를 걸어 마침내 마르고가 성실하게 숨 쉬고 있을 또 다른 명작 <바느질하는 젊은 어머니>와 마주하게 될 그날. 5일은 꼬박 바쳐야 할 그 광활한 공간 속에서, 카사트가 남긴 평온함 속에 오래도록 머물며 그 따뜻한 시선이 건네는 위로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메리 카사트, 목욕하는 아이]

시카고 미술관에 있는 목욕하는 아이도 보러 가고 싶다. 아니 어쩌면 30년전에 간 적이 있으니깐 기억은 없지만 본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메리 카사트를 안 지는 일년도 안 되었으니 그때 기억을 했을리가 없다. 그때 본 것은 모네의 '건초더미' 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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