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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야기, Stanley의 유년 시절] 반 고흐 - 초가집, 아버지의 이엉

[그림 이야기, Stanley의 유년 시절]

반 고흐 - 초가집, 아버지의 이엉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면 왠지 아련하고 눈물이 납니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테오반고흐>라는 소설까지 집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가 저랑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공명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보면 저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저의 내밀한 기억을 되살려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감자 먹는 사람들>이나 이런 초가집 그림이 그렇습니다. 이 그림은 140년 전 네덜란드 남부 브라반트(Brabant) 지방의 작은 마을 뉘넨(Nuenen)의 풍경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이곳에 머물며 1885년에 집중적으로 그렸던 수많은 초가집 연작 중 하나로, 대작인 <감자 먹는 사람들>과 같은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화면 속 거칠고 어두운 붓터치와 질감은 마치 흙과 갈대를 그대로 짓이겨 놓은 듯합니다. 광활한 황야를 배경으로 덩그러니 놓인 낡은 벽돌 오두막 한 채는, 19세기 말 가난한 네덜란드 농민들의 척박하고 고립된 삶을 고스란히 대변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 - 집으로 돌아오는 농부의 초가집,1885]

그림 속 디테일을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낮게 깔린 수평선과 드넓은 들판, 벽돌로 쌓아 올린 벽과 두꺼운 초가 지붕은 시대를 초월한 농촌의 정서를 보여줍니다. 초가 지붕의 재료는 아마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갈대일.것 같습니다. 작게 낸 창문과 이를 막는 덧문은 긴 여름의 일조량 때문이 아니라, 추운 북유럽의 매서운 바람과 습기로부터 실내 온도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단열 장치였습니다. 
지붕 뒤쪽에 솟은 굴뚝 외에도 앞쪽 다락방 공간 위에 툭 튀어나온 검은 형상은 이탄 연기가 빠져나가는 통풍구이자 그을린 환기구로 보입니다. 
문설주 옆에 그려진 흰색 십자가는 질병이나 재앙, 악령으로부터 집과 가족을 보호하고자 하던 당시 농가의 토속적 신앙과 종교적 염원을 담은 표식입니다. 
농부가 어깨에 멘 것은 밭을 일구는 곡괭이나 삽으로 보이고, 어쩌면 둘 다를 어깨에 지고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삽과 괭이는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따로 필요합니다. 만약 하나만 고른다면 삽은 우선적으로 필수 품목이기에 삽일 것 같습니다. 남루한 작업복 차림에 진흙밭을 견디는 투박한 나무 신발이나 가죽 신발을 신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가 늦게 와서 아직 밥숟가락도 못 들고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사랑스런 아이들을 위해 발걸음을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집 왼쪽의 어두운 부분은 배수를 위해 파놓은 고인 물웅덩이(수로)이며, 주변의 거친 식물들은 눅눅하고 흙냄새 섞인 대기의 냄새를 전해줍니다. 연못에 꽃창포로 보이는 식물이 옆에 있는데 아직 꽃이 피지 않았고 날카롭고 꼿꼿하게 잎줄기가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면, 겨울을 지나 대지가 기운을 차리고 생명이 밀어 올라오기 시작한 완연한 봄인 4월에서 5월 정도로 보입니다. 
꽃창포는 "믿는 자의 행복"이나 "기쁜 소식"이라는 그 꽃말처럼, 이 십자가가 그려진 집으로 기쁘게 돌아오는 이 그림에 참 잘 어울리는 식물이 아닐까 합니다. 꽃이 완전히 만개하지 않았더라도, 북유럽의 늦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대지가 품어낸 초록빛 생명력이 화면 구석의 습한 수로를 채우고 있는 셈입니다. 이 무렵의 서늘하면서도 묘하게 대기가 깨어나는 듯한 뉘넨의 봄바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합니다.

[5월에 주변에서 찍은 노랑꽃창포]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문득 어린 시절 고향 집의 낡은 초가 지붕을 고치던 기억이 짙게 밀려옵니다. 

마을의 전통 초가집 가옥들은 매년 가을 추수가 끝나면 삭은 부분 위주로 부분적인 보수를 하곤 했지만, 몇 년에 한 번은 지붕 전체를 완전히 걷어내고 새로운 이엉을 엮어 올리는 대대적인 전면 교체 작업을 했습니다. 그 거칠고 힘든 작업은 늘 아버지와 저의 몫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지붕 위로 올라가 얽혀 있던 짚으로 만든 새끼줄을 풀고 낡은 짚단을 걷어내다 보면, 바깥세상과 단절된 지붕 속 깊은 곳에서 뜻밖의 생명들과 마주하곤 했습니다. 빗물이 스며들어 눅눅하게 썩어 엉겨 붙은 볏짚 더미 속을 파헤치면, 손가락보다 굵고 하얀 큼직한 애벌레들이 꼬물거리며 쏟아져 나왔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징그러운 모습에 흠칫했지만, 아버지는 그 벌레들을 조심스럽게 모으라고 이르셨습니다. 이것을 모아 어머니께 드리면 어머니는 썩은 이엉 속에서 건져낸 그 통통한 애벌레들을 채반에 바쳐 햇볕에 바싹 말린 뒤,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들거나 기름에 볶아 약으로 쓰셨습니다. 가족 중 몸이 아프거나 기력이 없어 보일 때마다 어머니는 그것이 귀한 천연 강장제라며 누군가에게 먹이셨습니다. 저는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만, 아마도 형님들이나 아버지께 몸이 허할 때 그 약을 먹이셨겠지요.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많은 손길이 간 그것이 그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썩어가는 짚더미 속에서도 기어이 생명을 키워내던 그 애벌레처럼, 우리네 부모님들은 가장 척박하고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마모시키며 자식들의 보금자리를 엮어내고 계셨던 셈입니다.


PS : 저는 블로그를 통해서 해외 있는 아들과 소설로 소통하고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족 단톡에 아들한테서 이런 톡이 올라와 있네요. "요즘 다른 글들을 읽느라 정작 소설은 못 읽지만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읽는게 오히려 스탠리의 작품 의도와 배경, 전체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어 소설 읽는데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계속 올려 주세요." 아들의 응원에 정작 수정 및 집필하려고 한 소설은 뒤로 미루고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 급하게 하나 올려봅니다. 아들의 요청이라 기쁜 마음으로 쓰니 순식간에 마음에 드는 글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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