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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식물 정보] 달맞이꽃(Evening primrose)
분류: 바늘꽃과 / 두해살이풀
특징: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 첫해에는 줄기를 올리지 않고 땅바닥에 잎을 납작하게 붙인 방석 모양(로제트)으로 겨울을 난 뒤, 이듬해 여름 줄기를 곧게 올려 꽃을 피운다. 해 질 무렵부터 꽃망울을 열어 밤사이 피어 있다가 이튿날 아침 햇빛을 받으면 붉은빛을 띠며 시든다.
개화 및 결실: 7월~10월 개화, 가을 결실
꽃말: 기다림, 밤의 요정, 말 없는 사랑
***
어스름이 완전히 가라앉은 밤, 운중천을 걷다 보면 풀숲 사이로 샛노란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닿는 물가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고 달맞이꽃을 내려다보던 밤들이 있었습니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입니다. 싹을 틔운 첫해에는 꽃은커녕 줄기조차 올리지 않습니다. 차가운 흙바닥에 잎을 바짝 엎드린 방석 형태로 모진 겨울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견뎌냅니다. 그렇게 사계절을 꼬박 돌고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비로소 줄기를 밀어 올리기 시작하니, 단 하룻밤 꽃잎을 열기 위해 무려 두 해를 건너온 아득한 기다림인 셈입니다.
그 긴 인내를 알기에, 꽃망울이 터지는 단 한 번의 찰나를 스마트폰 동영상에 담아보려 수없이 애를 태웠습니다. 시계가 저녁 9시 언저리를 가리키면 꽃망울 끝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듯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숨조차 아끼며 화면을 응시했지만, 녀석은 짓궂게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팔이 저려와 잠시 카메라를 내리고 한눈을 판 그 짧은 몇 초 사이, 다시 고개를 돌려보면 꽃은 이미 겉잎을 툭 젖히며 활짝 벌어져 있었습니다. 허탈함에 밤길 위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식물의 시간은 느릴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터지는 순간은 채 몇 초도 걸리지 않았고, 서너 분 만에 온전히 꽃잎을 다 펼쳐버렸습니다.
동영상으로 그 연속된 움직임을 온전히 담아내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지만,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연속 사진을 이어 붙여 개화의 순간을 동영상처럼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초록빛 꽃받침을 뚫고 샛노란 꽃잎이 불쑥 고개를 내밀며 벌어지기 시작하는 그 찰나의 순간입니다. 렌즈에 포착된 그 작은 틈새는 두 해 동안 침묵해온 생명이 세상으로 뛰쳐나오는 강렬한 탄생의 신호탄이었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마주한 꽃 안에는 또 다른 신비가 숨어 있었습니다. 달맞이꽃은 자기 꽃가루로 스스로 열매를 맺는 자가수분이 일어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지혜로운 시간차 전략을 씁니다. 밤 9시 무렵 꽃이 막 피어났을 때는 8개의 수술만이 꽃가루를 가득 머금은 채 밤나방을 애타게 부릅니다.
이때 가운데의 암술은 굳게 닫힌 채 수술 속에 숨어 있습니다. 불과 몇 시간 뒤, 수술이 꽃가루를 다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암술이 기지개를 켜며 사방으로 십자(十) 모양을 그리며 활짝 벌어집니다. 꽃 하나 안에서도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정확히 구분해 놓은 셈입니다. 사진 속 세 송이는 각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수술만 보이던 처음의 모습에서 암술이 십자로 열린 나중의 모습으로 넘어가는 시간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암술이 활짝 벌어진 꽃송이 위로는 때마침 개미 한 마리가 부지런히 오가며 작은 생기를 보태고 있었습니다.
보통은 긴 줄기를 따라 매일 밤 한두 송이씩 조심스레 피어나는 것이 달맞이꽃의 순리입니다. 그런데 운중천 둑길 한구석에서 만난 어떤 녀석은 줄기 끝의 생장점이 띠 모양으로 넓게 퍼지며 그 정수리에서 스무 개가 넘는 꽃망울이 한꺼번에 와르르 터져 나오는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뜻밖의 변이가 만들어낸 모습이라지만 제 눈에는 결코 기형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해 동안 흙바닥에 엎드려 모아둔 생명력을, 매일 밤 하나씩 나누어 피우는 대신 그 한자리에서 아낌없이 폭발시켜 버린 거대한 꽃다발 같았습니다. 차례를 지키던 오랜 관성과 얌전한 기다림을 단번에 깨뜨린, 운중천 밤 9시의 찬란한 쇼였습니다.
참고
Oenothera biennis basal rosette first year. 출처: identifythatpla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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