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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서 하룻밤에 자라난 것으로 묘사되어 '박(키카욘)'으로 불린 식물을 오늘날 피마자로 보는 견해는, 우리에게 식물의 생태적 특성 그 이상의 깊은 상념을 던져줍니다. 요나서에 등장하는 이 식물은 빠른 성장 속도와 무성한 잎을 가지고 있어,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요나를 지켜주는 은밀한 그늘이 되어 주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으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요나서 4:6)
요나가 그늘 아래에서 기뻐하다가 벌레가 갉아먹어 시들어버린 식물 때문에 화를 냈을 때, 하나님은 수고도 하지 않은 식물 하나를 아끼는 그에게 니느웨 백성들의 생명을 향한 긍휼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사라지는 피마자의 덧없음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과 생명의 소중함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최근 주변 텃밭에서 찍은 피마자 꽃과 순]
이 성경 속의 거룩한 그늘은 놀랍고도 아스라하게, 먼 나라의 이야기로 남지 않고 기억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옛 시골집 마당의 풍경과 겹쳐집니다. 깡촌의 깊은 시골에서 자라며 국민학교(초등학교) 2학년 때 비로소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밤마다 온 세상이 어둠에 잠기면 작은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가늘고 노란 불빛을 밝혀주던 호롱불의 핵심 원료가 바로 집 마당 귀퉁이에서 자라던 피마자에서 짜낸 아주까리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저희 집뿐만 아니라 동네의 어느 집을 가나 텃밭 모퉁이나 거름더미 주변, 담벼락 밑에 피마자 몇 그루씩은 당연하게 심어져 있었습니다.
제 눈에 비친 아주까리는 자투리땅 어디서나 굵고 곧게 쑥쑥 잘 자라났습니다. 순이 막 올라올 때는 꼭 손가락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자라면 키가 훌쩍 커지고, 널찍하게 펼쳐진 잎은 마치 겨울철 하늘 높이 날리던 커다란 연처럼 시원스레 크고 웅장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길을 가다 피마자 꽃만 보면 반가운 마음에 스마트폰을 꺼내어 연신 사진을 찍어대곤 하는데, 생각해보면 그 유년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피마자의 꽃은 그 생김새도 무척이나 신기합니다. 줄기 위쪽에는 붉은빛의 암술머리가 돋보이는 암꽃이 피어나고, 그 아래쪽에는 노란색의 동글동글한 수꽃이 촘촘하게 자리 잡습니다. 잘 모를 때는 당연히 수정을 쉽게 하기 위해 수꽃이 위에 있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참 묘한 일입니다. 아마도 수꽃이 아래에 있고 암꽃이 위에 위치한 것은, 자가 수정을 피하고 바람에 실려 날아온 다른 피마자의 꽃가루를 받아들여 생명의 다양성을 잇고자 하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가 아닐까 혼자만의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소나무도 마찬가지로 암꽃이 맨 위에 있고 수꽃이 아래에 있었네요. 또한 잎과 줄기의 어딘가 쌉싸름한 기운 때문인지, 어린 시절의 제 눈에는 유난히 벌레가 잘 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을이 되면 피마자는 실 같은 것이 붙어 있는 까만 껍질이 입을 벌리면서, 그 안에 까맣고 길쭉한 무늬가 있는, 마치 아주 길고 통통한 강낭콩처럼 생긴 씨앗을 드러냅니다. 이 씨앗 속에는 강력한 독성 단백질인 리신(Ricin)이 들어 있어, 씨앗을 일반적인 식량으로 먹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기원전 1500년경의 고대 이집트 의학 문헌인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는 피마자 씨앗을 씹어 맥주와 함께 삼키는 처방이 보이는데, 이는 식량이 아니라 변비 치료를 위한 완하제와 같은 약용 목적이었습니다. 피마자라는 식물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배 속 사정과도 묘한 인연이 있었던 셈입니다. 또한 피마자에서 짠 기름은 등잔용으로도 이용되었습니다.
반면 피마자 잎은 우리나라에서 어린순을 데쳐 삶고 물에 우려내는 과정을 거쳐 나물로 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갈무리한 잎은 겨울철 묵나물이 되었고, 정월 대보름이면 어머니는 약 10여 가지나 되는 여러 가지 나물 가운데 구수한 피마자 어린순 나물도 꼭 상에 올리셨습니다. 특히 제 생일이 정월 대보름 딱 하루 전이었던 덕분에, 어머니는 늘 대보름의 찰밥과 나물들을 제 생일 상에 함께 준비해 주시곤 했습니다. 이런 추억을 아내도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제 생일에는 아주까리 묵나물은 아니지만 꼭 여러 가지 나물반찬과 찰밥을 해서 제 생일상을 차려줍니다. 참으로 고맙다는 말을 차마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워 아내가 언제 읽을지 모르겠지만 글로 대신해 봅니다.
성경 속에서 요나에게 하루 동안 볕을 가려주던 그늘이자 덧없는 생명의 상징이었던 피마자는, 제게는 마당 한켠에서 호롱불을 밝히고, 생일상의 찰밥과 함께 밥상을 채워주던 기억의 식물입니다. 하룻밤에 났다 사라지는 식물 하나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듯, 아주까리를 마주할 때마다 전기가 없던 시절 호롱불 밑에서 책장을 넘기던 어린 날의 풍경과 어머니의 손길이 지금도 그 시절의 따스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 - 감자 먹는 사람들]
고흐가 네덜란드 뉘넌 시절에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은, 피마자 기름 호롱불의 가늘고 노란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던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정서와 깊이 닮아 있어 첨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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