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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고하는 존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생각은 흙내음 같은 우직함과 따뜻함이다. 평생토록 말없이 멍에를 메고 주인을 위해 단단한 땅을 갈아엎는 그 걸음에는, 기꺼이 세상을 먹여 살리려는 숭고한 헌신이 배어 있다.
이러한 소의 모습은 단순한 농경의 상징을 넘어 내 어린 시절의 가장 내밀한 기억과도 닿아 있다. 농촌에서 소는 한 집안의 농사를 책임지는 필수 노동력이자 가장 큰 재산이었고, 한 지붕 아래 밥을 나누어 먹는 엄연한 식구나 다름 없었다.
비록 소 두 마리가 끄는 겨리가 아닌 외겨리였지만 소에 쟁기를 물려 직접 논과 밭을 갈아보았다. 하루 종일 흙을 일구고 돌아온 소를 위해 저녁마다 가마솥에 등겨와 짚을 풀어 구수한 소죽을 끓여내는 일은 소년 시절 내가 도맡았던 소중한 책임이었다. 산으로 소를 몰고 올라가 풀을 뜯기던 이른바 소 뜯기기를 하며 소등을 타고 산을 넘나들던 기억, 그리고 어느덧 그 시절의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가며 내가 우리 동네에서 소를 몰고 산에 오르던 마지막 세대가 되었던 그 아련하고도 다정한 기억들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흙냄새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사실 성경 속 소에 관한 글을 구상한 것은 이미 한 달도 더 전의 일이었다. 글에 어울릴 적당한 명화를 찾다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 속 논갈이를 마주하게 되었는데, 논갈이를 엉뚱하게 밭갈이로 해석해 놓은 어느 기자의 글에 묘한 오기가 발동했다. 그만 단원 풍속도첩의 절반 가까이를 샅샅이 파고들며 해설하느라 한 달이라는 시간을 꼬박 돌고 돌아버렸다. 정작 그 소중한 논갈이 그림은 그 긴 여정 속에서 먼저 다루어버렸기에, 원래 쓰려던 성경의 서사를 위해 다시 찾아낸 캔버스가 바로 프랑스의 화가 로자 보뇌르가 그린 니베르네의 밭갈이다. 그 엉뚱한 해석을 한 기자가 단원 김홍동의 논갈이 그림이 아니라 이 로자 보뇌르의 밭갈이 그림을 보고 동일한 해석을 했다면 참 감동을 하며 봤을 것 같다.
이 밭갈이 작품 속 풍경은 우리의 전통적인 농경과는 사뭇 다르다. 찰흙처럼 굳은 유럽의 무거운 토양을 통째로 뒤집기 위해 무려 여섯 마리의 황소가 세 겨리로 묶여 묵직한 철제 쟁기를 끌고 있다. 놀라운 것은 소들의 모습이다. 얼핏 보면 무거운 나무틀을 전혀 얹지 않은 채 맨몸으로 유유히 흙을 밟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선을 소의 머리로 옮겨보면, 두 뿔의 밑동을 잇는 이마 위에 납작한 가름대를 대고 가죽끈으로 뿔을 칭칭 감아 단단히 고정해 둔 장치가 눈에 들어온다. 목에 얹는 거추장스러운 굴레 대신, 이마와 두개골의 골격으로 흙의 엄청난 저항을 온전히 받아내는 두부 멍에다. 겉으로 드러나는 요란함 없이 자신의 가장 단단한 머리로 삶의 무게를 밀어내는 은밀하고도 묵직한 순종이 그곳에 있다.
그림 속 여섯 마리가 뿜어내는 거친 숨결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약성경 열왕기상에 기록된 밭갈이 현장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열왕기상 19장 19절)
당시 팔레스타인의 농경 방식은 그림 속 프랑스의 대규모 밭갈이와는 달랐을 것이다. 성경의 표현대로라면 소 두 마리씩 짝을 지은 열두 겨리가 한 밭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던 셈이다.
성경은 엘리사가 열두 번째 겨리와 함께 있었다고만 간결하게 기록한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그는 서늘한 그늘막에 앉아 일꾼들을 지휘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앞선 열한 겨리의 소와 쟁기가 지나가며 뿜어낸 거친 흙먼지를 온몸으로 뒤집어쓰며, 쟁기 손잡이를 쥔 채 땀 흘려 마지막 밭을 갈고 있었을 것이다. 현장의 가장 고된 끝자리를 지키던 그 순간, 엘리야의 부름이 닿았다.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열왕기상 19장 21절)
엘리사는 방금 전까지 자신의 손때와 땀이 배어 있던 농기구를 땔감 삼아 불을 지피고, 자신과 호흡을 맞추던 그 소를 잡아 백성들에게 먹였다. 그것은 단순한 한 끼의 음식 마련이 아니었다. 어제까지 자신을 지탱해 주던 생계의 도구를 스스로 불태우고, 다시는 이전의 농사짓던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별이자 온전한 헌신이었다.
한편 성경은 이렇게 치열하게 일하는 가축을 향한 하나님의 섬세한 시선도 놓치지 않는다.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신명기 25장 4절)
어릴 적 소를 몰고 일을 나갈 때면, 쟁기나 멍에뿐만 아니라 반드시 챙겨야 했던 필수품이 바로 소의 입에 씌우는 머구리, 즉 망이었다. 눈앞에 연한 풀이 보이면 본능적으로 고개를 처박는 소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밭고랑이 엉망이 되고 일의 진행이 멈추기 때문이다. 밭갈이나 논갈이에서는 입을 막는 망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떠는 소에게는 망을 씌우지 말라 하신다. 농부의 통제와 수확의 손실을 따지는 계산법으로만 본다면, 눈앞의 이삭을 밟으며 일하는 소의 입을 열어두라는 율법은 실제 농사 경험과는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말씀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낟알을 밟으며 땀 흘리는 짐승의 주린 배와 노고를 헤아리는 마음, 즉 효율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따뜻한 긍휼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소는 살아 있는 동안 온몸의 무게를 실어 굳은 흙을 쪼개고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땅을 마련해 준다. 입에 망조차 씌우지 않은 채 일하는 자를 돌아보시는 그 자비 속에서, 소의 성실한 노동은 비로소 인류를 먹여 살리는 생명의 통로가 된다.
그렇게 소가 진 멍에를 바라보다가,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오늘 내가 짊어지고 가는 멍에는 과연 무엇일까.
가족에 대한 무거운 책임일까, 숨 가쁘게 돌아가는 회사의 일일까, 아니면 교회와 공동체에서 맡겨진 직분의 짐일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 모든 짐들을 기어이 내 힘으로 완벽하게 감당해내려 바둥거리는 자아, 조금도 흐트러진 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자존심,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그치는 엄격함이야말로 실은 내 목덜미를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진짜 멍에가 아니었을까. 결국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지워놓은 가장 버거운 멍에였던 셈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를 부르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9-30절)
그 말씀은 또 다른 종교적 짐을 얹어주겠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혼자 아등바등 메고 가던 나 자신이라는 가혹한 멍에를 내려놓고, 그분과 한 겨리가 되어 함께 보폭을 맞추며 걷는 법을 배우라는 다정한 초대다. 둘이 나란히 멍에를 멜 때 비로소 짐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쉼을 얻는다.
밭을 가는 소의 담담하고 성실한 걸음은 그렇게 오늘 우리 앞에 놓인 멍에의 본을 보인다. 이제 대지 위를 갈아엎던 그 우직한 노동은, 훗날 식탁 위에서 골수까지 내어주는 또 다른 희생으로 이어지며 그 사명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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