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의 식탁 - 샐러드, 치아바타빵

올리비아의 식탁: 내 과일 깎기가 어때서

모처럼 맞이한 연휴 시작날 아침, 주방에서는 기분 좋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은은한 음식 냄새가 번져 나왔습니다. 부지런한 올리비아는 이미 식탁을 채울 요리를 거의 끝마쳐 가고 있었습니다. 아들도 엄마를 도와 향기로운 커피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차려진 밥상을 받기만 하자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름대로 손을 거들겠다는 뜻으로 늦게나마 슬그머니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아들이 뼈 있는 한마디를 툭 던집니다.

“아빠가 방에서 나오시는 걸 보니 배가 고프신가 봐요.”

올리비아가 기다렸다는 듯 그 말을 받아 한 번 더 확인사살을 합니다.

“그러게 말이야.”

얄미운 모자 같으니라고.

“내가 과일이라도 좀 씻어서 깎아 올게요.”

머쓱함을 감추려 냉장고에서 싱싱한 샤인머스캣과 사과를 꺼냈습니다. 우리 집은 평소 사과 껍질째 먹는 방식을 즐깁니다. 영양도 영양이지만, 깨끗이 씻어 속의 씨앗 부분만 도려내고 큼직한 사과는 열두 조각으로, 보통 크기는 여덟 조각으로 자르면 손질도 빠르고 균일한 크기라 먹기도 편합니다. (위 사진의 사과 조각이 10개인 이유는 접시에 다 들어가지 않아 보기 좋게 플레이팅하느라 제가 미리 먹었기 때문입니다.)

접시 한편에 탱글탱글한 커다란 샤인머스캣 초록 포도알을 인당 두 개씩 해서 여섯 개를 담고, 그 앞쪽으로 균일하게 자른 사과 조각들을 나란히 배치했습니다. 이렇게 껍질 부분을 바닥으로 두고 속살이 위로 향하게 세로로 눕혀 놓으면 조각끼리 서로 들러붙지 않아 손에 과즙을 묻히지 않고도 포크 없이 쏙 집어 올리기 좋습니다. 구조적인 안정감과 집어 들기 쉬운 각도까지 계산했으니, 제 딴에는 흠잡을 데 없는 효율적인 플레이팅이었습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접시를 식탁에 올려놓았는데,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올리비아의 핀잔 어린 눈길이었습니다.

“아니, 과일을 이렇게 깎아 놓으면 어떻게 해요?”

도대체 어디가 문제라는 걸까요. 색도 포도의 초록과 사과의 연노랑이 대비되고, 무엇보다 먹는 사람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배치인데 말입니다. 당황스러움 반, 호기심 반으로 물었습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거요? 하나씩 쏙쏙 집어먹기 딱 좋잖아요.”

올리비아는 접시를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사과 껍질이 빨간색인데, 그걸 바닥으로 숨겨버리면 노란 속살만 보이잖아요. 빨간 껍질이 위로 보이게 뒤집어 놓고,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깎아 놓아야 갈변도 덜 되고 빨강과 초록이 어우러져서 화사하고 예쁘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인데!”

그 말을 듣고 식탁을 둘러보니 올리비아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선한 채소의 짙은 초록 사이로 노란 옥수수와 병아리콩, 붉은 방울토마토와 잘 익은 아보카도, 그리고 윤기나는 갈색의 구운 계란이 화사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샐러드였습니다. 그 옆 팬 위에는 하얀 치즈가 듬뿍 녹아내리고 향긋한 허브 잎이 보기 좋게 얹힌 먹음직스러운 홈메이드 피자가 마치 하나의 캔버스처럼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올리비아는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색감의 조화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고, 평생을 엔지니어로 살아온 저는 실용성과 기능성이 먼저 보이는 사람입니다.

올리비아 말대로 사과를 가로로 자르고 뒤집어 놓으면 둥근 반구형의 붉은빛이 살아나 초록 포도와 근사하게 어울릴 것입니다. 하지만 엔지니어의 계산기는 곧바로 다른 문제를 짚어냅니다.

사과를 가로로 썰어내면 조각마다 크기가 제각각 달라집니다. 중간의 크고 실한 조각을 집어 먹자니 맞은편 사람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끝부분의 껍질만 잔뜩 붙은 자투리를 먹자니 아쉽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눕혀놓으면 포크나 집게 같은 도구 없이는 한 조각만 깔끔하게 집어 올리기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손에 과즙을 묻히지 않고 도구 없이 단정하게 집어 먹기에는 제 세로 썰기 방식이 훨씬 우월한 시스템인 셈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시스템이 효율과 공학적 완벽성만으로 굴러가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빈틈없는 논리보다 부드러운 양보가 식탁의 온도를 결정짓는 법입니다. 가정의 평화라는 위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엔지니어의 고집을 슬그머니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하나의 시점만을 고집하지 않고 사물의 여러 각도를 한 화면에 담아내며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입체파를 열었던 파블로 피카소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올리비아의 심미적 시선과 저의 기능적 시선을 동시에 담아낼 묘수가 바로 거기 있었습니다.

다음 휴일에는 사과의 절반은 올리비아의 미학을 따라 붉은 껍질이 보이도록 가로로 깎아 뒤집어 놓고, 나머지 절반은 저의 실용성을 담아 손쉽게 집어먹을 수 있는 세로 조각으로 배치해 볼 생각입니다. 양보라고 쓰고 사실상 절반의 승리를 챙기는 셈입니다.

우리 집 식탁 위에 펼쳐질 큐비즘, 입체파 과일 플레이팅의 탄생입니다. 미학과 실용이 유쾌하게 타협하는 그 접시를 보며, 올리비아가 어떤 허탈한 웃음을 터뜨릴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큐비즘 관련 글 => https://www.theproject2037.com/2026/09/blog-post_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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