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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풍속도첩 : 무동 - 그런데 활은 어디에 있는가?

단원을 만나다 :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단원 풍속도첩 
무동 - 그런데 활은 어디에 있는가

이번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단원풍속도첩의「무동」입니다. 

여섯 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흔히 삼현육각(三絃六角)이라 합니다. 악기는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해금, 대금, 향피리 두 대, 장구, 북으로 보입니다. 삼현육각은 원래 3대의 현악기와 6인의 악사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악기 구성이 달라졌음에도 이름만은 그대로 삼현육각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앞쪽에는 사방으로 흥겹게 춤을 추는 어린 사내아이, 즉 무동(舞童)이 홀로 판을 휘젓고 있습니다. 


 [단원풍속도첩 - 무동]

저는 이 여섯 명의 악사를 현대의 라이브 재즈 공연 팀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단원 김홍도의 무동은 18세기 조선의 최고 예인들이 펼쳐내는 숨 가쁜 라이브 무대와 정확히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화면 속 여섯 명의 악공은 머리에 쓴 모자와 복장의 매무새를 통해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뉩니다. 단정한 관모와 도포로 묵직한 선율의 뼈대를 다지는 정석 세션과, 벙거지(군인뿐만 아니라 예인들도 활동성을 위해 두루 쓰던 실용적인 모자)와 전복(소매가 없어 활동하기 편하게 두루마기나 도포 위에 덧입는 조끼 형태의 겉옷) 차림으로 판을 뒤흔드는 애드리브 세션의 조화가 그것입니다.

특히 이 대조는 악기마다 입체적으로 살아납니다. 향피리 연주자 중 정제된 관모를 쓴 정석 세션의 연주자는 안정된 멜로디를 지탱하는 반면, 같은 향피리이지만 벙거지를 눌러쓴 애드리브 세션의 연주자는 볼이 터져라 호흡을 뿜어내며 현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정석 세션의 '향피리'(좌)와 애드리브 세션의 '향피리'(우)]

 그 곁에서 북을 잡은 연주자 역시 벙거지 차림에 양손에 요란하게 장식된 북채를 허공 높이 치켜든 것이 정석 세션보다는 판의 박자와 리듬을 거칠게 쥐고 흔드는 애드리브 세션에서 리더 역할임을 잘 대변해줍니다. 전체의 리더 역활을 하기에 모자는 애드리브 세션을 뜻하는 벙거지를 착용했지만 나머지 복장은 정석 세션과 같이 도포를 제대로 차려 입었습니다.  화면 맨 앞에서 뒤돌아 앉아 있는 해금 연주자 또한 활이 사라진 채 기이한 손 모양을 한 벙거지 차림의 자유로운 솔리스트로서, 규격화된 틀을 깨부수고 파격적인 주법으로 판을 쥐락펴락하는 주역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해금 연주자의 파격적인 손 모양이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 모두 예술을 업으로 삼던 전문 예인이었을 가능성과 함께, 일부는 국가 행사에 동원되어 군영의 복식인 벙거지와 전복을 걸친 관청 소속의 군영 예인들이었을 가능성 모두 생각해 봅니다. 정석과 파격의 짝패를 이루며 완성해 낸 이 생생한 라이브 스테이지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화폭 밖으로 거친 가락과 환호성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맨 앞의 뒤돌아서 연주하는 해금 연주자의 활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이 그림의 악기는 해금으로 보입니다. 해금은 활로 켜는 악기입니다. 그런데 그림 속 연주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손은 보이는데, 우리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활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활 대신 손가락으로 현을 뜯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까지 열어놓고 보자는 것입니다. 적어도 활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는 정형적인 연주 자세와 다르다는 이유로 단원이 그린 손을 곧바로 '실수'라고 부르는 것 역시 성급하지 않을까요?

정상적인 해금 연주법이라면 왼손은 입죽을 잡고 오른손은 활을 잡아야 합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해금 연주법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무동」의 해금 연주자는 그 정형에서 벗어난 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이것을 단원의 실수나 좌우를 뒤집어 그린 것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뿐일까요?

현악기라고 해서 현을 울리는 방법이 활 하나뿐인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첼로만 보아도 활 대신 손가락으로 현을 뜯고, 현을 두드리고, 심지어 악기를 기타처럼 다루는 연주까지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첼로 열두 대로 구성된 연주팀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어떤 곡에서는 절반 정도가 활을 켜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은 현을 뜯고, 두 사람은 악기를 두드리고, 또 두 사람은 첼로를 기타처럼 들고 연주했습니다.

그 기발한 연주법이 신기하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즐거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객석의 모든 관객이 마치 신명나는 국악 한마당을 보는 것처럼 함께 흥겨워했습니다.

그날 공연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현악기라고 해서 반드시 활만 써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 속 손 모양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해금의 '정상적인 활 연주 자세'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곧바로 오류라고 불러도 될까요?

물론 저는 조선 후기 해금에서 양손으로 현을 뜯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국립국악원은 해금의 현대 주법으로 피치카토(Pizzicato, 손으로 현을 뜯는 주법), 콜 레뇨(Col legno, 활대로 현을 두드리는 주법), 하모닉스(Harmonics, 배음을 이용하는 주법)를 공식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해금은 원래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찰현악기이지만, 현대에는 활 → 손가락 → 활대로 두드리기가 모두 가능한 악기가 된 것입니다. 해금 역시 역사적으로 연주법과 악기의 구조가 함께 변화해 왔고, 현대에는 피치카토를 포함한 확장주법이 쓰입니다.

그림 속 오른손을 자세히 보면, 손은 현이 있는 곳과 아주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는 그가 활을 켜고 있는지, 손가락으로 현을 뜯거나 튕기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둘 다 가능한 위치입니다. 저 손의 위치만으로 활 연주라고 단정할 근거도, 피치카토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이것만으로 단원이 「무동」에서 피치카토를 그렸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적어도 "정상적인 활 연주 자세가 아니므로 단원의 실수다"라는 결론 역시 너무 빠른 것은 아닐까요?

여기에 해부학적으로 하나 더 짚어볼 지점이 있습니다. 해금 연주자의 네 손가락이 위쪽으로 감아 쥐는 동작은, 팔의 위치를 놓고 보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만약 이것이 아래에서 위로 감아쥐는 것을 잘못 그린 단순 실수였다면, 팔의 위치가 허리쪽에 더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팔이 각도와 감아 쥐는 방향은 해부학적으로 정확히 말이 되는 동작입니다. 손을 뒤집어서 착각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손가락이 현을 위에서부터 감아 쥐는 모습을 그리려 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봐도 검지와 새끼손가락의 순서가 반대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어긋남이야말로 오히려 실수가 아니라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좌우를 뒤바꿔 그렸다면 손 전체가 거울에 비친 것처럼 통째로 반전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팔의 자세는 자연스럽게 유지된 채 손가락 순서만 미세하게 어긋나 있습니다. 이것은 화가가 팔의 구조는 정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손가락이 현을 감아쥐는 순간의 손 모양을 그리려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현재 팔의 위치나 각도는 제자리에 있고, 어긋난 것은 오직 손가락의 순서뿐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단순한 좌우반전의 실수라고만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맞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쉽게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을 단순하게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성경 난제를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이 하나 있습니다. 동일한 구절인데도 번역본마다 숫자가 전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4년, 40년처럼 되어 있는 식입니다. 물론 둘 중 하나가 답이어야겠지만, 그것을 함부로 단순 실수로 몰아붙이면 안 된다는 것이 그때 얻은 교훈이었습니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입니다. 「무동」의 해금 연주자를 보면서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장구의 좌우가 조금 틀린 시점으로 그려져 있거나 무동의 발이 과장되어 있어도, 관람객은 그것이 '장구를 치는 행위'이거나 '춤을 추는 동작'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봅니다. 형태가 조금 일그러져 있어도 우리가 자연스럽게 보정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금 연주자는 다릅니다. 활로 켜야 하는 악기인데 활이 보이지 않고, 손 모양도 어딘가 묘하게 어긋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순간 멈칫합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실수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저는 오히려 그 멈칫하는 순간이 「무동」을 재미있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구의 시점이 조금 이상한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해금에서는 악기의 생명과도 같은 활이 사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단원이 실수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해금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장구와 북을 연주하는 악공들의 악기 묘사에서 시점 오류는 아주 대표적입니다. 옆에 앉은 악공이 치는 장구는 측면의 북통을 연결하는 가죽 면의 끝 측면이 한쪽은 일직선으로 떨어지는데, 다른 한쪽은 온전한 타원으로 동시에 드러나는 모순적인 다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북은 물리적으로 진짜 세로로 긴 형태가 아님에도 가죽 면의 타원이 반대로 위아래로 길쭉하게 배치되어 물리적 원근의 상식을 보기 좋게 벗어나 있습니다. 이런 다시점 구도는 단원의 작품 여러 곳에서 포착됩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비틀림을, 역동적인 연주와 소리의 묵직한 부피감을 평면 화폭에 담기 위한 단원의 시점 선택으로 보고 싶습니다.


춤을 추고 있는 무동의 발 모양 역시 단골로 도마에 오르는 부분입니다. 무동의 발목이나 발등의 꺾임이 해부학적으로 다소 과장되거나 어색해 보인다는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춤사위의 도약하는 순간과 발의 잔상을 한 장의 정지 화면에 담아내려다 보니 순간적인 움직임이 과장된 것에 가깝습니다.


대금을 잡은 손의 위치와 지공을 짚는 손가락의 간격도 악기를 아는 이들 사이에서 종종 언급됩니다. 실제 연주자의 손가락 배치가 아니라 전체 화면의 균형과 구도의 흐름에 맞춰 손의 위치가 압축되거나 배치되었을 수도 있고 순간적인 움직임을 포착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또한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이 모든 지적들은 단원을 당대의 사진가처럼 다루려다 발생하는 오해들입니다. 단원은 정확한 악보나 해부학 도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좁은 화면 안에서 소리와 춤과 흥이 부딪히는 소용돌이를 가장 극적인 시각적 리듬으로 붙잡아 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고 싶습니다. 만약 20세기 모더니즘의 거장들이 「무동」 앞에 섰다면 무엇을 보았을까요?

피카소라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본 대상을 한 화면에 겹쳐 놓은 북의 모습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브라크라면 악기와 인체가 조금씩 어긋나 있는 이 화면을 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레제라면 아마도 춤추는 무동의 발과 팔다리에서 제가 느꼈던 것처럼 움직임을 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상상입니다. 단원이 이들의 그림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단원이 서양의 모더니즘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있습니다. 저는 한동안 서양의 현대미술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화가의 그림을 보고, 또 보고, 그러면서 조금씩 눈이 달라지고 나니 「무동」에서 예전에는 이상하게만 보였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림이 변하는 일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사람의 눈이 변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단원을 조금 과감하게 바라봅니다. 단원을 한국의 폴 세잔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아니, 더 과감하게 말한다면 18세기 조선에서 홀로 입체파를 실험했던 세계 최초의 입체파 화가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미술사적 계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잔이나 피카소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익숙한 원근법과 형태의 질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이 보고 느낀 세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화면에 다시 구성했다는 점에서 저는 이들 사이에 묘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후안 그리스 같은 입체파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사물을 여러 면에서 바라보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면, 페르낭 레제의 그림에서는 제게 특히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움직임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을 단순하고 단단한 형태로 그려 놓았는데도, 이상하게 화면 속에서 몸이 계속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지된 그림인데 움직임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눈으로 다시 「무동」을 보니, 예전에는 조금 이상하게만 보였던 무동의 발과 팔다리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둥글게 몸을 돌리며 춤을 추고, 한쪽 발을 힘껏 차 올리는 순간을 한 장의 그림으로 붙잡으려면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이 조금 과장되어 보이고, 다리가 실제보다 더 크게 꺾여 보이는 것도 어쩌면 그 순간의 움직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단원이 레제처럼 그렸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영향 관계가 있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레제의 그림을 보고 난 뒤, 저는 「무동」의 이상해 보이는 발을 인체의 오류가 아니라 춤의 움직임을 붙잡아 놓은 흔적일 수도 있겠다는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단원이 「무동」에서 저지른 모든 '오류'라 불리는 지점들 — 시점이 뒤틀린 북, 활이 사라진 해금, 해금 연주자의 기이한 손, 기이하게 꺾인 무동의 발 — 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들이 정말 실수였을까요? 어쩌면 단원은 정확한 형태를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그 순간의 소리와 움직임,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한 장의 그림 안에 붙잡아 두는 데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림을 보며 장구의 각도가 어쩌고 북의 타원 모양이 저쩌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부디 폴 세잔의 화폭과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후안 그리스의 작품 앞에 먼저 서보시기를 권합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 역시 세계적인 거장들의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물을 원기둥과 구, 원뿔로 환원하며 현대 미술의 문을 열었던 폴 세잔의 진면목을 깨닫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정교한 르네상스의 모범 답안에 익숙했던 제게 입체파의 해체는 처음에는 유치한 장난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여러 미술관들을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해서 여기저기 많이 거닐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입체파의 큐비즘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고 제 눈도 조금씩 트였습니다.

특히 그토록 유명하지만 제 마음에는 유난히 잘 와닿지 않았던 화가가 피카소였습니다. 명성에 비해 아무리 봐도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감동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달 동안 스페인에 머물며 여러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다양한 화풍을 계속 접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조금씩 말랑말랑해졌고, 그러다 문득 인터넷 화면 속에서 《만돌린을 든 소녀》를 마주한 순간 제 마음이 확 녹아내렸습니다.

‘저렇게 단순하게 그려도 사람에게 이렇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구나.’

그때 저는 단원의 그림 맨 앞에 있는 해금 악사의 손을 떠올렸습니다.

이 소녀의 손가락이 정확히 다섯 개가 아니라고, 새끼손가락이 조금 길다고 따져 묻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단원의 그림 앞에서는 갑자기 자를 꺼내 들고 손가락의 순서와 악기의 각도부터 재기 시작하는 것일까요?


[파블로 피카소, 만돌린을 든 소녀] 사진출처 : 위키미디어

사물과 인체를 단순하게 표현하면서도 화면 안에 묘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페르낭 레제의 작품 앞에 섰을 때도 한동안 그 역동성에 매료되었습니다. 이어 후안 그리스의 그림을 보면서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세잔에서 시작해 브라크와 피카소, 레제와 그리스의 그림을 차례로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이상하게만 보였던 형태들이 꼭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얼마 전 귀국해서 여의도에 새로 문을 연 퐁피두 한화에서 열린 큐비즘전을 찾아 기꺼이 매료되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만약 제가 그 큐비즘의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철저한 서구적 원근법이라는 잣대만을 들고 단원의 「무동」을 마주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마 저 역시 장구의 각도가 틀렸네, 해금의 연주법이 어긋났네 하며 단원의 붓을 서툰 솜씨로 깎아내렸을 겁니다.

하지만 세잔이 캔버스 위에서 익숙한 공간의 질서를 흔들며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열어갔듯, 18세기 조선의 단원 역시 「무동」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공간의 질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장구의 측면과 가죽 면이 한 화면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보여주고, 북 역시 실제 악기의 원근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형태로 그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단원의 실수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서양의 현대미술을 조금씩 접하고 난 뒤 다시 보니, 저는 이 장면을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원은 눈앞의 악기를 사진처럼 정확하게 옮기는 것보다, 연주하는 사람과 악기, 그리고 그 순간의 움직임과 소리를 한 화면 안에 함께 보여주는 쪽을 택했을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세잔이나 피카소의 입체파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시대도 다르고 미술의 맥락도 전혀 다릅니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있습니다.

서양의 현대미술을 보고 난 제 눈에는, 「무동」의 이런 뒤틀린 시점이 더 이상 단순한 오류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원의 붓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눈이 좁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너무 쉽게 “이건 잘못 그린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악기의 원근이 이상하면 원근법의 오류라고 하고, 손가락의 위치가 이상하면 해부학적 실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림에는 때로 눈앞의 사물을 정확하게 복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소리를 보여주고, 움직임을 보여주고, 한순간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무동」을 바라보면, 이상하게 보였던 것들이 하나씩 달라집니다.

해금 연주자의 손도, 장구의 묘한 방향도, 북의 형태도, 그리고 춤추는 무동의 과장된 발도 말입니다.

어쩌면 제가 처음에 오류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단원이 놓친 것이 아니라, 제가 아직 보지 못했던 무언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단지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악기의 울림, 춤추는 무동의 잔상,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는 뜨거운 흥의 에너지까지 하나의 평면 위에 입체적으로 치밀하게 채워 넣었습니다. 해금의 활이 지워지고 북의 시점이 다면적으로 비틀린 것은 단원의 실수가 아니라, 대상을 껍데기가 아닌 진짜 본질로 담아낸 위대한 예술적 결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눈앞에 조선이 낳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해체주의 거장의 걸작을 두고도, 그것을 읽어낼 눈이 없어 그저 서툰 낙서나 오류로 치부해 버리는 어리석음이란 얼마나 통탄스러운지. 피카소가 눈과 코를 사정없이 떼어다 붙인 것을 보고 그림을 발로 그렸다고 비웃는 분들이라면, 이 글과 단원의 작품 감상은 잠시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렇게 보인다면 눈에 보이는 얄팍한 원근법의 잣대 너머에서, 소리와 흥이 격동하는 심오한 우주의 구조를 꿰뚫어 보는 눈을 잃어버린 자가 바로 당신 아닐까요?

저는 단원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이 <무동>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아니, 조선 풍속화의 최고 걸작이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 소리가 들립니다. 숨소리가 느껴집니다. 신나게 현을 뜯고 있는 연주자의 손끝에서 해금의 소리가 들리고, 둥둥 울리는 북소리와 장구 소리가 들리고, 청아하면서도 흥겨운 대금의 가락이 들립니다. 그리고 신나게 춤추는 무동들의 거친 숨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여러분의 귀에도 이 소리가 들리십니까?

참고로 아래에 첨부한 그림은 제 얼굴을 입체파 형식으로 AI가 그려준 작품입니다. 혹시라도 이 그림이 멋지거나 의미 있게 다가오는 날이 오신다면, 그때는 부디 단원의 그림도 다시 한번 들여다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비로소 그의 붓끝에서 춤추는 조선의 해체된 우주가 당신의 눈에도 보일 테니까요.


[AI가 그린 저자의 입체파 자화상]


그림이야기 - 만돌린을 든 소녀
=> https://www.theproject2037.com/2026/07/blog-post_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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