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오늘도 자라를 만난다 : 너 참갈겨니?
2026년 9월 27일, 날씨 맑음
내가 매일 산책하는 탄천 수서 구간을 지날 때마다, 여울의 거센 물살 속을 날렵하게 가르는 물고기 무리를 보며 늘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흔히 보던 피라미라기엔 분명 체구가 더 굵직하고 묵직한데, 워낙 빠른 물길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카메라 렌즈로는 그 형체를 제대로 붙잡아내기가 어려웠다. 눈으로는 수없이 마주쳤으면서도 온전한 형태를 확인하지 못해, 긴 시간 마음속 물음표로만 남겨두고 있었다.
발길을 넓혀 서울공항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다 문득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칠게 내달리던 여울이 거짓말처럼 잦아들며 투명하고 잔잔한 소(沼)를 이루고 있었다. 수면의 일렁임이 가라앉은 맑은 물 아래, 비로소 녀석들의 자태가 한 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드러났다.
물결의 간섭 없이 마주한 윤곽과 무늬를 찬찬히 짚어보니 의심할 여지 없는 참갈겨니였다. 가장 먼저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화려한 색채였다. 피라미보다 확연히 듬직한 체구 위로, 마치 명절날 곱게 차려입은 색동저고리를 걸친 듯한 빛깔이 잔잔한 물속에서 은은히 일렁였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주저 없이 색동저고리라는 다정한 별명을 지어주었다.
참갈겨니는 영어로는 Korean dark chub이다. 피라미는 Pale chub이었는데, 영어 이름으로 나란히 놓고 보니 확실히 구분된다. 피라미는 거의 은색에 가까운 단색이라 그것을 ‘창백하다’는 뜻의 pale로 표현했고, 참갈겨니는 짙은 무늬띠 때문에 dark라고 한 모양이다. Korean은 한국 고유종이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색동저고리를 입고 있는데 dark라니! 아무리 봐도 colorful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이름 짓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센스가 부족할까?
가끔 황금색 잉어나 붉은 비단잉어가 보이긴 하지만, 탄천에서 이렇게 눈에 띄는 화려한 색을 두른 물고기는 참 드물다. 고운 색동저고리를 걸친 녀석을 보고 있자니 문득 성경 속 요셉의 채색옷(Coat of many colors)이 떠오른다. 형들은 동네 학원도 못 가는데 혼자 값비싼 대치동 영어학원에 다니는 귀공자 같다고나 할까. 학원에서 배운 지식을 자랑하듯 덩치 큰 잉어 형들 앞에서 신나게 재잘거리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형님들, 오늘 내가 배운 게 뭔지 알아요? FID라고, 도망 개시 거리(Flight Initiation Distance)라는 거예요. 새들이 위험이 닥칠 때 도망치는 거리죠. 형들은 이런 거 모르죠?”
그 당돌한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색동저고리라는 이름 뒤에 얄미운 요셉이라는 장난스러운 별명을 하나 더 얹어주고 싶어진다.
내가 찍은 사진만으로는 확실히 알 수가 없어 추가로 검색해 보았다. 그러고 나니 참갈겨니에 대해 꽤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참갈겨니는 본래 일반 갈겨니와 한 몸으로 묶여 있었으나, 유전적·형태적 차이가 밝혀지며 2005년 당당히 독립된 한국 고유종으로 이름을 올린 우리 물고기다. 녀석이 두른 고운 빛은 단순한 얼룩이 아니다. 아가미 뒤편부터 꼬리지느러미 끝까지 시원하게 뻗은 굵고 짙은 흑청색 띠가 중심을 잡고, 그 위아래와 배 주변, 널찍한 지느러미에는 눈부신 황금색이 짙게 물들어 있다.
흔히 헷갈리기 쉬운 피라미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피라미보다 굵직하고 묵직한 참갈겨니는 한눈에 보아도 제법 당당한 체격을 자랑한다. 옆구리에 붉은빛 수직 무늬가 새겨진 무지갯빛 피라미와 달리, 참갈겨니는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게 뻗은 단일 수평 암색 띠를 두르고 있어 확연히 구별된다.
맑고 찬 여울을 터전 삼는 녀석들이 거친 물살에서 벗어나 이곳 잔잔한 웅덩이에 모여든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거친 물살을 빠르게 오가던 녀석들이 물살이 완만해지는 소(沼)에 이르러 잠시 머물며, 자갈 틈 사이의 물속에 사는 곤충이나 작은 먹이를 찾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거친 물길에서는 결코 보여주지 않던 고운 결을, 숨을 고르는 고요한 물속에서 아낌없이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물살의 소란스러움을 걷어내고 잔잔함 속에서 마주한 참갈겨니의 색동 옷자락. 오랫동안 마음속에 물음표로 남아 있던 녀석에게 드디어 반가운 마음으로 이름을 불러주었다.
“너 참갈겨니였구나.”
수서 구간에서는 물살에 가려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녀석을 이곳에서 뜻밖에 마주쳐 이름을 확인하게 된, 기분 좋은 횡재 같은 만남이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이 여전히 이토록 건강하고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생명을 품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찬 울림으로 다가왔다. 오늘 탄천에서 나는 물고기 한 마리를 눈에 담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름을 몰라 서먹했던 정다운 이웃 한 명과 드디어 눈을 맞추며 반가운 첫인사를 나눈 셈이다.
참갈겨니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O585xmDLkV0
참고자료 : 국가생물다양성정보공유체계(국립생물자원관), 「참갈겨니」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