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 불타는 6월과 잠자는 아리아드네, 당신의 선택은?

그림 이야기: 길을 잘못 들어 만난 달항아리

 그림 이야기: 길을 잘못 들어 만난 달항아리


[최영욱 작가의 《카르마-인연》,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전시회]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은 우리 회사 대회의실에도 대형 작품이 있어 매주 한 번씩은 늘 보게 된다. 볼 때마다 그 세세한 붓질에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걸 그렸을지, 작가의 인내심에 놀라곤 한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최영욱 작가의 전시회를 삼성동에서 보게 되었다. 세미나가 삼성동 파르나스 호텔에서 진행된다는 안내를 보고, 당연히 늘 익숙하던 삼성역 파르나스 호텔인 줄 알고 일찌감치 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일찍 도착한 김에 세미나룸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로비에 펼쳐진 전시 풍경에 이끌려 아주 느긋하게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한참 동안 넋을 놓고 감상하다가 시작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안내판을 확인했는데도 세미나룸 명칭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안내소에 가서 확인하니 아뿔싸.

“고객님! 잘못 오셨어요. 세미나는 이곳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가 아닌 코엑스 쪽에 있는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입니다. 가까우니 걸어가셔도 됩니다.”

순간 당혹스러웠지만 안도와 함께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이없는 착오 덕분에 호텔 로비에서 열리던 최영욱 작가의 기획전 《카르마-인연》을 온전히, 그것도 무료로 감상하는 뜻밖의 호사를 누렸으니 말이다.

인생은 참으로 새옹지마여서, 가끔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엉뚱하게 헤매는 순간이 생각지도 못한 눈부신 선물을 건네주기도 한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회화 《카르마》는 수많은 미세한 균열과 세월의 흔적을 붓끝으로 한 줄 한 줄 그려내고 있었다. 달항아리 하나를 이렇게 오래, 이렇게 집요하게 들여다본 사람의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그 앞에 서 있으면 작가의 집념과 공력에 고개가 숙여진다.

하나의 주제로 평생을 바쳐 도달할 수 있는 끝까지 가 본 사람들을 보면 절로 경외심이 솟아난다. 그 세상의 끝자락까지 발을 디뎌 본 사람들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마침내 끝까지 가 보았으니 이제는 다 되었다고 안도할까, 아니면 깊이 들어갈수록 더 아득해지는 심연 앞에서 여전히 아직 멀었다고 느낄까.

거대한 캔버스 앞에 홀로 서서,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살면서 무언가 하나라도 끝까지 집요하게 파 본 적이 있었던가.

그런 묵직한 상념 속에 젖어 있다 보니, 며칠 전 들렀던 다이소 매장의 풍경이 불현듯 겹쳐 떠올랐다.


[다이소의 달항아리, 제일 큰 사이즈가 겨우 5,000원이다]

매대 위에 5천 원이라는 믿기지 않는 가격표를 달고 단정하게 놓여 있던 수많은 백자 달항아리. 한쪽은 캔버스 위에 시간을 깎아 넣어 만들어낸 평면의 예술이고, 다른 한쪽은 흙을 빚어 만든 손에 잡히는 진짜 입체 달항아리다. 이 얼마나 묘하고도 절묘한 대비인가.

과거 부유한 이들의 전유물이자 현대 미술관의 유리관 속에 머물던 그 둥근 곡선을, 누구나 커피 한 잔 가격에 일상 속으로 들여놓을 수 있게 만든 다이소의 기획력과 대량 생산의 기술력도 참 놀라웠다.

하나의 작품만으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해 낸 예술가에 대한 진한 존경심과, 만인의 손길이 닿는 생활 속 오브제로 달항아리를 구현해 낸 다이소에 대한 감탄. 형태는 같으나 도달한 궤적이 전혀 다른 두 세계는 우열을 가리기보다, 같은 달항아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삶 속에 얼마나 다채롭게 스며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엉뚱한 호텔 로비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던 그 달콤한 착각마저도, 어쩌면 달항아리가 넉넉한 품으로 안겨준 뜻밖의 인연이었을 것이다.

가끔씩은 이렇게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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