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 불타는 6월과 잠자는 아리아드네, 당신의 선택은?

오늘도 자라를 만난다 : 얼마나 움직이지 않았으면, 등딱지가 숲이니?

오늘도 자라를  만난다 : 얼마나 움직이지 않았으면, 등딱지가 숲이니?


[탄천에서 처음 발견한 거북, 리버 쿠터]

2026년 10월 22일, 날씨 맑음

오늘도 변함없이 점심을 일찍 먹고 자라를 보기 위해 탄천으로 갔다. 요즘 자라를 보기 어려워졌는데, 오늘 아침은 기온이 10도 밑으로 뚝 떨어져 유난히 쌀쌀했다. 더 이상 자라를 볼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평소처럼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자라를 세 마리나 보았다. 아직은 자라가 활동할 시기인가 보다. 예전처럼 바위 위에 올라와 햇볕을 쬐는 자라는 없었지만, 물속에서 움직이는 모습은 볼 수 있었다.

그중에 평소 보던 자라와는 다른 이상한 놈이 하나 눈에 띄었다. 등에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어 자라인지 뭔지 확신이 들지 않는 생명체였다. 자세히 보니 자라는 주둥이가 뾰족하게 길고 눈이 위쪽에 있는 반면, 이 녀석은 눈이 머리 양옆에 있었다. 확실히 자라는 아니고 거북이었다.

혹시 토종 생물인 남생이인가 싶어 찾아보았다. 남생이는 등딱지에 뚜렷한 세 줄의 용골이 있고 전체적으로 흑갈색을 띤 반면, 이 녀석은 그런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크기도 20cm를 훌쩍 넘어 암컷 성체 자라처럼 큼직했다.

그렇다면 흔한 외래종 붉은귀거북일까? 사진을 찍고 나서 살펴보니 붉은귀거북의 특징적인 붉은 무늬는 보이지 않았다. 머리 측면의 줄무늬와 등딱지에 화려하게 수놓아진 무늬를 보니 리버쿠터와 닮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문 생태 앱에 사진을 올려 물어보니 리버쿠터가 맞는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 애완용으로 키우다 버렸거나 탈출한 개체일 텐데, 이 찬바람 속에서 누구의 손을 떠나 여기까지 왔을까?

얼마나 움직이지 않았으면, 등딱지가 숲이다. 참으로 게으른 놈인가 보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쉼 없이 달려온 줄 알았고, 늘 움직이고 있으니 내 삶에는 묵은 때나 이끼 같은 게 낄 겨를이 없다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쉽게 이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렇지 않고 박힌 돌처럼 옴짝달싹 않고 묵묵히 버틴다는 안도감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정작 삶의 중요한 변화나 성찰을 멈춰버린 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제안해 드린 표현들 중에서

등딱지에 푸른 이끼를 이고 묵묵히 가라앉아 있는 저 리버쿠터를 보며 뜨끔해진다. 바쁘게 살아간다는 핑계로 내면의 경직과 게으름을 방치해 둔 내 삶에도 이미 시퍼런 이끼가 잔뜩 낀 것은 아닐까?

오늘 탄천의 찬바람 속에서 만난 것은 낯선 외래종 거북이 아니라, 어쩌면 멈춰 선 채 이끼가 끼어 굳어버린 나의 부끄러운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탄천 영어 노트

  • River Cooter (리버쿠터: 북미 원산의 민물거북 종류)

    • A large river cooter with a carapace covered in green algae rested motionlessly in the stream. (등딱지가 초록빛 조류(이끼)로 뒤덮인 커다란 리버쿠터가 하천에서 미동도 없이 쉬고 있었다.)

  • Carapace (등갑, 등딱지)

    • The intricate yellow patterns on its carapace made it easy to distinguish from native species. (등딱지에 새겨진 정교한 노란색 무늬 덕분에 토종 생물과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 Invasive species (외래종)

    • The river cooter is an invasive species, yet this one looked quite at home in the cold stream. (리버쿠터는 외래종이지만, 이 녀석은 차가운 하천이 퍽 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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