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 불타는 6월과 잠자는 아리아드네, 당신의 선택은?

혜원을 만나다 : 야금모행 (夜禁冒行) - 새벽녘 그믐달의 고증

혜원을 만나다 : 야금모행 (夜禁冒行) - 새벽녘 그믐달의 고증

[혜원전신첩 : 야금모행 (夜禁冒行)


[헨리 푸젤리(Henry Fuseli) - 《악몽》(The Nightmare, 1781년작)]

어두운 밤, 한양의 좁은 골목길을 가로지르는 네 사람의 행렬이 있습니다. 신윤복의 풍속화 《야금모행(夜禁冒行)》입니다. 제목인 야금모행은 밤의 금지령, 즉 야간 통행금지를 무릅쓰고 몰래 걸음을 옮긴다는 뜻입니다. 화폭 속 행렬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의 독특한 구성과 역할이 눈에 들어옵니다. 맨 앞에서 털모자를 옆구리에 끼고 환한 초롱불을 높이 들고 길을 인도하는 하인(동자)이 앞장서고, 그 뒤로 붉은 옷을 입은 별감과 단정한 갓을 쓴 양반, 그리고 치마를 살짝 걷어쥔 기생이 차례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기생은 혼자서는 불을 붙일 수 없는 상당한 길이의 장죽을 입에 물고 담배를 뻐끔거리고 있습니다. 별감과 갓을 쓴 양반은 은밀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만족한 듯한 얼굴입니다. 양반은 갓을 고쳐 쓰는 것으로 보아 별감이 옷매무새를 살펴 주는 것 같습니다. 기생은 기방을 나서는 양반을 배웅하러 나온 것 같은 눈치입니다. 팔에 안쪽에 털이 가득한 털가죽으로 된 팔토시를 하고 있습니다. 양반도 갓을 고쳐쓰는 오른손을 보면 파란색 털토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복장으로 보아 늦은 가을이나 초가을쯤 되어 보입니다.  

붉은 도포를 입은 별감을 보면 오른손에는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있는데 채찍의 일종인 ‘등채(藤鞭)’로 보입니다. 등채는 조선 시대에 궁궐 안팎을 순찰하거나 치안을 담당하는 무관·별감들이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손에 들고 다니던 전통 지휘봉이자 채찍입니다. 그림 속에서 보면 별감은 통행금지(야금)를 어기고 밤거리를 나서는 양반과 기생을 단속하는 위치에 있는 것 같지는 않고 기생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는 기부로 보입니다. 붉은 도포를 입은 별감은 '기방난투'라는 그림에서도 나옵니다. 별감은 기생집을 나서는 양반을 친근한 태도로 길을 안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왼손으로는 어딘가를 가르키는 것 같은데 "저 쪽 길로 돌아가면 순라군이 없으니 집에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을 거요"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접혀진 손가락에는 왠지 양반이 쥐여준 엽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머리에는 초립 아래에 머리를 덮는 긴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하인의 등불이 밝히는 노란빛과 별감의 붉은 도포는 신윤복 특유의 감각적인 색채 대비를 보여주며 생동감을 더합니다.

야금모행에 그려진 달은 왼쪽 아래가 밝은, 밥그릇처럼 누운 가는 달입니다. 이 달의 모양과 옷차림을 함께 보면 그림의 시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옷차림으로 보아 계절은 늦가을에서 초겨울 무렵으로 보이고, 밝은 부분이 왼쪽에 있는 이 달은 그믐달로 보입니다. 그믐달은 대략 음력 26~27일경의 달이며, 늦가을~초겨울(음력 9~10월 무렵)에 해당하는 시기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대략 10월 말~12월 중순입니다. 옷차림과 천문학적 계산이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참고로 음력 한 달의 마지막 날은 그믐이라 하고, 그믐 무렵 밝은 부분이 왼쪽에 있는 눈썹 모양의 달을 그믐달이라 합니다. 반대로 밝은 부분이 오른쪽에 있는 달은 초승달입니다. (북반구, 한국에서 보이는 모양 기준입니다.) 초승달은 해 진 뒤 초저녁 서쪽 하늘에 보이고, 그믐달은 해 뜨기 전 새벽 동쪽 하늘에 보입니다.

그믐달이 보인다는 것은 이 장면이 새벽이라는 뜻입니다. 《야금모행》이 《월하정인》과 같은 1793년경에 그려졌고(두 그림의 제작 연도는 확정된 것이 아니라 추정입니다), 그날이 음력 9월 26일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달의 모양과 각도를 감안한 추정입니다). 그러면 달은 서울 기준 새벽 2시 30분경에 떠오릅니다. 막 떠오른 달은 아직 지평선 가까이에 낮게 걸려 있으므로, 저 선비가 기방을 떠나는 시각은 새벽 3시 이후, 통금이 풀리는 파루 직전까지의 늦은 새벽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조선시대 통행금지는 인정(밤 10시경)부터 파루(새벽 4시경)까지였으니, 이 그림은 통금이 풀리기 전 이른 새벽에 기방을 나서 순라군의 눈을 피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목의 '모행(冒行)', 곧 금지를 무릅쓰고 다닌다는 뜻과도 맞아떨어집니다. 물론 실제로 통금을 피하는 장면인지는 사료의 한계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새벽 동쪽 하늘에 뜨는 그믐달에 대한 고증은 이 은밀한 행렬의 시간대를 짐작하게 해 줍니다.

사람들은 눈썹처럼 생긴 달을 초승달이나 그믐달 중 하나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녁에 주로 활동하는지 새벽에 주로 활동하는지에 따라 각인되는 모양이 다릅니다. 오른쪽 아래가 밝은 달을 초승달로 기억하고 있다면 정확하며, 당신은 달을 저녁에 주로 본 것입니다. 반대로 왼쪽 아래가 밝은 달을 초승달로 기억하고 있다면 당신은 새벽형 인간입니다. 다만 천문학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점점 차오르는 초승달이 아니라 점점 줄어드는 그믐달입니다.


올해 기준으로 그림 속 달과 비슷한 모양을 볼 수 있는 날을 골라 보니 음력 10월 27일, 양력으로는 12월 5일 무렵입니다. 그날 새벽 동쪽 하늘을 올려다보면 신윤복이 본 달과 닮은 달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함께 올린 서양 명화인 헨리 푸젤리의 그림 《악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한밤중,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 여인의 배 위에는 흉측한 괴물이 떡하니 올라앉아 있습니다. 어둠 속 커튼 틈새로는 섬뜩한 눈동자를 번뜩이는 말 한 마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1781년에 완성되어 이듬해 런던 왕립미술원에서 전시되며 큰 주목을 받은 이 그림은, 우리가 매일 밤 마주하는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을 캔버스 위에 그대로 꺼내 놓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잠을 자다 몸이 굳고 배가 짓눌리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소위 '가위눌림'이라 부르는 현상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 사람들은 이 기괴한 현상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소행으로 믿었습니다. 그림 속 여인의 배 위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괴물이 바로 '인큐버스'입니다. 신화 속에서 잠자는 사람 위에 올라타 숨을 조이고 짓누른다는 악마인데, 푸젤리는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적 압박감과 공포를 흉측한 형상으로 시각화해 냈습니다.

여기에 그림 배경을 채운 또 다른 독특한 존재가 바로 말의 형상입니다. 그림 속 말은 작품의 제목인 'Nightmare'와 묘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오늘날 '악몽'을 뜻하는 단어의 'mare'는 암말이 아니라, 고대 영어 'mære'에서 온 말로 잠든 사람의 가슴을 짓누르는 악령, 곧 몽마를 뜻합니다. 그런데 영어에는 소리가 같은 'mare', 곧 암말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습니다. 푸젤리는 이 소리의 일치를 이용해 말의 형상을 화면에 넣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관객에게 시각적 말장난이자 불길한 징조를 동시에 건네는 흥미로운 장치입니다.

침대에 무력하게 늘어진 여인의 모습은 에로틱하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무방비한 상태입니다. 이 모습은 인간이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얼마나 무력하게 함몰되는지 보여줍니다.

18세기는 이성과 합리성을 부르짖던 계몽주의의 시대였지만, 푸젤리는 차가운 이성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뒷골목,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린 '비합리적 공포'와 '무의식의 심연'을 이 한 장의 그림으로 대담하게 까발렸습니다.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어둠을 정면으로 나타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탄생 배경으로는 푸젤리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자주 언급됩니다. 푸젤리는 젊은 시절 취리히에서 안나 란트홀트(Anna Landolt)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안나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랑을 잃은 상실감과 숨이 막히는 듯한 심리적 압박이 이 그림의 영감이 되었다는 전기적 해석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일화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악몽》과 《야금모행》은 시대도 지역도 다르지만, 어둠 속에서 남녀 간의 사랑과 그리움이 움직인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습니다. 이 작품들과 관련해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Orpheus)와 에우리디케(Eurydice)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음악의 명인 오르페우스와 아내 에우리디케의 비극적이면서도 애절한 사랑입니다.

어둠은 인간에게 늘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안겨주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낮의 질서가 멈추고 빛이 사그라드는 순간, 이성은 빛을 잃고 금기는 비로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냅니다. 그리스 신화 속 지하 세계의 금기, 조선시대 백성들을 옥죄던 야간 통행금지, 그리고 헨리 푸젤리의 캔버스 속 무의식의 공포는 모두 하나의 질문을 향해 수렴합니다. 어둠과 금기 앞에 선 인간은 과연 무엇을 마주하게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산 자로서 결코 발을 들여서는 안 될 하데스의 어둠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세상의 모든 짐승과 자연을 멈춰 세울 만큼 영혼을 울리는 리라 음악을 연주하던 그였지만, 그가 마주한 저승의 길은 냉혹한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하데스가 내건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은, 조선의 밤을 지배하던 야간 통행금지처럼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었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이성으로는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선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리움과 불안을 참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오르페우스는 지상의 빛이 거의 닿는 순간,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봄으로써 모든 것을 잃고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에우리디케는 다시 저승으로 끌려가면서 오르페우스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합니다. 그 말은 남편을 원망하는 말이라기보다, 두 사람을 함께 덮친 운명을 안타까워하는 탄식에 가깝습니다.

조선시대의 밤거리에서 순라군의 눈을 피해 움직이던 '모행(冒行)' 역시 이와 닮아 있습니다. 금기를 무릅쓰고 어둠 속을 헤치며 나아가는 발걸음은 언제 발각될지 모를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의 연속입니다. 다만 오르페우스가 이별이라는 값을 치른 것과 달리, 야금모행의 행렬은 아직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품고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저승의 어둠으로 들어갔고, 조선의 밤거리를 걷는 인물들은 통금이라는 경계의 안팎을 넘나듭니다. 푸젤리의 《악몽》에서는 잠든 인간이 자기 의지로 벗어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세 장면은 서로 다른 시대와 세계를 그리지만, 모두 어둠 속에 놓인 인간을 보여줍니다. 어둠은 단순히 빛이 사라진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확인하고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것은 이별, 아슬아슬한 긴장감, 그리고 자기 자신 안의 공포라는 서로 다른 얼굴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 그믐달의 디테일도 그렇고, 월하정인에서 월식의 그 순간을 그린 것도 그렇고, 혜원 신윤복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그릴 수 없는 그림인데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새벽 3시 전후 시간에 왜 거기에 있었을까요? 오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일까요?  그리고 달 아래 네 사람은 어디로 향하고 있었을까요? 그림은 그 답을 알려주지 않지만, 바로 그 알 수 없음이 이 장면을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참고] 음력 달의 위상과 명칭

  1. 삭 (음력 1일경): 달이 태양과 거의 같은 방향에 놓여 밝은 면이 태양 쪽을 향하고, 지구에서는 달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게 되어 맨눈으로 관측하기 어려운 때.
  2. 초승달 (음력 2~5일경): 해가 진 뒤 저녁 서쪽 하늘에 가늘게 보이는 달. 북반구 기준으로 일반적으로 오른쪽 가장자리가 밝게 보임. (초승달 관련 정확한 날짜 규정은 없음)
  3. 상현달 (음력 7~8일경): 오른쪽 반이 밝게 보이는 반달. 대략 정오 무렵 떠서 해 질 무렵 남쪽 하늘에 보이고, 대략 자정 무렵 서쪽으로 짐.
  4. 보름달 / 망 (음력 14~16일경): 달의 밝은 면이 둥글게 보이는 때. 대략 해 질 무렵 동쪽에서 떠서 밤새 보이고, 대략 해 뜰 무렵 서쪽으로 짐.
  5. 하현달 (음력 22~23일경): 왼쪽 반이 밝게 보이는 반달. 대략 자정 무렵 동쪽에서 떠서 새벽 남쪽 하늘에 보이고, 대략 정오 무렵 서쪽으로 짐.
  6. 그믐달 (음력 25~28일경): 해가 뜨기 전 새벽 동쪽 하늘에 가늘게 보이는 달. 북반구 기준으로 일반적으로 왼쪽 가장자리가 밝게 보임. (그믐달 관련 정확한 날짜 규정은 없음)
  7. 그믐 (음력 마지막 날, 29일 또는 30일): 음력 한 달의 마지막 날. 삭에 가까워 달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삭이 되는 시각과 관측 조건에 따라 아주 가는 달이 잠깐 보일 수도 있음.

한 가지 기억할 점: 음력 날짜와 달의 위상이 매번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위 날짜와 뜨고 지는 시각은 계절·위도·해당 달의 삭과 망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일반적인 근삿값이며, 실제 삭·상현·망·하현의 시각은 천문학적으로 계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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