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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을 만나다 :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단원풍속도첩
씨름 - 엿장수는 뭘 보고 웃고 있나?
〈씨름〉은 《단원풍속도첩》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입니다. 지평선과 주변 배경을 과감히 생략하고, 씨름꾼 두 명과 이를 둘러싼 관람객들을 한 화면에 담았습니다. 모두 22명의 인물(씨름꾼 2명, 구경꾼 19명, 엿장수 1명)이 등장하는 이 그림에는 신체의 힘과 균형, 그리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표정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본격적인 분해에 앞서 도면을 보듯 이 화폭의 기본 골격을 짚자면 세 가지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지평선과 배경의 소거: 건물, 나무, 지평선 같은 것을 차단하고 내부의 힘과 움직임에만 시선을 모았습니다.
원 형태의 구경꾼 배치: 외곽을 둘러싼 관람객들은 중앙의 격렬한 에너지를 가두는 구조물의 테두리처럼 작용하며 시선을 안쪽으로 모아줍니다.
비대칭 배치를 통한 균형: 한쪽으로 쏟아지는 강한 동적 에너지를 상쇄하기 위해 반대편에 인원을 집중 배치하며 화면 전체의 시각적 안정감을 이끌어냈습니다.
1. 들배지기의 회전 모멘트
씨름판의 승부는 찰나의 순간에 갈립니다. 단원의 〈씨름〉은 씨름 기술 중 대표 기술인 들배지기로 승부가 기우는 절정의 순간을 화폭 한가운데 담아냈습니다.
여기서 두 선수의 샅바를 잡은 구조를 자세히 보면 오늘날의 씨름과 다른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띕니다. 요즘 씨름은 허리와 다리에 모두 샅바를 매지만, 그림 속 선수들에게서는 허리 샅바가 보이지 않습니다. 상대의 왼쪽 허벅지에만 굵은 삼베 샅바를 매고 손으로 감아 당겨 승부를 내던 옛 한양과 경기 일대의 전통 ‘바씨름’ 방식이라고 합니다.
김준근의 씨름을 보면 상대방의 오른쪽에 바를 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부지방이나 영남지방에선 주로 오른쪽 허벅지에 바를 맸다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 바를 매는 위치는 달랐나 봅니다. 어쨌던 조선시대의 씨름은 주로 상대방의 한쪽에다 바를 걸로 한 바씨름이었습니다.공학적 관점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허리샅바라는 명확한 손잡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허벅지에 건 바를 당기는 힘과 상대를 감싸는 팔, 맞닿은 몸통이 어떻게 함께 작용하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상대를 끌어당기는 힘과 들어 올리는 힘, 몸을 돌리는 동작의 조합을 읽는 것이 이 장면의 관건입니다. 화면 중앙, 등을 보인 씨름꾼은 두 다리를 벌려 몸을 지탱한 채 상대를 밀착시켜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이를 들배지기의 순간으로 읽으면, 상대의 무게중심을 몸 가까이 끌어들인 뒤 몸통을 돌려 균형을 무너뜨리는 동작이 떠오릅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로 두 사람의 몸이 곧 넘어가려는 듯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반면 공중에 떠오른 수비자는 몸의 중심이 무너져 균형을 완전히 잃은 듯한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허공에 들린 왼발은 지면의 지지를 잃은 순간을 보여 줍니다. 미간을 깊게 찌푸린 표정에서는 중심을 잃은 당혹감과 넘어질 듯한 긴장감이 읽힙니다. 단원은 관절의 꺾임과 발가락 선 하나만으로 두 장정이 맞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묵직한 힘의 충돌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2. ‘마방진 구도’, 대각선의 합은 무엇을 말할까?
일부 대중적 해설에서는 이 그림을 두고 화면의 인물 수를 두 대각선 방향으로 합산하면 12명으로 맞아떨어지는 ‘마방진 구도’라 설명하곤 합니다.
대각선 1
좌상단(8명) + 중앙 선수(2명) + 우하단(2명) = 12명대각선 2
우상단(5명) + 중앙 선수(2명) + 좌하단(5명) = 12명
좌하단에서 씨름을 구경하는 인물은 네 명입니다. 여기에 씨름판 바깥을 바라보는 엿장수 한 명을 함께 세면 다섯 명이 됩니다. 즉 대각선의 합이 12가 된다는 설명은 엿장수를 좌하단 무리에 포함하는 분류를 전제로 합니다.
그렇다면 단원은 정말 인물 수를 계산해 마방진을 설계한 것일까요? 좌하단의 인물을 어디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숫자는 달라지므로, 이 계산만으로 작가의 의도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인물 수보다 배치입니다. 좌상단에는 관람객이 밀집해 있고, 우측 하단에는 뒤로 물러나는 인물들이 넓은 여백을 만들어냅니다. 공학적으로 비유하자면, 서로 다른 밀도와 방향을 가진 요소들이 화폭 전체의 시각적 평형을 만들어냅니다. 단원의 구도를 이해하는 데에는 단순한 숫자의 일치 여부뿐 아니라 인물들의 자세와 여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3. 구경꾼 19인
단원은 화폭 속 구경꾼 19명의 인물에게도 각각의 옷차림, 심리적 태도, 신체적 반응을 세밀하게 나누어 부여했습니다.
1) 좌측 상단의 관람객 8인
화면 좌측 상단을 채운 관람객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판에 몰입해 있습니다.
맨 앞줄의 중심 인물 (무릎을 감싸 쥔 사내) : 바닥에 두 무릎을 바짝 세우고 앉아, 두 손으로 정강이를 단단히 감싸 안고 씨름판을 매섭게 응시하고 있습니다. 버선발을 드러낸 채 진지하게 판세를 읽어 내려가는 모습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선수처럼 보일 만큼 자세가 다부집니다.
부채로 얼굴을 가린 인물 (수싸움을 즐기는 사내) : 중심 인물 바로 옆에서 갓을 쓰고, 펼쳐 든 부채로 입과 코를 살짝 가린 채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승부의 흐름을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맨 앞줄 좌측의 탕건 쓴 인물 (판을 지켜보는 사내) : 무리 중 가장 왼쪽 아래에서, 바닥에 놓인 갓 가까이에 앉아 씨름판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줄 중앙의 갓 쓴 인물 (고개를 빼낸 훈수꾼) : 앞서 앉은 이들 사이의 틈새로 고개를 쏙 빼내어 판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눈매를 가늘게 뜨고 장정들의 움직임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몰입도가 돋보입니다.
그 옆에서 함박웃음을 짓는 인물 : 갓 쓴 인물 바로 옆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해맑게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사내입니다. 씨름판의 거친 몸싸움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원초적인 재미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측 상단 모퉁이의 탕건 쓴 인물 : 무리의 맨 위쪽 오른편에서 상체를 약간 숙인 채 허리를 굽히고 판의 중심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다부진 표정으로 승부의 낌새를 살피는 모습입니다.
가장 우측에 쪼그려 앉은 관람객 : 무리의 가장 오른쪽 구석에서 두 무릎을 세우고 앞으로 바짝 상체를 기울인 채 씨름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습니다.
좌측 맨 뒤편의 갓 쓴 인물 (가장 높은 곳의 관망자) : 무리의 가장 뒷줄, 넓은 갓을 반듯하게 눌러쓴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전체 판세를 가장 높은 곳에서 조망하고 있습니다.
2) 우측 상단의 구경꾼 5인
씨름판 오른쪽 위에는 다섯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왼쪽의 사내 : 다섯 사람 중 가장 왼쪽에 자리한 인물입니다. 머리에는 검은 띠처럼 보이는 것을 둘렀고, 옷깃이 겹쳐지는 저고리를 입고 있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꼬리를 올려 웃는 표정입니다. 얼굴을 약간 아래로 향하고 있어 씨름판을 내려다보는 듯합니다.
왼쪽 뒤편의 사내 : 첫 번째 인물의 오른쪽 위, 뒤편에서 얼굴을 내민 사람입니다.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듯하고, 이마와 눈썹이 드러나 있습니다. 입을 살짝 벌린 채 웃고 있으며, 앞사람의 머리 너머로 씨름판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중앙의 대머리에 가까운 사내 : 무리의 중앙에서 가장 독특한 인상을 주는 인물입니다. 정수리가 넓게 드러나고 옆과 뒤에 머리카락이 남아 있어, 다른 인물들의 상투와는 사뭇 다른 인상을 줍니다.
중앙 오른쪽 뒤편의 사내 : 대머리에 가까운 인물의 오른쪽 위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머리카락은 위쪽으로 둥글게 정리되어 있고, 얼굴을 약간 기울인 채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오른쪽 앞의 사내 : 다섯 사람 가운데 오른쪽 아래에 자리한 인물입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으며, 두 손을 바닥에 짚은 채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있습니다. 입을 벌리고 웃는 얼굴과 앞으로 쏠린 몸이 눈에 띕니다.
이 다섯 사람은 모두 가까이 모여 있지만, 머리 모양과 얼굴 표정은 서로 다릅니다
3) 우측 하단의 관람객 2인
씨름판 오른쪽 아래에는 두 선수가 자신 쪽으로 넘어올 듯하자 몸을 뒤로 물리는 두 관람객이 있습니다. 중앙의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격렬한 움직임이 구경꾼에게까지 전달되는 순간입니다. 두 사람의 자세를 각각 살펴보겠습니다.
뒤로 몸을 젖힌 사내 : 두 선수 바로 옆에 앉은 사내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상체를 뒤로 젖히고 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승부에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는 듯한 자세입니다. 씨름꾼들의 몸이 자신에게 덮쳐올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더 이상 경기를 편안하게 구경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특히 바닥을 짚은 팔이 눈길을 끕니다. 손을 바닥에 댄 채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손가락의 방향을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손의 형태와 다르게 보입니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의 방향 때문에 왼손과 오른손이 뒤바뀐 것처럼 느껴집니다.
단원이 일부러 이렇게 그렸든 실수로 그렸든 바닥을 짚은 팔과 뒤로 젖힌 상체가 함께 만들어내는 자세는 인상적입니다. 단원은 놀란 얼굴만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몸 전체가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는 반응을 포착했습니다.
뒤쪽에서 몸을 피하는 관람객 : 첫 번째 사내의 뒤편에는 또 다른 관람객이 몸을 움츠린 채 자리하고 있습니다. 앞사람과 씨름꾼들의 몸이 겹치는 위치에 있어 신체의 윤곽이 모두 드러나지는 않지만, 얼굴과 상체의 배치에서 몸을 사리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앞사람은 손가락의 방향이 왼손처럼 보이는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뒤로 젖혔고, 뒤쪽 인물은 왼손으로 몸을 받친 채 물러나는 듯합니다.
이 두 사람은 씨름판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를 직접 수행하지는 않지만, 선수들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몸짓으로 장면에 생동감을 더합니다. 한 사람은 놀라 상체를 크게 젖히고, 다른 사람은 그 뒤에서 몸을 움츠린 듯 보입니다. 단원은 이처럼 경기의 승패뿐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순간적인 반응까지 한 화면에 담아냈습니다.
4) 좌측 하단의 4인
제일 왼쪽의 사내 : 이 사내는 상체를 비교적 곧게 세운 채 씨름판을 바라봅니다. 머리에는 망건 위로 모자를 쓴 듯한 모습이고, 콧수염과 턱수염이 도드라집니다. 눈과 입의 표현이 또렷해 얼굴에 제법 강한 인상이 남습니다.
좌측에서 두 번째 사내 : 접은 다리에 손을 올리고 편안하게 앉아서 씨름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보이며, 좌측 사내보다 표정이 한결 부드럽습니다.
좌측에서 세 번째 사내 :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씨름판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느긋한 여유가 느껴집니다.
오른쪽 끝의 사내 : 오른쪽 끝에는 머리를 뒤로 묶고 등을 보인 채 앉아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네 사람은 같은 장면을 바라보면서도 자세가 제각각입니다. 상체를 세운 사람, 다리를 접고 편안히 앉은 사람, 부채를 든 사람, 그리고 등을 보인 사람이 한데 놓여 있습니다. 씨름하는 두 사람의 격렬한 움직임과 달리 관람객들의 자세에는 각자의 편안함과 여유가 있습니다.
4. 엿장수는 뭘 보고 웃고 있나?
대부분의 인물이 씨름판에 집중한 가운데, 유일하게 시선을 화폭 바깥으로 돌린 인물이 바로 엿장수입니다. 공학적으로 비유하자면, 그는 한 점으로 과도하게 쏠린 시각적 긴장을 외부로 분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모든 시선과 에너지가 한곳으로만 수렴되면 화면은 답답함을 줄 수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는 엿장수의 시선 방향을 과감하게 화면 밖으로 돌려놓아 화면의 호흡을 틔워 주었습니다.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엿장수의 장비를 들여다보면, 엿판을 몸 앞에 매단 끈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끈이 엿판의 무게를 받아 주고, 한 손은 판의 가장자리를 받쳐 흔들림을 줄이는 듯합니다. 물건을 진열하고 옮기며 팔아야 하는 행상의 실용적인 장비로 읽힙니다. 엿판 위에는 엽전으로 해석되는 작은 물체들도 보입니다. 엿을 팔아 받은 돈일까요?
그가 어깨에 멘 엿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득한 유년의 한 장면이 귓가를 스칩니다.
어릴 적 동네 골목마다 "짤랑, 철커덕" 울려 퍼지던 엿장수 가위 소리는 우리에겐 거역할 수 없는 유혹의 신호였습니다. 그 소리가 담장을 넘어오면 마당 구석구석을 뒤져 빈 참기름병이나 찌그러진 양은 냄비, 녹슨 쇠붙이를 찾아내어 헐레벌떡 뛰어나가곤 했습니다. 어머니 몰래 광에서 들고 나온 멀쩡한 물건을 건네고 달콤한 가락엿 한 동강을 받아 입에 물었을 때의 그 은밀한 쾌감과 가슴 졸임이란. 당시의 엿장수는 단순한 행상이 아니라, 온 동네의 고철과 고물을 수거해 돌리던 거대한 자원 순환 시스템의 최전선 엔지니어이기도 했습니다.
씨름판의 엿장수도 그런 먼 선배답게 능청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화폭 밖에서 대체 무엇을 보았을까요? 여기서부터는 그림의 해설이 아니라, 엿장수의 시선을 따라 화폭 밖으로 나가 보는 세 가지 가설입니다.
가설 1. 쇠붙이 조각을 쥐고 달려오는 코흘리개 아이들
어쩌면 엿장수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폭 바깥 골목에서 무언가를 양손에 쥐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이었을지 모릅니다. 집구석에서 찾아낸 부러진 숟가락이나 놋그릇 조각을 손에 쥐고, 행여 엿장수가 판을 접고 떠날까 봐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오는 그 코흘리개들의 다급한 발걸음 말입니다. "어이쿠, 저 녀석들 오늘 또 어머니한테 혼나려고 저걸 들고 오네" 하며 터져 나오는 노련한 상인의 흐뭇한 미소일 수 있습니다.가설 2. 줄타기 광대와의 공중 교신
당시 장터의 다른 곳에서도 줄타기 같은 곡예가 함께 펼쳐지고 있었다고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엿장수의 시선은 지면이 아니라 허공을 약간 올려다보는 듯합니다. 씨름판의 거구가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는 순간, 화폭 밖 저편 줄 위에서도 어름산이가 부채를 펴고 허공으로 솟아올랐을지 모릅니다. 양쪽의 긴장감이 동시에 정점에 달하는 광경을 보며, 엿장수는 속으로 "저쪽이든 이쪽이든 이제 판만 끝나면 내 엿이 불티나게 팔리겠구나" 하며 쾌재를 부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가설 3. 씨름판 위로 날고 있는 장끼 한 마리
두 장정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샅바 싸움에 온 힘을 쏟고 구경꾼들이 비명을 지르는 바로 그 찰나, 엿장수의 시야 너머 허공으로 멋진 꽁지깃을 펄럭이며 장끼 한 마리가 묵직한 날갯짓으로 가로질러 날아간 장면을 상상해 볼 수도 있습니다. 흙바닥 위에서 뼈마디가 부서져라 엉겨 붙어 중력과 사투를 벌이는 거구들의 아수라장, 그리고 그 머리 위를 보란 듯이 솟구쳐 올라 유유히 날아가는 화려한 장끼의 비행. 땀내와 흙먼지에 갇힌 인간들의 맹목적인 아귀다툼을 단숨에 압도하는 야생의 날갯짓을 바라보며, 엿장수는 "저 무거운 짓들을 왜 저리 용을 쓰며 할꼬" 하고 쓴웃음 섞인 유쾌하고 탈속적인 헛웃음을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든 엿장수의 이 여유로운 표정 덕분에, 숨 막히던 승부의 긴장은 정겨운 조선의 장터 풍경 속으로 한결 부드럽게 녹아듭니다.
5. 여백에 놓인 두 켤레의 신발
씨름하는 두 선수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화면 오른쪽 아래, 뒤로 물러서는 구경꾼들 곁의 빈 바닥에 두 켤레의 신발이 놓여 있습니다.
두 선수가 맞붙은 장면이니 처음에는 선수들이 벗어 놓은 신발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위치가 묘합니다. 두 선수에게서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그렇다고 어느 구경꾼의 것이라고 짚어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왼쪽 위에서 무릎을 감싸 쥐고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눈길이 갑니다. 혹시 그 사람의 신발일까요? 그러나 그 사람 곁에는 이미 별도의 신발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적어도 그 신발에는 주인을 짐작할 만한 위치상의 단서가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의 두 켤레는 흔히 씨름꾼들이 벗어 놓은 신발로 해석합니다. 다만 그림만으로 어느 신발이 어느 선수의 것인지까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원의 붓은 신발의 모양을 남겼지만, 그것을 신었던 사람의 이름표까지 붙여 놓지는 않았습니다. 주인이 누구인지를 떠나, 두 켤레의 신발은 오른쪽으로 열린 여백을 채우며 화면의 구성을 붙잡아 줍니다.
어쩌면 이 두 켤레의 신발은 정답을 찾아내라는 수수께끼라기보다, 그림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은 장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씨름꾼들의 격렬한 움직임에서 잠시 눈을 돌리면, 아무 말 없이 여백에 놓인 신발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6. 단원이 구축한 인문학적 기계
단원 김홍도의 〈씨름〉을 찬찬히 살펴보는 일은 정교하게 맞물린 기계 장치의 부품들을 하나씩 분해하는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그는 여러 계층의 인물들을 원형 구도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고, 넘어가는 자의 긴장과 피하는 자의 놀람, 장사꾼의 딴청을 한 화면 속에 빈틈없이 엮어 넣었습니다. 좌우가 뒤바뀐 듯한 손의 묘사에도 눈길이 머뭅니다. 그것이 의도였든 순간적인 붓질의 어긋남이었든, 뒤로 젖힌 상체와 바닥을 짚은 팔은 씨름꾼들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구경꾼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결국 단원의 〈씨름〉은 단순한 옛 놀이 풍경의 스케치가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 씨름판에서 인간의 신체와 힘의 균형, 그리고 삶의 다채로운 표정들이 빚어낸 가장 생동감 넘치는 인간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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