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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을 만나다 :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단원풍속도첩
고기잡이 - 물이 없는데 삿대질은 왜 하고 있을까?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고기잡이는 바다 한가운데서 싱싱한 활어를 건져 올리는 생생한 어장의 풍경을 담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구조와 운동의 논리를 파고드는 엔지니어의 눈으로 이 화폭을 들여다보는 순간, 아주 기묘하고 당황스러운 시각적 공백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화면 어디에도 출렁이는 파도나 수면의 경계선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입니다.
물결이라곤 털끝만큼도 그리지 않은 텅 빈 한지 위에 배 세 척과 말뚝 울타리가 허공에 둥둥 뜬 채 놓여 있고, 그 위에서 사공은 바닥에 닿지도 않는 장대를 뻗어 온몸으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도대체 바다는 다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요? 물 한 방울 없는 백지 위에서 벌어지는 이 기상천외한 조업 현장의 비밀을 공학적 시선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지워진 바다, 마른땅에 삿대질입니까?
화면을 보면 바다나 갯벌을 나타내는 물의 흔적이 아주 흔적도 없이 지워져 있습니다. 출렁이는 파도도 없고, 찰랑이는 물결도 없으며, 뻘의 진흙 경계선조차 없습니다. 오직 배와 어살의 말뚝, 그리고 고기를 전달하는 그물바구니와 채반만 그려져 있습니다. 배경이 허허벌판으로 비어 있다 보니, 배를 젓는 사공의 장대는 물을 가르는 게 아니라 마른하늘에 헛손질을 하는 마임 공연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낮춰 사람들의 다리쪽을 보면 진실이 드러납니다. 어살 주변과 배에 선 사람들의 바지 밑단이 바짝 걷혀 있고, 맨다리가 공기 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출렁이는 깊은 바다가 아니라, 밀물 때 물이 싹 빠져나가고 진흙 바닥과 물웅덩이만 질척하게 남은 서해안의 썰물 때 갯벌입니다. 화가는 수면을 그리는 대신 물을 싹 지워버리는 과감한 여백의 미학을 택한 셈입니다.
여기에 화면 속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시트콤이 따로 없습니다. 저 위쪽 어살 부근에서는 물 빠진 뻘밭에서 잔챙이 고기를 바구니와 채반에 퍼 담아서 바깥의 배로 전달하고 있는데, 바로 아래 배 위에서는 훨씬 큰 생선을 맨손으로 번쩍 들어 아무도 없는 곳을 보며 흥정을 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오늘 싱싱한 큰 민어 두마리 단돈 닷냥에 팝니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화면 좌측에 물고기를 사러 온 사람들이라도 있는 걸까요? 그리고 같은 배 안에서도 한쪽에서는 무쇠솥을 걸어 밥을 안치고, 차양 아래 선주와 객주들은 딴세상 사람처럼 반대쪽을 보면서 히죽거리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작업을 하며 다른 곳을 보는 제각각의 일상이 한 화면에 압축된 이 난리 법석은 배경의 공백과 맞물려 한 편의 유쾌한 무언극 같은 현장감을 뿜어냅니다.
2. 배와 어살의 공학적 분업 시스템
배경은 지워버렸지만, 배와 시설물의 배치를 공학적 공정 관점에서 뜯어보면 아주 치밀하고 체계적인 조선시대 어업 협업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단의 어살과 첫 번째 작업선은 물길을 막아 밀물 때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두는 일종의 천연 덫입니다. 진흙 바닥에 다리를 걷어붙이고 선 어부들은 싸리 채반으로 고기를 퍼 올려 배 위로 착착 전달합니다. 배 앞머리의 일꾼은 채반을 받고 있고, 중앙의 일꾼은 앞 사람이 일하는 것은 도와줄 생각도 없고 곰방대나 뻐끔거리고 있습니다. 배의 고물의 사공은 진흙 위에서 배가 옆으로 엎드려지거나 떠밀리지 않도록 삿대로 중심을 잡습니다.
중앙의 두 번째 운반 및 가공선으로 가보면 작업은 더 흥미롭습니다. 건장한 어부가 대물을 번쩍 들어 올려 흥정을 하는 듯하고, 옆의 커다란 옹기 독에는 고기를 즉석에서 염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업에 필수적인 소금이 담겨 있거나 작은 새우·젓갈류를 담아 유통하기 위한 보관용 독이 실려 있는 모습입니다. 뱃머리 한편에서는 무쇠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갓 잡은 생선으로 끓여낸 국물이 끓고 있습니다.
좌측 하단의 세 번째 배에는 넓은 천을 엮은 차양막 아래에서 갓 끓여낸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며 한담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조업 현장에서 잡힌 물고기를 살피거나 셈을 나누는 소박한 공간입니다. 그 배의 이물에서 사공이 긴 장대를 쥐고 배의 균형을 꼿꼿이 사수하고 있습니다.
3. 어획물의 대비와 하늘의 새, 그리고 잠실보의 추억
화면 속에서 오가는 물고기의 크기 차이와 하늘을 나는 새는 이 어장의 생태계가 얼마나 풍요로운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바구니로 퍼 담는 작은 물고기와 번쩍 들어 올린 대물의 대비는 만선의 기쁨을 직관적으로 웅변합니다.
하늘을 유유히 맴도는 새들은 갈매기들로 보이고 어살에 앉아 있는 검은 색의 새는 가마우지로 보입니다. 생선 손질 과정에서 떨어지는 찌꺼기를 노리고 배 주위를 맴도는 이 새들의 모습 덕분에, 물 한 줄기 안 그려진 화폭이 순식간에 비린내 진동하는 생생한 바닷가 갯벌로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하늘을 가르는 물새들을 보고 있노라면, 1980년대 후반 한강에서 낚시를 즐기던 시절의 추억이 피식 웃음과 함께 떠오릅니다. 당시 잠실보 부근에서는 훌치기낚시가 유행이었습니다. 은빛 숭어들이 워낙 바글바글해 낚싯바늘을 던지면 두세 마리씩 주렁주렁 딸려 나왔지요. 그 난리 법석 속에서 물기를 박차고 날던 갈매기들이 고기를 낚아채려 급강하하다가 낚싯줄에 다리가 걸려 같이 딸려 올라오는 황당한 해프닝도 벌어지곤 했습니다. 다행히 갈매기를 조심스레 풀어주긴 했지만, 고기와 새가 뒤엉켜 아수라장을 이루던 그날의 날것 같은 활기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지금은 수중보 주변이 말끔히 정비되어 그런 풍경을 보기 어려워진 것이 새삼 아쉽기만 합니다.
4. 거친 노동의 쉼표, 배 위의 사람들과 내륙 소년의 천렵
거친 노동판인 이 조업 현장에서 유독 눈에 띄는 존재는, 좁은 차양 아래와 배 구석에 모여 앉아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는 성인 남성들입니다. 긴 조업과 흥정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이들의 모습은 거친 삶 속에서도 여유와 해학을 잃지 않는 조선시대 민초들의 진면모를 보여줍니다.
배 위에서 끓어오르는 무쇠솥을 보니, 문득 제 어린 시절의 개천가 추억이 소환됩니다. 경북 문경 내륙에서 자란 저는 바다의 어살을 구경할 일은 없었지만, 형님들과 동네 친구들을 몰고 동네 앞 개천으로 천렵을 나가곤 했습니다. 한 사람이 뜰채로 물길의 목을 틀어막고, 나머지 사람들이 상류에서 첨벙거리며 물고기를 몰아내리면 꽤 쏠쏠한 조과를 올리곤 했습니다. 화폭 속 어살이 밀물과 썰물의 길목을 막아 고기를 가두는 바다의 장치라면, 우리가 개천에서 돌을 차며 고기를 몰던 것도 원리는 딱 들어맞는 내륙 소년들의 미니 어살이었던 셈입니다.
꼭 뜰채가 없어도 큰 돌 밑을 더듬어 고기의 도망갈 길을 막으면 맨손으로도 굵직한 피라미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민물조개와 참게가 득실거렸고, 한번은 버려진 빈 깡통 속을 더듬다가 거대한 메기 한 마리를 통째로 낚아채는 횡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두컴컴한 밤에 횃불을 들고 나간 야간 천렵 끝에, 어머니가 끓여주신 칼칼하고 진한 민물매운탕의 맛은 평생 잊지 못할 영혼의 소울푸드로 남아 있습니다.
5. 부력 대신 마찰력을 다스리는 법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 물이 한 방울도 없는데 배가 과연 어떻게 움직이는지 공학적으로 따져보겠습니다. 물이 완전히 빠져나가 딱딱하게 굳은 마른 땅이라면, 사람이 타고 짐을 실은 무거운 목선을 장대 하나로 밀어내는 것은 기계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서해안 갯벌의 진짜 특성은 물기를 가득 품어 미끄러운 진흙층에 있습니다. 배의 바닥면이 평평한 전통 평저선 구조로 되어 있어, 물기가 살짝 남아 있는 뻘 위에서는 마찰력이 극도로 낮아집니다. 사공이 긴 장대로 바닥을 지그시 밀어낼 때, 배는 마찰이 적은 진흙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미세하게 위치를 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물이 없다고 해서 배가 못 움직이는 게 아니라, 부력 대신 미끄러운 뻘의 마찰력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물리 법칙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6. 삿대질은 허공이 아니라 균형의 기술이다
차양 배의 사공이 취한 장대 동작 역시 허공을 가르며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 갯벌 위에서 배의 자세를 제어하는 핵심적인 조작 장치입니다. 사공의 장대는 물살을 가르는 노가 아니라, 진흙 바닥을 찍어 고정하는 일종의 '아웃트리거(보조 지지대)' 역할을 합니다.
윗배에서 무거운 생선 바구니를 쿵쿵 받아 실을 때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핑그르르 돌기 쉽습니다. 그때 사공은 장대로 바닥을 악착같이 찍어 배의 하중을 분산시키고 자세를 잡아줍니다. 배경의 물기가 지워진 바람에 사공의 자세가 마치 마임 배우처럼 과장되어 보이지만, 실은 흔들리는 뻘밭 위에서 거대한 배의 무게중심을 통제하는 노련한 선장의 역학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입니다.
7. 물을 지우고 포착한 날것의 생업
"물이 없는데 도대체 왜 삿대질을 하고 있는가?"라는 짓궂은 의문은, 화면 속 숨겨진 갯벌의 정황을 복원하는 순간 환상적인 해답으로 바뀝니다.
단원 김홍도는 출렁이는 수면을 지루하게 묘사하는 대신, 다리를 드러낸 채 뻘밭을 누비는 어부들과 배를 지탱하는 사공의 장대 각도, 그리고 갇힌 고기를 노리는 물새들을 통해 썰물 때의 갯벌 어장을 완벽하게 연출해 냈습니다. 불필요한 물길을 과감하게 지워버린 결과, 진흙 바닥 위에서 생계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민초들의 생생한 움직임과 삶의 역학이 훨씬 더 돋보이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다를 그려내는 것보다, 배경을 과감히 비워내어 인간의 땀방울을 극대화하는 법—이것이 바로 단원이 붓 끝으로 빚어낸 위대한 연출의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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