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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풍속도첩 : 대장간 - 아이는 풀무질을 어떻게 하고 있나?

단원을 만나다 :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단원풍속도첩
대장간 - 아이는 풀무질을 어떻게 하고 있나?

[단원풍속도첩 - 대장간]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대장간》 앞에 서면, 사방이 뻥 뚫린 작업장 위로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의 열기와 탕탕 울리는 망치 소리가 화폭을 뚫고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 지붕과 벽체를 과감히 생략한 간결한 배경 속에서, 쇠를 달구고 두드리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와 치열한 생업의 리듬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250년 전 조선 후기의 생생한 제조 현장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1. 이곳은 어디인가?

화폭을 마주하면 벽체도, 지붕도, 서까래도 없는 텅 빈 배경에 시선이 멈춥니다. 그러나 34년 동안 플랜트와 제조 현장을 지켜온 엔지니어의 눈에는 이 과감한 생략이야말로 작업 흐름을 선명하게 부각시킨 최적의 작업장 배치로 읽힙니다.

단원은 건물의 번잡한 외피를 완전히 걷어내고, 오직 철기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작업 유닛들만 여백 위에 남겨놓았습니다. 우측 상단의 고온 가열로와 송풍 설비, 중앙의 타격 단조대(모루)와 담금질용 긴 목제 물통, 좌측의 소재 대기대인 평상과 부품 함, 그리고 하단의 정밀 연마대(숫돌대)가 그것입니다.

이 도구와 인물들은 모루를 중심축으로 삼아 자연스러운 원형을 이룹니다. 가열된 쇠의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작업 간 이동 동선을 좁히고, 좁은 공간 안에서 서로 간섭 없이 맞물려 돌아가도록 구성한 조선 후기 철기 가공 현장의 압축판입니다.


2. 현재 계절은 언제인가?

화폭 하단에서 한 청년이 숫돌에 물을 축이며 곡선형 날을 세우고 있고, 모루 위에서도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두드리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농가에서 사용하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연장을 손질하고 새로 맞추는 시기입니다.

특정한 절기를 단정할 수는 없으나, 쇠를 달구고 벼리는 작업이 쉼 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본격적인 농번기나 가을 수확기를 앞둔 분주한 시점으로 읽힙니다. 들판으로 나갈 농기구들은 결코 저절로 날카로워지지 않습니다. 화덕에서 뿜어져 나오는 복사열과 연신 내리치는 망치질의 열기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연장을 뽑아내야 하는 치열한 생산의 현장입니다.


3. 이들은 누구인가?

화폭 속 5인은 단순한 노동자 무리가 아니라, 쇠붙이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손발을 맞추는 유기적인 분업 조직입니다. 인물들의 차림새와 자세는 각자가 맡은 작업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대장간의 최고 숙련자인 편수(우두머리 장인)]

좌측 평상 위에 걸터앉은 이는 대장간의 최고 숙련자인 편수(우두머리 장인)로 읽힙니다. 왼손 집게로 달궈진 쇠를 틀어쥐고 있는 그는 다른 일꾼들과 달리 유일하게 가죽신을 신어 현장의 책임을 맡은 인물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긴팔 저고리를 단정히 여미고 머리에는 고깔을 갖춰 썼으며 바짓단만 가볍게 추켜올린 안정된 차림새입니다. 직접 망치를 휘두르는 대신 타격 각도와 튀는 불똥을 계산하며 고개를 살짝 돌려 다음 메질을 유도하는 중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대장간의 메질꾼]

모루 안쪽에서 허리를 깊이 숙인 장년의 일꾼은 기준 타격을 가하는 메질꾼입니다. 머리에 뾰족한 고깔을 깊게 눌러써 땀이 이마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았으며, 턱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소매를 단단히 걷어붙인 저고리를 입고 바짓단은 튀는 불똥을 피하면서도 다리 관절의 굽힘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무릎 아래로 추려 묶었습니다. 편수의 집게 바로 앞 정밀 타격점을 짚어주며 먼저 쇠를 내리치는 선메 역할을 보여줍니다.

화면 앞쪽에 선 젊은 메질꾼은 큰 원호를 그리며 강타격을 준비하는 후메꾼입니다. 머리에 쓰개를 쓰지 않고 이마를 드러낸 청년으로, 격렬한 스윙 궤적을 위해 소매를 바짝 걷어 올렸으며 바짓단을 묶고 바닥에 짚신을 단단히 딛고 섰습니다. 모루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긴 자루의 쇠망치를 뒤쪽 허공으로 길게 빼내며 몸을 젖히고 있습니다. 상단의 메질꾼이 허리를 숙여 쇠를 치는 순간 온몸의 회전 모멘트와 위치 에너지를 끌어올려, 앞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시간차를 두고 번갈아 치는 엇박자 타격을 준비하는 자세입니다.


[발풀무질하는 대장간의 막내]

화덕 뒤 높은 자리에 선 소년은 화덕에 공기를 공급하는 견습공이자 대장간의 막내입니다. 어린 나이를 보여주듯 머리에는 앙증맞은 패랭이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헐렁한 일상복 저고리를 입고 있습니다. 화덕 몸체 뒤편에 머물러 고온의 열기를 직접 피할 수 있기에 가혹한 작업복 차림이 아닙니다. 두 손으로 줄을 잡고 하체로 풀무를 디디며 화덕에 공기를 불어넣는 풋풋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낫을 벼리고 있는 사내]

우측 하단의 청년은 거친 메질이 끝난 연장을 넘겨받아 숫돌에 날을 세우는 마무리 작업자입니다. 고온의 화덕이나 모루에서 벗어나 쪼그려 앉아 장시간 미세 작업을 수행하므로, 머리카락이 쏟아지지 않도록 뒤로 단정하게 질끈 동여맸습니다. 튀는 물과 숫돌 가루가 덜 묻도록 옷깃을 단속하고 바짓단을 무릎 위로 걷어 올린 채 일에 몰두하고 있는 실무자의 실용적인 복장입니다.

4. 이들은 무엇을 만들고 있나?

이들이 분주히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조선의 대표적 농기구인 낫으로 읽힙니다.

흔히 대장간 바닥에 온갖 농기구와 잡동사니가 널려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화폭 속 기물은 대단히 절제되어 있습니다.

편수의 발밑 평상 위에는 오직 2점의 쇠막대만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끝이 완만하게 꺾여 있고 다른 하나는 곧게 뻗은 봉강입니다. 이는 낫의 자루에 박히는 슴베를 만들거나 날을 뽑아내기 직전의 초벌 성형재로 보입니다.

두 메질꾼이 번갈아 두드리고 있는 붉은 쇳덩이 역시 한쪽 끝을 얇게 펴며 날의 곡률과 슴베의 비례를 잡아가는 낫의 중간 가공 단계와 닮았습니다.

하단의 청년이 갈고 있는 곡선형 도구 역시 형태가 거의 완성되어 날을 벼리고 있는 조선 낫의 모양새입니다.

원자재 대기(평상 위 쇠막대)에서 고온 가열(화덕), 단조 성형(모루), 담금질(물통), 최종 연마(숫돌)로 이어지는 철기 제작의 기본 공정이 과장 없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5. 아이는 풀무질을 어떻게 하고 있나?

화덕 뒤 소년을 보며 흔히 줄을 손으로 위아래로 밀고 당겨 바람을 일으키는 손풀무로 보거나, 줄에 매달려 장난을 치는 모습으로 넘겨짚곤 합니다. 화덕 몸체에 가려져 소년의 두 발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엔지니어의 눈으로 이 동역학적 자세를 들여다보면, 소년은 발로 디디며 구동하는 발풀무질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줄을 순수하게 팔 힘으로만 당겨 송풍 동력을 얻으려면 발바닥이 바닥을 단단히 지탱하는 반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소년은 줄에 체중의 상당 부분을 실은 채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있습니다. 이는 줄 자체가 동력을 전달하는 줄이라기보다, 좁은 발판 위에서 균형을 잡고 낙상을 방지하기 위한 보조선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거의 같은 구도로 그려진 김득신의 대장간을 보면 아이가 손으로 뭘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줄과 나무막대는 상체를 고정하기 위한 장치인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즉 아이는 그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발로 작업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김득신의 대장간]

여기서 일제 강점기 시절의 대장간 모습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건 손으로 풀무질을 하는 모습입니다. 손으로 풀무질을 하기 위해서는 풀무가 아래쪽에 있기에 당연히 사람이 앉아서 손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손풀무는 아래 사진과 같이 돌리는 것이 있고 밀거나 당기는 것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대장간 모습]

국내 박물관 일부에는 이런 나무로 된 밀고 당기는  손풀무를 전시하거나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몇 곳 있습니다. 

[밀고 당기는 식의 손풀무]

또 다른 대장간을 그린 작품으로 김준근의 대장간 그림이 있습니다. 이건 단원 김홍도의 대장간 그림보다 좀 더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풀무질을 하는 사람은 상체는 나무에 편안히 의지한 채 발로만 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상체를 가로 틀에 의지하고 있는 자세로 보아 양쪽발이 풀무에 올라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한쪽 발로 사각형으로 된 틀을 누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길쭉하고 사각으로 된 통을 누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단동식인지 복동식 구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아래쪽으로 바람을 불면서 풀무질을 하기 위해서 풀무통을 아래쪽에 놓아야 하므로 풀무질을 하는 장소의 바닥이 주변보다 더 낮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준근의 대장간]

풀무가 나온 김에 다른 용도의 손풀무를 한번 보겠습니다. 이건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 가정의 부엌에서 사용하는 풀무입니다. 저도 어릴때 많이 사용해 봤습니다. 이건 평상시 짚이나 나무대 같은 것을 땔감으로 사용할 때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왕겨 같은 것을 사용할 때 사용합니다. 왕겨는 그냥 두면 연기만 나고 불이 일어나지 않기에 반드시 이런 풀무로 바람을 넣어줘야 합니다. 


[손으로 돌리는 형식의 풀무]

저는 이 소년의 모습을 보는 순간 어릴 적 동네 공용 디딜방아를 찧던 기억이 번쩍 떠올랐습니다. 방앗간에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던 디딜방아는 한쪽 발로 디딤판을 눌러 방앗공이를 들어 올리고, 발을 들어 올리면 방앗공이가 중력에 의해 내려오면서 곡식을 빻는 구조였습니다. 그때 방아 위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지지 않으려면 천장에서 내려온 새끼줄을 두 손으로 꽉 붙잡아야만 했습니다. 단원의 화폭 속 소년이 쥐고 있는 줄 역시, 널뛰듯 요동치는 발판 위에서 몸을 지탱하기 위해 매달아 둔 안전 줄이었을 것입니다.


[전통적인 디딜방아의 모습]

이와 같은 디딜방아는 전주한옥마을에 가도 동일하게 복원해 놓은 것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손으로는 줄을 잡고 발로 디딜방아를 누르는 모습입니다. 천장에 무게중심을 잃지 않도록 잡을 수 있는 줄도 그대로 복원해 놓았습니다. 디딜방아의 
다리는 보통 두갈래인 양다리 방아가 흔한데, 두 사람이 나란히 밟을 수 있도록 한 구조입니다. 

발은 가려졌지만 소년의 어깨선과 척추 축이 한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져 있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체중을 좌우 발판(답판)으로 번갈아 실으며 시소처럼 발풀무를 밟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무게중심 이동의 흔적입니다.

또한 소년이 잡고 있는 줄이 묶인 가로목을 보면 가열로 상부에 바짝 얹혀 있어 손풀무를 상하로 크게 왕복할 여유 공간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에 연소의 원리를 더해 봅니다. 연료가 강하게 타오르려면 충분한 공기가 화덕 깊은 곳까지 닿아야 합니다. 어릴 적 쇠죽을 끓일 때도 나뭇가지나, 갈비(솔잎) 또는 짚을 땔 때는 따로 바람을 넣어줄 필요가 없으나 왕겨로 불을 지필 때는 풍구로 바람을 불어넣어 주곤 했습니다. 왕겨가 촘촘히 쌓여 있으면 공기가 통하지 않아 불이 잘 붙지 않고 연기만 많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풍구 끝에 긴 쇠파이프를 잇대어 왕겨 깊숙한 바닥까지 공기가 들어가도록 바람을 밀어 넣었습니다.

바람을 불어넣어 주지 않으면 속까지 타지 않고 매캐한 연기만 줄기차게 뿜어내는 왕겨의 이 원리는, 여름밤 모기를 쫓는 데 요긴하게 쓰이곤 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밤 마당 한쪽에 평상을 펴고 누워 잘 때, 한쪽에 왕겨를 소복이 쌓아두고 불을 살짝 붙여둡니다. 그러면 왕겨가 불길을 올리지 못한 채 타들어가며 자욱한 연기를 뿜어내 모기를 쫓아주었는데, 그 연기는 밤새도록, 심지어 이튿날 아침까지도 끊이지 않고 피어올랐습니다.

대장간의 화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화덕 상부에서 바람을 내리누르기보다는 하부의 송풍구를 통해 차갑고 신선한 공기를 연속해서 밀어 넣어야 연소실 바닥에서부터 대류가 일어나며  쇠를 붉게 달굴 만한 고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소년은 가로목에 맨 줄에 몸의 균형을 맡긴 채, 화덕 아래쪽에 자리 잡은 발풀무의 발판을 발로 힘차게 밟으며 불길을 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6. 단원이 포착한 노동의 미학

단원은 대장간의 모든 것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지붕과 벽체는 과감히 비워두고, 쇠를 달구고 두드리고 갈아내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필수 도구만을 화면에 오롯이 남겼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건물의 외관이 아니라, 그 안에서 치열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노동의 본질에 오롯이 집중하게 됩니다.

모루 위에서는 쇠망치가 엇박자의 리듬을 타며 쉴 새 없이 오르내립니다. 그 곁에서는 한 청년이 숫돌에 연장을 대고 묵묵히 날을 갈아냅니다. 한쪽이 온몸의 회전력과 위치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역동의 세계라면, 다른 한쪽은 손끝의 미세한 감각과 인내로 마찰을 견뎌내는 정중동의 세계입니다.

쇠를 다루는 일은 거친 완력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바람을 넣어 불을 지피는 아이, 온도를 가늠해 집게로 잡아주는 장인, 박자를 맞춰 쇠를 늘리는 두 메질꾼,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릿발 같은 날을 세우는 청년의 손길이 끊김 없이 이어져야 비로소 한 자루의 날카로운 낫이 탄생합니다.

어릴 적 디딜방아의 새끼줄을 쥐고 발을 구르던 기억, 불씨를 살리기 위해 풍구를 돌리던 그 옛날의 땀방울이 화폭 속 소년의 발끝과 겹쳐 보입니다. 단원의 작은 화폭에는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과 역할을 가진 이들이 온몸으로 직조해 낸 노동의 정직한 리듬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7. 시 한 편을 덧붙이며

대장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시가 있어, 김광규 시인의 〈대장간의 유혹〉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대장간의 유혹 - 김광규

제 손으로 만들지 않고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 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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