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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 룻과 보아스의 발끝에 대하여
(부제: 당신이 잘 때 발의 각도는?)
베들레헴의 보리 타작마당, 모든 소음이 잦아들고 밤이 깊어가는 시각입니다. 성경 룻기 3장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가장 은밀하고도 극적인 장면 하나를 펼쳐놓습니다.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낯선 땅에 온 모압 여인 룻, 그리고 성실하고 부유한 유력자 보아스. 룻은 나오미의 지혜를 따라 저녁 무렵 타작마당으로 내려가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리다, 그 운명적인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날 밤의 전후 사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룻기 3장 1절에서 9절(개역개정)의 본문입니다.
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이방 땅에서 온 과부 룻이 캄캄한 타작마당에서 보아스의 발치에 누워 건넨 이 간절한 고백은, 한 개인의 운명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혈통과 율법의 경계를 넘어 이방 여인 룻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나아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보아스 -> 오벳 -> 이새 -> 다윗)
세상이 보기에는 우연 같고 연약해 보이는 한 여인의 발걸음 속에서 이토록 찬란한 구원의 역사를 엮어내시는 하나님의 섭리란 참으로 신묘하고 오묘합니다.
여기서 문득, 또 다른 질문 하나가 스칩니다.
그 밤에 룻이 보아스의 발치로 다가갈 때 하늘에 달이 있었을까요? 보름달이라면 너무 밝아 사람들 눈에 띄기 쉬웠을 것이고, 달이 아예 보이지 않는 그믐이면 밤중에 보아스가 룻을 발견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보름달도 아니고 그믐도 아니면서 새벽에 사람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일 정도의 달빛이라면, 하현을 지나 반달보다 약간 가늘어진 그믐달이 밤늦게 떠오르는 때가 제격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보리 수확은 지역에 따라 3월 말~4월 초에 시작해 4월과 5월 초까지 이어집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리를 거두어 며칠간 말린 뒤 한창 타작에 열을 올리던 4월 중순(음력 2월) 어느 날의 깊은 밤에서 새벽 사이로 상상해 보았습니다. 해가 뜨기 전인 새벽에, 동쪽 하늘을 올려다보면 왼쪽이 빛나는 그믐 무렵의 달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음력 2월 24일 무렵의 달이 이 장면에 가장 잘 어울릴 듯합니다.
여기서 시간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일단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곡식 단에 누운 시간은 오후 8시 정도로 보입니다. 4월 중순이면 해가 대략 오후 6시 10분경에 집니다. 이때쯤 저녁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힘든 타작일에 지쳐 바로 잠을 잤다고 하면 이 정도 시간이 정상 취침 시간입니다. 일찍 잤으니 푹 잤다고 해도 중간에 화장실이 마려워 새벽 3시 정도면 깰 정도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시간은 새벽 3시 전후로 가정했습니다. 음력 2월 24일 정도면 달이 뜨는 시각은 대략 새벽 1~2시 정도입니다.
룻은 해질 무렵 타작마당 근처로 내려가 어둠 속에 숨어 기다렸고, 모두들 잠들었을 때 보아스의 발치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살포시 덮고서는 눈을 감았으나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이윽고 새벽에 달이 떠서 잠자는 보아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자 룻은 보아스만 바라보았습니다. 위의 그림은 동쪽에 달이 약간 올라온 시간으로 새벽 2시 이후 정도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윽고 보아스가 발치의 룻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서로 얘기를 나눈 뒤 룻은 아침이 다가오기 전까지 보아스의 발치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알아보기 전에 일어나 보아스가 되어 준 보리를 가지고 타작마당을 떠났습니다. 4월 중순경 이스라엘에서 해가 뜨는 시각이 대략 오전 5시 10분 정도였기에 새벽 4시 정도는 일어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음력 2월 새벽에는 그믐달이 지평선 위에 약간 비스듬히 서 있습니다. 가을에는 반대로 혜원 신윤복의 <야금모행>에 나오는 것처럼 거의 수평에 가깝게 누워 있습니다. 물론 룻기에는 그날 밤 달의 위상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시각도 '밤중', '새벽'이라는 표현만 있을 뿐입니다. 저는 보아스가 놀라 깨어난 '밤중'을 새벽 3시 전후로 넓게 해석해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 날짜는 역사적 고증의 확정 결과가 아니라, 직접 그려본 그림을 위한 천문학적 상상입니다.
문득 미술 속 풍경들을 떠올려봅니다.
대지의 거친 노동과 땀 흘린 이들의 평화를 그린 그림이라면 단연 장 프랑수아 밀레의 <La Sieste>이 스칩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밀짚 더미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져든 농부 부부의 모습이지요. 하지만 밤의 타작마당에서 룻이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고 은밀히 눕는 이 짜릿한 순간을 담은 명화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대부분 대낮에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만약 조선의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이 성경의 이 장면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는 룻이 조심스럽게 보아스의 발치에 파고드는 긴장의 순간이나, 한밤중에 깨어난 보아스가 자신의 발치에 누운 여인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경외와 떨림의 표정을 능청스럽고도 해학적인 붓질로 담아냈을 것 같습니다. <월하정인>에서는 월식으로 해석되는 달의 모습을 담았고, <야금모행>에서는 달의 각도와 모양으로 늦가을 새벽의 정취까지 담아낸 혜원이니, 이 장면의 달 또한 더없이 절묘하게 그려내었을 것입니다.
물론 혜원은 이 성경 이야기를 알았을 리가 없으니 그릴 수도 없었겠지요. 그래서 제가 혜원의 마음이 되어, 달의 위상까지 계산하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달의 각도와 모양은 이스라엘에서 보는 음력 2월 24일경을 나타낸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룻이 몰래 보아스 발치에 누워서 보아스를 바라보는 모습, 어떠신가요? 마음에 드시나요? 저는 당연히 룻이 설레는 맘으로 보아스를 바라보았을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다시 밀레의 <La Sieste>으로 돌아와, 누워 있는 이들의 발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흥미롭게도 누워서 자는 농부의 좌우 발의 각도가 서로 다릅니다. 농부의 오른쪽 발이 왼쪽 발에 비해서 훨씬 더 바깥쪽으로 벌어져 있습니다. 좌우가 대칭이지 않고 비대칭인 것입니다.
문득 호기심이 생겨 저 자신이 침대에 누워서 편안히 있을 때의 발 모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의 발은 농부와 반대로 왼쪽 발이 오른쪽 발보다 훨씬 더 바깥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좌우 발의 각도가 어느 정도까지 비대칭이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걸까? 그리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 이 수면 중 발이 벌어지는 각도 차이 같은 것도 존재할까?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보행 시의 각도(남성이 여성보다 더 벌어져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즉 팔자걸음입니다)나 일부러 움직였을 때 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각도(여성이 더 많이 움직인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즉 더 유연합니다) 등은 있지만 편안히 누워 있을 때의 남녀 간의 발의 각도 차이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주제 같은데 왜 힘들게 걸을 때나 일부러 움직였을 때만 각도를 재 보고 제일 쉬운 가만히 있을 때의 각도는 재 보지 않았을까요? 더 쉽고도 더 재미있는 주제 같은데 왜 이런 연구는 찾기가 어려운지 궁금합니다. 의학 쪽 연구하시는 분 한번 검토해 보시길 바랍니다.
온종일 고된 노동을 마친 몸이 중력과 이완 속에서 가장 편안하게 풀어질 때, 양쪽 발끝은 저마다의 각도로 동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벌어지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봐서, 발끝이 곧게 천장을 향한 상태를 0도라고 할 때 두발의 각도가 각각 0도, 90도라고 해도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천문학적 위도와 봄철 달의 위상을 계산하고, 이방 여인을 향한 하나님의 신묘한 구속 경륜을 묵상하던 거창한 새벽. 그러나 그 긴장감 넘치는 타작마당의 두 사람도 잠이 드는 순간에는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가장 무방비하고 헐거워진 발끝을 가졌을 터입니다.
오늘 밤, 깊은 잠자리에 들 때 당신도 이불 속을 슬쩍 내려다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잘 때 좌우 발의 각도는, 지금 몇 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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