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 불타는 6월과 잠자는 아리아드네, 당신의 선택은?

그림 이야기 : 프로세르피나 - 친구의 아내, 그리고 터져 버린 석류 한 알

그림 이야기 : 프로세르피나 - 친구의 아내, 그리고 터져 버린 석류 한 알


[가브리엘 로세티 - 프로세르피나(Proserpine)]

여인이 석류 하나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짙은 녹색 옷을 입은 여인은 고개를 살짝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풍성한 갈색 머리카락, 붉은 입술,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눈빛. 그런데 석류는 이미 한쪽이 터져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 여인은 누구이고, 왜 석류를 들고 있는 것일까요?

이 작품은 영국의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가 그린 〈프로세르피나(Proserpine)〉입니다.

프로세르피나는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포네를 로마식 이름으로 부른 것입니다. 그녀는 대지와 곡식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이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신 하데스는 늘 어둡고 적막한 지하에 홀로 머물다 지상에서 친구들과 꽃을 꺾으며 놀고 있던 페르세포네에게 한눈에 반하고 맙니다. 하지만 페르세포네의 어머니인 데메테르가 절대 딸을 지하세계로 보내주지 않을 것을 알았던 하데스는, 최고 신이자 페르세포네의 아버지이기도 한 제우스에게 허락을 구합니다. 

제우스는 딸의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하데스에게 그녀를 아내로 주기로 했고, 결국 하데스는 대지에 아름다운 수선화를 피워 놓고 페르세포네가 꽃을 꺾으려 손을 뻗는 순간 땅을 갈라 그녀를 지하세계로 납치해 갔습니다.

딸을 잃은 데메테르는 슬픔에 빠져 대지를 메말라 가게 만들었고, 곡식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제우스가 중재에 나서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돌려보내라 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에서 달콤한 석류 씨앗 몇 알을 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지하세계의 음식을 먹은 자는 완전히 떠날 수 없다"는 신화의 법칙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하세계에 묶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일 년 중 일부는 어머니와 함께 지상에서, 나머지는 하데스와 함께 지하세계에서 보내게 되었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로세티의 그림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신화가 아니라 그림의 모델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제인 모리스(Jane Morris, 1839~1914). 바로 로세티의 친구이자 동료 예술가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의 아내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디자이너이며 미술공예운동의 중심인물입니다. 로세티와 함께 중세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예술가이기도 했습니다. 제인은 1859년 윌리엄 모리스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로세티와 제인 사이에는 깊은 애정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로세티는 그녀를 모델로 수많은 그림을 그렸고, 1871년에는 윌리엄 모리스가 공동 임차에 관여한 옥스퍼드셔의 켈름스콧 매너에서 로세티와 제인이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친구의 아내와 친구의 집에서 함께 지낸 화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아도 결코 간단한 관계가 아닙니다. 문득 영국의 전설적인 아서왕과 그가 가장 신뢰하던 원탁의 최고 기사 랜슬롯, 그리고 왕비 기네비어 사이의 치명적인 불륜 관계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로세티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지하세계에 갇힌 프로세르피나로 그렸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닙니다. 1870년대에 걸쳐 여러 차례 같은 주제로 그림을 제작했습니다.

그림 속 여인은 어두운 궁전의 복도에 서 있습니다. 뒤쪽에는 잠깐 열린 틈으로 지상의 빛이 들어오고, 그녀는 그 빛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손에는 석류가 들려 있습니다. 로세티 자신이 남긴 작품 설명에 따르면, 그 석류는 여인을 지하세계에 묶어 놓은 운명의 과일입니다.

그렇다면 그림 속 지하세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인의 결혼 생활이었을까요, 아니면 로세티와 제인이 마음대로 함께할 수 없었던 현실이었을까요?

이 작품을 두 사람의 관계에 빗대어 해석하는 것은 오래된 미술사적 전통입니다. 물론 제인의 실제 결혼 생활을 지하세계의 감옥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윌리엄 모리스와 제인의 관계, 로세티와 제인의 관계는 모두 그보다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로세티가 하필 친구의 아내를 프로세르피나로 그렸다는 사실은 쉽게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림 속 석류는 붉고, 여인의 입술도 붉습니다. 나머지 화면은 어둡고 차분한 색으로 가득하여 석류와 입술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석류는 달콤한 과일입니다. 그러나 신화 속에서는 그 달콤한 씨앗 몇 알이 한 여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랑도 그런 것일까요?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그 사랑을 선택한 순간 이전의 삶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로세티에게는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는 1860년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엘리자베스 시달과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시달은 1862년 아편 성분이 들어 있는 치료제인 라우다넘(Laudanum)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세티는 아내의 죽음 이후 오랫동안 불안정한 삶을 살았고, 세월이 흘러 제인 모리스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 여인이 바라보는 작은 빛은 과연 누구의 희망이었을까요? 제인의 희망이었을까, 아니면 로세티 자신의 희망이었을까요?

이 그림을 보면서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집니다. 프로세르피나는 석류를 먹은 것을 후회했을까요? 신화의 고대 전승에서 그녀는 하데스에게 납치된 피해자이며, 석류를 먹게 된 과정 역시 자유로운 선택이었다고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로세티가 그린 여인의 표정에는 원망도, 분노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마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오래전에 겪은 사람처럼 말입니다.

문득 이 그림을 보고 나니 앞서 보았던 워터하우스의 〈샬롯의 여인〉이 떠오릅니다. 샬롯의 여인은 거울 속에 비친 남자를 직접 바라보기 위해 탑을 떠났고, 프로세르피나는 석류를 먹은 뒤 지하세계에 묶였습니다. 한 여인은 밖으로 나가다가 죽었고, 다른 여인은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두 여인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바라던 세계가 눈앞에 있지만, 그 세계에 마음대로 머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샬롯의 여인에게는 창문이 있었고, 프로세르피나에게는 석류가 있었습니다. 창문 하나와 석류 한 알. 그것이 두 여인의 운명을 가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다시 바라봅니다. 여인은 아직도 석류를 손에 들고 있습니다. 그 석류를 내려놓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먹어 버린 석류 씨앗은 다시 뱉어 낼 수 없으니까요. 사랑도 때로는 그렇습니다. 이미 지나간 선택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저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사랑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우리를 가두는가?"

사랑은 누군가를 구속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사랑이 없는 차가운 자유보다 사랑이 주는 구속이 더 소중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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