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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동물(생물) : 깍지벌레
우리는 매일 벌레를 바르고 마신다?
스페인 발렌시아 대성당의 주제단을 올려다보았을 때의 그 압도적인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15세기 르네상스의 거장 파올로 데 산 레오카디오와 프란체스코 파가노가 그린 천장화 속,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강렬한 붉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성스러운 악기를 연주하는 열두 천사의 모습은 가히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 찬란하고 거룩한 붉은빛의 화폭을 멍하니 바라보던 순간, 서늘한 사유 하나가 뇌리를 스쳤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룩한 붉은빛을 얻기 위해,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미물의 몸을 으깨어 그 안의 색소를 짜내야만 했다는 잔혹한 진실 때문이었습니다.
성경 역사상 가장 거룩한 신의 성막에 쓰인 홍색 실은 무엇으로 붉게 물들였을까요? 거대한 제물용 소나 양이 아닌, 참나무 가지에 매달린 손톱보다 작은 깍지벌레의 일종인 케르메스(Kermes) 계열이었습니다. 인간이 신을 만나기 위해 짜 올린 거룩한 성막의 덮개와 대제사장의 거룩한 옷에 드리워진 홍색 실은, 실상 수많은 미물의 몸을 갈아 얻어낸 진홍빛 색소였습니다. 성경은 이 보이지 않는 벌레의 죽음을 통해, 숭고함과 잔혹함이 교차하는 서늘한 구속의 비밀을 드러냅니다.
출애굽기 26장 1절에서는 신의 거처인 성막을 지을 때 바쳐져야 할 정결하고 거룩한 재료를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놓아 만들지니"
성경 속에서 홍색은 결코 자연에서 절로 얻어지는 흔한 식물성 물감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성막에 사용되는 홍색을 토라아트 셰니(תּוֹלַעַת שָׁנִי, Tola'at Shani)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토라아트(Tola'at)의 원뜻은 벌레(Worm/Grub)이며, 셰니(Shani)는 진홍색(Scarlet)을 의미합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홍색 실은 벌레에서 추출한 진홍색 염료로 물들인 실을 가리킵니다.
지중해 연안의 케르메스참나무(Kermes oak)에 기생하는 암컷이 성장해 몸에 붉은 색소를 많이 축적했을 때, 사람들은 이를 일일이 손으로 긁어모아 건조한 뒤 빻아서 진홍빛 색소를 얻었습니다. 벌레의 몸을 건조해 빻아 붉은 색소를 얻는 과정 없이는 결코 성막의 성스러운 홍색을 만들어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창문에 매달아 온 가족의 구원을 약속받았던 그 홍색 줄, 그리고 훗날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씌워졌던 기만과 조롱, 그러나 역설적으로 구원의 상징이 된 홍포(붉은 겉옷) 역시 당대 지중해 세계에서 귀하게 쓰이던 이러한 곤충 염료의 붉은 자취와 깊이 닿아 있습니다.
시편 22편 6절은 메시아의 참혹한 비하와 희생을 바로 이 벌레라는 단어를 빌려 통렬하게 고백합니다.
"나는 벌레(토라아트)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사람의 손에 몸이 완전히 부서짐으로써 가장 거룩한 신의 성막을 물들이고, 가장 비참한 인간의 죄를 덮어주는 구속의 예표. 숭고한 가치는 언제나 누군가의 찢김과 희생의 통로를 거쳐야만 완성된다는 역설이 이 작은 벌레의 이름 속에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붉은빛을 향한 인간의 집착은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또 다른 차원으로 번져갔습니다. 고대와 중세 유럽이 지중해의 케르메스로 붉은빛을 냈다면, 16세기 스페인 제국은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이미 현지인들이 이용하던 연지벌레, 즉 코치닐(Dactylopius coccus)을 유럽으로 가져왔습니다.
신대륙의 연지벌레에는 강렬한 붉은색을 내는 카민산(Carminic acid)이 다량 함유되어 있었습니다. 스페인은 금과 은에 필적할 만큼 이 연지벌레를 국가 일급 기밀로 취급하며 유럽 전역에 비싼 값으로 팔아넘겼고, 교황과 추기경의 붉은 법복, 왕족들의 비단, 그리고 당대 화가들의 팔레트 위를 이 새로운 벌레 가루가 붉게 뒤덮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붉은 욕망의 역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성분표에 적힌 카민이나 코치닐 색소라는 매끄러운 단어 뒤에는 건조된 암컷 연지벌레 약 10만~15만 마리로 1kg 정도의 코치닐 원료를 얻을 수 있다는 냉정한 숫자가 숨어 있습니다.
더 서늘한 사실은, 이 기나긴 잔혹함의 역사가 박물관의 유물이나 성경 구절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가장 무해하고 달콤해 보이는 일부 딸기우유와 붉은 디저트, 립스틱을 통해 매일 미물의 몸통에서 추출한 색소를 입에 바르고 삼키며 살아갑니다. 타자의 파괴를 매끄러운 화장품 용기와 가공식품 라벨로 덮어버린 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일상이야말로 영적인 무감각의 단면입니다.
발렌시아 대성당의 제단을 밝히던 파올로 데 산 레오카디오의 천사들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자신을 부숴 붉은 흔적을 남긴 미물들의 역사는, 나라는 존재의 죄를 덮기 위해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를 쏟으셔야 했던 구원자의 참혹한 사랑을 소름 돋도록 환기합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정결한 척 거룩함을 논하지만, 돌아서면 자신의 욕망과 미(美)를 위해 타인의 희생을 무감각하게 짓밟고 삼키는 소비자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화려함 뒤에 숨은 기만을 걷어내고, 우리를 사기 위해 치러진 대가를 직면해야 합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장 20절)
세상이 덧칠해 놓은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내고, 나를 위해 바쳐진 붉은 희생의 본질을 겸허히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의 부서진 육체는 신의 성막을 짓는 가장 정결한 한 올의 실로 다시 짜이게 될 것입니다.
#성경동물 #깍지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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