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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테오반고흐 : 5-3 《첫걸음》- 두 팔 벌린 사랑

[소설 테오반고흐] 불멸의 화가를 완성한 위대한 화상

5-3 《첫걸음》 두 팔 벌린 사랑

1890년 2월, 파리의 가필드 거리 화랑 뒷방. 테오는 남프랑스 생레미 요양원에서 도착한 소포를 풀고 캔버스를 꺼내는 순간, 깊은 정적 속으로 수몰되어 갔다.

소포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간 영혼을 쥐어짜 내던 어둡고 사나운 소용돌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칠흑 같은 병마의 바닥에서 끝내 빚어낸, 햇살의 성체와도 같은 작품 《첫걸음》이었다. 장-프랑수아 밀레의 도상을 자신만의 노란 빛과 푸른 주파수로 다시 빚어낸, 거룩한 비움의 연금술이었다.

캔버스 안에는 시골집 마당의 울타리 너머로 흙묻은 농기구를 내려놓고 무릎을 굽힌 채 두 팔을 벌린 아버지와, 아이의 허리를 감싸며 발걸음을 떼도록 돕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아버지를 향해 작은 두 손을 뻗는 아기가 있었다.

테오는 떨리는 손으로 캔버스 속 아기의 자그마한 발을 쓸어내렸다. 얼마 전 테오는 요한나와의 사이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생레미의 형에게 전했었다. 그리고 형의 이름을 똑같이 따서 아이의 이름을 ‘빈센트 빌렘’이라 지었다고 적어 보냈다.

자신의 정신병과 광기라는 굴레 때문에 가문의 영혼을 더럽혔다고 자책하던 형에게, 그 소식은 태초의 빛과 같은 각성이었으리라. 형이 그림과 함께 동봉해 보낸 편지는 단순한 축하를 넘어, 한 존재가 자신을 온전히 비워 올리는 거룩한 기도문이었다.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1890년 2월 3일 경, 편지 855)] 

"사랑하는 테오에게, 마침내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받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내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니... 나같이 미쳐버린 화가의 이름을 가진 그 작은 생명이 부디 건강하고 복되게 자라기를 밤마다 기도한단다.

요양원의 고독한 병실에서 나는 밀레의 《첫걸음》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너희 부부와 새로 태어난 작은 빈센트를 생각하며 붓을 칠했지. 흙냄새 나는 마당에서 아이가 첫발을 떼고, 아버지가 두 팔을 벌려 그 아이를 맞이하는 그 순수한 모습을 캔버스에 담는 동안, 내 마음속의 지독한 환각과 고통도 잠시 쉬어가는 듯했단다.

이 그림은 너와 요한나, 그리고 내 가여운 조카 빈센트에게 바치는 내 영혼의 선물이다. 이 작은 아이가 세상에 첫발을 내딛듯, 나 역시 캔버스 위에서 다시 삶을 향한 첫걸음을 떼어보려 한다."

테오는 형의 편지를 가슴에 꽉 안은 채 무릎을 꿇었다. 그림 속 아버지는 생계를 지탱하던 육중한 삽을 바닥에 놓아버렸다. 손에 쥐고 있던 마지막 도구마저 비워낸 뒤에야, 비로소 아기를 받을 '공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기를 억지로 끌어당기거나 낚아채지 않는다. 그저 무릎을 꿇어 스스로를 낮은 곳으로 낮추고, 가슴 앞을 텅 비워둘 뿐이다. 아이가 스스로 걸어 들어올 수 있도록,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비워 거룩한 방주를 완성한 것이다.

"무언가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완벽히 비워내야 한다."

누에가 비단실을 짜내고 제 속을 비워 마침내 숭고한 번데기가 되듯, 그림 속 아버지는 스스로의 힘과 탐욕을 비워내어 아기를 받쳐주는 순수한 그릇이 되었다.

그 순간, 테오의 눈에 강렬한 자책감과 오열이 터져 나왔다. 형은 새로 태어난 조카의 첫걸음을 축복하기 위해 이 붓을 들었다고 했지만, 테오는 캔버스 너머에 숨겨진 형의 처절한 신학을 읽어내고야 말았다.

평생 세상 어디에서도 따뜻한 안식처를 얻지 못했던 사람. 미치광이라 손가락질받으며 쫓겨나고, 차가운 병실 창살 안에 갇혀 고독하게 시들어 가던 형.

형은 조카만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저 그림 속 아기처럼, 자신 또한 모든 것을 비워낸 온전한 사랑의 품으로 뛰어들길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안아줄 '비어 있는 팔'을 찾아 한 생애를 비틀거리며 방랑했던 것이다.


[ Vincent van Gogh - First Steps, after Millet (1890) ]

"형... 형은 태어날 아기의 첫걸음을 축복하며 붓을 들었다고 했지만..."

테오는 가슴이 미어터지는 통곡을 억누르며 캔버스 속 아버지가 벌린 텅 빈 팔의 공간을 손바닥으로 가만히 감싸 안았다.

"사실은 형 자신이 저 아기처럼... 모든 소유를 비워낸 하나님의 거룩한 품으로, 그리고 동생인 내 품으로 달려들고 싶었던 거였구나. 지독한 가난과 병마에 짓눌려 넘어질 때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가슴을 비우고 저렇게 온전히 받아내 주기를 그토록 갈망했던 거였어..."

파리의 골방 바닥에 관자놀이를 찧으며 테오는 소리 내어 울었다. 형이 겪어낸 그 모진 세월 동안, 동생인 자신조차 세상의 계산과 조바심을 비워내지 못한 채 형에게 완전한 안식의 공간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가슴을 베어냈다.

"형에게 필요한 건 내 돈 몇 푼이나 세상의 평가가 아니었어... 그저 저 마당의 아버지처럼, 손에 쥐었던 모든 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두 팔을 활짝 벌려 '빈센트, 수고했다. 이제 네 고통을 비우고 이리 오렴' 하고 안아주는 텅 빈 체온이었는데..."

테오는 두 손을 모아 캔버스 아래 바닥에 완전히 엎드렸다. 생레미의 차가운 병실에서 조카의 탄생 소식을 들으며 제 몸을 태워 붓을 칠했을 형의 외로운 어깨를 떠올리며, 테오는 숭고한 통곡의 기도를 올려 드렸다.

"하나님... 당신의 가여운 종, 제 형 빈센트의 이 순수한 번제를 들어주소서. 세상은 제 형에게 돌을 던지고 감옥 같은 병실에 가두었지만, 형은 자신을 버린 세상을 향해 스스로를 온전히 비워낸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랑의 지침서를 남겼습니다.

아기의 작은 첫걸음을 위해 온 영혼의 진액을 쥐어짜 내던 불쌍한 내 형을 기억하소서. 손에 쥔 것을 놓아버린 캔버스 속 저 아버지의 비워진 팔처럼, 이제는 당신께서 친히 거룩한 두 팔을 펼쳐 주소서.

평생 세상의 바닥에서 비틀거리며 넘어지던 제 형 빈센트가, 이제는 모든 육체와 고통의 짐을 훌훌 비워버리고 당신의 따스한 품으로 마음껏 달려가 푹 쉴 수 있도록... 저 아이의 첫걸음보다 더 찬란한 구원의 주파수로 제 형의 가엾은 영혼을 온전히 안아주소서..."


[작품 노트] 

《첫걸음 (First Steps, after Millet)》 

제작 시기: 1890년 1월 (남프랑스 생레미 요양원에서 조카 빈센트의 탄생을 축복하며 제작)

 소장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소설 테오반고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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