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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동물 #빈센트반고흐 #까마귀가나는밀밭 #엘리야 #까마귀파이 #PROJECT2037
그림 이야기 : 까마귀 - 신의 섭리와 불안의 경계
얼마 전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테오 반 고흐』를 구상하며, 고흐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황량한 밀밭 위에 칠흑 같은 날갯짓을 퍼뜨리던 까마귀 떼의 그림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흔히 사람들은 까마귀를 불길함과 죽음, 혹은 음침한 어둠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고흐의 캔버스 위에서, 그리고 인류의 오래된 문헌과 식문화 속에서 까마귀가 지녀온 궤적을 짚어보면 이 검은 새는 생각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정교한 메시지를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흔히 고흐의 마지막 불안과 고독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검은 날갯짓은 단순한 절망이라기보다, 요동치는 노란 밀밭과 불길하게 뒤엉킨 푸른 하늘이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 선 한 인간의 흔들리는 내면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영원을 향해 날아가는 영혼의 비명이자, 세속의 모든 소음을 뚫고 나아가는 공명처럼 읽히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 - 까마귀가 나는 밀밭 (Wheatfield with Crows, 1890)]
이 어둡고 우울해 보이는 새는 성경 역사 속에서도 인간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등장한다.
노아의 방주 시절, 대홍수가 끝난 뒤 노아가 가장 먼저 창밖으로 보냈던 새가 바로 까마귀였다(창세기 8장). 그러나 구약 성경 열왕기상 17장으로 넘어가면, 율법상 부정한 새로 분류되어 외면받던 이 검은 새가 성경 역사상 가장 기적적인 '하나님의 배달부'로 반전을 일으킨다.
아합왕의 타락과 지독한 기근 속에서 그리냇가에 홀로 숨어 절망하던 선지자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정결한 천사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귀한 존재가 아닌 뜻밖에도 까마귀들을 보내신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 열왕기상 17장 6절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정결하지 못하다 손가락질받던 까마귀가, 굶주려 죽어가던 신의 선지자를 살려내는 완벽한 양식 공급자가 된 것이다. 성경에서 까마귀는 인간의 얕은 편견과 선입견을 깨부수며, 가장 비천하다고 여겨지는 피조물을 통해서도 완벽한 생명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상징한다.
[피터 브뤼겔 등 북유럽 명화 속 까마귀 도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까마귀의 상징은 흥미로운 양극단을 달린다. 북유럽 신화에서 까마귀는 최고신 오딘의 양 어깨에 앉아 세상을 관찰하는 지혜와 기억(후긴과 무닌)의 상징이었다. 고대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 역시 태양의 기운을 담은 거룩한 신수(神獸)였으며, 동아시아에서는 늙은 어미를 봉양한다는 효(孝)의 상징으로도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까마귀의 검은 색채와 울음소리는 '죽음'과 '불길함'이라는 단편적인 프레임에 갇혀 흉조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이러한 상징의 극단은 미식과 구황의 역사에서도 나타난다. 유럽의 일부 지역과 문학 속에서 까마귀 파이(Crow Pie)는 극심한 궁핍과 기근의 기억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등장한다. 굴욕과 치욕을 무릅쓰고 억지로 먹어야 했던 구황의 기억이 담긴 음식이었다. 한국의 《동의보감》 역시 까마귀 고기(慈烏)를 풍을 고치고 경련을 가라앉히는 약용으로 일부 기록했을 뿐, 일상의 식탁에 올리는 반가운 양식은 아니었다.
[공작새의 화려함과 까마귀의 검은 정적]
발렌시아 비베로스 정원에서 만났던 공작새의 화려한 코발트블루빛 깃털을 떠올리면, 인간은 얼마나 쉽게 눈에 보이는 빛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지 생각하게 된다. 세속의 사치와 바니타스(Vanitas, 허무)를 대변하는 공작의 깃털에 현혹되어 영혼의 기근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고흐의 밀밭 위를 가르는 검은 까마귀는 묻는다.
당신이 불길하고 비천하다고 외면했던 그 검은 날개 속에, 어쩌면 당신의 주린 영혼을 살릴 신의 정교한 떡과 고기가 들려있지는 않은지.
세상이 그어놓은 겉모습의 화려함과 어둠이라는 가짜 경계선을 내려놓고, 빈 들판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는 은밀한 손길 앞에 묵묵히 부서진 본모습을 꺼내놓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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