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동물 : 누에 (비단) 우리는 누에를 먹고 마시고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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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벌레를 아낌없이 파헤쳐 먹고, 마시고, 입는다.

나는 어릴 적 아주 깊은 시골에 살았다. 덕분에 내 또래는 물론이고 나보다 열 살쯤 많은 사람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경험해 보았을 만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바로 누에를 직접 키우고 실을 잣는 현장을 온몸으로 겪어낸 일이다. 뽕잎을 베어다가 나르는 고된 일은 내가 직접 도맡았지만, 실을 잣는 것은 오랜 숙련과 노하우가 필요한 작업이었기에 어머니가 직접 하셨고 어린 나는 그 모습을 늘 곁에서 경이롭게 지켜보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만 해도 동네에서는 뽕나무를 재배하며 누에를 많이 쳤다.

누에는 어릴 때는 손이 별로 가지 않지만, 마지막 령(齡)이 될 때쯤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마지막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엄청난 양의 뽕잎을 몰아서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그렇게 폭풍 같은 식사를 마치면, 어느 순간 누에는 뽕잎 먹기를 중단하고 몸빛을 투명하게 바꾸기 시작한다. 고치를 지을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그때가 되면 서둘러 족잠(고치방)을 마련해 주고 누에를 한 마리씩 그 방에 넣어 주어야 하는데, 이 역시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방에 들어간 누에가 고치를 다 짓고 그 안에서 번데기가 되면, 보통은 그 누에고치를 정부에 수매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의 경험은 단순히 누에를 키워 수매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누에치기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실을 뽑는 일까지 집에서 직접 해냈다. 해마다 하지는 못했어도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풍경이 있다. 밤이 깊어지면 어머니는 가마솥에 누에고치를 넣고 푹 삶아내셨다. 그리고 뜨겁게 삶아진 누에고치를 대야에 담아다 놓으시면, 실마리를 한올 한올 정교하게 잡아 올려 물레에 걸고 실을 뽑으셨다.

실이 모두 풀려나가기까지는 몇 시간씩 걸리는 지루한 과정이었지만, 나는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끈질기게 기다렸다. 실이 다 풀리고 나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번데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마음이 급해 실이 채 다 풀리기도 전에 성급하게 손을 댔다가 어머니께 혼이 나면서도, 대야에서 막 건져낸 뜨끈한 번데기를 입에 넣었을 때 퍼지던 그 고소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도 유명 관광지에 갔을 때 노점에서 번데기를 파는 모습을 보면, 옛 추억에 이끌려 꼭 한 컵씩 사 먹곤 한다.

누에는 이렇듯 번데기로 우리에게 먹거리를 줄 뿐만 아니라, 고도수의 소주에 담가 만드는 '누에주'가 되어 마시는 약재가 되기도 했다. 어른들은 몸에 굉장히 귀한 것이라며 깊은 곳에 숨겨두셨다가, 아버지가 드시거나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만 꺼내놓으셨다. 비록 집에서 재배하진 못했지만 귀한 버섯 요리 전문점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동충하초 역시 이 누에의 몸을 빌려 피어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몸에 착 감기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옷감인 비단 또한 이 작은 누에의 입에서 시작된다.

누에가 몸을 바꾸며 내어준 고소한 번데기의 속살과 동충하초는 인간을 위해 아낌없이 바친 마지막 양식이며, 투명한 소주 속에서 푸르게 우러난 누에주는 막힌 혈맥을 뚫기 위해 온몸의 진액을 토해낸 결과물이다. 그리고 뜨거운 물속에서 삶아진 뒤 수면 위로 건져 올려진 단 한 가닥의 가는 선은, 인간의 수치를 가려주는 가장 부드러운 하늘의 옷감, 비단(Meshi)이 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며, 내 몸을 입어라."

2000년 전 십자가 위에서 흘러내린 신의 음성이, 대지 위 가장 낮은 곳을 기어 다니던 한 마리 벌레의 일생을 통해 이토록 정교하고 서글프게 재현된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우화(羽化)의 날개를 스스로 꺾고 가마솥의 끓는 물속으로 기꺼이 가라앉은 존재.

우리가 비단을 몸에 걸치고, 번데기를 씹으며, 동충하초를 삼키고 누에주를 목구멍으로 넘길 때—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성스러운 희생 제물의 성찬식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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