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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야기 : 스튜어트 워커의 Composition no. 61
짧았던 삶이 남긴 유려한 파동: 36세에 스러진 화가가 건네는 위로
요즘 들어 부쩍 건강이 염려되고, 특히 수면의 질이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보통 같으면 연말 즈음으로 미뤘을 건강검진이었지만, 이번 휴가 기간을 이용해 급히 일정을 잡고 검진센터를 찾았다. 이번에는 머리 쪽도 세밀히 살피고자 MRI와 MRA 검사까지 함께 진행했다. 아직 전체 결과가 다 나온 것은 아니지만, 우선적으로 확인된 일부 결과는 다행히 그리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찾는 이 검진센터는 단순히 병원이라는 차가운 공간을 넘어, 늘 마음의 평안을 주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센터 곳곳에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꽃그림들이 화사하게 걸려 있는데, 이 그림들은 모두 검진센터 대표님의 어머님께서 직접 그리신 작품들이라고 한다. 워낙 작품성이 뛰어나고 따스한 온기가 느껴져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는 그림들이다. 그래서 내게 건강검진을 받는 날은 단순히 검사만 받는 날이 아니라, 정갈한 미술관에 그림을 감상하러 가는 날이기도 해서 갈 때마다 괜히 설레고 기대가 된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는 꽃그림들 외에도 또 다른 뜻밖의 선물 같은 작품을 마주쳤다. 병원의 안내 사항이나 장비, 시스템을 소개하는 스크린에 단순히 알림글만 떠 있는 것이 아니라,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생소하지만 매력적인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번갈아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이미지들 사이에서 유독 내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그림이 하나 있어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딱 보아도 인간의 부드러운 인체 곡선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추상화였다. 화면을 타고 흐르는 선의 궤적은 놀라울 정도로 유려했고, 감싸 안듯 어우러진 색채의 조화는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들 만큼 아름다웠다.
화면 하단에 적힌 정보로 눈을 돌렸다가 이내 크게 놀라고 말았다. 'Stuart Walker (American ; 1904 - 1940)'라는 이름 옆의 숫자는 작품의 제작 연도가 아닌, 작가의 생몰연도였다. 서른여섯. 겨우 서른여섯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화가였던 것이다. 게다가 화면 속 작품 《Composition no. 61》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1년 전인 1939년에 남긴 유작이나 다름없는 그림이었다.
궁금함에 그의 작품 세계와 삶의 궤적을 조금 더 찾아보았다. 스튜어트 워커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늘 병마와 싸우면서도, 영적이고 유려한 곡선의 추상 세계를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해 혼신을 다했던 작가였다. 그는 오랫동안 심장 관련 질환을 앓아왔고, 결국 그 건강 문제로 인해 1940년 겨우 서른여섯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스튜어트 워커, Composition no. 39 (1938)]
1938년에 작성된 또 다른 대표작 《Composition No. 39》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장의 고통과 병마 속에서도 그가 그려낸 화면은 절망이 아닌, 인체의 부드러운 곡선과 무용수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유려한 파동, 그리고 온화한 색면의 조합이었다. 쇠약해지는 육체 안에서 이토록 맑고 깊은 영혼의 조화를 빚어냈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졌다. 만약 그에게 조금만 더 건강과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그가 세상에 남겼을 아름다운 파동들은 얼마나 더 풍성했을까 하는 탄식이 이어졌다.
검진 결과에 대한 긴장감과 내 몸의 안위를 걱정하며 찾았던 공간에서, 평생 심장 질환이라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아름다운 예술의 빛깔을 잃지 않았던 한 화가의 유산을 마주했다. 비록 작가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유려한 선과 색채는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어느 검진센터의 스크린 위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지친 이들의 마음을 다정하게 보듬어주고 있었다.
삶의 길이나 건강의 불확실성은 우리가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주어진 삶의 순간마다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아름다움을 남기며 살아갈 것인가는 결국 우리의 선택일 것이다. 건강에 대한 염려로 찾아온 병원에서, 고통 속에서도 찬란한 빛을 남기고 간 작가의 삶과 마주하며 지금 내게 주어진 보통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스튜어트 워커의 유려한 곡선이 건네준 따뜻한 위로를 품고, 더욱 내 몸을 아끼며 삶의 결을 다정하게 채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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