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동물, 그림 이야기 : 공작새, 미술관 캔버스에서 나와 정원을 거니는 푸른 빛의 우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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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야기 : 미술관 캔버스에서 나와 정원을 거니는 푸른 빛의 우아함

[발렌시아 미술관 소장, 풍경 속의 공작새 (Pavo real en un paisaje)]

오랜만에 국내 대형마트 식품코너를 돌다 보니 PEACOCK이란 브랜드가 눈에 띈다. 그 이름의 중의성을 감안핳 때 참 절묘한 네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스페인 발렌시아에서의 공작새 본 경험이 떠올라 재빨리 몇자 적어 본다.

스페인 발렌시아에 머물며 좋아하는 호아킨 소로야와 무뇨스 데그레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발렌시아 미술관(Museu de Belles Arts de València)을 찾았다. 거장의 고전 성화들과 다채로운 스페인 미술품 사이를 거닐던 중, 유독 고풍스러운 금빛 액자 속에서 눈부신 코발트블루빛을 발산하는 정물·동물화 한 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캔버스 바위 위에 도도하게 서서 뒤를 돌아보는 공작새의 우아한 자태와 길게 늘어진 깃털의 결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서양 미술사, 그리고 인류의 오래된 문헌 속에서 공작새가 지녀온 다층적인 상징들이 떠올랐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공작은 여신 헤라(주노)의 신성한 파수꾼이자 상징이었고, 고기 살점이 잘 썩지 않는다는 고대 미신 덕분에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영생)'을 상징하는 희귀한 도상으로 쓰였다. 그러나 17~18세기 유럽 궁정 미술과 바로크 시대로 넘어오면서 공작의 화려한 깃털은 세속적인 '부'와 '권력', 그리고 동시에 경계해야 할 '오만(Pride)'과 '허영(Vanity)'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이 화려한 새가 성경 속에도 직접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구약 성경 열왕기상과 역대하에는 솔로몬 왕의 태평성대와 극에 달했던 부귀영화를 묘사할 때 공작새가 언급된다.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 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 — 열왕기상 10장 22절

성경에서 공작은 솔로몬 시대의 압도적인 무역과 풍요, 그리고 이국적이고 화려한 왕권의 영광을 상징하는 대표적 피조물로 묘사된다. 동시에 훗날 솔로몬의 타락과 연결되며 '신성한 지혜를 넘어선 인간적 사치와 허영'을 경계하는 복선적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비베로스 정원(Jardines del Real)에서 만난 실제 공작새]

[화려하게 깃털을 펼치며 거니는 비베로스 정원의 공작새]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비베로스 정원(Jardines del Real)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참으로 놀랍고도 유쾌한 경험을 했다. 방금 전 미술관 액자 속에서 보았던 그 고귀한 공작새들이 흙길 위를 유유히 거닐며 깃털을 화려하게 펄럭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캔버스 속 고전 명화의 한 장면이 현실의 정원 풍경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듯한 그 절묘한 연출과 센스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예술과 일상,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생명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공명하는 순간이었다.

[피터 클라스, 공작새 파이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a Peacock Pie)(1627)]

공작새와 관련된 서양 미술사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이고 인상적인 명작을 꼽으라면 단연 네덜란드 바로크 정물화의 거장 피터 클라스(Pieter Claesz)의 《공작새 파이가 있는 정물》일 것이다.

화려하게 차려진 식탁 위에 실제 공작새의 머리와 화려한 깃털 장식이 그대로 올려진 대형 파이가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연회에서는 부와 최고급 격식을 과시하기 위해 실제 공작 깃털로 장식한 파이를 식탁에 올리곤 했다. 쓰러진 잔, 깎여나간 레몬 껍질, 풍성한 과일과 함께 배치된 이 공작새 정물은 솔로몬의 영화처럼 세속의 사치와 부귀영화도 결국 덧없이 사라진다는 '바니타스(Vanitas, 허무)'의 메시지를 극적으로 전달한다.

그러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려한 깃털을 지닌 새들은 늘 귀족적 사치와 권력의 표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왕과 귀족들이 꿩 사냥을 즐겼고, 장끼의 화려한 깃털은 고귀함의 상징이었다. 앤소니 홉킨스 주연의 영화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의 시작부에서도 영국 귀족들이 사냥해 온 화려한 수꿩의 모습이 주방에 걸려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비단 공작새뿐만 아니라 이렇게 화려한 야생 조류를 연회에 올리는 문화가 서양 귀족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발렌시아 미술관의 액자 속 푸른 깃털에서 시작해, 햇살 가득한 비베로스 정원을 자유롭게 거니는 살아있는 공작새의 움직임, 그리고 캔버스 위에 영원히 멈춰 선 정물화 속 상징들까지. 캔버스와 현실을 넘나들며 마주한 이 우아한 새의 잔상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깊은 예술적 영감을 더해 줄 것 같다. 

댓글

  1. 솔로몬의 지혜만 알고 있었는데 지혜롭지만은 않으셨나보다.

    비베로스 정원의 공작의 파랑색이 창 곱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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