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2037 1권 : 4장 론하의 수태, 황금눈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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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2037 1권 : 발렌시아의 인장

1권 제4장: 론하의 수태,  황금눈의 연대기

[론하 데라세다 지붕 남자천사 형상의 가고일]


스페인 발렌시아의 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론하 데 라 세다(Lonja de la Seda)’의 고딕 양식 처마 아래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공포가 서린 조각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관광객들은 화려한 비단 거래소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도시의 노인들은 특정 외벽 모퉁이의 두 가고일 근처에는 절대로 서지 말라고 경고한다.

한쪽 모퉁이에는 한 손으로 성기를 잡고 항아리에 발기된 성기를 밀어 넣고 있는 ‘배설하는 사내’가, 다른 쪽 모퉁이에는 희열에 젖은 표정으로 제 성기를 벌리고 있는 ‘수태하는 여자’가 있다. 이들은 타락천사가 지상에 자신의 군대를 번식시키기 위해 설치한 ‘살아있는 자궁과 씨받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평범한 빗물은 가고일의 몸을 타고 흘러 사내의 ‘항아리’ 속으로 고여 든다. 항아리 내벽에 새겨진 악마적 마법진과 석상의 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릿한 정기가 뒤섞이는 순간, 빗물은 끈적하고 찬란한 ‘황금비(Golden Rain)’로 탈바꿈한다.

이 저주가 완성되는 시점은 가을날 밤, 가장 큰 보름달이 뜬 직후 달이 그믐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기 시작할 때다. 기우는 달의 불길한 인력이 항아리 속 액체를 역류시키면, 사내 가고일은 항아리 주둥이를 통해 황금빛 줄기를 광장에 배설하듯 쏟아낸다. 광장 반대편의 여성 가고일은 지면을 타고 흐르는 그 부정한 액체를 빨아들인다.

이 비를 맞거나 비에 젖은 자와 관계를 맺은 여인들은 밤마다 같은 꿈을 꾼다. 자궁을 채우는 황금빛 물, 그리고 온몸을 지배하는 기괴한 정기. 여인들의 몸에는 동공 없는 ‘황금 눈의 아이’가 자리 잡는다.

1517년 9월, 보름달이 지고 달이 기울던 밤. 발렌시아의 산파 17명은 동시에 진통을 시작한 여인들의 방에서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터진 양수는 금가루를 뿌린 듯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아이들은 울지도, 눈을 뜨지도 않은 채 오직 빗물만을 마셨으며 체온은 물처럼 차가웠다.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때 나타난 것은 눈동자가 아닌, 안구를 채운 서늘한 황금빛 액체뿐이었다.

9월 27일 정오, 하늘이 찢어지듯 번개가 치고 투리아 강이 사자처럼 포효하며 범람했다. 그 순간, 17명의 갓난아이들이 동시에 황금 눈을 떴다.

아이들의 살갗은 물에 불린 종이처럼 부드럽게 변하더니 어머니의 품을 빠져나와 빗물 속으로 흘러갔다. 아이들을 붙잡으려던 어머니들의 손가락 사이로 매끄럽게 미끄러져 내린 아이들은 범람한 투리아 강으로 향했다. 강물과 만나는 순간 거대한 황금빛 소용돌이가 일었고, 일곱 살 남짓의 모습으로 자라난 아이들은 완벽한 발렌시아 방언으로 마지막 말을 남긴 채 강물 속으로 녹아들었다.

"어머니..."

17명의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440년의 주기를 기다리며 강바닥 진흙 속에서 가사(假死) 상태로 잠든 것이었다.

440년이 흐른 1957년 10월 14일, 투리아 강은 다시 한번 미쳐서 도시를 덮쳤다. 거무죽죽한 흙탕물이 도시를 삼킬 때, 거대하게 범람하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17개의 황금빛 줄기가 목격되었다.

강바닥에서 떠오른 이들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스물일곱 살 남짓의 성인이 된 17명의 남녀는 물속에서도 머리카락을 춤추듯 늘어뜨린 채, 피부에서 은은한 금빛 광채를 내뿜으며 물 위를 걸어 나왔다. 홍수의 혼란을 틈타 구조된 시민들 사이에 섞여 들어간 그들은 론하 광장의 가고일 항아리로 향해 자신의 손목을 물어뜯고 황금빛 피를 바쳤다.

당시 광장에서 이를 목격한 이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동공이 없었다. 정제된 금괴를 안구에 박아 넣은 듯한 그 눈과 마주친 순간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들은 구조를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었다. 오래전 잃어버린 도시를 되찾으러 온 주인 같은 표정이었다."

1957년의 대홍수 이후, '황금 눈의 후예'들은 발렌시아의 정계와 재계, 거대 금융가 속으로 침투했다. 그 중심에는 100세를 넘긴 그림자 권력자 ‘세뇨르 아우로(Auro)’가 있었다.

그는 늘 짙은 선글라스로 동공 없는 황금 눈을 가린 채, 저택 지하 수조에 가둬둔 황금비 액체에 몸을 담가 440년의 세월을 견디며 노화를 막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440년의 주기가 다차기 전 인위적인 대홍수를 일으켜 강바닥에 남은 형제들을 모두 깨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번식을 막는 유일한 가문이 있었다. 대대로 론하의 가고일을 감시해 온 석공 가문 '델 시엘로'의 마지막 후예 ‘가브리엘’이다.

가고일을 완전히 파괴하면 안에 응축된 악의 기운이 터져 나와 도시가 즉시 멸망하기에, 가브리엘은 보름달이 지나는 밤마다 밧줄 하나에 의지해 론하의 외벽에 매달렸다. 그는 성 성스러운 은과 천사의 뼛가루로 제련된 정(Chisel)을 들고, 자신의 피를 바른 '침묵의 쐐기'를 가고일의 눈과 항아리에 박아 넣으며 악마의 공명을 지연시켰다.

어느 비 내리는 가을밤, 보름달이 지나고 달이 눈썹처럼 가늘어지던 날. 세뇨르 아우로 일족이 론하의 가고일을 강제로 결합시키려 공작을 벌이자, 가브리엘은 지붕 위에서 일생일대의 타격을 감행했다.

가고일의 비명소리가 천둥처럼 발렌시아 전역에 울려 퍼지고, 투리아 강바닥의 망령들이 요동쳤다. 가브리엘은 가문의 피가 흐르는 정날로 남녀 가고일의 정중앙을 타격하여 저주의 완성을 다시 한번 억눌렀다.

다음 날 아침, 론하 광장에는 정체불명의 황금빛 모래만 가득 쌓여 있었고 세뇨르 아우로는 자취를 감추었다.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공방에 돌아온 가브리엘은 먼지 쌓인 일지 끝에 최후의 경고를 남겼다.

"우리는 시간을 조금 더 벌었을 뿐이다. 론하의 가고일을 파괴하지 마라. 그것은 덫인 동시에 봉인이다. 만약 누군가 탐욕에 눈이 멀어 석상의 쐐기를 뽑는 날, 발렌시아는 다시 한번 찬란하고 더러운 황금빛 양수 속에 잠기게 되리라."

밤에 발렌시아를 여행한다면, 론하 광장의 가고일을 조심하라. 비가 내리는 보름달 밤, 항아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황금빛을 띤다면 당신은 이미 다음 주기를 위한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투리아 강가에서 누군가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절대로 돌아보지 마라. 그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당신의 아이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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