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2037] 1권 발렌시아의 인장
사람들은 여전히 물고기가 바싸다고 한다
모든 방랑의 시작이 되었던 첫사랑 이사벨라의 유혹 같은 기억과, 마지막 방주의 마침표가 되어준 아내 올리비아의 얼굴이 교차하는 길고 시린 여정의 한복판. 세바스티안은 홀리듯 발렌시아 미술관의 어두운 전시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과거에는 숫자가 적힌 도면과 발굴현장의 사진만을 들여다보던 무미건조한 고고학도에 불과했던 그였다. 하지만 발렌시아 대성당에서 마주했던 거룩한 성배의 침묵과 라 혼하의 기괴한 가고일들은 그의 견고하던 이성의 벽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그리고 지금,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호아킨 소로야가 포착한, 잔인하도록 눈부신 빛의 캔버스 앞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물고기가 비싸다고 한다!>
세바스티안의 시선이 사각의 프레임 안으로 거칠게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전시장 내부의 웅성거림은 가라앉고 캔버스의 두터운 유채 물감 층을 뚫고 솟구치는 거대한 백색 소음과 함께, 그림 이면에 박제되어 있던 어두운 선창의 시간과 목소리들이 세바스티안의 영혼 안으로 그대로 흘러들어왔다.
배 안은 늘 낮보다 먼저 밤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둥근 해치로 스며드는 빛은 바다의 상태에 따라 색을 바꿨지만, 선창의 공기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젖은 나무, 소금, 피, 생선 비늘의 냄새는 하루치가 아니라 여러 계절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젊은 어부가 쓰러졌을 때, 처음에는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다에서는 사람이 넘어지고, 부딪히고, 잠시 정신을 잃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는 갈고리에 옆구리를 찔렸고, 비틀거리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피가 났지만, 처음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좀 쉬게 둬.” 누군가 말했다. 그는 숨을 쉬고 있었다. 거칠고 불규칙했지만, 살아 있는 숨이었다. 두 노어부가 곁에 붙어 앉았다. 한 사람은 손으로 상처를 눌렀고, 다른 한 사람은 천을 적셔 피를 닦아냈다. 그들의 손놀림은 익숙했다. 너무 익숙해서, 이 장면의 끝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젊은 어부의 눈이 잠시 떠졌다. 초점은 없었다. 그는 입술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아이들이… 오늘은…” 말은 문장이 되지 못했다. 잠시 후, 그는 힘없이 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값이 좀 나가겠지.” 그 말은 누구에게 한 것도 아니었고, 대답을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 선장은 해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내려오지 않았다. 배의 균형을 확인했고, 돛과 바람을 살폈다. 할 일이 많다는 것은, 선택을 미룰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려오면 확인해야 할 것이 생긴다. 확인은 결정으로 이어진다. 그는 아직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배는 항구로 향했다. 그 사이 생선은 계속 올라왔다. 은빛 몸들이 상자 안에 겹겹이 쌓였다. 얼음이 덮였고, 밧줄이 묶였다. 비늘이 반사한 빛이 선창 바닥을 훑었고, 그 빛은 젊은 어부의 가슴 위에도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숨은 점점 얕아졌다. 두 노어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리기 위한 손이 아니라, 지켜보는 손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켜본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끝까지 함께 있다는 의미였다. 항구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젊은 어부의 숨은 멈췄다. 아무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갔네.” 그 말은 확인이라기보다, 절차의 시작이었다. 선장은 그제야 선창으로 내려왔다. 그는 젊은 어부의 얼굴을 한 번 보고, 고개를 돌렸다. 표정에는 놀람도 슬픔도 없었다. 다만 계산이 있었다. 언제 알릴 것인가, 무엇을 먼저 처리할 것인가. “덮어.” 돛 조각이 몸 위에 얹혔다. 얼굴은 완전히 가리지 않았다. 항구에 닿으면 더 많은 것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이기 때문이다. 항구는 늘 시끄러웠다. 죽음은 그 소음 속에서 쉽게 묻혔다. 생선은 곧장 경매장으로 옮겨졌다.
경매사의 시점 경매사는 생선을 죽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미 죽음은 끝난 상태이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날 들어온 물건은 좋았다. 비늘이 살아 있었고, 눈이 맑았으며, 살이 단단했다. 그는 손으로 눌러 탄력을 확인했다. 시작가는 조금 높게 잡아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어선을 힐끗 보았다. 선장의 얼굴, 선원들의 수. 한 명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그 사실을 의미로 연결하지는 않았다. 의미를 연결하는 순간, 가격은 흔들린다. “자, 오늘 첫 물건입니다.” 목소리는 일정했다. 손짓이 올라가고, 숫자가 따라붙었다. “비싸네.” 누군가 중얼거렸다. 경매사는 들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그 말은 늘 나왔다. 언제나 나왔고, 언제나 사라졌다. 비싸다는 말은 가격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기대에 대한 불평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낙찰. 손이 내려가고, 숫자가 확정된다. 그는 기록했다. 날짜, 품목, 수량, 단가. 그 종이에는 사람도, 피도 없었다. 경매가 끝난 뒤, 선장은 장부를 펼쳤다. 어획량, 판매가, 연료비, 선원 몫. 젊은 어부의 이름은 없었다. 그는 이미 사고가 된 사람이었고, 사고는 다른 서류에 적히는 것이었다. 그날 밤, 그의 집에는 늦게 소식이 전해졌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울음은 나중으로 미뤘다. 먼저 계산해야 할 것이 있었다. 빚, 장례, 아이들. “바다가 데려갔네.”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은 대화의 끝이었다. 다음 날, 공무원이 왔다. “언제였습니까?” 선장은 잠시 생각했다. “어젯밤입니다.” 공무원은 적었다. 바다는 언제나 충분한 이유였다. 신문에는 짧은 기사가 실렸다. 어선 내 사고로 선원 1명 사망. 그 옆에는 어시장 시세표가 있었다. 전주 대비 소폭 상승.
마지막 손님의 시점 식당은 붐볐다. 접시들이 오갔고, 생선 냄새가 실내에 퍼졌다. 그는 포크로 살을 떼어 입에 넣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계산서를 보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비싸.” 그는 가시를 접시에 밀어두고 일어섰다. 팁은 남기지 않았다. 계산은 정확했다. 그는 손해 보지 않았다. 그가 모르는 이름 하나가 이 정확함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바다는 조용했다. 그는 이미 다음 식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말한다. 생선이 비싸다고.
그 모든 냉혹한 세상의 소음들이 세바스티안의 뇌리를 강타하며 가라앉았다. 종이 장부와 계산서 위에는 사람도, 피도, 소년의 이름도 없었다. 식당 안에서 접시 위의 가시를 밀어내며 뱉어내던 고고한 불평들과, 어두운 갑판 아래서 목숨과 맞바꿔 잡아 올린 도미들이 비명을 지르며 꼬리를 치는 은빛 비늘의 파르르한 금속성 공명만이 백색 소음이 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인간의 육체란 결국 신의 말씀과 주파수를 담는 거룩한 그릇이라 믿으며 이 거대한 방주의 비밀을 추적해 왔건만, 정작 현실이라는 차가운 바다 위에서 그 그릇을 지키기 위해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하는 인간들의 처절한 숨소리를 자신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화려한 지중해의 태양이 소년의 죽음을 성스럽게 비추는 그 잔인한 아름다움 앞에서, 세바스티안은 끝내 무너져 내렸다.
툭.
세바스티안의 안경 너머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바로 그 공명의 순간이었다.
그는 소로야가 훗날 캔버스 가득 흩뿌릴 그 눈부신 파도의 원형이, 사실은 이 어두운 선창에서 어부의 상처를 누르던 노어부의 젖은 천 조각이었음을 깨달았다. 화가는 찬란한 빛을 그려 비극을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의 무심한 소음 속에서 오직 빛만이 이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기에, 선창 밖 지중해의 모든 태양을 저 작은 천 조각 위로 끌어온 것이었다.
1700년을 견딘 발렌시아 대성당의 빈첸시오의 팔처럼, 어부의 피가 스며든 하얀 천은 소로야의 빛 안에서 결코 썩지 않는 인장이 되어 있었다. 세바스티안은 발렌시아 대성당의 유리관 속 빈첸시오의 팔을 보며 세바스티안은 흐려지는 캔버스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이 썩지 않는 기억의 조각을 안고, 그는 자신이 완성해야 할 미래의 방주를 향해 다시 걸어가야 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세상의 진실이 너무 무겁고 비싸다고 투덜거릴지라도, 이것이 바로 그의 방랑이 시작된 진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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