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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2037 1권 : 발렌시아의 인장
1권 : 말바로사 해변의 72인
[ 말바로사 해변의 인장들, 33번 위치가 비어져 있음]
세바스티안은 자신이 선조 사제 세바스티안의 황금눈 후예라는 사실과, 성배 파괴자의 업보를 이어받아 파편화된 주파수를 모아야만 하는 운명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부딪혔다. 지독한 압박감을 털어내려 찾은 말바로사 해변. 시원하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조차 그에게는 거대한 노이즈처럼 들려왔다.
그의 발길이 멈춘 곳은 영화인들의 인장이 새겨진 산책로였다. 까만 대리석에 말바로사 해변에 흔히 보이는 바로 그 종려나무 무늬가 그려져 있고, 그 위로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진 인장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가장 먼저 그의 발바닥을 타고 올라온 것은 1번, 루이스 가르시아 베를랑가의 차가운 주파수였다. 그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난한 자를 식탁에 초대해 ‘자비’를 쇼핑하던 부자들의 기만적인 웃음소리였고, 동시에 단두대로 끌려가며 사형수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지르던 집행인의 통곡이었다. "가난한 자를 식탁에 앉히고 그 목에 밧줄을 걸어라"는 노거장의 잔혹한 농담이 지금 이 화려한 산책로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그 비명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겨 6번 줄리에타 마시나의 인장에 서자, 영화 <길>의 젤소미나가 연주하던 서글픈 트럼펫 멜로디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 성스러운 미소로 잠시 위안을 얻기도 전에, 7번 알프레도 마타스의 인장이 그를 다시 냉혹한 현실로 불러세웠다. 스크린 뒤에서 톱니바퀴를 돌려 환상을 조립하던 설계자의 고독한 손길. 그것은 엔지니어인 세바스티안 자신이 가야 할 고통스러운 질서의 길이었다.
이어서 20번 이렌 파파스의 깊은 눈동자가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발바닥을 통해 엄중히 경고했다. 뒤이어 마주한 31번 로렌 바칼의 인장에서는 평생의 연인을 잃은 그녀의 서글픈 고백이 흘러나왔다.
“그는 내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지만, 그 없이 살아가는 법만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어야만 하는 운명의 무게가 세바스티안의 어깨를 다시 한번 짓눌렀다.
32번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인장이 증언하던 투명한 현실의 끝에서 세바스티안의 발걸음이 허공에 멈춰 섰다. 갑자기 불어닥친 말바로사의 강풍이 산책로를 휩쓸었고, 바닥에 떨어져 뒹굴던 종려나무 가지들이 거칠게 비명을 지르며 그의 발치를 파고들었다.
바짝 말라 끝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진 종려나무 잎사귀들은 더 이상 승리의 상징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찌르기 위해 매복한 가시 돋친 덫이었다. 세바스티안은 발에 걸려 넘어질 뻔한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그 날카로운 가지를 피해 섰다. 그리고 그가 발을 딛으려던 바로 그곳, 이름이 새겨져 있어야 할 33번 자리를 목격했다.
그곳은 검은 대리석 인장이 존재했던 흔적만 남긴 채 흉측하게 파내어져 있었고, 그 조잡한 상처 위로 급하게 덮어버린 듯한 흔한 격자무늬 보도블록이 대체되어 메워져 있었다. 인류의 척추이자 예수의 공생애를 상징하는 숫자 33. 누군가 일부러 지워버린 첫사랑의 이름처럼, 그 이질적인 보도블록은 인류의 기억에서 강제로 탈취당한 ‘말씀’의 자리였다. 방금 그를 넘어뜨릴 뻔했던 종려나무의 날카로운 가시처럼, 차갑게 메워진 33번의 흉터 또한 세상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것은 보수 종교 비밀 결사대, ‘오쿨루스 데이(Oculus Dei)’가 행한 기록 말살의 흔적이었다. 그들은 33번째 인장뿐만 아니라 72인의 리스트 자체를 역사에서 도려냈다. 인터넷에 검색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난 주파수를 세상에서 도려내기 위해, 말라 비틀어진 종려나무 가지처럼 날카로운 폭력을 휘둘러온 것이다.
세바스티안은 바람에 밀려와 33번의 흉터를 덮고 있던 종려나무 가지를 조심스럽게 손으로 들어 옆으로 옮겼다. 손바닥을 찌르는 마른 잎의 통증은 실재했다. 그는 홀린 듯 몸을 숙여, 검은 대리석들 사이에 기괴하게 끼워 맞춰진 그 차가운 보도블록 표면 위로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손가락 끝이 파내어진 돌의 거친 단면에 닿는 순간, 차가운 냉기가 아닌 격렬한 고주파의 진동이 혈관을 타고 뇌로 치솟았다. 그것은 ‘소실된 말씀’의 잔향이었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은 시각적 이미지가 아닌, 짓이겨진 소리들의 집합체였다. 보가트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바칼의 슬픔이 이 덮인 돌 밑에 고여 있었고, 베를랑가가 비웃었던 사형집행인의 밧줄 소리가 이 어둠 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세바스티안은 눈을 감았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은 모래알이 아니라 0과 1로 분해된 디지털의 침묵이었다.
그가 33번의 심연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뒤편 34번 페데리코 펠리니의 인장에서 기괴한 서커스 음악이 흘러나오며 그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화려하고 달콤한 독약 같은 꿈으로 이 잔혹한 진실을 잊으라는 마법사의 속삭임이었다. 하지만 세바스티안은 손바닥에 새겨진 33번의 흉터 같은 주파수를 꽉 움켜쥐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복원해야 할 방주의 마지막 조각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46번 알랭 들롱의 인장은 지중해의 푸른 태양 아래 야망을 꿈꾸던 청년 리플리의 차가운 고독을 내뿜었다. 그 눈부신 파괴의 주파수를 지나 66번 호세 코로나도의 인장에 다다랐을 때, 집요한 추격자의 눈빛이 그를 응시했다. 그는 세바스티안이 지상의 기록을 끝내고 영적 단계로 상승할 때 마주할 최후의 증언자였다.
71번의 비명을 지나 마침내 72번 마누엘 구티에레스 아라곤의 문 앞에 섰을 때, 해변의 모든 소음은 디지털 침묵으로 화했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침묵으로 돌아간다.”
방주의 문을 닫는 최종 봉인자 아라곤의 이름 아래에서, 세바스티안이 밟아온 72개의 주파수는 앞으로 그가 겪어야 할 파란만장한 운명의 설계도가 되어 그의 세포 속에 각인되었다.
그때 세바스티안의 눈앞 저 멀리 모래사장에 갑자기 환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말바로사 해변 모래사장에 인장을 든 70명의 무리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무리의 뒤편에서 아무런 표식 없이 묵묵히 짐을 챙기거나 길을 안내하는 ‘두 사람’도 보였다.
세바스티안에게 전율 같은 깨달음의 순간이 다가왔다.
‘아, 이 전쟁은 드러난 70명의 인장만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구나. 기록되지 않은 2명의 헌신이 있어야 비로소 72라는 완전한 주파수가 완성되는구나.’
그것은 기록하는 자와 보좌하는 자, 즉 말씀(70)을 세상으로 가져오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었다.
말바로사 해변의 최종 72인 명단
1 Luis García Berlanga | 2 Melina Mercouri | 3 Vittorio Gassman | 4 Yves Montand | 5 Fernando Fernán Gómez | 6 Giulietta Masina | 7 Alfredo Matas | 8 Costa-Gavras | 9 Lino Ventura | 10 Michel Piccoli | 11 Pablo G. del Amo | 12 Mario Monicelli | 13 Omero Antonutti | 14 Claude Chabrol | 15 Alberto Sordi | 16 Teo Escamilla | 17 René Allio | 18 José Nieto | 19 Marco Ferreri | 20 Irene Papas | 21 Luciano Emmer | 22 Franco Brusati | 23 Youssef Chahine | 24 Lucía Bosé | 25 Luis Ciges | 26 Vicente Escrivá | 27 Concha Piquer | 28 María Félix | 29 Ismael Merlo | 30 Emiliano Piedra | 31 Lauren Bacall | 32 Roberto Rossellini | 33 (누락/보도블록으로 메워진 자리) | 34 Federico Fellini | 35 Antonio Ferrandis | 36 Aurora Bautista | 37 Amparo Rivelles | 38 Ángela Molina | 39 Vicente Parra | 40 Luchino Visconti | 41 Amparo Soler Leal | 42 Luis Sánchez Polack "TIP" | 43 Luis Buñuel | 44 José Sancho | 45 Antonio Ozores | 46 Alain Delon | 47 Claudia Cardinale | 48 Jaime de Armiñán | 49 Chicho Ibáñez Serrador | 50 Francisco Rabal | 51 Concha Velasco | 52 José Luis López Vázquez | 53 Juan Antonio Bardem | 54 Alfredo Landa | 55 Jorge Mistral | 56 Vicente Coello | 57 Queta Claver | 58 Francisco Canet | 59 Silvana Mangano | 60 Tony Leblanc | 61 Maribel Verdú | 62 Arturo Fernández | 63 Amparo Baró | 64 Elisa Ramírez | 65 Lina Morgan | 66 José Coronado | 67 Jorge Sanz | 68 Juanjo Puigcorbé | 69 Analía Gadé | 70 Victoria Vera | 71 Terele Pávez | 72 M. Gutiérrez Arag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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