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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2037 1권 : 발렌시아의 인장
제1-1장 시작의 돌과 성배의 길
2003년 9월 10일 늦은 오후, 스페인 발렌시아 대성당에서 좁고 고요한 골목 몇 개를 지나면 마주하는 비단 거래소, '라 론하 데 라 세다' 지하 깊숙한 곳. 축축한 곰팡이 냄새와 퀴퀴한 빛바랜 양피지 냄새가 뒤섞인 비밀 서고는 시간마저 멈춰버린
듯했다. 개강 직후 수업을 마친 발렌시아 대학교 고고학과 2학년
세바스티안은 지도교수인 에릭 폰테스 교수와 함께 1957년 발렌시아 대홍수 당시 사라진 아이들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교구 문서 보관인의 은밀한 허락을 받아 폐장 직전의 봉인된 폐쇄 서고 구역을 열람하고
있었다.
지하 서고의 높은 창문 틈으로는 가을 밤하늘을 밝게 비추기 시작하는 휘영청한 보름달의 차가운 기운이 비스듬히
깔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세바스티안은 먼지 쌓인 석재 궤짝 속에서 낡은 가죽 양장본 한 권과 은색 함에 담긴 정체 모를 파편들을 발견했다. 표지에는 아무런 제목도 없었고, 오직 'Mensis Tredecim(13번째 달)'이라는 라틴어 문구와
함께 붉은 'S' 인장이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기자, 고딕체의 라틴어 문장들 사이로 동양의 태음력, 즉 음력(Lunar Calendar)의 위상 변화와 교차하는 천문
수비학 도표들이 펼쳐졌다. 그의 눈길이 한 페이지에 멈췄다. 붉은
잉크로 강조된 연도들과 함께, 태양의 모양, 달의 위상, 그리고 거대한 물결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1437년, 1517년. 붉은 글씨 아래에는 8월의
푸른 달과 함께 '시작(Initium)'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1957년. 다시 붉은 글씨 아래, 윤달을 뜻하는 라틴어 'Mensis Intercalaris'와 함께 거대한 파도가 도시를 삼키는 그림, 그리고 '수확(Collectio)'이라는
문장이 보였다.
세바스티안은 고문서 하단에 적힌 라틴어 주기 수식과 장부에 손가락을 대고 멈춰 섰다.
"교수님, 여기
적힌 수식을 보십시오. 첫 번째 '시작(Initium)'의 해부터 40년 단위로 톱니바퀴가 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라틴어 주석에는 이 40년의 단위가 총 13번 반복되어 완성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시작의 해가 언제일까요? 1437년 아니면 1517년?
1437년 기준이면 여기에다 40년을 13번
한 것을 더하면 1957년이라 이미 대홍수가 지나간 과거의 일이고,
1517년 기준이면 여기에다 40년을 13번
한 것을 더하면 2037년이라 아직 다가올 미래인데..."
"1957년에 이미 거대한 재앙이 지나갔으니 예언이 끝난
것인가, 아니면 진짜 본편은 2037년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에릭 교수가 미궁에 빠진 듯 이마를 짚었다. "이
라틴어 상징 문장들과 숫자의 시작점은 내 고서 해독 능력만으로는 기하학적 의미를 온전히 풀 수가 없구나..."
그때 에릭 교수가 고문서와 함께 발견된 15세기 말의 비밀 회계 장부를
읽어 내려가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바스티안, 이건
역사책을 새로 써야 할 발견이야! 면죄부의 시초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었네. 바로 여기, 발렌시아 대성당과 라 론하 지하였어! 보게, '마르티네스 가문, 비단 500필 상납. 대가로 성배의 방에서 하룻밤 머무름'..."
에릭 교수의 떨리는 손가락이 장부를 짚었다. 세바스티안은 장부의 숫자를 보며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룻밤 머무는 대가로 비단 500필이라니... 상인들의 신앙심이 그토록 깊었을 리 없습니다. 교수님, 이건 신앙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성배에 우리가 모르는 치명적인 힘, 예컨대 노화를 늦추는 영생의 권능이라도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사제들은 낮에 대성당 제단 위에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가짜 성배를 올려두어 민중의 눈을 속였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 남의 빛을 반사할 뿐인 죽은 껍데기 말일세. 그리고 밤이 되면 지하 비밀 통로인 '성배의 길(Via Calicis)'을 통해 진짜 성배를 들고 이곳 라 론하 지하로 건너와 비단 500필에 영생을 팔았던 거야!"
세바스티안은 바닥에 흩어진 파편들을 내려다보았다. 선조 사제 세바스티안은 이 거룩한 잔이 탐욕의 화폐로 전락하는 꼴을 보다 못해, 스스로 순교하는 마음으로 성배를 깨부수며 지하에 매몰되었다. 그러나 후대의 부패한 '황금눈 결사'는 그 부서진 시체마저 조각조각 수집해 다시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파편들 사이에서 미세한 떨림이 시작되었다.
"교수님, 들리십니까? 이 돌이... 울부짖고 있어요."
그 순간 세바스티안의 눈에 찢어질 듯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오직 황금눈의 혈통인 세바스티안의 뼈와 뇌신경을 때리는 진동이었다. 에릭 교수가 세바스티안의 맥박을 짚고 그의 동공을 응시했다. 은밀하게 일렁이는 황금빛 안광. 에릭은 숨을 죽였다. 단순한 제자인 줄 알았던 청년이, 수십 년간 전 세계를 뒤져 찾아 헤맨 바로 그 '오리지널의 그릇'이었던 것이다. 가마에 불을 지필 때가 도래했음을 에릭은 직감했다.
세바스티안과 에릭 교수는 은밀한 장부와 고문서 사본을 품에 안은 채, 1517년과 1437년이라는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기 위해 발렌시아가 낳은 천재 건축가이자 수비학의 거장,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세바스티안은 고문서에 적힌 기이한 은유적 문장들과 1437년, 1517년이라는 두 개의 시작점을 가슴에 품은 채, 에릭 교수의
추천장을 들고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개인 아틀리에로 향했다. 그는 세계적인 조형 건축가였지만, 학계의 극소수 인사들 사이에서는
고대 건축 기하학과 천문 수비학, 유체역학에 조예 가장 깊은 거장으로 암암리에 알려져 있었다.
햇살이 비치는 아틀리에의 대형 테이블 위, 세바스티안이 고문서 사본을
펼쳐 놓았다. 거장 칼라트라바는 한참 동안 말없이 양피지 사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고문서 구석에 적힌 은유적인 라틴어 시 구절에 멈춰 섰다.
‘거룩한 잔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600번의 태양이 돌아올 때, 심연의 문이 열리고 옛 바다가 제 자리를
찾으리라. 창공의 거울(보름달)이 빛을 잃고, 하늘의 갈고리(그믐달)만이 남았을 때 대지는 물의 입을 벌린다.’
칼라트라바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연필을 집어 들고 테이블
위의 도면 연습장에 숫자와 기하학적 곡선들을 빠르게 써 내려갔다.
"거룩한 잔... 발렌시아
대성당의 성배를 말하는 거로군."
칼라트라바의 나직한 목소리가 서글프게 떨렸다.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5세에
의해 성배가 이곳 발렌시아 대성당으로 옮겨져 안치된 해가 바로 1437년이네. 여기서 1437년은 '시작'의 해가 아니라, '600년 결계의 기준점'이었던 거야! 1437년에 '600번의
태양', 즉 600년을 더해 보게."
세바스티안이 침을 삼켰다. "...정확히 2037년입니다!"
"그렇다네! 자네들이
혼란스러워했던 1517년이야말로 진짜 40년 주기가 시작된
첫 번째 '시작(Initium)'의 해였어! 1517년에 40년 주기를 13번
더하면 2037년이니, 성배 안착 600주년의 연도가 소름 끼치도록 정확히 하나로 포개어지는 순간이지! 1957년은 1517년 주기의 11번째 과정이었을 뿐이야. 진짜 본편은 아직 오지 않았네. 600은 단순한 세월이 아니야. 인간의 신경을 찢어발기는 가학적 불협화음의 주파수, 600Hz... 600년
동안 성배가 눌러왔던 주파수의 결계가 차올라 폭발하는 해가 바로 2037년이라는 뜻일세."
칼라트라바는 창밖, 자신이 설계한 '예술과 과학의 도시(CAC)'의 하얀 골조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마치 거대한 태고의 짐승이 갈비뼈를 드러내고 누워있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는 연필을 내려놓고, 오랜 세월 때가 탄 자신의 초기 스케치북 한 구석을 펴 세바스티안에게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인체의 척추, 동물의 골격, 그리고 라 론하의 기괴한 석조물들이 세밀한 크로키로 그려져 있었다.
"세바스티안, 세상 사람들은 나를 두고 '건축에 뼈를 이식한 괴짜'라고 부르지. 하지만 내 건축의 뿌리는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의 유체역학 교실이 아니라, 바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발렌시아의 썩지 않는 뼈들에 있네."
칼라트라바의 목소리에 깊은 회상이 실렸다.
"어릴 적, 라 론하 데 라 세다 외벽을 올려다볼 때마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화려한 고딕 양식의 아치가 아니었네. 동물의 뼈를 입에 문 채 기괴하게 건물을 받치고 있던 라 론하의 악어를 든 가고일(El Dragón de la Lonja)이었지. 그리고 파트리아카 대성당(Real Colegio Seminario del Corpus Christi) 벽면에 박제되어 침묵하던 그 거대한 '파트리아카의 악어(El Caimán del Patriarca)'... 어른들은 그 악어가 설교 시간에 딴청을 피우는 아이들을 잡아먹는 마물이라고 말했지만, 내 눈엔 달랐어."
그가 손가락으로 스케치 북 속 악어의 강철 같은 척추 마디와 갈비뼈 선을 짚었다.
"악어의 등껍질과 늑골 구조는 물의 억센 압력과 세월의 침식을 견디기 위해 신이 설계한 가장 완벽한 유체역학적 방어막이자, 악귀를 쫓는 거룩한 인장(Seal)이었던 게야. 나는 일찍이 인터뷰에서도 말한 적이 있네. '건축은 침묵하는 조각이 아니다. 뼈와 근육처럼 응력을 견디며 스스로 숨을 쉬는 유기체여야 한다'고. 내가 르네상스의 매끄러운 피부를 버리고 동물의 뼈와 늑골 형태를 고집했던 건, 어릴 적 그 악어들이 내게 속삭였던 예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
칼라트라바는 2037년의 천체 궤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모니터에 달력과 천문도가 펼쳐졌다.
"이제 이 뒤의 구절을 보게나. '창공의 거울이 빛을 잃고, 하늘의 갈고리가 남았을 때'..."
칼라트라바의 손가락이 2037년의 달력을 짚었다.
"2037년 9월 24일... 이날은 음력 8월
보름, 하늘에 거대한 '창공의 거울(보름달)'이 차오르는 한가위네. 그리고
이 거울 같은 보름달이 점차 빛을 잃고 손톱 모양의 '하늘의 갈고리(그믐달)'로 이지러지는 음력 8월 그믐..."
화면 속 숫자가 한 지점에서 턱 멈추었다.
"양력 2037년 10월 8일..."
세바스티안의 등골로 소름이 사정없이 돋아났다. 음력 8월 그믐인 2037년 10월 8일. 그리고 그 바로 다음 날인
10월 9일의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Día de la
Comunitat Valenciana(발렌시아 주의 날)’.
"10월 9일... 1238년 하이메 1세 왕이 발렌시아를 탈환했던 영광의 축제일이자, 성배 안착 600주년을 맞는 그 찬란한 축제의 날에... 바로 전날 밤인 10월 8일
그믐, 물길이 터지며 도시 전체가 수장된다는 뜻입니까?"
칼라트라바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하얀 건축 도면 위에 손을 얹었다.
"성배 안착 600주년이라... 그래서였군. 내가 왜 이곳에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거대한 늑골
모양의 건축물들을 세워야만 했는지 이제야 알겠어. 내가 세운 이 하얀 뼈들이... 그들을 부르는 제단이 될 수도, 반대로 그들로부터 도시를 지킬
방주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야. 내 손이 설계한 건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었네. 600년 만에 깨어날 대홍수로부터 성배를, 그리고 이 도시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석조 방주’였던 거야."
2003년의 그날, 숫자의 미궁을 마침내 풀어낸 세바스티안과 거장 칼라트라바는 34년 뒤에 닥칠 '2037년 10월 8일의 대재앙'을 막기 위한 비밀스러운 방주 개조 공조를 시작했다. 거장은 즉시 연필을 들었고, 2014년 겨울 '부실 공사'라는 조롱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사비 800만 유로를 털어 예술궁전 외벽 타일에 마노(Agate) 분말을 섞은 '성스러운 갑옷(결계)'을 입히기 시작했다.
#PROJECT2037 #발렌시아 #발렌시아의인장 #1권 #고서의발견
PROJECT 2037 Volumen 1: El Sello de Valencia
Capítulo 1: La Piedra del Comienzo y el Camino del Cáliz
En la tardecita del 10 de septiembre de 2003, en las profundidades subterráneas de la Lonja de la Seda —a la que se llega tras cruzar unas pocas callejuelas estrechas y silenciosas desde la Catedral de Valencia—, el tiempo parecía haberse detenido en aquel archivo secreto, impregnado de una mezcla de moho húmedo y rancio pergamino descolorido. Sebastián, un estudiante de segundo año de Arqueología en la Universidad de Valencia que acababa de salir de clase tras el inicio del curso, se encontraba examinando la zona de archivos clausurados y sellados justo antes del cierre, con el permiso confidencial del archivero diocesano. Acompañado por su profesor tutor, el catedrático Éric Fontes, intentaba desentrañar el misterio de los niños desaparecidos durante la gran riada de Valencia de 1957.
A través de los ventanales altos del subterráneo, la frialdad de la luna llena comenzaba a derramarse en diagonal sobre la penumbra otoñal.
Entre el polvo acumulado en una arca de piedra, Sebastián halló un ajado volumen de cuero flanqueado por fragmentos plateados. La cubierta carecía de título; tan solo lucía el grabado en lacra roja de una 'S' junto a la inscripción en latín: Mensis Tredecim (El decimotercer mes).
Al hojearlo con delicadeza, las líneas góticas en latín alternaban con diagramas numéricos y tablas astronómicas que vinculaban las fases lunares con el calendario oriental. Su mirada se detuvo en una página enigmática: bajo trazos en tinta roja figuraban fechas señaladas, representaciones del sol, la luna y el dibujo de una ola colosal.
1437, 1517. Bajo la tinta grana, acompañando a la luna azul de agosto, se leía la palabra Initium (Comienzo). Más abajo, 1957, rubricado bajo el concepto de mes intercalar —Mensis Intercalaris—, ilustraba una masa de agua engullendo la urbe junto al vocablo Collectio (Cosecha).
Sebastián repasó con el dedo las fórmulas cíclicas al pie del folio.
—Profesor, contemple estos algoritmos. Las engranajes avanzan en ciclos de cuarenta años desde el primer Initium. Las glosas indican que la secuencia se completa tras trece iteraciones. Pero ¿cuál es el año cero? ¿1437 o 1517? Si contamos desde 1437, las trece iteraciones nos sitúan en 1957, la fecha de la riada que ya conocemos. Pero si el origen fuera 1517... la cuenta culmina en 2037, un horizonte aún por venir.
—¿Acaso la profecía se agotó en la tragedia del 57, o el verdadero cataclismo aguarda en 2037? —musitó el profesor Fontes, llevándose la mano a la frente—. Las claves herméticas y los números superan la capacidad de mi exégesis...
En ese instado, el profesor hojeaba un libro de cuentas secreto de finales del siglo XV hallado junto al códice, e interrumpió la deducción con un ahogo de estupefacción.
—¡Sebastián, esto reescribe la historia! Las indulgencias más oscuras no nacieron en el San Pedro de Roma, sino aquí mismo, en los sótanos de la Catedral y la Lonja. Observe: "Familia Martínez, 500 varas de seda. A cambio, una noche en la Capilla del Santo Cáliz..."
El dedo tembloroso de Fontes señalaba el asiento contable. Sebastián no daba crédito.
—¿Quinientas varas de seda por una sola noche? Ningún mercader entregaría tal fortuna por mera piedad. Esto no era fe, profesor, era un comercio. El Cáliz custodia una facultad atroz... la potestad de diferir la vejez, la promesa de la vida eterna.
—De día, los clérigos exhibían en el altar mayor una copa réplica cuajada de pedrería para deslumbrar al vulgo: una cáscara inerte que solo reflejaba luz ajena. De noche, descendían por el pasadizo subterráneo —la Via Calicis— transportando el verdadero Cáliz hasta los sótanos de la Lonja, vendiendo la eternidad al peso del oro y la seda.
Sebastián contempló las esquirlas esparcidas sobre el suelo. Un antepasado suyo, el sacerdote Sebastián, prefirió quebrantar la reliquia y sepultarse con ella antes que contemplar su profanación como moneda de avaricia. Sin embargo, la corrupta Hermandad del Ojo Dorado había recolectado cada fragmento roto para volver a tasar la inmortalidad.
De pronto, entre los fragmentos de la caja, emergió una leve vibración.
—Profesor... ¿lo siente? La piedra... está bramando.
Un latigazo de dolor cruceño le atravesó las cuencas oculares. Era un pulso que percutía directamente sobre la trama ósea y neural de su linaje. Fontes le tomó el pulso y le buscó la mirada: en las pupilas de Sebastián destellaba un destello dorado. El catedrático contuvo el aliento. Aquel joven no era un mero alumno; era el "Receptáculo Original" al que había buscado durante décadas por medio mundo. La hora de encender el horno alquímico había llegado.
Custodiando las copias del códice y los registros prohibidos, ambos partieron en busca de la única mente capaz de descifrar la arquitectura secreta del tiempo: el célebre arquitecto y maestro de la numerología, Santiago Calatrava.
Sebastián, provisto de una carta de recomendación de Fontes, se presentó en el taller privado de Calatrava. El arquitecto gozaba de renombre internacional por sus estructuras orgánicas, pero en círculos muy reducidos se le reconocía como un sabio versado en la geometría sagrada, la numerología astronómica y la dinámica de fluidos.
Sobre la gran mesa de dibujo bañada por la luz, Sebastián desplegó el facsímil del códice. Calatrava guardó silencio durante un largo intervalo. Su mirada afilada se clavó en los versos latinos del margen:
«Cuando el Sol haya girado seiscientas veces desde que el Santo Cáliz echó raíces en esta tierra, las puertas del abismo se abrirán y el antiguo mar reclamará su cauce. Cuando el espejo del firmamento pierda su luz y solo permanezca la guadaña del cielo, la tierra abrirá sus fauces de agua.»
Las pupilas del maestro vibraron. Tomó un lápiz y comenzó a trazar curvas geométricas y cálculos numéricos sobre el papel de boceto.
—El Santo Cáliz... se refiere a la reliquia de nuestra Catedral —dijo Calatrava con un hilo de voz alterado por la emoción—. El rey Alfonso V de Aragón dispuso el traslado e instalación del Cáliz en Valencia precisamente en el año 1437. ¡Esa fecha no era el inicio de la cuenta, sino la marca del sello de seiscientos años! Sumad seiscientos soles a 1437.
Sebastián tragó saliva.
—...2037 exactos.
—¡Exacto! El año 1517 que os desorientaba marcaba el verdadero primer Initium del ciclo de cuarenta años. Trece ciclos de cuarenta años desde 1517 nos conducen de nuevo a 2037. La convergencia entre el aniversario de la llegada del Cáliz y el ciclo profético es matemática. La riada de 1957 no fue más que la undécima estación; el desenlace aguarda. Y 600 no es solo una cifra de años: representa la frecuencia del dolor, los 600 Hz de la disonancia que desgasta el sistema nervioso. La barrera que ha contenido la reliquia durante seis siglos está a punto de colapsar.
Calatrava dirigió la vista hacia el exterior, donde las costillas blancas de la 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s recortaban el cielo como el esqueleto de una bestia primordial. Dejó el lápiz y abrió un cuaderno de bocetos antiguo, cuyos folios mostraban croquis detallados de columnas vertebrales, estructuras óseas y figuras de la Valencia gótica.
—Sebastián, el mundo me juzga como un arquitecto obsesionado con la osteología. Pero las raíces de mi obra no nacieron en las aulas de hidráulica del Politécnico de Zúrich, sino en las osamentas incorruptas de esta ciudad que me vio nacer.
El tono del arquitecto se volvió evocador.
—De niño, al contemplar la fachada de la Lonja de la Seda, no me cautivaban los arcos conopiales, sino la gárgola del dragón de la Lonja, abrazada a su presa de piedra. Y en el Colegio del Patriarca, me fascinaba aquel caimán disecado que pende de la pared en perpetuo silencio... Los adultos decían que devoraba a los niños distraídos, pero yo veía otra cosa.
Con el dedo, repasó los trazos de las vértebras del réptil en el papel.
—La coraza y la caja torácica del caimán son el diseño perfecto que la naturaleza concibió para resistir la embestida del agua y la erosión del tiempo: un sello sagrado contra la corriente. En alguna ocasión he declarado que la arquitectura no es una escultura inerte, sino un organismo que respira y soporta las tensiones mediante huesos y músculos. Si renuncié a la piel lisa del Renacimiento para abrazar la estructura del hueso, fue respondiendo a la profecía que aquellos dragones de piedra me susurraban en la infancia.
Calatrava ejecutó la simulación astronómica para el año 2037. La pantalla proyectó el firmamento de aquel otoño.
—Leed la continuación: «Cuando el espejo del firmamento pierda su luz y solo permanezca la guadaña del cielo...»
El arquitecto señaló una fecha en el calendario interactivo.
—24 de septiembre de 2037... plenilunio de otoño, la noche en que el espejo del cielo alcanza su plenitud. A partir de esa fecha, la luna decrece hasta convertirse en la guadaña del novilunio...
El cursor se detuvo en un punto fijo.
—8 de octubre de 2037.
Un escalofrío recorrió la espalda de Sebastián. El 8 de octubre, víspera de la festividad autonómica. Al día siguiente figuraba la inscripción: Día de la Comunitat Valenciana.
—El 9 de octubre... la conmemoración de la entrada de Jaime I en 1238 y el sexto centenario del Cáliz. ¿Significa que la noche anterior, en pleno novilunio, las aguas se desbordarán para sepultar la ciudad?
[Antonio Muñoz Degrain — Amor de madre]
Calatrava posó la mano sobre sus planos blancos con gesto firme.
—El sexto centenario del Cáliz... Ahora comprendo la razón profunda que me impulsó a erigir estas estructuras con forma de caja torácica a contracorriente del Turia. Estos huesos blancos que levanté pueden ser el altar que invoque la marea o la arca de piedra que preserve el alma de esta tierra. No diseñé simples museos; construí un refugio mineral para proteger la reliquia y la memoria de Valencia ante la gran riada que despertará tras seiscientos años.
Aquel día de 2003, tras descifrar el enigma de los números, Sebastián y el maestro Calatrava iniciaron en secreto la adaptación de la gran arca. Dispuesto a contener la amenaza fijada para el 8 de octubre de 2037, el arquitecto asumió el escarnio público por los remates de sus obras y, en el invierno de 2014, invirtió de su propio patrimonio ocho millones de euros para recubrir el trencadís del Palau de les Arts con un compuesto que incorporaba polvo de ágata: la coraza sagrada para el día del jui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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