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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2037 #발렌시아 #발렌시아의인장 #모나리자
PROJECT 2037 1권 : 발렌시아의 인장
5-1장 모나리자의 눈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지하 복원실. 500년 동안 침묵하던 또 하나의 모나리자가 마침내 입을 열고 있었다. 에릭 교수는 루브르의 원본보다 한층 밝고 투명한 빛을 머금은 그 캔버스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전용 돋보기가 그림 우측 어깨 너머, 푸른 빛이 감도는 산맥의 능선을 천천히 훑었다.
“전 세계 학자들이 루브르의 그 아득한 배경을 보며 토스카나니, 아르노 강이니 하며 시간을 버릴 때, 우리는 바로 이 프라도미술관 모나리자를 봤어야 했네.”
세바스티안은 에릭이 가리킨 곳으로 다가갔다. 에릭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톱니바퀴처럼 뾰족하게 깎인 석회암 암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사군토 성채를 요새처럼 감싸고 있는 시에라 칼데로나 산맥의 독특한 지형과 소름 끼치도록 일치했다. 순간 세바스티안의 숨이 턱 막혔다. 발렌시아에 머물던 시절, 뙤약볕 아래를 구르며 수없이 눈에 담았던 사군토의 그 거친 산세였다.
“저 절벽은 사군토입니다.”
[사군토성벽과 뒤로 보이는 씨에라 칼데라 산맥]
세바스티안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암벽이지요.”
에릭 교수가 돋보기를 내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세바스티안, 500년 동안 이 여자가 왜 검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는지 이제 알겠나? 다빈치는 이 배경에 사군토의 용광로와 붉은 대지를 그려 넣었지. 하지만 이 광경이 황금눈의 시조가 부활할 예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파수꾼들이, 이를 숨기기 위해 검은색 안료로 철저하게 덧칠해 버린 거야. 2012년의 복원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었어. 5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봉인이 비로소 해제된 거지.”
세바스티안의 시선이 왼쪽 캔버스 구석으로 쏠렸다. 붉은 황토색 대지, 그 사이를 뱀처럼 굽이치는 핏빛 강줄기. 순간 세바스티안의 왼쪽 눈동자가 화끈거리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단순한 안료의 색감이 아니었다. 1437년 성배가 용광로의 불길 속으로 던져졌을 때, 사군토의 대지를 물들였던 그 불길의 열기가 500년 전의 캔버스를 뚫고 그의 신경을 직접 죄어오는 느낌이었다.
“다빈치는 단순히 초상화를 그린 게 아니었습니다.”
세바스티안은 눈을 감았다.
“그는 누군가가 500년 뒤 이 배경을 다시 찾아낼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군토 성채 최상층 감시탑, ‘플라사 데 알메나스’. 그곳에 앉아 인류의 성물이 파괴되던 자리를 좌표로 박아 넣은 겁니다.”
에릭 교수가 인물의 왼쪽 눈동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붉은 대지 위를 응시하는 눈, Oculus. 칼라트라바 기사단 밀서에만 기호로 전해지던 비공식 암호지. 다빈치는 재앙의 시작점이 될 사군토의 심장부를 바로 이 눈동자 안에 묻어둔 게야.”
“교수님, 이 뒤를 봐야겠습니다.”
세바스티안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두 사람은 복원실의 조도를 낮춘 뒤, 프라도미술관 모나리자를 이젤에서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500년 동안 벽을 마주하고 숨죽여 온 캔버스 뒷면. 마른 포플러 나무 패널 우측 귀퉁이에 누군가 칼끝으로 깊게 새겨넣은 문자가 드러났다.
OA
에릭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셔 나갔다.
“...밀서의 기호가 맞았군.”
에릭이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패널의 모서리를 쓸었다.
세바스티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릭이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는 동안에도, 세바스티안의 왼쪽 눈은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른 채 경고하듯 욱신거렸다. 머릿속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지독하게 어긋나 있다는 직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2012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지하.
파리는 이미 성배의 파편을 쫓는 '황금눈의 결사'들의 감시망에 장악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칼라트라바의 비밀 협조를 받았다. 복도의 보안 카메라는 우회되었지만, 야간 순찰조의 동선까지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었다. 방 안에는 루브르의 원본 모나리자와 대여된 프라도판이 나란히 이젤 위에 서 있었다. 루브르의 여인은 프라도`판보다 훨씬 어둡고 침침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5분 뒤에 야간 순찰조가 이 복도를 지난다.”
에릭이 시계를 확인하며 나직하게 경고했다.
세바스티안은 서둘러 특수 파장 램프를 꺼내 루브르 원본의 오른쪽 눈동자를 비췄다. 전 세계가 화가의 서명 'LV'라고 믿어왔던 지점. 푸른 광선이 안료 층을 투과하자 L과 V의 선들이 분리되며 거꾸로 뒤집힌 ‘A’의 형상이 드러났다.
[프라도미술관 모나리자(좌)와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우)]
“프라도의 O, 루브르의 A.”
에릭 교수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프라도 뒷면의 OA와 호응하는군. 오쿨루스... 밀서에 적힌 그대로야.”
“아닙니다.”
세바스티안이 에릭의 말을 끊었다. 에릭이 놀란 눈으로 세바스티안을 바라보았다.
복도 저편에서 경비원의 무거운 구두 발소리가 쿵, 쿵, 하고 작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틀렸습니다, 교수님.”
세바스티안은 발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그림 사이에 서서 나란히 배치된 캔버스들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왼쪽 눈 속이 서서히 궤도를 맞추듯 묵직한 열감을 내뿜고 있었다.
“1911년 빈첸초 페루자가 모나리자를 훔쳤을 때, 왜 결사가 실패했는지 이제야 알겠군요. 그들은 이 두 그림을 그저 나란히 놓으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빈치와 그의 제자가 두 그림을 그릴 때 둔 시차... 그것은 시간의 간격이 아니라, 인간의 두 눈 사이 거리와 놀랍도록 흡사한 광학적 양안 시차였습니다.”
세바스티안이 검지손가락을 들어 공중에 선을 그었다. 프라도의 O와 루브르의 A. 인간의 눈으로 읽어낸 OA.
“이 그림들은 나란히 전시하라고 만든 게 아닙니다. 서로를 마주 보게 해야 합니다.”
“세바스티안, 시간이 없네! 경비원이...”
세바스티안은 에릭의 말을 뒤로하고 프라도판이 얹힌 이젤을 180도 돌렸다. 루브르의 원본과 프라도판이 좁은 밀실 안에서 정확히 서로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 순간, 밀실 안 에어컨의 송풍음마저 한 박자 늦게 들리는 듯했다. 두 사람의 얕은 숨소리만 유화 표면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루브르의 A와 프라도의 O가 공중에서 시선을 교차했다. 세바스티안이 공중에 그렸던 문자의 순서가 거울상처럼 반전되었다. O와 A가 뒤집히며, 완벽한 문장이 두 그림 사이에서 재배열되었다.
AO
“AO... Alpha et Omega.”
에릭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사라지고 대신 깊은 경외감이 채워졌다.
“시작과 끝... 다빈치는 형벌을 기록한 게 아니었어. 시간의 문을 여는 거대 안테나를 완성했던 거네.”
세바스티안은 루브르 패널 뒷면으로 다가갔다. 적외선 램프를 비추자, 프라도 패널의 OA와 정확히 거울 대칭을 이루는 각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AO
앞면의 눈동자 인장과 뒷면의 패널 각인이 두 캔버스를 관통하며 공중의 한 점으로 초점을 모았다.
밀실의 조명이 유화 표면 위에서 가늘게 산란했다. 프레임의 그림자 속에서, 500년 동안 침묵하던 두 모나리자의 입꼬리가 아주 얕게, 스치듯 비틀어졌다. 그리고 캔버스 표면이 아닌 눈동자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황금빛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복도 문 바로 앞까지 다가온 경비원의 구두 소리가 멈췄다. 문고리가 덜컥였다.
그러나 세바스티안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왼쪽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그것이 피라는 사실을 그는 한참 뒤에 알았다. 시선의 교차가 완성되는 순간, 루브르의 A와 프라도의 O가 공중에서 부딪히며 작은 황금색 스파크 하나가 튀어 올랐다.
천장 구석, 돌로 굳어 있던 가고일 조각의 눈동자에 온기가 감돌았다.
거울은 닫혔다. 그러나 주파수는 이미 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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