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발렌시아의 인장 1권 : 4-7장 파파 루나의 해골과 페니스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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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2037 1권 : 발렌시아의 인장 
4-7장 파파 루나의 해골과 페니스콜라

목요일 오후, 사라고사에 도착한 답사팀의 첫 발걸음은 피라르 대성당으로 향했다. 화려한 천장화와 종교적 권위의 웅장함에 압도당한 뒤, 연이어 찾은 알하페리아 궁전의 정교한 무데하르 아치들 아래서 세바스티안은 가슴 깊은 곳이 지긋이 눌리는 기이한 압박감을 느꼈다.

다음 날 금요일, 박물관 지하 보존실로 들어섰을 때 세바스티안의 눈길을 먼저 사로잡은 것은 로마 시대의 정교한 모자이크 조각들과, 발렌시아 마시프 가문의 거장 후안 데 후아네스가 그린 아라곤 국왕 알폰소 5세의 초상화를 비롯한 르네상스 명작들이었다. 거장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유물들 사이를 지나, 마침내 보존실 가장 어둡고 외진 구석의 유리 케이스 앞에 섰을 때 공간의 온도감이 일순간 단절되었다.

차갑고 가혹한 형광등 불빛 아래, 인간의 두개골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파파 루나의 실제 해골,www.heraldo.es/especiales/reportajes/papaluna]

세바스티안은 장갑을 낀 손끝을 떨며 유리창 가까이 다가갔다. 그 곁에서 에릭 폰테스 교수는 나직한 목소리로 실습수업을 시작했다.

"베네딕토 13세. 사람들은 그를 '파파 루나(Papa Luna)'라고 부른다."

폰테스 교수의 손가락이 해골의 왼쪽 안구 자리를 천천히 가리켰다.

그 순간 세바스티안의 등골을 타고 짙은 소름이 칼날처럼 스쳐 지나갔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유물들 사이에서 홀로 기괴하게 파여 있는 한쪽 안구는 단순한 뼈의 훼손이 아니었다. 텅 빈 굴 속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그 마른 안구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영혼을 역으로 빨아들이는 듯한 섬뜩함에 세바스티안은 숨을 헉 들이켜며 뒷걸음질할 뻔했다.

"1394년 아비뇽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그는 스스로를 성 베드로로부터 이어진 정통한 계승자라 믿었지. 하지만 서구 대분열의 거센 정치적 풍랑 속에서 콘스탄츠 공의회는 그를 이단이자 분열자로 규정하고 폐위시켰다. 세상 모두가 그에게서 등을 돌렸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인장과 권위를 포기하지 않았어. 지중해의 험준한 바위섬, 페니스콜라(Peñíscola) 요새로 들어가 스스로를 격리시켰다."

세바스티안은 바짝 마른 침을 간신히 삼켰다. 잠시 세바스티안을 바라보던 교수의 목소리가 다시 낮게 가라앉았다.

"죽는 순간까지 페니스콜라의 성벽 위에서 자신만이 정당한 교황이라 부르짖으며 수많은 신학 서적과 법전들을 써 내려간 노인. 생각과 관념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채 머리로만 신을 증명하려 했던 장소, 그 페니스콜라야말로 훗날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발렌시아로 이어지는 '인장의 거점'이 되는 영적 기점이다. 페니스콜라가 없었다면 지중해 해안을 따라 연결되는 행동의 인장도 시작되지 않았을 테니까."

교수는 품에서 고향 일루에카 성(Palacio de los Luna)의 관련 기록을 펼쳐 들었다.

"하지만 그의 비극은 1423년 페니스콜라에서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유해는 고향 일루에카 성에 안치되었지만, 정치적 풍파 속에서 아란다(Aranda) 강물에 내던져지는 수난을 겪었지. 오직 두개골만 회수되어 사비냔(Sabiñán)이라는 작은 마을에 수백 년간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2000년, 도둑들이 그 두개골마저 약탈했지. 범인들은 몸값을 요구하며 유골을 훼손하겠다고 위협했고, 그 과정에서 한쪽 눈 부위가 저렇게 처참하게 파여 나갔다."

폰테스 교수는 유리 케이스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진짜 해골은 2007년에야 진위가 확인되어 이곳 사라고사 수장고로 옮겨졌고, 원래 그가 태어났던 일루에카 성에는 텅 빈 껍데기뿐인 복제품이 안치되었지."

세바스티안의 머릿속에서 발렌시아 대성당 황금빛 유리관 속 성 빈첸시오의 팔이 강렬하게 충돌했다. 1,700년 동안 머리 없이도 오직 신의 인장을 세상에 집행하기 위해 불길 속에서 버텨낸 썩지 않는 팔.

"교수님," 세바스티안이 텅 빈 안구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페니스콜라에서 그가 집착했던 방대한 책과 생각들은... 행동하는 팔을 얻지 못해 결국 파헤쳐진 뼈로 남은 거군요."

"그렇다." 폰테스 교수가 세바스티안의 어깨를 짚었다. "이 길 위에서 네가 완성해야 할 인장이 무엇인지 잊지 마라."

토요일 아침 일찍, 답사팀은 에릭 교수의 강력한 뜻에 따라 일루에카로 향했다. 해골만 보고 떠나는 것은 반쪽짜리 공부라며, 그 두개골의 뿌리와 텅 빈 공허를 직접 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아침 8시 반, 일루에카 성 앞에 도착했을 때 세바스티안은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산골짜기 아란다 계곡 깊숙한 내륙 마을이었지만, 성 앞의 '페니스콜라 광장(Plaza de Peñíscola)'에 들어선 순간 바람이 세바스티안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분명 내륙의 흙먼지 날리는 광장이건만, 광장 가장자리의 거친 석벽과 구조는 묘하게 지중해의 바위섬 성채를 떠올리게 했다. 광장 중앙에 섰을 때 세바스티안은 순간 귀가 멍해지며 내륙의 정적 대신 시끄러운 지중해 파도 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

성채 전면부의 검은 돌과 빛을 어스름하게 투과하는 무른 아라바스터 석벽에는 기괴하게 조각된 사자들의 얼굴이 침묵 속에서 사라고사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신의 말씀 대신 세속의 욕망에 침식당했던 공간. 20세기 독재정권의 그늘 아래 개인 소유로 넘어가 손때를 타고, 마침내 관광 호텔로 분할·개조된 그 어두운 역사까지 겹쳐지면서, 성채 전체가 마치 세속의 권력들이 지나가며 뜯어먹고 남긴 거대한 바위 껍데기처럼 다가왔다.

기시감을 털어내려 고개를 저으며 성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지만, '황금의 방'에 들어선 순간 조용한 습기가 다시 한번 피부를 감쌌다.

14세기 무슬림 거장 마호마 라미의 손길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화려한 무데하르 목조 천장 아래, 예배당 벽면의 오목하게 파인 석조 감실(Hornacina) 안에는 원래 원통형 유리 유골함에 담긴 해골이 놓여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차갑고 백색으로 바랜 석고 복제품 흉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파파루나성, 파파 루나의 과거 진품 보관 모습(좌)과 현재 복제품 보관 모습(우)]

세바스티안의 시선이 흉상 아래 놓인 루나 가문의 방패 문장으로 향했다. 하이메 1세의 정복 전쟁 당시 일식(Solar Eclipse)으로 온 세상의 태양이 침식될 때, 어둠에 집어삼켜지지 않고 끝까지 빛을 발하던 태양의 조각에서 유래했다는 초승달 인장.

하지만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못한 채 법학과 신학의 길로 들어서 홀로 갇힌 교황 파파 루나, 칼라타유드의 수녀원장이 된 누나 셀레스티나, 그리고 칼을 잡고 군인이 된 동생 펠리페. 신학과 수도원과 검이라는 세 갈래로 찢어진 가문의 운명이 성채의 세 구역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흉상 곁에는 그가 평생 쫓겨 다니면서도 마차에 실어 나르며 목숨처럼 집착했던 '이동식 도서관'의 복제품 서가들이 서 있었다. 지식을 모았으나 행동할 손을 잃고, 3으로 분할된 성채 안에서 수많은 책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사내.

어제 보았던 수장고의 두개골이 어둠 속에 감춰진 훼손된 실체였다면, 이곳 황금 방의 복제품은 알맹이를 빼앗긴 채 일식의 문장 아래 홀로 남겨진 영혼 없는 껍데기였다. 비극의 흔적조차 다듬어져 매끄럽게 재현된 가짜 얼굴을 마주한 순간, 세바스티안은 어제 사라고사에서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허무를 맛보았다. 생각과 관념으로만 일궈낸 영광의 집이 결국 이토록 텅 빈 백색 석고 덩어리 하나로 남겨졌다는 사실이 세바스티안의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오전 11시, 일행은 일루에카 성 방문을 마치고 발렌시아로 돌아오는 답사팀 버스에 올랐다. 세바스티안은 '친척 방문'을 핑계로 중간 지점인 남쪽 테루엘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오후 1시 무렵, 그는 테루엘 버스역 근처 길가에 홀로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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