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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2037 1권 : 발렌시아의 인장
2-3장 1517, 1957, 2024
1517년 9월 27일 — 사자의 울음
미사 종이 저녁 기도를 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하늘이 이상해졌다.
빵집 주인 호안은 화덕 앞에서 반죽을 밀다가 손을 멈췄다. 서쪽 하늘, 강 상류 쪽 하늘이 마치 멍든 것처럼 검푸르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대낮인데도 등불을 켜야 할 정도로 어두웠고.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늑대인 줄 알았다. 아니면 미쳐 날뛰는 황소이거나. 그러나 그 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땅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노인들은 나중에 그것을 두고 사자가 우는 소리 같다고 회상했다. 호안의 동생 페레는 그 시각 성벽 위에 있었다. 도시를 둘러싼 이 돌벽은 백오십 년 전 왕명으로 쌓아 올린 것으로, 세라노스 문의 쌍둥이 탑이 북쪽 관문을 지키고 있었다. 페레는 파수 임무를 위해 좁은 통로를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성벽을 따라 흐르는 투리아 강이 평소와 다르게 검게 부풀어 오르며 성벽 바로 밑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오래된 돌 틈 사이에서 흙탕물이 실처럼 배어나왔다.
우박이 먼저 떨어졌다. 비둘기 알만 한 얼음덩이가 흉벽과 기와지붕을 부수며 쏟아졌고, 곧이어 하늘을 찢는 번개가 연달아 내리쳤다. 그 섬광 속에서 페레는 목격했다. 강이 아니라 거대한 흙탕물의 벽이 성벽을 따라, 그리고 왕궁 다리 쪽 레알 문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문이 무너진다! 레알 문이!"
성벽 아래에서 비명이 터졌다. 레알 문의 아치 통로로 물살이 들이치며 육중한 목재 문짝이 경첩째 뜯겨 나갔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도시의 이빨을 부러뜨리는 소리 같았다. 문이 터진 자리로 흙탕물이 쏟아져 들어가며 안쪽 거리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방앗간지기들이 가장 먼저 뛰쳐나왔다. 강가에 줄지어 서 있던 방앗간들은 물이 닿는 순간 나무 바퀴가 통째로 뜯겨 나갔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 같았다. 밀가루 포대가 물살에 휩쓸려 하얗게 풀어졌고, 그 위로 지붕 서까래와 가축의 사체가 뒤엉켜 흘러갔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성벽은 도시를 지켜주는 방패가 아니라 물을 가두는 그릇이 되어 있었다. 성벽 안쪽 거리는 이미 거대한 호수로 변했다. 호안은 어린 딸을 안고 2층 창문으로 기어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방금 전까지 사람들이 걷던 골목 속으로 이웃 노파의 팔이 잠깐 솟았다가 영영 사라졌다. 성당에서는 사제들이 종을 미친 듯이 울렸다.
"주여, 물을 거두어 주소서."
기도 소리는 우박 소리와 번개, 그리고 땅 밑에서 울리는 짐승 같은 굉음과 뒤섞여 거대한 통곡이 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각, 침수된 옛 라 론하 뒤편 지하 수로 입구에서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고일이 성배 파편을 맞고 사멸의 시한에 들어간 지 약 80년. 인간과의 교합을 통해 태어난 후예들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자신들의 초감각적 주파수와 심리 감지 능력이 급격히 퇴화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었다. 앞으로 몇 세대만 더 지나면 가고일의 기운이 완전히 소멸하여 평범한 인간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극도의 공포.
그 절망적인 퇴화의 공포 끝에 황금눈 지도부가 가동한 것이 바로 지하 수중 동면 프로젝트였다.
칠흑 같은 폭우 속, 흙탕물이 소용돌이치는 지하 수조 어귀에 일곱 명의 아이들이 서 있었다. 후예들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파동을 물려받아 물속에서도 폐가 닫히고 피부가 석화되는 특이 체질을 지닌 최정예, 제1선별조 원형들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동공이 없었다.
검은자위도, 흰자위도 없는 순백과 황금의 구체. 강둑 위에는 빗속에서도 티 하나 묻지 않은 흰 비단옷을 걸친 황금눈 원로들이 침묵 속에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혈통이 바닥날 먼 훗날 지상으로 다시 불러올 살아있는 유전적 백업 자원들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본능에 이끌린 석상들처럼 거센 흙탕물 소용돌이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아이들의 검푸른 피부가 수면 아래로 잠겨 들자, 투리아 강 지하 깊숙한 암반 수조의 수문이 육중하게 닫혔다.
날이 밝았을 때, 강가의 방앗간은 단 한 채도 남아있지 않았다. 레알 문은 뼈대만 남았고, 거리에는 뒤집힌 수레와 익사한 가축들이 널려 있었다. 페레와 호안은 잿빛으로 변한 도시를 내려다보며 통곡했으나, 그 재앙의 물밑바닥에 무엇이 봉인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1589년, 대성당 참사회실 1517년의 비극 이후로도 투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1540년, 1546년, 1555년, 1557년의 대홍수가 이어졌고, 16세기 후반에는 거의 해마다 강이 범람했다. 문제는 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거듭된 홍수에도 체계적인 치수 기구를 세우자는 논의는 수십 년간 번번이 가로막혔다.
그 배후에는 도시의 곡물 창고와 수로 이권을 쥐고 있던 상인 조합, 그리고 흰 비단옷의 유력 가문들이 있었다. 그들의 수장 모센 다미아는 참사회실 회의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강은 신의 섭리요. 가뭄에 대비해 수문을 닫고 물을 가두어야지, 제방을 트고 물길을 손대는 것은 불경한 짓이오."
그가 내세운 명분은 가뭄 대비와 전통 보존이었으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제방을 준설하고 물길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1517년에 완성해 둔 지하 수중 동면실의 수위가 낮아지거나 비밀 수로가 외부에 발각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기 위함이었다. 그의 옷깃 안쪽에는 대성당 지하 깊은 곳과 연결된 황금눈의 표식이 은밀히 새겨져 있었다.
그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직물공 길드의 대표 베르나트 사구니였다. 1557년 홍수로 가족을 모두 잃은 그는 대성당 석공 장인들과 농민 대표들의 뜻을 모아 다미아의 위선을 파헤쳤다.
"당신들이 가뭄 대비를 핑계로 수문을 걸어 잠글 때마다, 물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성당과 민가를 집어삼켰소. 당신들이 지키려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라 지하에 감춰둔 불순한 창고요!"
1589년 10월, 또 한 번의 참혹한 홍수가 도시를 덮치며 여론은 완전히 뒤집혔다. 사구니 일파가 폭로한 다미아 가문의 불법 수로 점유와 창고 장부가 만천하에 드러났고, 다미아는 파문에 가까운 수치 속에 실각했다.
마침내 1590년, 발렌시아 대평의회는 강과 제방, 수로만을 전담하는 독립 기구인 파브리카 노바 델 리우(Fàbrica Nova del Riu, 새 강 관리소)의 설립을 정식 승인했다. 시민들은 물을 다스리는 제도를 얻어냈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투리아 강바닥 깊은 어둠 속, 1517년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동공 없는 아이들은 수조의 차가운 수압 속에서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지상의 황금눈들이 피를 수혈받기 위해 다시 자신들을 불러낼 날, 그리고 도시가 다시 거대한 수마에 통째로 잠겨 들 먼 미래의 어느 날을 기다리며.
1957년 10월 14일 — 라 리우아
이틀 전부터 내리던 비가 도무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캄파나르에 사는 재봉사 로사는 창밖으로 흘러넘치기 시작한 도랑을 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여느 가을비랑은 달라."
새벽 두 시, 첫 번째 파도가 밀려왔다. 투리아 강이 둑을 넘어선 것이다. 사람들은 물소리가 아니라 진동으로 그것을 먼저 느꼈다. 집 전체가 낮게 웅웅거리는 기괴한 파동. 로사는 아이 셋을 급히 옷장 위, 그다음엔 지붕 위로 올려 보냈다. 거리로 나온 이웃들은 허리까지 차오른 흙탕물 속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어둠을 더듬었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정오 무렵, 두 번째 파도가 들이쳤다. 이번엔 더 거대했다. 상류에서 무너진 다리와 뽑힌 나무들이 도시 곳곳을 들이받았다. 테투안 광장의 물은 2미터를 넘어섰고, 바르카스 거리에서는 하수구가 거꾸로 역류하며 분수처럼 물을 뿜어냈다. 자동차들이 코르크 마개처럼 떠다니다 부딪혀 찌그러졌다.
라디오는 침묵했고 전기는 끊겼다. 지붕 위에서 애타게 구조를 부르짖는 목소리만이 빗속에 흩어졌다.
같은 시각, 옛 라 론하 건물 뒤편의 범람한 물길 위로 거친 빗줄기가 사선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침수된 성당 기단 근처에서 휩쓸려 가는 구호품 상자를 끌어올리려던 안토니오 신부는 멈칫했다. 로프를 쥐고 있던 손끝으로 도시를 뒤흔드는 웅웅거림과 전혀 다른 차원의 서늘한 진동이 느껴졌다.
성당 지반 지하 깊은 수조와 연결된 투리아 강의 물살 한가운데서, 소용돌이를 헤치고 무언가가 지상으로 오르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었다. 거센 물살 속에서도 단 한 번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흙탕물 위로 천천히 떠오른 세 명의 아이들.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피부는 젖어 있지 않았고, 마치 단단하게 굳은 라 론하의 가고일 석상처럼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번개가 번쩍이며 아이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안토니오 신부는 십자가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동공이 없었다.
검은자위도, 흰자위도 없었다.
오직 황금빛이었다.
그 순간 안토니오 신부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저것은 아이가 아니다.
"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
신부가 경악에 찬 기도를 읊조리는 순간, 맨 앞에 선 아이가 천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황금빛 구체와 눈이 마주친 찰나, 신부의 머릿속으로 아득한 환각과 함께 자신의 온갖 은밀한 생각, 어린 시절의 죄책감, 방금 느낀 원초적 공포가 모조리 읽혀 나가고 있다는 섬뜩한 감각이 밀려왔다. 신부는 머리를 감싸 쥐고 흙탕물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더 소름 끼치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물속에서 걸어 나온 세 아이를 향해 강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걸어 나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구조대의 완장을 차고 있지 않았다. 물에 떠밀려 온 사람들을 살피지도 않았다. 진흙탕 비바람 속에서도 티 하나 묻지 않은 순백의 비단 코트를 걸친 그들의 시선은 익사자도, 떠내려온 가구도, 무너진 집도 향하지 않았다.
오직 세 아이에게만 향해 있었다.
아이들이 물 밖으로 발을 내딛자, 흰 비단 코트의 남자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약속이라도 되어 있던 것처럼 아이들을 감싸 안았다. 단 한 마디의 대화도, 단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었다.
안토니오 신부는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숨을 죽였다.
1957년의 대홍수는 누군가에게는 비극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달랐다. 칠흑 같은 물길 속에서 돌아온 무언가를 기다리던 밤이었다.
그 밤, 황금빛 눈을 가진 세 아이는 흰 비단 옷의 사람들과 함께 발렌시아의 어둠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나무배를 탄 병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물 위로 나섰다. 지붕에서 열두 시간을 버틴 끝에 구조된 로사가 본 것은 진흙에 반쯤 파묻힌 도시와 침묵 속에 선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세라노 탑 근처 골목에서는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사망자 수를 헤아리고 있었다. 정부는 그 숫자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진흙이 걷힌 자리에는 도시 전체의 기억이 새로 쓰였다. 사람들은 그날을 그저 '라 리우아(La Riuà, 그 홍수)'라고만 불렀다.
그리고 발렌시아는 결정을 내렸다.
다시는 투리아가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게 하지 않기로.
1958년, 시청 특별위원회
결정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강을 도시 밖으로 돌리자는 계획, 플란 수르(Plan Sur)가 처음 발의되었을 때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것은 도심 부동산과 구시가지 창고 부지를 쥐고 있던 몇몇 유력 가문이었다. 그 중심에는 은행가 라파엘 몬레알이 있었다.
그는 시청 특별위원회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강을 옮기는 것은 도시의 심장을 들어내는 일입니다. 방재는 제방을 높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가 진짜 두려워한 것은 홍수 자체가 아니었다. 프랑코 정권의 비호 아래 흰 비단옷을 걸쳐온 가문들, 대대로 '황금눈'이라 불려온 자들이 몇 세기에 걸쳐 지켜온 비밀 통로가 옛 강바닥 지하, 대성당 지하 수조와 깊게 얽혀 있었다. 강물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한 그 수중 은닉처는 깊은 물속에 감추어진 채 안전할 수 있었다. 강을 옮긴다는 것은 수중 통로가 막히고, 그 은닉처가 언젠가 마른 땅 위로 드러난다는 뜻이었다.
몬레알과 그를 따르는 이들은 '전통과 도시 경관 보존'을 내세우며 여론과 언론, 기술 위원회를 흔들었다. 계획은 몇 번이고 지연되고 축소되었다.
그러나 그날 밤의 진실을 목격한 이들이 있었다.
1957년 홍수 당시 현장에서 기괴한 광경을 본 안토니오 신부와 생존자들, 이상 수위를 감지했던 젊은 기술자, 그리고 대성당 고문서고에서 옛 참사회 기록을 찾아낸 사서가 뜻을 모아 비밀리에 조직을 꾸렸다. 훗날 수문지기들(Els Guardians de l'Aigua)이라 불리게 될 결사대였다.
안토니오 신부의 친필 서한은 명확했다.
강을 옮기는 것은 단순히 범람한 물길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강 아래에 잠들어 있는 그것들이 다시는 물을 타고 스스로 걸어 나오지 못하도록, 수중 통로를 영구히 차단하기 위한 필사의 봉인이다.
수문지기들은 몬레알 가문이 강바닥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벌인 은밀한 로비와 자금 흐름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 배후에는 16세기 고문서에 기록된 것과 동일한 표식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1963년, 수문지기들은 수집한 자료를 정부 감사원과 언론에 동시에 넘겼다. 몬레알 가문의 토지 스캔들이 터지며 여론은 완전히 돌아섰다.
이듬해, 마침내 12킬로미터에 달하는 새 물길을 파내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오래된 강의 길은 버려졌고, 옛 강바닥은 서서히 말라갔다.
사람들은 그것을 인간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강을 옮겼으니 재앙도 함께 옮겨졌다고 믿었다. 옛 하천 부지는 훗날 거대한 투리아 정원으로 변모해 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 뒤, 물길이 사라진 옛 강바닥 위에 예술과 과학의 도시(CAC)가 세워졌다.
세바스티안은 그곳에서 기이한 구조를 발견했다.
헴리스페릭의 거대한 곡선.
지하의 공명 수조.
수면을 따라 번지는 저주파의 진동.
그것들은 안토니오 신부가 1957년 밤에 남긴 옛 도면 속 구조물과 지나치게 닮아 있었다.
도면 한가운데에는 단 두 단어가 적혀 있었다.
봉인의 방주.
세바스티안은 헴리스페릭의 거대한 외눈을 지나, 투리아 옛 강바닥 동쪽 끝에 자리한 오세아노그라픽의 독특한 수련형 지붕을 바라보았다.
옛 투리아 강의 물길이 지중해 바다와 만나던 바로 그 하구였다.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수족관은 단순한 관람 시설이 아니었다. 지하 수맥이 바다로 터져 나가는 목덜미를 수만 톤의 바닷물로 짓눌러 봉쇄하고, 고래들의 초음파를 이용해 암반층 깊은 곳의 부정한 진동을 밤낮없이 교란시키는 최종 수중 차단벽.
투리아 강이 지나간 자리 전체가, 지상과 지하를 빈틈없이 옭아맨 거대한 봉인 기계였던 것이다.
2024년 10월 29일 — DANA
기상청 경보가 아침에 떴을 때만 해도, 대학생 마르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발렌시아의 10월은 늘 비가 오는 계절이었으니까. 그녀는 우산을 챙기며 여느 때처럼 집을 나섰다.
오후가 되자 하늘이 완전히 달라졌다. 구름이 아니라 거대한 회색 벽이 도시 위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빗줄기는 우산을 무용지물로 만들 만큼 굵어졌고, 한 시간도 안 되어 도로는 발목까지 물이 찼다. 마르타는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어느 마을에서는 여덟 시간 만에 일 년 치 비가 쏟아졌다고 했다.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야 긴급 재난문자가 울렸다. "즉시 실내에 머무르십시오." 하지만 이미 거리로 나선 사람도, 차 안에 갇힌 사람도 많았다. 마르타의 창밖으로 주차된 자동차들이 하나둘 물 위에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서로 부딪히며 골목 아래로 떠밀려갔다. 마치 장난감처럼, 그러나 그 안에는 사람이 타고 있을 수도 있었다.
Cars piled up in an area affected by the DANA floods, on November 16, 2024, in Sedaví, Valencia, Spain. (Photo: Carlos Luján/Europa Press/ABACAPRESS via Reuters Connect)
전화가 울렸다. 남부 마을에 사는 이모였다. 목소리가 끊기고 갈라졌다. "물이... 지붕까지... 차 안에 사람들이 갇혀서—" 통화는 그대로 끊겼다. 마르타는 다시 걸었지만 신호가 가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며 도시는 두 개의 세계로 나뉘었다. 물이 미치지 않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창가에 서서 뉴스 속보를 지켜보았고, 물에 잠긴 곳에서는 사람들이 지붕과 나무 위에서, 혹은 자동차 지붕 위에 올라선 채 밤을 새웠다. 헬기 소리가 밤새 하늘을 갈랐다. 소방관들이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만으로 갇힌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다음 날 아침, 마르타는 뉴스 화면으로 이모가 살던 마을을 보았다. 도로였던 자리에 자동차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겹겹이 쌓여 있었고, 진흙에 파묻힌 상점가에서는 사람들이 맨손으로 흙을 파내며 실종자를 찾고 있었다. 다행히 이모는 이웃집 2층으로 대피해 무사했지만, 그녀의 마을에서만 스무 명 넘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르타는 문득 할머니가 예전에 들려주었던 1957년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후로 강을 도시 밖으로 돌렸다고 했는데..." 강은 이미 오래전에 도시 밖으로 밀려났다. 그런데도 물은 다시 왔다. 다른 이름으로, 다른 방향에서, 그러나 똑같은 절박함으로.
며칠 뒤, 마르타는 자원봉사를 위해 피해가 가장 컸던 남쪽 마을로 향했다. 진흙을 퍼내다 지쳐 잠시 허리를 편 순간, 그녀는 무너진 담벼락 틈에서 오래된 타일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 푸른 유약 위에 그려진, 눈을 감은 듯도 뜬 듯도 한 낯선 문양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언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마르타는 별생각 없이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훗날 그녀가 그 문양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날의 그녀는 알지 못했다.
강을 옮긴 사람들이 있었고, 강을 돌려세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어느 해, 투리아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시를 찾아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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