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발렌시아의 인장 1권 : 4-13장 푸이그의 성모

그림 이야기 : 400년만의 공명, 보티첼리와 알폰스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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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야기 : 400년만의 공명, 보티첼리와 알폰스 무하 

유럽과 국내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거닐다 보면, 철이 자석에 끌리듯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추고 저절로 카메라를 들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이유도 모른 채 셔터를 누르던 과거의 나. 지금보다 훨씬 그림에 대해 무지하던 시절 찍어둔 몇 안 되는 사진첩을 뒤적여보니, 내 고유의 취향이 거짓말처럼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거기엔 예외 없이 아름다운 여체의 실루엣을 담은 그림이나 조각, 그리고 만발한 꽃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솔직한 직관의 끝에서 다시 만난 두 거장이 바로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다. 보티첼리가 세상을 떠난 지 약 350년 뒤에 무하가 태어났으니 두 사람 사이에는 무려 400년에 가까운 세월의 격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알폰스 무하는 400년 뒤에 부활한 보티첼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스쳐 지나간다.

보티첼리의 템페라 — 400년 전 관능과 정교함의 시초 내가 왜 그토록 이들의 작품에 본능적으로 끌렸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두 거장 모두 여성의 아름다운 몸과 관능을 미학의 극치로 끌어올린 화가들이었다. 보티첼리의 대작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 1485년경)》을 마주하면, 나체의 비너스가 자신의 긴 금빛 머리카락으로 몸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 지중해의 바람 속에 서 있다.

《산드로 보티첼리 -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 1485년경)》;템페라 온 캔버스

더욱 경이로운 것은 보티첼리가 15세기에 보여준 파격이다. 당시 15~16세기 유럽 그림들은 대부분 딱딱하고 평면적인 종교화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보티첼리의 그림은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과 확연히 달랐다. 15세기가 아니라, 400년 뒤 20세기의 알폰스 무하와 동시대에 활동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유려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자랑한다. 당시 대세이던 목판 패널 대신 《비너스의 탄생》에서는 캔버스를 선구적으로 채택하고, 달걀 노른자에 안료를 개어 쓰는 '템페라(Tempera)' 기법을 사용한 그는 세필로 수천, 수만 번의 잔선을 겹쳐 그었다. (캔버스의 진정한 의미를 최근에 알았다는...ㅠㅠ) 그 결실로 완성된 비너스의 우아한 실루엣과 화면 전체를 수놓은 들꽃들은 4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현대적이고 눈부신 잔상으로 가슴에 박힌다.

두 개의 '봄'이 보여주는 400년의 공명 보티첼리의 파격과 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걸작이 바로 《프리마베라(Primavera / 봄, 1482년경)》다. 화면 가운데의 비너스를 중심으로, 꽃의 여신 플로라가 몸에 꽃을 가득 입은 채 들꽃을 뿌리고, 바람에 날리는 얇은 옷자락을 입은 삼미신이 우아한 윤곽선을 그리며 춤을 춘다. 화면 전체가 여성의 관능적 실루엣과 식물성 패턴으로 가득 찬, 15세기 회화라곤 믿기 힘든 유려함의 극치다.

《산드로 보티첼리 - 프리마베라(Primavera / 봄, 1482년경)》;템페라 온 패널

그리고 4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파리에서 이 '봄'의 아우라에 온전히 응답한 작품이 바로 무하의 1899년 명작 《프림베르(Primevère / 앵초)》다. '프리마베라'와 '프림베르'—두 이름 모두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기운과 꽃을 뜻한다는 점부터가 운명적이다. 무하의 그림 속 여인은 어깨선이 시원하게 드러난 드레스를 입은 채 은은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손에는 분홍빛 앵초 꽃송이가 들려 있고, 머리 뒤로는 만발한 꽃 문양의 후광이 가득하다.

《알폰스 무하 - 프림베르(Primevère / 앵초, 1899)》 

보티첼리가 템페라 붓끝으로 잡아챘던 그 우아한 윤곽선과 여성의 아름다움은 무하의 손끝에서 덩굴식물처럼 요동치는 '채찍 곡선(Whiplash line)'과 매혹적인 석판화로 재탄생했다. 나도 모르게 끌렸던 내 사진첩 속 '여체와 꽃'이라는 미학적 코드. 무하는 인쇄 매체와 포스터라는 근대적 틀 안에서 보티첼리의 미학적 유전자를 흡수해 완벽하게 자기만의 언어로 꽃피워낸 셈이다. 

이렇게 내 앵초 사진을 같이 곁들이니 보티첼리와 알폰스 무하와 내가 거의 600년의 시차를 두고 서로 공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 사진첩 속의 앵초]

300년의 침묵이 만든 짠한 서사 그러나 이토록 아름답고 400년을 앞서간 선구자였던 보티첼리의 삶 뒤편에는 짠한 역사적 서사가 숨어 있었다. 그가 살았던 당대에는 그의 파격적이고 장식적인 그림이 주류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사후에는 다 빈치나 라파엘로 같은 유화 거장들에 밀려 무려 300년 동안이나 박물관 구석에서 잊혀진 화가로 남겨져 있었다. 3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지나 19세기 말 라파엘 전파와 아르누보가 등장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서사가 있는데, 보티첼리에게도 이처럼 고독하고 짠한 부활의 역사가 있었다니. 아무것도 모르고 막연히 끌려 좋아했던 그림이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서사를 알고 나니 작품들이 더욱 깊고 짠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과연 어느 시대의 빛이 더 눈부실까? 

직관적인 화려함이나 현대적인 친숙함으로 본다면 무하의 아르누보가 관람객들에게 더욱 강렬한 판정승을 거둘지도 모른다. 석판화가 주는 선명한 색감과 어깨선이 드러난 매혹적인 여인, 은은하게 번지는 봄꽃 《프림베르》의 아우라가 대중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요히 작품 앞에 서서 시간을 곱씹다 보면, 동시대의 틀을 깨고 나와 아슬아슬하게 몸을 가린 비너스와 《프리마베라》의 꽃의 여신을 그리며 수만 번의 세필 붓질로 고독하게 선을 그어 내려갔을 보티첼리의 그 묵직한 오리지널리티가 끝내 영혼을 울린다. 

결국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 앞에서는  15세기에 20세기를 살았던 선구자의 세필 앞에서 숨을 삼킨다. 알폰스 무하의 그림 앞에서는 400년 뒤 부활한 무하가 엮어낸 덩굴 곡선과 꽃들의 리듬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 하나를 더해 본다면, 예술과 주파수의 비밀을 다루는 소설 《PROJECT 2037》의 다음 권에는 위 두사람을 넣어서 책을 통해 이 두사람이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꿈꿔본다. 내가 느꼈던 그 공명감을 독자들도 느낄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 책을 손에 들고 거장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피렌체와 프라하와 파리의 미술관을 걸어보고 싶다. 소설 속 서사처럼, 세월을 넘어 서로에게 응답하는 거장들의 그림 앞에 서서, 잊혀졌던 화가들이 캔버스라는 그릇에 담아내고자 했던 영원한 울림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다. 내 과거의 사진첩이 알려준 내 취향의 끌림을 따라가 보니 깨닫게 된다. 두 화가가 수백 년의 시차를 두고 캔버스 위에 붙잡으려 했던 것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나 화려한 꽃 그 자체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끝내 담고 싶었던 것은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무지했던 한 인간의 마음까지 저절로 끌어당기는 영원하고 아름다운 '선(Line)의 공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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