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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기 #소로야 #호아킨소로야 #미술관
미술 이야기 : 말과 황소, 누가 더 강할까?
소로야를 두고 맞붙은 마드리드와 발렌시아
스페인이 낳은 '빛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Joaquín Sorolla). 그를 품은 두 도시, 마드리드와 발렌시아가 한 화가를 두고 조용하지만 뜨거운 문화적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마드리드의 오래된 아틀리에가 대대적인 확장 보수 공사를 거쳐 재개관을 준비하는 한편, 소로야의 고향 발렌시아에서는 뉴욕 히스패닉 소사이어티(Hispanic Society of America)가 소장해 온 220여 점의 컬렉션을 들여와 소로야 전용 미술관을 신설하며 맞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문화계에서는 과연 어느 쪽 박물관에 사람들의 발길이 더 몰릴지 기대감이 팽팽하다. 두 박물관의 관전 포인트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말과 황소의 대결"이다.
마드리드의 '말' — 압도적인 존재감
내가 두 동물의 대결을 떠올린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마드리드 소로야 박물관이 대규모 확장 공사로 장기 휴관에 들어가면서, 그곳의 대표작들이 잠시 고향 발렌시아로 돌아와 올해 초까지 특별 순회전을 연 적이 있다. 그때 전시장 입구, 가장 잘 보이는 상징적인 자리에 걸려 있던 작품이 바로 《말을 씻기는 아이들(El baño del caballo, 1909)》이었다.
《호아킨 소로야 - 말을 씻기는 아이들(El baño del caballo, 1909)》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나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의 거대한 대작들이 미술관 벽을 채운 모습은 익숙했다. 하지만 대부분 왕실과 귀족의 주문을 받아 제작된 대형 궁정화였다.그런 특별한 예외가 아닌 바에야 대부분 적당히 아담한 크기일 거라 지레짐작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크기부터 남달랐을 뿐만 아니라, 벽이 아닌 전시장 입구를 가로막듯 당당히 서 있어 들어서자마자 저절로 카메라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화면 속 말은 실제 말과 맞먹을 만큼 거대했고, 현장에서 처음 마주한 순간 그 거대한 존재감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캔버스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과 젖은 말가죽의 빛깔은 강렬한 인상으로 가슴에 박혔다. 그것은 오랜 세월 소로야를 지켜 온 마드리드만이 줄 수 있는 깊이였다.
당초 마드리드는 전면 재개관을 목표로 내세웠으나, 100년이 넘은 고택을 확장 보수하는 공사 특성상 완공 일정이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 '말'이 가진 압도적인 잔상은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기에 충분하다.
발렌시아의 '황소' — 폭발적인 에너지
반면, 발렌시아가 이번 신설 미술관에서 특히 기대를 모으는 작품 가운데 하나는 거친 야성을 담은 '황소'다. 《오후의 햇살(Sol de tarde, 1903)》이 그 주인공이다.
《호아킨 소로야 - 오후의 햇살(Sol de tarde, 1903)》
가로 4.4미터, 세로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화폭을 실제로 마주한다면, 그 물리적 위압감은 마드리드의 '말'과 또 다른 차원의 압도감을 선사할 것이다. 발렌시아의 석양빛 아래, 거친 파도를 뚫고 어선을 뭍으로 끌어올리는 황소들의 붉은 근육과 거친 생명력은 화면 전체를 밀어붙인다. 이 작품 역시 마드리드의 '말'에 전혀 밀리지 않는 웅장한 대작으로,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전시가 시작되는 순간 누구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발렌시아 미술관에는 마드리드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강점이 있다. 소로야가 수없이 빛을 좇았던 말바로사 해변이 미술관에서 멀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전시는 완성된다. 그림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변으로 달려가 같은 빛을 직접 보고 싶어질 테니까.
말바로사 해변이 완성할 서사
나아가 발렌시아시가 말바로사 해변에 조금만 더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을 더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말바로사 해변 산책로에는 칸 영화제의 거리처럼 발렌시아 영화제를 거쳐 간 거장 72인의 이름이 보도블록에 인장처럼 새겨져 있다. 이 거장들의 인장 서사를 아름답게 재정비하고, 해변 입구에 방치되듯 훼손된 영화 상징물들을 정성스레 보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목 끝에 "소로야가 수없이 이젤을 세우고 지중해를 화폭에 담았던 말바로사 해변"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대형 작품 사진을 걸어둔다면 어떨까.
그림은 미술관에서 끝나지 않는다. 소로야의 그림은 언제나 다시 바다로 걸어 나간다. 미술관을 나와 바닷가로 나아간 관람객들은 100년 전 소로야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지중해의 바람을 맞고, 그림 속 황소와 아이들의 잔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예술과 영화, 역사와 바다가 어우러진 말바로사는 단순한 휴양지를 넘어 깊은 울림을 주는 기억의 장소로 거듭날 것이다.
과연 누가 이길까?
단기적인 흥행이나 관람객의 체감 만족도로 본다면 발렌시아의 판정승이 점쳐진다. 마드리드가 공사 지연으로 주춤하는 사이, 뉴욕에서 건너온 '황소'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실제 지중해 바다가 주는 현장감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마드리드가 전열을 정비하고 문을 열고 나면, 실물 크기 '말'이 주던 그 묵직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이 다시 관람객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결국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마드리드에서는 햇빛을 머금은 '말' 앞에서 숨을 삼킨다. 발렌시아에서는 '황소'의 거친 숨결을 따라 지중해의 바람을 맞는다.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 하나를 더해 본다면, 발렌시아를 배경으로 쓰고 있는 소설 《발렌시아의 인장》이 언젠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꿈꿔본다. 그 책을 손에 들고 다시 이 도시를 걷고 싶다. 소설 속에 담아낸 호아킨 소로야의 흔적을 따라 새로 문을 연 발렌시아 호아킨 소로야 미술관의 작품 앞에 서고, 말바로사 해변의 바람을 맞으며, 100년 전 화가가 바라보았던 지중해의 빛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다.
그 두 도시를 모두 걸어 본 사람만이 깨닫게 된다. 소로야가 평생 캔버스에 붙잡으려 했던 것은 말도, 황소도 아니었다.
그가 끝내 담고 싶었던 것은 지중해를 스쳐 가는 한순간의 빛이었다.
참고 자료
🔗
https://valenciasecreta.com/museo-sorolla-hispanic-society-of-america-valen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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