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2037 #발렌시아 #발렌시아의인장 #푸이그 #푸이그의성모
PROJECT 2037 1권 : 발렌시아의 인장
4-13장 푸이그의 성모
역사는 피로 쓰이고, 신앙은 묵직한 중력으로 각인된다.
1233년, 발렌시아로 향하는 북쪽 길목의 요충지이자 '녹색 도시'라 불리던 부리아나(Burriana). 하이메 1세는 두 달에 걸친 치열한 공성전 끝에 마침내 부리아나를 함락하고 깃발을 꽂았다.
부리아나가 무너지자 북쪽 해안의 여러 거점이 차례로 흔들렸다. 정복자는 이제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진짜 목표는 지중해의 풍요를 한몸에 안은 제국의 보석, 발렌시아(Balansiya)였다.
발렌시아를 둘러싼 성벽은 견고했고, 식량 부족과 귀족들의 불만 속에서 정복 전쟁은 기로에 섰다. 하이메 1세는 발렌시아를 압박할 새로운 거점을 찾았다.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발렌시아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 '엔 발레사' 언덕, 엘 푸이그(El Puig)였다.
"이 언덕을 차지하는 자가 발렌시아의 주인이 될 것이다."
하이메 1세는 숙부 베르나트 길렘에게 정예 기사들을 맡겨 엘 푸이그 언덕에 요새를 건설하도록 명했다. 발렌시아의 자이얀 왕은 이를 좌시할 수 없었고, 1237년 수적으로 압도적인 이슬람 대군을 이끌고 엘 푸이그 언덕을 포위했다.
검과 검이 부딪히고 쇠사슬 갑옷이 찢겨나가는 비명이 언덕을 뒤흔들던 밤, 땅바닥 아래에서 기묘한 공명이 울렸다. 전승에 따르면, 천사들이 사흘 밤낮으로 지키던 거대한 석조 종 밑을 파헤쳤을 때 흙 속에서 빛을 발하는 성모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사들이 동요하는 순간, 하이메 1세는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은 뒤 짧게 명령했다.
"이곳에 성당을 세워라."
왕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 한마디는 훗날 이 언덕에 세워질 거대한 방주의 첫 번째 인장이 되었다.
후대의 전승은 그날의 승리를 성 조지의 개입으로 기록했다. 붉은 십자가를 든 성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라곤 군대를 도왔다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피범벅이 된 채 살아남은 기사들에게 그것은 훨씬 단순한 사명이었다. 살아남는 것. 그리고 발렌시아로 향하는 길을 열어두는 것. 엘 푸이그에서의 대승은 그렇게 발렌시아 탈환의 결정적 단초가 되었다.
정복이 완성된 뒤, 하이메 1세는 성모에게 이곳을 봉헌했고, 훗날 그 자리에 성소와 왕립 수도원이 들어섰다.
그리고 237년의 세월이 흐른 1474년, 발렌시아 시내 Portal de la Valldigna 근처에 자리 잡은 독일계 인쇄공 람베르트 팔마트(Lambert Palmart)의 인쇄소에서 이베리아반도의 인쇄사에 영원히 기록될 사건이 일어났다. 발렌시아의 성모를 찬양하는 시 경연 작품집, 《Obres o trobes en lahors de la Verge Maria》가 이베리아반도 최초의 문학적 인쇄물로 찍혀 나온 것이다.
독일에서 건너온 인쇄공들이 목제 프레스의 손잡이를 내리누를 때마다, 금속 활자에 묻은 검은 먹이 종이 위에 또렷한 글자를 남겼다.
1237년 엘 푸이그의 땅이 성모상을 품어내던 압력과, 1474년 성모를 찬양하는 문장을 종이 위에 눌러 새기던 목제 프레스의 중력. 양피지에 손으로 적던 정적의 시대가 저물고, 둔탁한 나무와 쇠의 마찰음 속에서 말씀이 반복해서 세상으로 밀려 나오는 새로운 방주의 엔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훗날 엘 푸이그의 왕립 수도원 내부에 들어선 스페인 국립 인쇄박물관. 세바스티안은 전시된 구텐베르크 목제 프레스의 묵직한 손잡이 위에 손을 얹었다.
차갑고 가라앉은 나무의 촉감. 그러나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나무 프레스와 압착판, 그리고 활자의 정교한 배열. 세바스티안의 눈앞에 13세기의 엘 푸이그가 겹쳐졌다.
부리아나에서 가다듬었던 하이메 1세의 피 묻은 칼날, 천사의 종 아래에서 발견되었다는 성모상의 정적, 그리고 활판에 먹을 바르고 종이를 내리누르던 그 목제 프레스의 중력.
수도원을 나온 세바스티안은 천천히 엔 발레사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갔다. 거친 바닷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흔들었고, 시야가 거칠 것 없이 터져 나갔다. 폐허 위 누군가가 세워 놓은 나무 십자가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먼저 저 멀리 북쪽의 사군토성을 바라보았다. 산맥의 능선을 타고 기다랗게 누워 있는 고성의 석벽 위로 기묘한 환영이 넘쳐흘렀다. 기원전 219년, 카르타고의 한니발에 맞서 8개월간 굶주림과 싸우던 사군토 주민들. 로마의 구원을 기다리다 지쳐 결국 거대한 장작더미를 피우고 보물을 던져 넣은 뒤, 스스로 불길과 검 위에 몸을 던졌던 그 처절하고 비극적인 자살의 비명 소리가 바람을 타고 귀전을 때렸다.
시선을 우측으로 조금 돌리자, 현대의 유산인 사군토의 거대한 용광로 타워가 보였다. 붉은 화염과 열기 속에서 뜨거운 쇳물을 쏟아내며 시대를 떠받치던 산업 역군들. 얼굴에 검은 그을음을 묻힌 채 땀방울을 흘리던 노동자들의 거친 숨소리가 용광로의 주파수와 겹쳐졌다.
그리고 이번엔 산타 바르바라 언덕을 건너 동쪽의 아득한 지중해로 눈을 돌렸다. 수평선 위로 일렁이는 푸른 물결. 그곳에는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채 목숨을 걸고 사나운 파도 속으로 노를 저어 나가던 옛 어부들의 억척스러운 삶이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세바스티안이 발아래 언덕 밑을 내려다보았을 때, 시공간의 경계가 완벽히 허물어졌다. 1237년의 그날처럼, 하이메 1세와 그의 기사들이 결전을 위해 쇠사슬 갑옷을 울리며 말을 타고 언덕을 향해 맹렬히 진군하는 환영이 겹쳐졌다.
시대와 물질은 달랐지만, 인간은 600년 동안 계속해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강하게 눌러, 지워지지 않는 인장으로 만드는 일.
엘 푸이그는 단순한 정복의 언덕이 아니었다. 피와 돌, 나무와 먹, 그리고 쇳물과 파도.
시대가 바뀔 때마다 인간은 다른 물질을 사용해 같은 것을 새겼다. 지켜야 할 것을 지워지지 않게 만드는 것. 세바스티안은 그 순간, 그것이 엘 푸이그에서 시작된 진짜 인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댓글
댓글 쓰기